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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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39화
239화
일그러져 있던 천주명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순간, 천주명의 가슴을 누른 천신명의 손에서 백광이 번쩍였다.
천주명의 몸이 펄떡거렸다.
눈에 핏발이 섰다.
파르르 떨리던 몸이 서서히 잠잠해졌다.
천신명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역팔자로 치켜떠진 눈에서 눈물과 살광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네 복수는 확실히 해주마. ……미안하다, 주명아.”
***
신도명산은 신도평의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손끝이 잘게 떨렸다.
“너를 죽인 그놈을 내 손으로 갈가리 찢어서 그 살을 씹어 먹을 거다.”
분노를 씹어 뱉는 그의 목소리가 미미하게 떨렸다.
천주명의 부탁을 받고 떠난 아들이 시신으로 돌아왔다. 함께 떠난 천무대도 대부분 시신이 되었다.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겨우 다섯.
그들의 말에 의하면, 마을에서 쉬고 있는데, 비룡장과 검마보 무사들이 들이닥쳤다고 했다.
신도평의 방에 들어간 자는 무천. 비룡단주라는 자였다고 한다.
신도평을 죽인 놈도 그놈일 것이 분명했다.
은설이라는 천한 계집이 오빠라고 부르는 놈!
“죽은 평아의 복수를 할 거다. 평아의 죽음과 관련된 놈들은 모조리 죽여서 돼지밥으로 던져줄 거다. 반드시…….”
한 서린 목소리로 복수를 다짐한 신도명산은 고개를 들었다.
“이현, 천화상단에 연락해라.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다 아들을 잃었다. 전에는 부탁을 했지만, 이제는 요구를 해야겠다. 실력이 확실한 자들을 보내달라고 해.”
그의 뒤에 서 있던 이현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회주.”
착잡했다.
천화상단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아닌가 말이다.
자신이 좀 더 강하게 말했어야 했나?
아니, 그래도 듣지 않으셨을 것이다.
회주는 이제 자신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상의하지도 않으니까.
‘무천과 적이 되지 않기를 바랐거늘…….’
그는 적으로 삼아서는 안 될 사람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신도명산은 절대 무천을 이길 수 없다.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는 없었다. 그저 천기가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
그런데 아쉽게도 자신에게는 그 천기를 뒤바꿀 재주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결정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
금룡장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소 닭 보듯 하던 천화상단과 적이 되다시피 한 상황.
더구나 천하제일거상인 천화상단의 무력이 팔대마세 못지않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었다.
금룡장주 전금환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좌불안석이었다.
그나마 창고비용과 운송에 금룡장 무사들이 호위로 나서면서 쏠쏠한 돈이 들어오는 게 유일한 위로였다.
맞은편에 앉아 차를 마시던 혁무천이 무거운 표정의 그를 보고 물었다.
“걱정 되십니까?”
“허허허, 솔직히 걱정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그들은 금룡장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할 겁니다.”
‘그놈의 자신감은.’
전금환은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도 밖으로 내뱉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다.
“하긴 잘못은 그들이 했으니…….”
“표행을 공격한 것도 잘못이지만, 그들이 천기회와 손을 잡았다는 게 더 문제가 큽니다. 그들은 당분간 금룡장에 신경 쓸 정신이 없을 겁니다.”
“허허허, 그렇군. 자네 말이 맞네.”
그때 금룡장 무사 하나가 밖에서 안에 대고 말했다.
“천화상단의 천신명이 비룡단주께 전하라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혁무천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져오시오.”
곧 안으로 들어온 금룡장 무사가 접혀 있는 서신을 건네주었다.
서신을 받아서 펼쳐본 혁무천의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의외군.”
나직이 한마디 내뱉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먼저 일어나봐야겠습니다.”
전금환의 방에서 나온 혁무천은 자신의 거처가 있는 후원으로 갔다.
후원 마당에서 추씨 삼형제와 초식 수련을 하던 목량이 그를 보고 바로 따라붙었다.
혁무천이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율 보주와 송숙, 사공 선배를 모셔 와라.”
뒤따라가다가 걸음을 멈춘 목량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예, 대형.”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꿈쩍 안 할 것 같은 대형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왠지 모르게 스산한 느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혁무천은 방에 들어가서 서신을 품에서 빼내 다시 펼쳐보았다.
‘무슨 생각인 거냐, 천신명.’
그는 길지 않은 내용을 한 자, 한 자 새기듯 읽었다.
그는 내용뿐만이 아니라 글자 그 자체도 획을 하나하나 뜯어서 보듯 유심히 살펴보았다.
글자에는 쓴 사람의 감정이 묻어 있을 때가 있다.
느긋하니 평온한 마음이면 글자도 안정되기 마련이다. 조급하면 흘림이 많고, 불안하면 먹이 튀거나 떨림이 나타난다.
그런데 천신명이 쓴 글자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보는 순간 느껴질 정도로 힘이 들어간 글자. 극도의 절제된 붓의 움직임.
‘그리도 화가 나더냐?’
문제는 내용이 마치 남의 일을 논하듯 담담하다는 것이다. 글자에서 느껴지는 감정과는 전혀 다르게.
동생이 그 지경이 되어서 갔는데도.
“모셔왔습니다, 대형.”
목량의 목소리가 들리고, 몇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율이명과 송비, 사공진, 그리고 은설도 따라왔다.
사람들이 탁자에 둘러앉자 시비가 차를 내왔다.
혁무천은 사람들이 읽기 쉽도록 탁자 가운데에 서신을 펼쳐놓고 문진으로 귀퉁이를 눌러놓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서신에 집중되었다.
“의외군.”
율이명이 먼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네.”
사공진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조했다.
“무슨 생각인 거지?”
송비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생각했다.
“화가 많이 났군요.”
목량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공진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용은 화난 것 같지 않은데?”
목량이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글씨를 보면 힘을 잔뜩 준 표가 납니다. 거기다 미세한 떨림조차 있지요. 그런데 문장이나 내용은 담담합니다. 아마 극도의 분노를 억누르며 쓴 것으로 보입니다.”
혁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것 같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를 담고 있었다.
-천화상단 무사들이 무단으로 표행 공격에 참여한 것을 사과한다.
-그 책임을 지고 천화상단은 남양에서 철수할 것이며, 마도연합과의 거래도 이번 달까지만 할 것이다.
의외의 결정이었다.
“이미 계약한 거래야 물건만 운송하면 되니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후의 거래를 생각하면 적어도 은자 백만 냥 이상을 포기한 셈입니다.”
율이명이 코웃음 쳤다.
“흥! 죄를 지었으니 철수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사과한다고 적긴 했습니다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겁니다.”
“전부가 아니면, 다른 술수라도 있단 말인가?”
“천신명은 약한 자가 아닙니다. 무공은 초절정고수고, 천화상단의 장자로서 어릴 때부터 철저히 교육을 받으며 커온 자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상인 못지않지요.”
“그런데 왜 그냥 철수한다는 거지? 가만두지 않겠다고 방방 뜰 줄 알았는데.”
혁무천도 그러지 않을까 했다.
천화상단의 자존심도 있는 만큼 그냥 지나가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호위무사들을 단숨에 죽이고, 천주명을 점혈해서 고통의 바다에 빠뜨린 것도 천신명이 달려오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냥 떠나버렸다.
왜?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옆에 앉아 있던 목량도 평소와 달리 굳은 표정이었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형.”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풍마문과 개방에 말해서 철저히 조사해봐라. 우리가 모르는 변수가 있는지. 그리고 천기회 역시 인원을 추가 배치해서 감시하라고 해.”
“예, 대형.”
목량이 밖으로 나가자, 조용히 앉아있던 은설이 말했다.
“분노한 사람이 이런 내용을 이렇게 냉정하게 쓰다니, 왠지 무섭게 느껴져요. 절대 그냥 물러설 것 같지가 않아요.”
“너무 걱정 마라. 그가 철수한다면 한동안 이곳으로 오기 힘들 거니까.”
“왜요?”
“천궁환은 실패한 자식에게 계속 기회를 줄 만큼 마음씨 좋은 사람이 아니거든.”
“그럼 좋을 텐데…….”
하지만 혁무천도 변수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천주명이 천신명의 손에 죽었다는 걸.
***
다음 날 오후.
천신명은 자신이 말한 것처럼 천화상단 무리를 이끌고 남양을 떠났다.
남아 있는 자들은 십여 명이었는데, 기존의 거래를 마무리 짓기 위해 남은 듯했다.
남양의 상인들은 구룡상단의 비룡장이 천하제일거상인 천화상단을 이겼다며 놀라워했다.
혁무천은 그 소식을 자신의 거처에서 목량에게 들었다.
“그들이 떠났습니다, 대형.”
“폭풍전야가 더 고요한 법이다. 방심해서는 안 된다.”
“예, 대형.”
“소소월 노인을 정주로 옮겨라. 앞으로 천화상단과 싸우게 되면 그 노인의 경험과 지식이 필요할 거다.”
“아, 그게 낫겠군요. 알겠습니다, 대형.”
목량이 나가고 반각쯤 지났을 때, 철호가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풍마문의 조장이었는데, 다급함과 흥분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본 혁무천이 물었다.
“무슨 일이오?”
“오늘 아침에 마도연합 쪽에서 전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혁무천의 표정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마침내 시작되었다.
이번 싸움은 저번과 달리 일방적인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깊고 깊은 복우산의 산속에서 물고 물리는 치열한 싸움이 상당기간 지속된 게 분명하다.
정파와 마도의 운명을 건 일전!
정은맹이 패한다면 정파는 또 한 동안 마도에 눌려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반면 마도가 패한다면, 칠십 년의 마도천하는 끝이 난다.
무림인이라면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번 싸움이 또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걸 모른다.
‘상황에 따라 핏빛 먹구름이 천하를 뒤덮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번 싸움이 천하쟁패로 변질될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둘 모두, 어떤 식으로든 자신과 관여되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규모는?”
“무려 팔천여 명이 사로(四路) 팔군(八群)으로 나누어져서 복우산에 진입했습니다.”
그 숫자면 집결한 마도의 무사들이 거의 모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만마성주와 마천문주, 혈왕동주, 사도맹의 태상장로인 사공철이 사로의 수장으로 나섰다고는 걸 보면, 아무래도 겨울이 오기 전에 끝장을 보려는 것 같습니다.”
단단히 화가 났나 보다.
하긴 분노할 만도 하다. 오합지졸로 봤던 정파의 잔당들에게 수하 수천 명이 죽었으니…….
아마 자신이라 해도 직접 전장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수고했소. 전서구를 얻어 줄 테니,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바로 알려주시오.”
“예, 공자!”
혁무천은 금룡장주 전금환에게 전서구 다섯 마리를 얻어서 풍마문 조장에게 건넸다.
전서구는 어디에서 날려도 금룡장으로 돌아온다.
비록 날리는 지역에 대한 훈련은 되어 있지 않아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가장 빨리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자린고비 같은 전금환이 은자 열 냥을 요구했는데, 그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이걸 가져가시오. 네 마리가 돌아오면 다시 보내도록 하겠소.”
풍마문 조장도 반색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도 오가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니 굉장히 편리하겠군요.”
시간을 아낄 뿐만 아니라, 이백 리 길을 뛰어다니지 않아도 된다.
풍마문 조장을 보낸 혁무천은 곧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제각각으로 변했다.
경악, 흥분, 긴장…….
율이명이 혁무천을 보며 물었다.
“자넨 어떻게 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