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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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71화
271화
“남궁 형, 잠시 참으시오.”
사마진웅이 손을 들어 말렸다.
“맹주! 분하지도 않소이까!”
“맹주! 이럴 수는 없습니다!”
“나 하나 맹주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무슨 대수겠소. 그보다는 힘을 합쳐서 마도를 물리치는 게 더 중요하오.”
“맹주!”
“이미 회주와 팽 부맹주께는 그리 하겠다고 했소. 그러니 부맹주께서도 마도를 물리치는 일에 최선을 다해주시구려.”
남궁무룡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도 정은맹이 쪼개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었다.
내분은 곧 괴멸.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더구나 심기가 한없이 깊은 사마진웅이 그런 결정을 내렸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분하고 원통하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홱, 고개를 돌린 남궁무룡은 불길이 활활 타오른 눈으로 신도명산을 노려보았다.
“만약 엉뚱한 짓을 하면 절대 참지 않을 것이네!”
신도명산은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지켜보시구려. 이 신도명산, 혼신을 다해서 마도를 무찌를 것이외다.”
***
정은맹의 하늘이 뒤바뀐 그날, 혁무천은 은설과 동대안, 탕초양, 귀원, 장평을 대동하고 남경에 도착했다.
원래는 은설만 데리고 올 생각이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다녀올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단 둘이서만 남경에 간다고 하자 반대가 심했다.
평소 혁무천의 의견에 반대를 거의 안 하던 목량도 강하게 반대했다.
결국 무위는 절정 수준 이상, 생김새는 남들의 주목을 받지 않을 만한 사람을 대동하기로 했다.
장대산은 너무 커서, 철호는 유난히 작은데다 쌍도끼를 쓰는 무기가 조금 특이해서, 광취도마는 술 때문에 배제되었다.
송비와 추가 삼형제는 맡은 일이 있어서 빠졌고.
원래는 동대안도 배제 대상 중 하나였는데, 꿋꿋하게 보통 사람임을 강조하며 끝까지 함께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도착한 남경의 거리는 여전히 활기찼다.
구요 노인의 점집도 여전히 영업이 잘 되고 있었다. 네댓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걸 보니 이전보다 더 잘 되는 듯했다.
혁무천이 일행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소년 구진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소리쳤다.
“공자님!”
“하하, 잘 있었느냐?”
“어서 오세요. 할아버지! 무 공자님 오셨어요!”
구진이 안에 대고 소리쳤다.
곧바로 답이 들렸다.
“순서를 기다리라고 해! 다른 손님은 그만 받고!”
구요의 성깔도 여전했다.
구요는 앞선 손님에게 모두 점을 봐준 후에야 혁무천을 방으로 들였다.
그래도 잔소리를 줄인 터라 금방 순서가 왔다.
“킁, 어쩐 일이신가?”
“상관도전이 술 한잔 산다고 해서 왔지요.”
“그 짠돌이가?”
구요는 상관도전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주기로 한 대금을 반만 주겠다고 하더군. 그 자식은 속이 너무 좁아서 더 크기 힘들 거야.”
“악착같이 받아내야죠.”
“나도 그럴까 생각 중인데, 힘이 제법 세져서 윽박질러도 콧방귀만 뀐단 말이야.”
허튼소리를 툴툴대고 하던 구요가 슬쩍 은설을 보며 말했다.
“근데…… 저 아이는 그 여동생? 아니면 새로 생긴 여동생?”
“그 여동생입니다.”
“은설이에요.”
은설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자, 구요가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씁쓸함이 배어 있는 웃음이었다.
“구요라는 늙은이라네.”
혁무천은 구요의 웃음이 조금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채고 넌지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누군 예쁜 여자 데리고 놀러 다니는데, 나는 평생 이 골방에서 남 점이나 봐주고 있으니, 신세가 처량해서 그러네.”
그 말에 동대안이 한마디 했다.
“그럼 노인장도 문 닫고 놀러 다니슈. 돈 많이 버셨잖수?”
구요는 슬쩍 동대안을 째려보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킁, 진짜로 돈 많이 번 사람은 무 공자지. 요즘 소문이 자자하던데.”
혁무천이 겸손하게(?) 대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하여간 욕심은…….”
빙그레 웃은 혁무천이 화제를 슬쩍 돌렸다.
“그런데…… 상관중이 도움을 받았던 자들에 대해서 혹시 들어보신 이야기 있습니까?”
구요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놈들, 아주 수상한 점이 많네.”
“어떤 면이 수상하다는 겁니까?”
혁무천도 전부터 그들의 행동을 의심했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상한 점을 알 수 없어 그들에 대한 판단을 보류했던 터였다.
“아무래도 복주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는 남황궁과 관련이 있는 자들 같네.”
“남황궁?”
남황궁은 복건성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는 세력이었다.
실제 남황궁 궁주가 왕족이라는 말도 있었다.
비록 중원에 진출하지 않아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팔대마세에 뒤지지 않는 힘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남방에 있던 그들이 중원으로 진출하려고 한다?”
“얼마든지 가능한 추측이네.”
“재미있군요. 만약 구 노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천기회와 모르는 사이도 아닐 겁니다.”
“그렇다고 봐야겠지. 천기회주가 무이산 쪽에서 힘을 키웠다고 했으니까.”
“상관도전을 만나보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 수 있겠지요.”
***
구요 노인의 점집을 나온 혁무천 일행은 금천방으로 갔다.
금천방은 전에 비해 활기가 넘쳤다. 방주가 바뀐 후 행동을 조심해서 남경 사람들도 그들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덕분에 금천방의 사업도 잘 돼서 많은 사람들이 금천방을 들락거렸다.
혁무천 일행이 정문으로 다가가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혁무천과 은설에게 집중되었다.
“아, 그 자식. 더럽게 잘 생겼네.”
“여자도 끝내주는데?”
“난 저런 것들만 보면 세상이 싫어져.”
“원망은 네 부모를 해야지.”
“이 씨브랄 놈이!”
그때 누군가가 혁무천을 알아보았다.
“어? 무천 공자잖아?”
“누구?”
“무천도 몰라? 방주님 친구, 마룡선발대회의 그 무천.”
웅성거리는 소리가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소곤거리는 소리로 변했다.
“저 새끼가 그 새끼래.”
“어쩐지, 얼굴 존나 잘 생겼다 했더니.”
“쉿, 조용해 인마. 성질 드럽다고 하잖아.”
“씨바, 부럽다. 누군 얼굴도 잘 생겨, 여자도 예쁜 여자하고 다녀…….”
“네 엄니, 아부지한테 따지라니까.”
“이 개시끼가…….”
동대안과 장평은 피식피식 웃고, 탕초양과 귀원은 어색한 표정으로 혁무천을 힐끔거렸다.
하지만 혁무천은 별 동요 없이 정문위사에게 방문 목적을 밝혔다.
“방주를 만나러 왔소.”
정문위사도 방문자가 손님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바짝 긴장했다.
무천은 최근 들어 가장 뜨거운 이름 중 하나였다.
그리고 금천방에서는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기도 했다.
“따라 오십쇼.”
혁무천은 동대안과 탕초양, 장평, 귀원을 객당에서 쉬게 하고 은설과 함께 상관도전을 만났다.
“하하하, 어서 오게.”
상관도전이 환한 표정으로 혁무천을 반겼다.
“무슨 일인데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하는 건가?”
“오랜만에 얼굴 좀 보고 싶어서. 그런데 저분은? 혹시 여동생?”
“맞아.”
“자네가 그토록 찾아다니더니, 과연 꽃조차 고개를 숙일 만큼 아름다운 분이군.”
“고마워요, 방주님. 은설이라고 해요.”
은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자, 상관도전의 입이 헤 벌어졌다.
“반갑소, 은 소저. 북쪽은 날씨가 조금 추울 텐데, 올 겨울은 이곳에서 지내시지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옆에 제가 없으면 오빠가 불안해해서 안 돼요.”
그쯤에서 혁무천이 상관도전의 말을 끊었다.
“쉰 소리 그만하고, 왜 나를 만나자고 했는지, 그것부터 이야기해봐.”
“아, 그렇지. 그 이야기를 해야지. 일단 자리에 앉자고.”
자리에 앉은 상관도전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맞은편에 혁무천과 은설이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 시비가 다가와서 차를 따랐다.
차로 입술을 축인 상관도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툭 던지듯 말했다.
“아버님이 사라지셨네.”
“뭐?”
“열흘 전, 누구를 만나러 간다고 하셨는데, 알고 보니 전에 아버님을 도와줬던 자들을 만나러 간 것 같네.”
“그런데, 사라졌다?”
“가실 때 은밀히 남기신 말씀이 있었네. 만약 사흘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방의 비밀함에 남겨 놓은 서찰을 읽어보라 하셨지.”
상관도전이 말하면서 품속에 손을 넣어 서찰을 하나 꺼냈다.
“그래서 서찰을 꺼내 읽어보았네. 아무래도 나와 금천방의 힘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일 같더군. 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밖에 없지 뭔가.”
혁무천은 상관도전이 내민 서찰을 펼쳐서 읽어보았다.
모두 다섯 장이나 되었는데, 서찰이라기보다는 일지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중원의 인사들이 아니었다. 말투와 행동으로 봐서는 복건이나 광동 쪽인 듯했다. 인원은 이삼백 명에서 오백 명으로 이루어진 무사대가 여럿 있어서 총인원은 최소 이천에서 많으면 사천 명쯤 되지 않을까 한다. 그들이 왜 중원에 들어와서 비밀리에 활동하는지 그게 의문이다.]
[……그들이 따르는 자는 무림의 인사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말투에 나타난 특징을 보면 매우 고귀한 신분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대화 와중에 천기회의 이름이 나왔다. 그들은 천기회라는 이름을 말할 때 극히 조심했다. 내가 옆에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고 급히 입을 다물기도 했다.]
[……뭔가 이상하다. 이들의 목적이 수상하다. 마도와 싸우기 위해 나선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정파를 위해 나선 것도 아닌 것 같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번에 가면 저들의 목적을 확실하게 알아볼 생각이다. 만약 내가 오지 않으면, 저들은 함께해야 할 자들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자들이라고 생각해라.]
혁무천은 서찰을 내려놓고 눈을 들었다.
“이렇게 많은 자들이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는데 아무도 모를 수 있다고 보나?”
“어디 꽁꽁 숨어 있나 보지 뭐.”
“맞아. 어딘가에 숨어 있겠지. 그것도 남들이 의심을 하지 못할 만한 곳에.”
혁무천과 상관도전의 대화에 은설이 한마디 했다.
“그럼 그런 곳만 찾아보면 되겠네요.”
그런데 혁무천이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찾아볼 것도 없어.”
“왜요? 어디에 있는지 알겠어요?”
“천기회를 말했다고 했잖아.”
은설은 혁무천의 말뜻을 바로 눈치 챘다.
“아! 맞아요. 그곳이라면 일이천 명 정도는 별 의심 없이 섞여 있을 수 있겠네요.”
“조사해보면 알 수 있겠지. 문제는 그들이 특별한 목적을 숨기고 섞여 있을 경우다.”
상관도전이 눈을 치켜떴다.
“그 새끼들이 단순히 숨어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오기 전에 구 노인을 만났는데, 그들이 남황궁 무사들일지 모른다고 하더군.”
“남황궁?”
“그래.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다. 아버님부터 찾아봐야겠어. 떠나실 때 어디로 가신다고 말씀 안 하셨나?”
“합비 쪽으로 가신다고 하셨네.”
“합비? 혹시 남궁세가?”
그럴지도 모른다. 상관중은 본래 정파였던 상관가의 주인. 더구나 남궁세가는 천기회와도 가까운 사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남궁세가는 최근 마도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서 세력이 많이 약화된 상태였다.
그나마 합비성 안에 본가가 있다 보니 황군이 일찍 개입해서 멸문을 면할 수 있었다.
“남궁세가라면 설아와 함께 전에 한번 가본 적이 있지. 내가 가보겠네.”
“자네가 가준다면야 나야 좋지.”
***
혁무천은 금천방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아침이 되자 구요를 찾아갔다.
구요에게 몇 가지 조사를 부탁한 혁무천은 일행과 함께 곧장 장강을 건넜다.
그로부터 이틀 후, 합비에 도착한 혁무천은 일행을 객잔에 남겨 놓고 혼자 남궁세가로 갔다.
남궁선은 방문자의 이름을 듣고 눈이 커졌다.
“누구? 무천이 왔다고?”
“예, 가주.”
남궁선은 미간을 좁히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혹시 그들 때문에 온 것 아닐까요?”
옆에 앉아 있던 남궁태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남궁선은 콧등을 씰룩거리더니 남궁태를 바라보았다.
“네가 만나봐라.”
“예, 아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