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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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64화
264화
백리양이 말했다.
“현재 강호와의 거래는 최대한 자제하고 황궁과의 거래에만 힘쓰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천화상단과 거래하던 거상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
“천화상단과 거래를 하던 거상들이 천화상단만 믿고 물량을 평소보다 많이 확보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사대전이 전면적인 방향으로 흐르면서 천화상단이 강호 대세력과의 거래를 줄였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거상들은 확보한 물량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다 막상 필요한 물품은 운송의 위험성 때문에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확보한 물량은 자체적인 처리도 가능할 텐데?”
“쌓여 있는 물량을 대규모로 처리하려면 헐값으로 넘겨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손해가 커서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거상이 모두 몇이나 되지?”
“현재 파악된 곳만 해도 일곱 곳입니다.”
“그들이 확보한 물량의 총 금액은?”
“약 은자 이백만 냥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다.
일곱 군데면 각자 삼십만 냥 정도의 물량이 적체되어 있다는 뜻.
일 년에 수백만 냥을 거래하는 거상도 부담을 느낄 만한 물량이었다.
물건이 회전될 때는 그보다 많은 물량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회전이 안 되는 물량, 목적 없이 쌓여 있는 물량은 모든 흐름을 틀어막는다.
큰 상인일수록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유통의 흐름이 막히는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쌓인 물량을 처리하려고 한다.
문제는 손해를 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끌어들일 경우, 천화상단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한 팔다리 중 하나는 떨어져나간 거나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강일대와 강남 쪽의 거래처까지 틀어막으면?”
“그렇다면 팔다리 중 둘은 잘려 나간 셈이 될 겁니다.”
“나쁘지 않군.”
백리양은 혁무천의 생각을 짐작하고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 거상들은 하나하나가 구룡상단의 구주에 뒤지지 않는 규모였다.
일 년에 수백만 냥의 거래를 하는 곳도 서너 곳은 되었다.
자존심은 또 어찌나 센지, 그동안 구룡상단에서 손을 뻗어도 모른 척하기 일쑤였다.
만약 누군가에게 조금 전과 같은 말을 들었다면 ‘미친놈’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에 나서려는 사람이 무천이었다.
“쌓인 물량부터 협상을 해봐야겠군.”
목량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대형, 그 많은 물량을 사들이려면, 현재 있는 은자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요?”
“삼사십만 냥만 있으면 돼.”
“예? 아! 계약금만 지불하신다는 거군요.”
“맞아. 그렇게 계약금을 주고, 총 계약 물량의 일 할씩만 거래를 하면 부담이 없을 거다.”
백리양이 한마디 거들었다.
“위약금을 세 배로 해놓으면, 저들도 엉뚱한 생각은 할 수 없을 겁니다.”
혁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거래가 이루어지면, 그들에게서 확보한 물량은 최대한 빨리 처분할 거다. 경비만 건지고 본전에 팔아치울 생각이야.”
“예?”
백리양은 물론이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혁무천이 말했다.
“놀랄 것 없어. 그래도 남으니까.”
“…….”
“몇 달 무료봉사하고 큰 거래처와 거상들을 끌어들이면 이득 아닌가? 아! 거기다 천화상단의 손발도 자르고 말이야.”
“그, 그럼 큰 이득이죠.”
백리양이 감탄한 얼굴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칫하면 수십만 냥을 손해 볼 수도 있다. 어지간히 간 큰 거상이라 해도 쉽게 할 수 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이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사이 물건 값이 오르면 오르는 만큼 금전적으로도 이득이고.
“그 일은 내가 직접 처리할 거다.”
혁무천의 말에 백리양이 찬성했다.
“단주께서 직접 가신다면 그들에게 더 확실한 믿음을 주실 수 있을 겁니다.”
“장강일대와 강남 쪽의 천화상단 거래선은 네가 처리해라. 호남성 쪽은 율 보주의 힘을 빌리면 좀 더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남경 쪽은 금천방을 이용해라. 아마 내 이야기를 하면 섭섭하게 대하지는 않을 거다.”
“알겠습니다, 장주.”
“이현, 자네가 당분간 율 보주님과 함께 장원을 지켜주게.”
“예, 장주.”
율이명은 혁무천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당금 강호의 상황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름대로 꿈을 품고 장강을 건넌 그로서도 요즘의 강호를 보면 섬뜩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당장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피가 끓었다.
자신도 이 역사의 한 장면에 참여하고 싶었다.
무천이 일을 마치고 돌아온다면, 그 기회가 올 것이 분명했다.
그때까지 실력을 가다듬을 작정이었다.
어이없게도, 자신은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다. 아직 한참 더 강해져야 했다.
다음 날, 혁무천은 비룡단원들을 데리고 무원장을 나섰다.
무원장의 무사 숫자가 어느새 오백 명이 넘었다. 검마보의 고수들 외에도 절정고수 숫자도 십여 명이나 되었다.
비룡단이 잠시 자리를 비워도 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번에는 추가 삼형제와 탕초양 일행도 함께 나왔는데, 처음과 비교하면 기세가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 상태였다.
***
이틀 후, 혁무천과 비룡단은 허창에 도착해서 마룡성을 찾아갔다.
“하하하하, 어서 오시게.”
마룡성주 홍택은 오랜만에 찾아온 혁무천 일행을 환한 표정으로 반겼다.
혁무천 덕분에 마룡성은 거금을 벌었다.
물론 표행 과정에서 십여 명의 사상자가 난 일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 일은 평상시에도 자주 일어났다.
몇 개월 만에 은자 삼십만 냥을 벌었는데 십여 명의 사상자가 대수랴.
더구나 얼마 전에는 일반 무사를 위한 무공서까지 보내줘서 요즘 마룡성 무사들은 그 무공을 익히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그 무공을 그저 조금 괜찮은 무공 정도로 생각해서 별 고민 없이 일반 평무사들에게도 익히게 했다.
아마 그 무공이 절정경지의 상승 무공이라는 걸 알았다면 평무사들에게 내주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바쁘신 분이 여긴 어쩐 일로 오셨는가?”
“양가장에 가는 길입니다.”
“양가장?”
홍택도 양가장이라면 잘 알고 있었다.
혁무천 역시 그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 찾아온 것이었고.
양가장은 허창에 있는 거상이었다.
마룡성과 썩 좋은 관계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 해서 적대하며 지내는 사이도 아니었다.
“양가장이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서 이 기회에 좋은 관계를 맺어볼까 하고 왔지요.”
홍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비룡단주 무천이 단순히 양가장과 거래를 트기 위해 직접 나섰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내가 양가장을 잘 아네. 필요하면 내가 도와주겠네.”
먼 곳에 있는 칼보다 가까이 있는 주먹이 더 무서운 법이다.
마룡성이 나선다면, 자신이 열 번 말해야 할 것을 다섯 번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고맙지요.”
“고맙기는? 당연히 도와야지. 하하하.”
양가장은 허창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장원 크기가 수만 평이나 되었는데, 그 중 절반은 창고였다.
양가장의 주인은 양위평.
나이 육십이 세로 허창 제일의 거상이었다.
장부를 검토하고 있던 그는 기세등등하게 찾아온 홍택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성주께서 이곳에는 어쩐 일이신가?”
하지만 입만 웃고 있을 뿐 눈에는 짜증 섞인 경계심이 가득했다.
‘저 흉악한 놈이 여긴 왜 왔지?’
홍택도 그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뒤에서 욕하는 걸 알고 몇 번 때려죽일까 말까 고민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래도 오늘은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 무원장 주인인 무천 공자께서 양가장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구려. 그래서 인사나 시켜드리려고 왔소이다.”
무원장주 무천?
양위평도 무원장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게 들어봤다. 무천이라는 이름도.
무림강호는 물론 강계까지 뒤흔들어놓은 자 아닌가 말이다.
“허어, 귀한 분께서 오셨구려.”
이번에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혁무천도 그 모습을 보며 포권을 취했다.
“무원장의 무천이라 합니다.”
“양위평이오. 이쪽으로 앉으시구려.”
혁무천은 한쪽의 다탁에 홍택과 나란히 앉았다. 앞에는 양위평이 양가장의 총관과 함께 자리했다.
“그래, 무슨 일로 오셨는지 말씀해보시구려.”
“얼마 전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들은 이야기라 하시면……?”
“본래 계획했던 것보다 많은 곡물과 포목을 매입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양위평의 눈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가 제자리를 찾아갔다.
“조금 과한 양을 매입한 건 사실이오. 하지만 그 정도야 매해 있는 일이 아니니 걱정해주실 정도는 아니오.”
약점이 보인다 싶으면 집요하게 물어뜯어서 내장까지 긁어내는 곳이 강호다.
지나치게 거리를 두는 것도 안 좋지만, 굳이 저자세로 나갈 이유도 없다.
“그런데 왜 그게 궁금하신 거요?”
“저희가 양가장을 도와드릴 일이 없나 싶어서 물어본 것입니다.”
“허허허, 말씀은 고맙소만, 도움을 청할 정도는 아니라오.”
“그러시다면 다행이군요. 손해 보지 않도록 매입가 그대로 사드리려고 했는데…….”
“…….”
“그럼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군요. 같은 처지인 곳이 몇 곳 더 있다 들었는데…….”
“험, 사주신다면 물량은 얼마나……?”
“은자 오십만 냥까지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양위평은 참으려 해도 눈이 커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오십만 냥이면 양가장이 골치를 앓고 있는 모든 물량을 넘기기에 충분했다.
“다만, 당장 모든 물량을 가져갈 수 없으니, 일단 계약금으로 이 할 정도 지불하고 가져갈 때마다 대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할 생각입니다. 뭐, 양가장은 어렵지 않다 하시니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아, 그게…….”
머뭇거리던 양위평은 혁무천이 일어나려고 하자, 바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허허허, 앉아보시구려. 아직 이야기도 다 안 끝났는데.”
“아실지 모르지만, 저희 구룡상단은 연을 맺은 사람의 어려움을 끝까지 책임져 줍니다. 물론 신의를 어기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하는 경우는 예외입니다만.”
“허어, 구룡상단 사람들은 좋겠구려.”
“뜻이 있는 분들은 누구나 환영하지요. 양가장이야 천화상단과 가까우니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만.”
말끝마다 예외니, 어려울 거니, 하는 혁무천의 말에 양위평은 쓴웃음을 지었다.
혁무천의 말뜻을 노회한 그가 왜 모를까.
“정말 매입가에 물품을 모두 구매해줄 수 있소?”
“그렇습니다.”
“계약금으로 이 할을 주신다 하셨던가요?”
“물론이지요.”
“후우, 좋소이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리다. 자세한 금액은 다시 산출해봐야 알겠지만, 현재 우리가 가진 물량이 아마 삼십만 냥쯤 될 거요. 그걸 모두 인수해주실 수 있소?”
“인수하지요.”
혁무천은 흔쾌히 말하고는, 품속에 손을 넣어 일만 냥짜리 전표 여섯 장을 꺼냈다.
“여기 계약금 육만 냥을 드리지요. 이 돈을 받으신다면, 계약하시겠다는 뜻으로 알고 계약서를 작성하겠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거래법에 양위평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허어, 이 늙은이를 어찌 믿고……?”
이거 생 초짜 아냐?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상대는 구룡상단에서도 떠오르는 샛별, 무원장의 무천 아닌가. 그럴 리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혁무천이 말했다.
“제가 조금 전에, 신의를 어기거나 거짓말을 하지만 않으면 끝까지 책임져드린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양위평은 그 말이 왠지 무섭게 느껴졌다.
“다만, 신의를 어기거나 거짓말로 형제들에게 피해를 입히면, 그에 대한 책임도 확실하게 묻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