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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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75화
275화
“교활한 배신자들을 다 쓸어버리지요, 천주! 그런 자들 때문에 정파가 이 지경이 된 것 아닙니까?”
허운이 살기 띤 눈빛을 번뜩이며 냉랭히 말했다.
무당파가 피로 물든 후 그의 살기는 더욱 강해졌다.
온 세상을 피로 뒤덮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두 눈에서 흉흉한 살기가 폭사했다.
사마신이 턱을 쳐들고 말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마도 좋은 일만 해줄 수는 없다.”
“그럼 놈들을 놔둘 겁니까?”
“놔둘 수는 없지. 이제부터 정혈단은 정은맹과의 모든 관계를 끊는다. 그리고 정혈단이 아닌, 정혈천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삼대의 대주, 제갈위군과 허운, 여청이 들뜬 표정으로 사마신을 바라보았다.
“잊지 마라. 세상을 피로 씻어 정화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지옥에 들어가야 한다는 걸.”
“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
“명을 내려주시면 천하를 피로 정화할 것입니다!”
***
혁무천 일행은 남궁세가 사람들과 서성에서 헤어졌다.
하루가 지체되긴 했지만 은설을 위해 복수를 해주었지 않은가.
혁무천은 마음의 부담을 하나 털어냈다는 것에 만족했다.
거기다 남궁세가에 받을 빚이 하나 생겼으니 괜찮게 남는 장사였다.
생명선이 하나 줄어든 게 아쉽긴 한데, 그 대신 생명선 때문에 제어된 공력이 풀려서 공력이 조금 오른 터라 큰 불만은 없었다.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생각하면 먼저 겪은 것도 나쁘지 않았다.
사흘 후, 무원장에 도착한 혁무천은 백마궁의 일을 말해주었다.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은 아연한 표정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마도십문 중에서도 세 손가락에 드는 백마궁을 박살내고 왔단다.
그런 엄청난 일을 마치 옆 동네 건달들 두들겨 패고 온 것처럼 말하다니.
“너무 걱정할 건 없소. 복수하겠다고 달려오면 아예 지상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했으니 아마 안 올 거요.”
물론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 정도 피해를 입었다면 복구하는 데만 몇 년은 걸릴 테니까. 어쩌면 다른 곳에 먹혀버릴지도 모르고.
철혈마련이 어떻게 나올지, 그것이 조금 걱정이긴 했다. 하지만 그들도 힘을 잃은 백마궁 때문에 무원장과 싸우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 이현, 천기회에 남황궁 무사들이 합류한 것을 아나?”
“남황궁요?”
“정체를 숨기고 합류했을지도 모른다. 의심 가는 자들은 없었나?”
잠시 생각하던 이현이 이마를 찌푸렸다.
천기회주 신도명산은 항상 자신만만했다. 이천여 명으로는 마도세력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도.
문득, 여름 무렵 와호산장에 왔을 때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은 있습니다. ‘곧 천기회의 힘이 두 배로 커질 거다.’라고 말입니다. 그때는 강호의 정파 무사들을 모아서 세를 키울 계획인가 보다 했습니다만, 어쩌면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확인해보면 알겠지.”
혁무천은 초산명에 대한 조사를 풍마문에 맡기기로 했다.
그런데 그가 부르기도 전,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어 갈 때쯤, 마호걸이 먼저 혁무천을 찾아왔다.
그리고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정은맹의 주인이 바뀌었소.”
마호걸의 말은 혁무천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실이오?”
오죽하면 지금까지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정보의 진실여부부터 확인했다.
“그렇소. 정은맹에 들어가 있는 본문의 수하가 보내온 소식이오. 며칠 전에 일이 생겼는데, 워낙 감시가 심해서 조금 늦게 전해졌소.”
사실이라면 비상상황이다.
하지만 먼저 알아봐야 할 것이 있다.
“누가 맹주가 되었소?”
“천기회주 신도명산이오.”
“빌어먹을!”
혁무천이 반사적으로 상소리를 내뱉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기회주 신도명산이 정은맹주가 되다니.
“신도명산이 천기회 간부와 정은맹 간부들을 대동하고 사마진웅을 만나서 강요했다고 하오. 남궁무룡 부맹주와 몇몇 간부가 대노해서 대치 상황까지 갔는데, 사마진웅 맹주가 오히려 그들을 말렸다 하오.”
그랬을 것이다. 만일 그 상황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정파는 치명적인 상황이 되었을 테니까.
혁무천이 그동안 파악한 정은맹주 사마진웅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사마진웅을 맹주 위에서 쫓아내려면 명분이 있어야 했을 텐데.”
“첫 번째는, 사마 맹주의 무위가 마도의 주인들을 상대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었소.”
“두 번째 이유는?”
“정혈단이 혈겁을 일으키는 걸 맹주가 방치했다는 것이오.”
그것도 충분히 명분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호걸이 세 번째 이유를 말했다.
“알고 보니 정혈단주가 사마 맹주의 아들이었던 것 같소. 그 사실을 알게 된 천기회주와 팽조환 부맹주가 간부들을 선동해서 사마 맹주에게 맹주위에서 내려오라 강요했다는 거요.”
혁무천의 눈이 커졌다.
“정혈단주가 사마진웅 맹주의 아들?”
“그렇소.”
사마진웅과 정혈단주.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일 거라는 짐작은 자신도 했었다.
그런데 부자지간이라니!
젠장!
혁무천은 고개를 돌려서 방문 밖을 향해 말했다.
“밖에 누가 있지?”
“예, 대형. 철호입니다.”
“가서 목량과 이현을 데려와라! 빨리!”
“예, 알겠습니다.”
철호에게 명령을 내린 혁무천이 무심하게 굳은 표정으로 마호걸에게 물었다.
“정은맹의 정보망은 아직도 가동되고 있소?”
“물론이오.”
“그럼 즉시 연락해서 상황 변화를 한시도 놓치지 말라고 전해주시오. 특히 정혈단이 나타나면 바로 연락을 해주셔야 하오.”
“알겠소.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나올 거라 생각하는 거요?”
“일단은 하던 대로 마도를 공격할 거요. 사마 맹주가 인질로 잡혀 있는 이상은.”
“신도명산이, 남궁무룡 등 사마 맹주 측 사람들 앞에서 사마진웅에게 고위 간부자리를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면, 인질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소?”
“나하고 내기하겠소?”
마호걸은 잠시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기에서 혁무천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싫소.”
“문제는 이후요.”
“이후라면……?”
“내가 아는 신도명산이라면 사마 맹주를 그대로 놔두지 않을 거요. 정혈단도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일 것이고.”
“…….”
그때 밖에서 목량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형, 부르셨습니까?”
“들어와.”
문이 열리고 목량과 이현이 들어왔다.
혁무천은 간단하게 조금 전 들은 이야기를 해줬다.
목량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혁무천이 묻자, 목량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신도명산은 욕심이 앞서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마호걸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실수라 하면……?”
“그가 사마 맹주에게 맹주위를 빼앗은 사실이 알려지면, 그때부터 정혈단의 마도를 향한 칼이 정은맹 쪽으로도 향하게 될 겁니다.”
“사마진웅이 위험해질지 모르는데도 말인가?”
“정혈단주는 개의치 않고 정은맹을 피로 씻으려 할 겁니다. 그는 부친에 대한 정보다, 분노의 감정에 더 충실할 수밖에 없는 상태일 테니까요.”
“으으음…….”
“그럼 정은맹은 정은맹 대로 풍비박산 나고, 정파 역시 이전보다 더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될 겁니다.”
마호걸은 솔직히 정파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그는 어차피 정파 사람이 아니니까.
문제는 정혈단의 분노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 혈풍에 휘말리면 풍마문 역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이현.”
혁무천이 이현을 바라보았다.
“예, 장주.”
“정은맹이 쪼개졌을 때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라.”
이현은 눈을 홉떴지만, 곧 표정을 가라앉혔다.
자신 역시 그럴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한술 더 떠서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하고 명령을 내리지 않는가.
혁무천의 뛰어난 판단력과 빠른 결정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목량, 이현, 혹시라도 내가 놓친 것이 있으면 말해봐라.”
혁무천의 말이 떨어지자, 목량이 말했다.
“구룡상단에 경계령을 내리고 무사들을 비상 상태로 대기시키는 게 어떨까 합니다.”
“즉시 연락하고, 당분간 적극적인 상행은 자제하라고 해라.”
이번에는 이현이 말했다.
“현재의 장원 규모로는 늘어나는 인원을 감당하기 힘듭니다. 후원 공터에 건물을 더 짓고는 있습니다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급한 대로 뒤쪽에 있는 장원을 매입했으면 합니다.”
무원장에서 지낼 수 있는 최대 인원은 오륙백 명 정도. 이미 포화상태였다.
그런데 마침 무원장 뒤쪽에 상당히 큰 장원이 있었다. 큰 건물이 열 채나 되어서 삼사백 명은 너끈히 수용할 수 있을 듯했다.
장원의 주인은 고위관리로, 최근 많은 무인들이 오가니 불안해하고 있던 터였다. 장원을 매입하겠다고 하면 거부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주인에게 팔 것인지 물어보고, 팔겠다고 하면 백리양에게 자금 지출을 청구해.”
“예, 장주. 그리고 무원장 무사들의 조직을 강호에 맞게 좀 더 체계적으로 정비했으면 합니다.”
혁무천은 그 역시 바로 승인했다.
“바로 시작해.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될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장주.”
“본격적인 추위가 몰려오기 전에 분명 대대적인 변화가 시작될 거다. 모두 바짝 정신을 차려라.”
“예, 대형.”
“알겠습니다, 장주.”
목량과 이현이 대답하자, 마호걸도 왠지 대답해야만 할 것만 같았다.
“알았소이다.”
혁무천은 그들의 대답을 들으며 허공을 응시했다.
‘어쩌면 내가 직접 가봐야 할지도 모르겠군.’
안 그래도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그런데 맹주가 바뀌는 대사건이 벌어졌다.
어쩌면 그 두 가지 일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문득 무곡진인의 말이 떠올랐다.
‘혼돈천하…… 이게 그 시작일까?’
***
백마궁이 무천 일행 이십여 명에게 박살났다는 충격적인 소문이 돌았다.
강호가 발칵 뒤집혔다.
안 그래도 무원장이 마도십문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번 일로 팔대마세와 비교하는 자들마저 나왔다.
하지만 또 다른 소문이 백마궁의 혈풍을 덮어버렸다.
정은맹의 맹주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는 소문이 강호에 빠르게 퍼졌다.
정파는 갑작스런 소식에 혼란스러워했다.
이제 겨우 마도세력과 싸워볼 만한 상황이 되었는데, 정파를 이끄는 정은맹의 주인이 바뀌다니!
천하 정파무사들은 행여나 이번 일로 마도를 물리칠 절호의 기회를 잃는 것 아닌지 걱정했다.
마도 세력 역시 그 소문을 접하고 득실 계산에 바빴다.
새로운 정은맹의 주인은 천기회주 신도명산이었다.
그의 무위는 전 맹주인 사마진웅보다 강했다.
사대천마와도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절대고수!
그 점만 보면 전보다 더 상대하기가 껄끄러워졌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싸움은 맹주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규모 싸움은 고수 몇몇 사람의 실력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과연 정은맹의 맹주가 바뀐 사실이 자신들에게 득일까, 실일까.
정파와 마도, 모두 머리를 굴리며 계산에 바쁘던 어느 날 밤.
복면을 쓴 일단의 무리가 루하 동쪽 외곽의 한 장원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장원은 귀천교의 지부인 전마문으로, 귀천교에서 정은맹을 상대하기 위해 무사 사백을 상주시키고 있었다.
장원이 가까워오자, 학의 날개처럼 펼쳐져서 달리던 복면인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았다.
스스스스승.
도검이 뽑혀 나오는 소리가 스산하게 밤공기를 갈랐다.
숫자는 이백여 명. 그들은 한 걸음에 칠팔 장 씩 몸을 날리더니 곧바로 담장을 넘어갔다.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