귀환천화 241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41화
241화
개방으로부터 올라온 정보였다.
삐뚤빼뚤한 글씨여서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천화상단 일행이 동쪽으로 향하고 있음. 그런데 마차가 이상함. 좀 더 살펴보겠음.]
“이것이 이 이후에 들어온 겁니다.”
목량이 다시 전서 한 장을 내밀었다.
역시나 개방에서 올라온 정보였다. 글씨도 똑같았다.
[천주명이 타고 있는 마차의 문이 한나절 동안 열리지 않았음. 나오는 사람도 없고, 들어가는 사람도 없음. 뒈졌나?]
전서를 읽은 혁무천은 이마를 좁히고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의미라고 보느냐?”
목령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마차에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아니면… 개방제자 말대로 천주명이 죽었던가요.”
“무슨 소리냐? 천주명이 죽다니?”
혁무천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가 천주명에게 펼친 참혼점혈법은 상대에게 지독한 고통을 주긴 해도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사흘만 지나면 점혈도 풀린다.
그런데 죽다니?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목량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천주명은 내상이 심해서 마차를 타고 갔습니다. 그런데 마차의 문도 열리지 않았고, 들락거리는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타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닙니다. 그 마차에 천주명을 태우는 것을 풍마문에서 분명히 봤다고 했습니다. 그 후 내렸다는 말은 없었지요. 결국… 사람은 타고 있는데, 산 사람이 없다는 것이지요.”
“으음…….”
“설령 아무도 모르게 천주명을 옮겼다 해도 마차에 누군가는 타고 있어야 합니다. 빈 마차를 몰고 가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혁무천의 얼굴이 살얼음 낀 것처럼 싸늘해졌다.
“그들이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 거라 보느냐?”
“이미 사흘이 지났습니다. 그들의 속도라면 지금쯤 상구를 지났을 겁니다.”
“즉시 지급으로 개방에 연락해서 확실한 걸 알아봐라.”
“예, 대형.”
“분명히 말하지만, 천주명은 죽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도 그가 죽었다면… 누군가가 그를 고의로 죽였다는 뜻이 된다.”
순간, 혁무천의 말뜻을 깨닫고 목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사자인 천주명이 정말 죽었다면, 그가 천기회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진실조차 묻혀버린다.
다른 한 사람 역시 죄를 부정하면 더 이상 다그칠 수도 없고.
“맙소사, 설마……?”
“천궁환은 누구의 말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아들인 천주명이 죽었다는 것. 그 사실이 중요할 뿐이지. 그게 무슨 뜻인지 너라면 잘 알 거다.”
“무서운 사람들이군요.”
“그게 강호다, 목량. 아주 비정한 세상이지.”
***
“새삼 천하가 넓다는 생각이 드는군.”
천양묵은 능선에 서서 끝도 없이 펼쳐진 산맥을 바라보았다.
복우산만 해도 동서로 오백 리, 남북으로 삼백 리다.
북에는 웅이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진령산맥과 연결되어 있다.
이 드넓은 복우산도 촉산까지 이어지는 수천 리 대산맥의 동쪽 끝자락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천하는 도대체 얼마나 넓은지 감이 오지도 않는다.
“아주 영리하게 숨어들었어.”
천양묵은 정은맹이 왜 복우산에 숨어들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최악의 경우 그들이 촉산 쪽으로 도주한다면 잡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이번 공격에 나선 인원은 팔천 명.
그 많은 인원이 장강에 던져진 조약돌처럼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젠장, 적어도 팔만 명은 있어야 복우산을 제대로 훑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세상이 넓어도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은 한정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옆에 서 있던 사야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천양묵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피식, 웃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미리부터 기운 빠지는 소리 할 필요는 없겠지.”
전에는 협곡으로 곧바로 진격했다가 놈들의 함정에 걸려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능선을 이용해서 이동했다. 능선에는 함정을 파기가 쉽지 않으니까.
이제 곧 놈들의 피로 죽은 수하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으리라!
돌아선 그는 뒤에 늘어서 있는 무사들을 바라보았다.
완만한 경사의 능선 위에 이천여 명이 서 있었다.
만마성 무사를 비롯해서, 철혈마련과 멸정단 무사들이었다.
“이제부터 놈들을 사냥한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 천천히 전진하면서, 철저하게 찾아내 박멸할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능선 위에 울려 퍼졌다.
큰 목소리가 아닌데도 저 끝에 서 있는 사람조차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만마의 무사들이여! 마도의 무사들이여! 놈들에게 마도의 위대함을 보여줘라!”
“만마의 위대함을 위해!!!”
“마도의 위대함을 위해!!!”
“충!!!!!”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은 일천 무사들이 몸을 일으키더니, 능선 아래를 향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내려갔다.
뒤따라서 철혈마련과 멸정단 무사들이 좌우로 퍼졌다.
마치 산사태가 일어나는 듯했다.
마침내 정은맹과 정파 무사들에 대한 토벌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날, 복우산의 짐승들은 숨을 죽인 채 구석으로 숨어서 인간들의 아귀다툼을 구경했다.
잘난 척하는 인간들의 싸움이 짐승들의 생존을 위한 다툼보다도 더 잔인하고, 역겨웠다.
그래도 맹수들은 즐겁게 입술을 핥으며 기다렸다.
조금만 있으면 얼마 전처럼 며칠 동안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먹이들이 생길 테니까.
***
“맹주, 놈들이 능선을 이용해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사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보고를 올리고 사마진웅을 바라보았다.
사마진웅은 봉우리 정상에서 가부좌를 튼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센 바람에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있는데도 눈동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준비 상황은?”
“일만 무사가 십면매복진 대신 팔문금쇄진으로 방어망을 치고 대기 중입니다. 한 시진 후면 놈들과 마주치게 될 겁니다.”
육기와 정의단, 백천대, 천기회, 거기다 각지에서 몰려온 정파의 무사들로 이루어진 팔문금쇄진은 공격보다 방어에 치중된 진세다.
대승을 쟁취했다 하나 승리에 도취되어 공격으로 나서기에는 마도연합의 무력이 너무나 강한 것이다.
“놈들은 서두르지 않고 우리를 죄어올 것이네. 현재 버틸 수 있는 식량은 얼마나 되는가?”
“본래 두 달 분까지 비축했습니다만,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서 한 달 반 정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만장곡의 준비상황은 어떠한가?”
“그곳에는 일만 명이 한 달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식량과 무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만장곡은 정은맹 총단이 위치한 노군협에서 삼백 리 서쪽에 있다.
만약의 경우 후퇴를 하게 되면 그곳에서 집결한 후 역습을 가할 계획이다.
복우산에서 승리한다면 적을 몰아붙일 동안 공급할 물자로 활용할 것이고.
그 사실은 아는 사람이 정은맹에서 열 명도 채 안 될 정도로 극비였다.
사마진웅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의의 검이 마도를 무찌르고 강호에 서는 날까지 목숨을 내던지기로 했네. 그리고 오늘이 왔지. 사명, 고맙네, 그 오랜 세월 나를 믿고 내 옆에 있어줘서.”
“맹주…….”
“나는 어차피 목숨을 던진 사람이네. 하지만 자네는 아니야. 만에 하나 일이 잘못 되어도 자네는 살아야 하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저 역시 맹주와 함께 갈 겁니다. 떼어놓지 마십시오.”
“살게. 그래서 신아를 지켜주게. 부탁이네…… 아우.”
평소와 달리 ‘아우’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사마진웅의 말에 이사명은 흠칫했다.
단순히 자신이나 아들을 염려해서 하는 말이 아닌 듯했다.
“맹주?”
“나는 하지 않아야 할 결정을 했네. 그때는 하지 않을 수 없는 결정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제와 생각하니, 그 결정이 더 큰 불행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
“무슨 말씀이신지……?”
“모든 업보는 내가 지고 갈 것이야. 하지만 나도 한 아이의 아버지다 보니, 아들이 잘못되는 것을 차마 견딜 수 없을 것 같군.”
“맹주,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때가 되면 알게 될 거네. 그때 이 우형이 만고의 죄인이 되더라도 무덤에 술 한잔 부어주게나.”
“맹주… 형님…… 도대체 저는 무슨 말인지…….”
이사명의 아연한 표정을 본 사마진웅이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아직 그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니… 어쩌면 치기 어린 투덜거림일지도 모르겠군.”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서 있던 이사명은 고개를 흔들었다.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아니면 긴장을 풀기 위해 놀리는 말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하하하! 너무 그렇게 보지 말게. 이 우형이 못난 사람이다 보니 강적을 앞에 두고 너무 긴장한 것 같네.”
“후우우우.”
이사명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쨌든 이번 싸움을 총지휘해야 할 맹주가 다시 이전의 기세를 되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었다.
하지만 가슴 속 깊은 곳의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구나.’
“가세, 사명! 사람들이 기다리겠군.”
사마진웅이 짐짓 힘찬 목소리로 말하고는 훌쩍 몸을 날렸다.
이사명은 뒤따라가면서 사마진웅의 등을 바라보았다.
두 자도 되지 않는 저 어깨에 쌓인 무게가 짐작도 되지 않았다.
***
풍마문 조장에게 건넨 전서구 다섯 마리 중 첫 번째 전서구가 날아왔다.
금룡장 정화당 무사가 가져온 전서를 목량이 받아서 혁무천에게 건넸다.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혁무천은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전서를 읽어보았다.
[마도연합이 사로(四路), 팔군(八群)으로 나누어져서 정은맹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노군협으로 전진. 혈왕동이 이끄는 일군이 선봉으로 사황분지에 들어가던 중 입구에서 강력한 저항을 받음.
정은맹은 방어에 치중하며 마도연합의 진입을 막고 있음.]
“아직은 서로가 간을 보는 정도라고 보면 되겠군.”
“저번처럼 당하지 싶지는 않겠지요.”
“방어에만 치중하면 결국 밀린다는 걸 알 텐데, 왜 대승을 거둔 정은맹이 그런 계책을 펼친다고 보느냐?”
“노리는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노리는 게 있겠지. 그렇다면 결국 그 노림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로 승패가 판가름 나겠군.”
“아무래도 그러겠지요.”
목량의 대답을 들은 혁무천은 전서를 내려놓고 냉소를 지었다.
“어쨌든 승부가 나려면 시간이 걸릴 거다. 그 동안 우리도 준비를 해야지. 천화상단과 천기회를 상대하려면.”
“예, 대형.”
그렇다. 마도연합과 정파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자신들에게는 더 중요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
천궁환은 입술을 꾹 다문 채, 관 속에 들어있는 천주명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주앉아 차를 마시던 아들이 시신으로 변해 돌아왔다.
석회로 인해 피부가 더욱 하얗게 느껴져서 그런지 현실 같지가 않았다.
강호에서 살다 보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사라지만, 그리 생각한다 해서 아픔이 가시는 건 아니었다.
“무천에게 죽었다고 했더냐?”
그의 입에서 그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나직이 흘러나왔다.
“예, 아버님.”
돌아선 천궁환이 손을 휘둘렀다.
퍽!
천신명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