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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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70화
270화
혁무천은 각 세력에 사람을 보내서 이번에 거두어들인 물건의 매입 의사를 타진했다.
곡물과 차, 포목 등 물품의 종류는 다양했다.
시세보다 삼 할이나 싸게 주겠다고 하자, 만마성과 철혈마련, 귀천교, 사도맹은 물론이고, 중견 방파 서너 곳이 구매의사를 밝혔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심상치 않은 강호 정세가 그들의 구매결정을 재촉했다.
그 와중에 구룡상단의 물건은 제 가격을 받고 팔려나갔다.
미리 운송 계획을 세워놓고 있던 혁무천은 거래가 성사된 곳부터 바로 물건을 보냈다.
마룡성과 수룡방 무사 일천 명이 운송에 나섰다.
무원장에서도 가장 거래량이 많은 만마성 물량의 운송을 위해 무사 삼백 명을 파견했다.
가격을 삼 할 정도 싸게 해주는 대신, 마도 세력들이 자신들 권역에서는 운송을 책임지기로 한 터였다. 위험이 그만큼 덜어진 데다 운송거리도 줄어든 상태였다.
속전속결로 판매와 운송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남쪽으로 갔던 백리양이 돌아왔다.
백리양은 상황을 전해 듣고 혀를 내둘렀다.
그조차도 혁무천이 이렇게 전격적으로 일을 처리할 줄은 생각을 못한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장사에 소질이 좀 있는 거 같아.”
혁무천의 그 말에 백리양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실이 그랬다.
일처리가 조금 투박하긴 하지만 감각만큼은 자신이 따라갈 수 없었다.
시세보다 삼 할 싸게 팔았다고 하지만, 운송비까지 합치면 보통 매입가의 오 할 정도 더한 가격이 시세를 형성했다.
그리 따지면 아껴진 운송비만큼 이익이었다. 게다가 구룡상단의 물량까지 덤으로 팔았으니 상당한 이득을 본 셈이었다.
“이번에 번 돈 중 일부는 일대의 빈민을 위해 풀 생각이야.”
뜬금없이 던진 그 말도 백리양에게 충격이었다.
“얼마나……?”
“이십만 냥쯤?”
“…….”
그 정도 돈이면 반경 삼백 리 일대의 빈민들은 이번 겨울에 굶어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번에 구입한 곡물 중 일부를 남겨두라고 했어. 그리고 모자라는 건 다시 살 생각이야.”
“굳이 다시 살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래야 거래가 지속되지.”
“아……!”
백리양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무원장에 곡물을 판 상인들은 앞으로도 무원장과 계속 거래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 해에 또 무원장이 사줄 거라 생각할 테니까.
인심도 얻고, 확실한 거래처도 확보하고.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의 결과를 불러올 것이 분명했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됐지?”
혁무천이 물어본 후에야 백리양은 정신을 차리고 보고를 올렸다.
“대부분 우리와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장사의 곡가상단, 남창의 원양부, 안경의 백중표국은 천화상단과의 신뢰를 깰 수 없다며 거부했습니다.”
“그 정도면 괜찮은 성과야. 어차피 천화상단과의 거래가 끊기면 우리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을 거다.”
“아, 금천방주께서 가까운 시일 안에 한번 꼭 들르셨으면 하셨습니다.”
“곽도전, 아니지, 상관도전이지. 그가 왜?”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셨는데, 부친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하면 아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혁무천의 눈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상관중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혹시?’
상관중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세력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을 잊고 있었어.’
그동안 별 움직임이 없어서 깊게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지금 정세에서는 그들의 강한 무력이 충분히 변수로 작용할 수 있었다.
“한번 가봐야겠군.”
***
강호의 상황은 혁무천과 목량이 예측했던 것보다 더 급박하게 돌아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에 불을 붙인 사람은 신도명산이었다.
차가운 북풍이 불어오기 시작할 무렵, 정은맹의 총단이 있는 여양 인근의 만가장.
신도명산이 사마진웅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정은맹과 천기회의 고위 간부 십여 명을 대동한 그는 앞을 막는 자들을 밀치고 사마진웅의 방에 들어갔다.
방 안에는 사마진웅과 호위무사들만 있었다.
사마진웅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다그치듯 물었다.
“회주, 이게 무슨 짓이오?”
“확인할 것이 있어서 왔소이다.”
“확인? 무엇을?”
“정혈단주. 그가 마공을 익혔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그에 대해서는 소문이 점점 커져서 별의별 말이 다 나오고 있는 판이었다.
하지만 사마진웅은 그에 대해서 자신의 입으로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으음, 그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오.”
“그럼 하나 더 묻지요. 그가 맹주의 아들이라고 하더군요. 맞습니까?”
사마진웅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이사명이 그 사실을 밝혔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측근에 있는 다른 자가 말해주었다는 말인데…….
“도대체 왜 그렇게 정혈단주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오? 회주도 잘 알다시피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찌 마도와 싸울 수 있었겠소? 이마제마(以魔制魔)를 위해 그들의 힘을 빌린 것일 뿐이거늘.”
“그들이 지금 무슨 짓을 벌이는지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겠지요? 마도인이야 죽어도 싼 자들이지만, 힘없는 하인이나 가솔들까지 모조리 도륙하는 게 어찌 정파인이 할 짓이란 말입니까?”
“물론 나도 그 일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소.”
사마진웅이 답답한 표정으로 말하자, 신도명산이 더욱 신랄하게 몰아붙였다.
“그럼 생각만 하실 게 아니라 확실하게 결정을 내리시지요.”
“무슨 결정 말이오?”
“오늘 부로 정혈단과 정은맹이 절연한다는 결정 말입니다.”
“그건…….”
사마진웅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때 침중한 목소리가 신도명산의 뒤쪽에서 들렸다.
“맹주. 나 역시 맹주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만, 더 이상 정혈단과 함께 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오.”
부맹주 중 한 사람인 벽력신도 팽조환이었다.
“부맹주…….”
“정은맹이 더 앞으로 나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외다.”
“…….”
사마진웅이 바로 대답을 못하고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자,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동안 맹주께서 해온 일은 만인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소. 허나 정은맹의 발전과 정파의 미래를 위해서는 결정을 내리셔야 하오.”
그자를 쳐다본 사마진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육기 중 백기주. 그와 이십 년 동안 친구처럼 지낸 서문상이었다. 정혈단주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아는 극소수의 사람 중 하나.
아마도 그가 그 사실을 알린 듯했다.
“정녕 정혈단과 단절하는 걸 바라시는 거요?”
“꼭 그것만을 말씀드린 것이 아니외다.”
“하면……?”
“지금의 정은맹은 맹주의 힘만으로는 이끌어가기가 힘든 상태요.”
사마진웅은 서문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맹주 자리를 내놓아라, 그 말인가?”
“안타깝지만…… 현실이 좀 더 강한 맹주를 바라고 있소.”
사마진웅은 방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신도명산과 함께 온 자들 중 정은맹의 간부는 부맹주 팽조환과 육기주 중 셋을 포함해서 모두 여섯 명이었다.
“모두 같은 생각이시오?”
팽조환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맹주에 대한 예우는 충분히 해 드릴 거요.”
사마진웅은 마지막으로 신도명산을 바라보았다.
사흘 후 대회의를 열고 천기회와 결별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한발 먼저 치고 들어왔다.
뭔가가 어긋났다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문제는 자신이 맹주직을 포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에 있었다.
“많은 분들이 물러나라면 물러나야겠지요. 내가 믿음을 보여주지 못한 걸 어쩌겠소? 우리끼리 싸운다 한들 마도 놈들만 좋아질 뿐이니……. 다만 그대들이 더 큰 실수를 하지 않기만 바랄 뿐이오.”
팽조환이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곧 아시게 될 거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긴 하오만…….”
뭐라 할 건가.
이제 와서 신도명산이 자신을 제거하려고 할지 모른다고 해봐야 믿지도 않을 텐데.
맹주 자리를 내놓기 싫으니 이간질을 한다고 하겠지.
다만 걱정스러운 건, 그럴 경우 아들이 칼을 정파 쪽으로 돌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어쨌든 곧 환갑이 다 돼가는 이 몸이 할 수 있는 일이나 하나 마련해 주시구려. 비록 능력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아직은 마도 놈들 몇 놈은 상대할 수 있소이다.”
마치 힘에 굴복한 늙은 사자가 삶을 구걸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몇 사람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몇 사람은 비웃음을 가득 베어 물었다.
신도명산이 짐짓 측은해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까지 맹을 이만큼 키운 공을 어찌 모르겠소? 능력에 맞는 자리를 내줄 것이니 걱정 마시오.”
“고맙소, 회주.”
사마진웅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남들이야 살기 위해 무릎을 꿇는 비겁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할지 모른다. 자존심도 없냐며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사명 아우를 믿는 수밖에…….’
참으로 아쉬웠다. 하필 이사명이 없을 때 일이 벌어지다니.
그러나 신도명산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 철저하고 냉혹한 자였다.
‘당신이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봐야 나에겐 통하지 않아.’
그때였다.
“맹주! 비켜라, 이놈들!”
방문 밖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지금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부맹주님.”
“이놈! 네놈들이 감히 반란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
“천기회의 잡놈들이 감히 이딴 짓을 저지르다니! 수많은 협의지사들이 목숨을 바쳐서 겨우 지금을 이루었거늘! 참으로 날강도 같은 놈들이로다!”
“부맹주! 말씀이 심하시오!”
“비키지 않으면 모조리 베겠다!”
챙! 스릉!
무기를 뽑는 소리도 들렸다.
사태가 심각하게 흐르자, 신도명산이 소리쳤다.
“멈추시오, 부맹주! 문을 열어드려라!”
곧바로 문이 활짝 열리고, 불같이 화가 난 남궁무룡과 황보수 등 정은맹 간부 다섯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맹주! 괜찮으시오?”
남궁무룡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사마진웅을 보며 물었다.
사마진웅은 쓴웃음을 지었다.
“전 괜찮소이다.”
남궁무룡이 홱 고개를 돌려서 신도명산과 팽조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오, 팽 형!”
팽조환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남궁 형도 잘 알지 않소? 정은맹은 이제 과거의 정은맹이 아니오. 규모가 세 배나 커졌고, 막강한 팔대마세와 정면대결을 벌여야 할 상황이잖소?”
“그래서? 맹주를 쫓아내기라도 하겠다는 거요?”
“적의 강함에 맞서려면 그만한 힘을 가진 사람이 지휘를 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오.”
“흥! 그래서 택한 사람이 천기회주요? 저 욕심만 앞선 자를 맹주로 추대하겠다는 거요?”
보고만 있던 신도명산이 그 말에 한마디 나섰다.
“부맹주, 말이 심하구려.”
“뭐가 심한가? 솔직히 말해보게! 회주가 정말 정파의 부흥을 위해 나서려 했다면 처음부터 힘을 합쳤어야 하네. 그런데 간만 보다가 상황이 유리해지니 은근슬쩍 들어온 것 아닌가?”
“그때는 힘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만약의 상황을 생각해 합류를 미루었던 것뿐이오.”
“흥! 궤변 늘어놓지 말게!”
“뭐가 궤변이란 말이오? 그리고 솔직히, 맹주가 아들인 정혈단주의 혈겁을 방치한 것만 해도 문제 아니오? 그 일로 수많은 정파 동도들이 정은맹을 안 좋은 눈으로 보고 있잖소?”
남궁무룡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극소수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곧 정색하고 다그치듯 말했다.
“맹주께서 왜 그러셨는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 누구보다 그 일을 가슴 아파 하는 분이 맹주시네!”
“어쨌든 그 일이 정은맹에 큰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한 만큼, 맹주께서도 그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소이다.”
“작금의 정은맹을 맹주께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대가 알긴 아는가! 정녕 그 정도 일로 반란을 도모하겠는 건가!”
“그 공을 인정하기에 적절한 자리를 보전해 드리겠다고 한 것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 누구도 맹주를 맹주위에서 끌어내릴 수는 없다!”
남궁무룡은 버럭, 소리치고는, 사마진웅의 앞을 막아서며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황보수와 다른 간부 세 명도 일전을 치를 작정을 한 듯 무기를 빼든 채 남궁무룡과 나란히 섰다.
형형한 눈빛에는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마음이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