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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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97화
297화
혁무천이 냉랭한 목소리로 싸움을 중단시켰다.
서릿발처럼 고막을 파고드는 싸늘한 목소리에 호위대원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유평천과 호광도 거리를 벌리고 싸움개처럼 서로를 노려보았다.
혁무천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까지는, 살수를 쓰지 말라 해서 손에 사정을 두었소.”
그의 말대로, 쓰러져 있는 호위대원들 중 죽은 자는 많지 않았다.
서너 명이 움직이지 않을 뿐, 쓰러진 자들 중 나머지는 신음을 흘리긴 해도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하지만 더하겠다면, 이제부터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살수를 쓸 수밖에 없소. 그러니 정 싸우겠다면…… 애꿎은 일반 무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고, 당신들이 나서시오.”
혁무천은 손을 들어서 사대천화를 가리켰다.
천궁환이 이마를 씰룩였다.
“오냐, 그것도 좋지.”
그러고는 사대천화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상대해줘라.”
사대천화가 무기를 빼들며 앞으로 나섰다.
비룡단에서도 몇 사람이 나섰다.
“나는 지천주라 하네. 내가 자네를 상대해주지.”
지천주가 먼저 상대를 골랐다.
청삼을 입은 사십 대 중반의 중년인. 사대천화 중 첫째인 염천상이 그였다.
염천상은 지천주의 이름을 듣고 눈이 살짝 커졌다.
“통천마군? 앙천마도 지천주?”
“남들이 이 늙은이를 그렇게도 부르더군.”
염천상은 신중한 표정으로 검을 뽑았다.
상대는 사대천마에게 뒤지지 않는 절대고수였다.
“앙천마도를 견식 할 기회가 생길 줄은 생각도 못했소.”
이정은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갈의 무사를 찍었다. 그는 사대천화 중 둘째인 영호일원이었다.
“너는 내가 상대해주마! 덤벼!”
영호일원은 이마를 찌푸리며 몸을 날렸다.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마라!”
“네 걱정이나 해!”
이정은 씩 웃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전교도 칼을 빼들고 부일상을 향해 걸어갔다.
동대안은 위진광을 골라잡았다.
듣기로는 위진광이 절대 경지에 올랐다고 했다. 혼자서는 상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동대안은 꺼려하지 않았다.
‘씨바, 절대고수도 심장이 뚫리면 가는 거지 뭐.’
혁무천은 동대안에게 한 사람을 더 붙여줄까 했지만 그냥 놔두었다.
위진광은 이제 절대고수 초입에 든 자다. 동대안도 쉽게 지지는 않을 터. 한번쯤 절대고수와 싸워보는 것도 큰 경험이 될 것이다.
한편, 무원장 무사들은 천화상단의 남쪽과 동쪽의 담장을 넘고, 밀소림 제자들은 서쪽의 담장을 넘었다.
그들은 놀라서 도망가는 천화상단 사람들을 놔둔 채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갔다.
천화상단 무사들이 사방에서 달려와 그들을 막아섰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온 것이냐!”
“더는 못 들어간다, 이놈들!”
천화상단의 무사들도 나름대로 한가락 한다는 자들이었다.
현재는 이천 명이 넘는 무사 중 절반 이상이 물품 운송에 보표로 나선 상태.
남아 있는 무사는 칠팔백 명 정도였다.
무원장 무사들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숫자.
그럼에도 일류고수 이상의 실력자만 나선 무원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율이명과 검마보가 주력인 남쪽 공격대와 송비와 마용산이 이끄는 동쪽 공격대는 쐐기 형태로 나아가며 천화상단의 방어벽을 무너뜨렸다.
그들의 목적은 천화상단 무사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빨리 혁무천 일행과 합류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방어벽이 무너지자 지체하지 않고 안으로 진입했다.
밀소림 제자들은 열여덟 명씩 조를 이뤄 진형을 갖춘 채 철저히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소림사의 자랑이라는 십팔나한진을 변형한 진세는 철벽이었다.
게다가 진을 펼치는 백팔 명 중 절반이 절정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절대경지의 고수라 해도 진세에 갇히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데 일반 무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진세와 마주친 천화상단 무사들은 제대로 공격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쓰러졌다.
밀소림 제자들은 물러서는 자들을 놔두고 장원 안쪽으로 이동했다.
반각도 안 되는 동안 쓰러진 천화상단 무사는 이백여 명. 그나마 혁무천이 살생은 최대한 자제하라 했기에 죽은 자는 몇 명 안 되었다.
그 사이 천양전 앞마당에서는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지천주를 비롯한 무원장 고수 넷과 사대천화의 대결은 십여 초식이 흐르도록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동대안이 조금 밀리는 듯했지만, 섬혼으로 펼치는 쾌검이 워낙 위력적이었다. 위진광도 힘으로 밀어붙이려다가 섬전 같은 검격이 날아들면 화들짝 놀라서 피했다.
혁무천은 그 모습을 보고 내심 만족했다.
‘공력만 조금 더 증진되면 벽을 넘어설 수 있겠군.’
동대안의 무공은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일취월장한 상태였다. 시간만 나면 수련에 열중하더니 이제는 절대의 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물론 그 벽을 넘어서는데 일 년이 걸릴지 십 년이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개를 돌린 그는 천궁환 쪽을 바라보았다.
천궁환을 호위하고 있던 자들이 언제든 뛰어들기 위해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들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강하긴 하나 비룡단의 남은 인원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철명군을 제외한 비천의 고수들이었다.
철명군은 자신과의 약속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중리안 등은 내기의 대상이 아니었다.
혁무천은 중리안과 비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만약 그들이 나선다면 자신이 직접 손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중리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철 노형의 말을 듣고도 설마 했는데 진짜였군. 전보다 훨씬 강해졌어.”
천위와 무영객 다섯이 나서고도 어찌하지 못한 무천이다. 거기다 철명군마저 패배를 자인했다.
자신과 은화육절 중 셋, 비천오검이 모두 달려들면 이길 수 있을까?
중리안은 그조차도 어렵다는 걸 알기에 허탈감마저 들었다.
도대체 저런 괴물이 어디에서 나왔단 말인가.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우린 일이 더 커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비천이 모두 나설 수밖에 없느니라.”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가 요구한 조건만 들어준다면 그런 일은 없을 거요. 물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전면전이라도 해야겠지만.”
그때였다.
비천의 이름 모를 고수들, 비천오검 중 둘이 땅을 박차고 혁무천을 향해 날아갔다.
허공을 날아가는 사이 검을 빼든 그들은 곧장 무천을 협공했다.
그 일이 벌어진 시간은 말 그대로 찰나에 불과했다.
심지어 두 사람이 몸을 날린 순간, 허깨비처럼 사라진 듯 느껴졌을 정도였다.
혁무천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두 손을 좌우로 뻗었다.
장심에서 밝은 빛이 번쩍인다 싶은 순간!
콰광!
일성 굉음이 울리더니, 두 사람이 날아갈 때만큼이나 빠르게 뒤로 튕겨나갔다.
“손에 사정을 두는 것은 이번 한 번뿐이오.”
무심한 혁무천의 목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진 두 사람이 서너 바퀴 굴렀다.
“쯔쯔쯔, 네가 얼마나 강한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내 그렇게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 했거늘.”
철명군이 혀를 차며 말했다.
혁무천을 공격했던 비천오검은 비천 내에서도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철명군의 말을 반신반의하고 있던 차에 혁무천이 자극적인 말을 하자 참지 못하고 공격에 나선 것이다.
사실 비천의 고수들은 내심 두 사람의 공격에 기대감이 없지 않았다.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상당한 피해 정도는 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일수에 패퇴하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때, 율이명이 검마보 장로들과 함께 날아내렸다.
“늦지 않았나 모르겠군!”
“와하하하! 벌써 붙었나?”
뒤이어 송비가 마용산과 절정고수 십여 명을 대동하고 천양전 마당으로 들어왔다.
거의 동시, 무뚝뚝한 운정이 밀소림의 조장들과 함께 내려섰다.
여섯 명 모두 대문파의 장로에게 뒤지지 않는 고수들이다. 특히 소림이 오십 년 만에 배출한 고수, 운정과 운월은 절대의 한계를 넘어선 고수답게 오롯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상대 역시 만만치 않았다.
동, 서, 남쪽에 내려선 그들은 상대해야 할 적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형형한 눈빛을 번뜩였다.
언제든 말만 떨어지면 달려들겠다는 듯.
북쪽을 차지하고 있던 비천과 천화상단의 고수들 역시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소문이 대단하게 났다 해도 일개 상가로 생각했던 터였다.
그런데 나타난 자들의 면면을 보니 비천과 천화상단이 총력을 기울여야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됐어!’
혁무천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비천 고수들의 눈빛이 조금 전과 달라졌다. 천하에 적수가 없다는 자부심에 금이 가고, 그 사이를 긴장감이 파고들었다.
이제 저들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나서지 못할 터. 그만큼 피를 덜 보고도 계획대로 처리할 수 있을 듯했다.
무원장 쪽 무사들이 몰려들자, 한쪽에서 벌어지던 싸움도 변화가 생겼다.
쩌저저정!
연이은 굉음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지천주를 상대하던 염천상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르륵 물러섰다.
축 늘어진 그의 좌수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지천주는 더 공격하지 않고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다른 쪽도 하나둘 싸움을 멈추었다.
이정과 영호일원이 뒤로 물러서서 씩씩거리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전교와 부일상도 거리를 벌린 채 싸움을 멈췄는데, 미미하나마 전교가 앞서던 상황이었다.
전력을 다해서 겨우 버티고 있던 동대안은 싸움이 멈추자, 이때라는 듯 뒤로 훌쩍 물러나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씨바,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네.’
자신이 밀린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화가 나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위진광과의 싸움에서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당장은 실전에서 쓸 수 없지만, 사람들은 머지않아 새로운 섬혼을 보게 될 것이다.
갑자기 싸움이 멈춘 천양전 앞마당은 묘한 상황이 되었다.
무원장 쪽 무사 삼백여 명이 삼면을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천궁환 등 천화상단의 주요 인물들이 거꾸로 압박을 받는 형태가 되었다.
천화상단 무사들이 천궁환 뒤쪽으로 새카맣게 모여들었지만, 그들은 총단주가 해를 입을까 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천궁환이 뒤로 빠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건 곧 전면전을 의미했다.
혁무천은 자신이 의도했던 상황이 되자 천궁환을 보며 말했다.
“결정은 총단주가 내리시오. 전면전을 벌일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것인지.”
천궁환도 생각지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무원장의 힘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팔대마세의 어느 곳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더니, 허언이 아니었다.
비천이 나서준다면 모를까, 천화상단의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전력.
아니, 이제는 비천의 고수들이 마음을 바꾼다 해도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기세가 꺾인 천인환도 질린 표정으로 좌우를 둘러보았다.
“혀, 형님. 저놈의 요구를…… 들어주죠.”
천궁환은 이를 악물었다.
‘멍청한 놈!’
요구조건을 들어주면 천하제일상가라는 명성은 천화상단에서 무원장으로 넘어가게 된다.
아마 사람들이 천화상단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이 어찌 치욕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전면전 또한 절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무천은 제일 먼저 자신의 목을 노릴 것이다.
철명군조차 패했다면 누가 무천을 막을 수 있겠는가.
최선의 방법은 조건을 바꾸어보는 것 정도.
“천만 냥은 너무 과하다.”
“천화상단이라면 삼 년에 만회할 수 있는 금액이오.”
“황하 이남의 사업을 포기하는 것 역시 너무 지나치다.”
“어차피 천화상단은 황궁과의 거래가 주 사업 아니오?”
“흥정이라는 건 서로가 조금씩 양보해야 원만히 이루어지는 법이다.”
“뭘 착각하시는 것 같군요. 나는 지금 흥정을 하자는 것이 아니오. 빚을 받겠다는 거지.”
냉랭한 혁무천의 말에 천궁환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지독한 놈이었다. 굵은 대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놈.
자신이 거부하면 정말 전면전도 마다하지 않을 듯했다.
그래도 말 몇 마디에 굴복할 순 없었다.
“만약 내가 거부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