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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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78화
278화
혁무천이 바닥을 향해서 검을 흩뿌리듯 휘두르자, 천망검에서 영롱한 검기가 뻗어나가고,
츠츠츠츠츠.
단단한 청석 바닥이 깊게 파이면서 선이 그어졌다.
포위하고 있던 자들은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고 눈치만 봤다.
한편, 신도명산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남황궁 고수들이 상대하도록 놔두었다.
단 한 번의 공방으로 자신이 밀린다는 걸 느낀 그였다.
천화상단의 절대고수들이 저놈에게 패했다더니 거짓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자신은 저놈과 악연으로 얽혀 있지 않은가.
아들의 복수도 자신이 살아야 할 수 있다. 아니, 그 이전에 살아 있어야 꿈을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 와중에도 그는 아들의 복수보다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 했다.
‘힘이 빠지면 그때 놈의 목을 쳐도 돼.’
그렇게 반각쯤 지났을 때.
이십여 명이 만가장의 담장 위로 솟구쳤다. 비룡단원들이 외부를 차단한 순찰망을 뚫고 도착한 것이다.
지상으로 내려선 그들은 엄청난 인원을 보고 멈칫했다.
하지만 곧 혁무천 쪽으로 몸을 날리며 포위망을 구축한 무사들을 공격했다.
“단주! 조금 늦었습니다!”
“저리 비켜!”
부우우웅!
떠더더덩!
장대산의 장봉이 허공을 가르자,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리며 무기와 사람이 동시에 튕겨 나가고 앞이 갈라졌다.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만큼은 장대산의 장봉이 그 누구의 공격보다 강맹한 위력을 발휘했다.
“염화, 산개!”
형산의 도사, 귀원도 술법을 사용했다.
포위망을 형성한 무사들 위로 번쩍이는 뭔가가 날아가는가 싶더니 불꽃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옷자락 위로 떨어진 불꽃은 옷을 태우며 타올랐다.
무사들은 난생 처음 대하는 술법에 당황해서 다급히 불을 끄며 뒤로 물러섰다.
철호가 쌍도끼를 번개처럼 휘두르며 그 속을 파고들었다.
송비와 철상, 호광, 탕초영과 그 일행, 영추문, 장평, 추가 삼형제, 그리고 무원장에 영입된 절정고수 중 이번에 동행한 네 사람이 일제히 포위망을 공격했다.
사오십 명이 줄줄이 쓰러지며 포위망 한쪽이 일시에 무너졌다.
혁무천은 적시에 도착한 그들을 보고 안도했다.
만가장 도착 후, 지붕 위에 몸을 숨기고 상황을 지켜보던 그는 비룡단이 오면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는 일단 포위망에 갇힌 자들을 구하기로 했다.
은설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동대안이 미친놈 보듯 쳐다봤다.
정은맹은 백마궁과 또 달랐다. 마도 전체를 상대로 싸우는 정은맹 아닌가.
하지만 남궁무룡과 사마진웅을 저대로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여차할 경우 자신의 생명력을 담보로 해서 공력을 십성 끌어올리면 빠져나가는 건 어렵지 않을 듯했다.
다행인 점은, 정은맹 무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도명산도 그들의 반발을 우려한 듯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결정을 내린 그는 신도명산을 공격하며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비룡단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다.
‘이제는 빠져나가는 일만 남았군.’
“정은맹의 협의지사들은 이 일에 끼어들지 마시오! 우리는 세외의 남황궁 마졸들이 중원에서 설치는 꼴을 볼 수 없어 나선 것뿐이니까!”
혁무천이 다시 소리치자, 정은맹 무사들의 동요가 더욱 커졌다.
남황궁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는 자들조차 그들이 마도인지 정파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세외의 문파가 정은맹을 좌우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 일리 없었다.
그 와중에 포위망 한쪽이 비룡단에 의해 뚫렸다.
포위망에 갇혀 있던 사람들도 뚫린 포위망을 전격으로 공격했다.
혁무천은 정은맹 무사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걸 알고 신도명산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신도명산! 나와 한판 붙어보자!”
신도명산은 이를 갈면서도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대신 그를 호위하던 천기회 호법들이 나서서 막았다.
혁무천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검을 펼쳤다.
대천룡구검세가 줄줄이 펼쳐지자, 마치 용이 허공에서 뒤엉키며 광란의 춤을 추는 듯했다.
천기회 호법들은 혁무천의 일초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
콰과과광!
굉음이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천기회 호법들이 튕겨나갔다.
일당 백, 아니 일당 천의 위세가 아닐 수 없었다.
기회를 엿보던 신도명산은 그 광경을 보고 오히려 거리를 더 벌렸다.
‘정말 더럽게 강한 놈이구나!’
그 사이 포위망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포위망을 뚫고 만가장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던 자들이 비룡단을 추격하려고 하자, 구경하며 갈등하던 무사들이 나섰다.
“맹주! 이제 그만 하시오! 일이 커져봐야 마도 놈들만 좋아할 거요!”
“전 맹주님을 치료하기 위해 간다는데, 왜 막는 거요!”
“놔둡시다, 맹주. 떠날 사람은 떠나는 게 낫습니다.”
“맹주! 천기회의 무사들이 정말 남황궁 사람들이오?”
신도명산은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짜증이 치밀었다.
무천이란 놈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놈을 잡으려다가는 정은맹 무사들의 반발만 살 수 있었다.
‘빌어먹을!’
그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동도 여러분이 정 그리 하길 원한다면 내 어찌 고집을 피울 수 있겠소! 동도들의 뜻을 받들어서 추적하지 않겠소이다!”
***
만가장을 빠져나온 비룡단원과 남궁무룡 등은 십 리쯤 달린 후 추적이 없다는 걸 알고 멈춰 섰다.
부상자를 치료하는 동안 혁무천은 남궁무룡과 황보수 등이 있는 곳으로 갔다.
사마진웅은 그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사마 맹주께선 좀 어떻습니까?”
“맥이 약하긴 하지만 당장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 같네.”
“다행이군요.”
남궁무룡은 입 안이 썼다.
비룡단은 마도세력에게 물자를 공급해준 구룡상단의 최전방에 서 있는 자들이다.
적이라 할 수도 있는 자들.
그들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이 불편하기만 했다.
“도와줘서 고맙네. 하지만 뭔가를 바란다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네.”
“필요에 의해서 한 일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필요?”
“저는 정혈단이 고삐 풀린 광마처럼 날뛰는 걸 원치 않습니다.”
남궁무룡의 눈빛이 흔들렸다.
혁무천이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 더했다.
“그들이 익힌 것이 뭔지 안다면, 제 말이 뭘 뜻하는지도 알 겁니다.”
남궁무룡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무슨 말인가? 그들은 정파의 비전무공을 익혔을 뿐인데.”
“몰랐습니까?”
“……?”
남궁무룡은 곤혹스런 표정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사마진웅이 죽으면 정혈단이 정은맹에 검을 겨눌 거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 혈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도.
하지만 그들이 익힌 무공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정말 모르셨나 보군요.”
“말해보게. 무슨 말인지.”
혁무천은 대답하기 전에 정은맹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간부급 고수들이 대여섯 명쯤 되었다.
눈이 마주치자, 황보수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혁무천은 그를 지나쳐서 다른 간부들을 둘러보았다.
그때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사명이었다.
“제가 압니다, 부맹주.”
“군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이사명이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그 물건을 뒤쫓는 자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 자네였나?”
“그렇습니다.”
“왜 그걸 찾으려 했나?”
“이런 일이 생길까 봐.”
설마 그런 대답을 할 줄은 생각 못한 듯 이사명이 침음을 흘렸다.
“으으음…….”
“이해는 합니다. 덕분에 마도세력의 힘을 약화시키고 정파가 일어설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천하를 불태워버릴 수도 있다는 점도 아셨어야지요.”
이사명의 안면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아직 정확한 것을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혁무천의 말을 듣고 나니, 사마진웅이 전에 왜 ‘만고의 죄인’ 운운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래서…… 형님이 그런 말을 했었나?”
“사마 맹주는 위험성을 알고 있었나 보군요.”
“남들이 다 욕하고 외면해도, 당신의 무덤에 술 한잔 따라달라고 하시더군.”
뿐만 아니라 그는 최후에 자신이 손을 쓰기를 바라기도 했다.
답답한지 남궁무룡이 물었다.
“대체 무슨 말인가?”
혁무천이 그를 보며 말했다.
“정혈단은 혈천여록에 있는 마공을 익혔습니다.”
남궁무룡의 눈이 홉떠졌다.
“설마…… 마천제의 혈천여록?”
“문제는 그 마공이 미완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성마저 피를 추구하는 마인이 되고 말지요.”
“이, 이런……! 어찌 그런 것을……!”
“사마 맹주께 뭐라고 하실 건 없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쯤 정은맹은 사라졌을 테니까요. 한마디로, 맹주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봐야겠지요.”
“하아아…….”
남궁무룡은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혁무천이 그를 보며 다시 말했다.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그 일을 잘 수습하면, 사마 맹주께서 결코 나쁜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 되겠지요.”
“응?”
번쩍 쳐든 남궁무룡의 눈에서 생기가 돌았다.
“그렇군. 자네 말이 맞네. 비록 그로 인해 피는 많이 흘렸지만, 마도를 물리치고 정파를 살렸으니 결코 손해만은 아니야.”
이사명도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지금은 그 일을 수습하는 게 최우선입니다.”
그쯤에서 혁무천이 화제를 돌렸다.
“그 전에 한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뭔가?”
“신도명산은 정은맹 맹주가 될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혁무천은 신도명산에 대해 몇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가 남황궁과 얽혀 있을지 모른다는 것도 말해주었다. 아마 오늘 반응으로 봐서는 사실이라고 봐야 했다.
남궁무룡과 이사명은 만가장에서 했던 혁무천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깨닫고 분노했다.
“그래서 형님을 일찍 제거하려고 했군. 외세가 정은맹을 장악하려는 사실이 드러나면 형님이 강하게 반발할 테니까.”
“죽일 놈들! 군사, 당장 뜻이 맞는 사람들에게 연락하게. 정은맹이 쪼개지더라도 이대로 놔둘 수는 없네.”
이사명도 남궁무룡의 말에 찬성했다.
지금은 정은맹이 쪼개지는 걸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정은맹이 통째로 넘어가서 외세가 중원에 진출하는 발판이 될 판이었다.
“알겠습니다, 부맹주.”
혁무천은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고는 시선을 사마진웅에게 돌렸다.
“일단 사마 맹주를 의원께 데려가지요.”
***
신도명산은 사마진웅의 탈출에 이를 갈았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아들을 죽인 놈을 눈앞에서 놓아주었다는 것이었다.
“너무 걱정 말게. 그는 절대 깨어날 수 없으니까.”
신도명산 앞에 앉은 중년인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청색 비단옷을 입은 그는 혁무천이 개봉의 외곽에서 봤던 자였다.
“나도 그건 아오.”
신도명산도 중년인의 말을 인정했다.
사마진웅은 깨어날 가능성이 일 푼도 되지 않았다.
남만의 수많은 독 중에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뇌만 마비시키는 독이 있다.
중년인의 수하인 독산귀(毒産鬼)에게 그 독을 얻어 사용했다.
사마진웅은 당장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해도 영원히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아마 아무 것도 못 먹고 물도 마시지 못하는 한 오래 살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