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9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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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95화
295화
칠 장 간격을 두고 내려선 두 사람은 경탄의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도대체가…… 믿을 수가 없구나. 천하에 너 같은 자가 있을 줄이야.”
“본인 역시 노인장이 이 정도 고수일 줄은 생각 못했습니다.”
마천제였을 때도 철명군 정도의 고수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지금 능력이면, 굳이 명천겁화공을 펼치지 않더라도 사대천마 누구든 이길 자신이 있었다.
비천의 천태상이라 한들 큰 차이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자신이 직접 겨루어본 천태상은 사대천마나 과거의 오대마종보다 한 수 위였다.
“아무래도 노인장을 이기려면 검을 써야 할 것 같군요.”
혁무천의 말을 듣고 철명군은 오른손을 한쪽으로 뻗었다.
십 장 밖에 있던 나무의 나뭇가지 하나가 뚝 부러지더니 그의 손으로 딸려왔다.
스윽.
가볍게 손으로 나뭇가지를 쓰다듬은 그는 석 자 반 크기로 나뭇가지를 잘라냈다.
“나는 이것으로 하지.”
혁무천은 그 나뭇가지가 철명군의 손에 들린 순간 어떤 보검 못지않은 무기가 되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역시 손을 뻗어서 나뭇가지를 하나 취했다.
“그럼 저는 이걸로 하지요.”
“굳이 그럴 필요 없다. 그 검을 써도 된다.”
“그래야 지더라도 핑계를 댈 수 없지요.”
철명군은 혁무천의 도발에 미간을 좁혔다.
“말솜씨만큼 칼솜씨도 좋길 바라마.”
왠지 까칠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제 칼솜씨가 손바닥 후려치는 것보다 더 낫다는 걸 미리 말씀드리지요.”
손바닥 후려치는 것?
철명군의 눈초리가 살짝 올라갔다. 마치 자신의 장법을 빗대서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볼까?”
“아! 어차피 대결을 하는 김에 내기를 하나 하지요.”
“내기?”
“만약 저를 이기지 못하면 부탁 하나 들어주기. 어떻습니까?”
“얼마든지!”
한소리 내지른 철명군이 목검을 들고 몸을 날렸다.
대결에서 패한 무사는 죽은 거와 다름없다. 부탁이 아니라 목을 달라고 해도 줄 수밖에.
하늘이 갈가리 찢겨나가고 땅이 뒤집어졌다.
말이 나뭇가지지 신검보검이 따로 없었다.
떠덩! 콰과광!
가공할 공력이 실린 목검이 부딪칠 때마다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초식이 뒤엉키면 굉렬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콰르르릉!
혁무천은 대천룡구검세를 펼쳐서 철명군의 천추십삼검에 대적했다.
두 사람의 초식은 단순히 구검에서, 십삼검에서 끝나지 않았다.
변화가 변화를 부르면서 새로운 변초가 끊임없이 펼쳐졌다.
쉬지 않고 펼쳐진 초식이 이백 초가 넘어갈 때쯤 유난히 큰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앙!
삼 장 간격을 두고 떨어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검을 사선으로 늘어뜨렸다.
이미 반경 십여 장 일대는 난장판이 된 상태였다.
“확실히 젊은 놈이라서 오래 버티는구나.”
“저야 밤을 샐 수도 있습니다만, 노인장께선 몸이 견디실지 모르겠습니다.”
“흥! 나보다 체구도 작은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만.”
“체격이 크다고 쌈 잘하는 것 아닙니다. 제 동생 중에는 노인장보다 체격이 두 배나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철명군은 그 말에 콧등을 씰룩였다.
솔직히 그는 조금 지친 상태였다. 장기전으로 가면 아무래도 불리할 것 같았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하나만 묻자.”
“물어보시지요.”
“전 공력을 다 끌어내지 않은 것 같다만.”
“그건 노인장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지금 보여준 것 말고 또 있는 것 같은데, 왜 안 보여주는 것이냐?”
뭔지 모를 열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혁무천은 그 목소리의 정체를 알고 웃음이 나올 뻔했다.
호승심. 그리고 뛰어난 무공에 대한 열망이 담긴 목소리였다.
소소월에게 듣기로는 칠십이 넘었다고 했다. 이미 절대경지조차 끝자락에 닿아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도 아직 그런 열망이 있다니.
하지만 혁무천은 철명군을 상대로 지옥의 무공을 펼치고 싶지 않았다.
혁무천이 철명군을 보며 나직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필살지자(必殺之者)에게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철명군의 눈빛이 미미하게 떨렸다.
믿을 수 없게도, 그 말에서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반드시 죽여야 하는 자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무공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인장에게 제 마지막 무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겁니다.”
“왜? 너는 나를 죽이러 오지 않았느냐?”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만.”
“…….”
“그저 승부를 보려고 했을 뿐이지요.”
철명군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서 있는 혁무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상태로 머뭇거리던 그가 나뭇가지를 들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맛이라도 좀 보자.”
***
쩌저정!
한 줄기 시퍼런 벼락이 광폭한 빛 사이를 헤집으며 파고들었다.
백경은 강기가 깃든 검으로 빠르게 원을 그리며 천위의 공세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천위의 검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 강하고, 빨랐다.
“크읍!”
백경은 신음을 삼키며 주르륵 물러섰다.
강기의 여파를 버티지 못하고 소맷자락이 찢어져 펄럭거렸다.
가슴에도 이상이 있는지 싸한 느낌이 들었다.
반면 절호의 기회를 파고든 천위는 일검을 펼친 후 차가운 눈빛을 번뜩였다.
“놈, 여태 본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백경은 이를 갈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전음을 받고도 혹시나 했다. 그런데 용산평에 나와 보니 천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많은 말이 오갔다.
천위는 자신이 과거에 했던 일을 알고 있었다.
굳이 변명을 하지는 않았다. 변명을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나를 원망하지 마라. 네가 방계라는 것이 문제였던 거니까.”
그 말 이후 대결이 벌어졌다.
팽팽한 대결. 오십 초식이 지나도록 승부가 기울어 지지 않았다.
천위의 무공은 자신이 짐작하고 있었던 것보다 더 강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마음이 급해진 것은.
그는 단숨에 천위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연환초식을 무리해 가며 펼쳤다.
그 바람에 실낱같은 틈이 생겼다.
천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결국, 지금 같은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당신은 모를 거요. 이제는 그 모든 아픔을 지워버리고 싶을 뿐.”
천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검을 들었다.
그 역시 두어 군데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깨에서 흐른 피는 옆구리까지 흘러서 찬바람이 불 때마다 서늘함이 더해졌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맑았다.
“이제 끝냅시다, 백부.”
팍!
땅을 박찬 천위는 검강에 휩싸인 검과 하나가 되어서 어둠을 뚫고 백경을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본 백경의 눈이 홉떠졌다.
“네가 어떻게 천단일검을……!”
그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강기로 된 검막을 형성하며 천위의 공격을 막았다.
도주나 피하는 건 생각지도 않았다.
떠덩!
둔중한 굉음이 울리고, 천위의 검이 백경의 검막을 꿰뚫고 심장에 박혔다.
“컥!”
천위 역시 백경의 검에 가슴이 길게 갈라졌다.
그러나 검막이 뚫리면서 강기가 사라지고, 신검합일을 하며 몸이 강기에 휩싸인 터라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사랑과 젊음을 잃고 얻은 검이오.”
“크으윽, 네가… 적자였다면…… 나는… 너를 선택… 했을 거다.”
“수매가 돌아올 수 없는 한 나는 당신을 용서치 않을 거요.”
“미안…….”
백경은 착잡한 표정으로 겨우 한마디 내뱉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천위의 몸이 휘청거렸다.
백경의 가슴에서 빠져나온 검으로 땅을 짚은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안하오, 수매.’
그때 두 사람이 어둠속에서 그에게 다가왔다.
“쯔쯔쯔, 혼자 하겠다고 고집 피우더니 말이 아니군.”
“고집쟁이는 다쳐도 싸.”
이정과 전교였다.
***
쾅-!
일성 굉음과 함께 뒤로 물러선 철명군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이를 악다문 그의 눈매가 바람에 떨리는 눈썹 따라 흔들렸다.
“그게…… 무슨 검이냐?”
혁무천의 검을 마주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공포를 느꼈다.
세상에! 자신이 공포를 느끼다니!
믿을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철명군은 지금까지 세상에 그러한 무공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오죽하면 괜히 맛보겠다며 검을 들이댄 게 후회될 지경이었다.
“지옥명화.”
“무섭군, 무서워. 정말 지옥이라는 말이 어울리는군. 그나마 명화(明火)라니 다행이다만.”
철명군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더 보시겠습니까? 다음에는 저도 중간에서 멈출 수 없습니다만.”
“됐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철명군이 툭 내뱉듯 답했다.
다음 검을 보지 않겠다는 것은 곧 패배를 자인한 셈.
아무래도 천궁환의 부탁은 들어줄 수 없을 것 같다.
착잡해진 철명군이 물었다.
“장원을 공격할 거냐?”
혁무천이 철명군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일… 정식으로 방문할 겁니다. 저는 빚을 받으러 온 거지, 천화상단을 멸문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니까요.”
말끝에서는 옅은 미소마저 번졌다.
철명군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설마… 통째로 삼키겠다는……?’
***
무원장 사람들은 제남성 외곽에 있는 청풍객잔에 모여 있었다.
풍마문에 미리 부탁해서 이틀 동안 통째로 빌린 터라 객잔 안에는 무원장 사람들만 있었다.
방문이 열리고 혁무천이 들어오자, 앉아서 졸고 있던 동대안이 작은 눈을 슬쩍 떴다.
그래봐야 떴는지 안 떴는지 분간도 가지 않았지만.
“어떻게 됐어요?”
은설이 물었다.
모두가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혁무천의 답을 기다렸다.
상대는 비천의 최강 고수.
그만 무너지면 비천의 삼대고수가 모두 혁무천에게 패한 셈이 된다.
“약속을 받아냈다. 천위는?”
“아직…….”
은설의 대답이 다 나오기도 전에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방문 쪽으로 향하자, 방문이 열리면서 이정과 전교가 천위를 안고 들어왔다.
“아, 이 자식. 뭔 고집이…… 내가 도와준다니까.”
이정이 투덜대며 천위를 한쪽에 있는 침상에 내려놓았다.
“상태가 어떻소?”
“상처가 심하긴 한데, 치명상은 없어. 그래도 며칠은 고생해야 할 거야. 사실 그런 고수를 죽이면서 이 정도면 다행이지.”
백경을 홀로 상대하는 건 힘들지 몰라서 이정과 전교를 딸려 보냈다. 그런데 혼자서 상대한 것 같다.
“백경은?”
전교가 말없이 검지로 심장 부위를 쿡 찔렀다.
심장이 뚫려서 죽었다는 뜻.
혁무천은 잠시 천위를 쳐다본 후 몸을 돌렸다.
“앞의 객잔에 갔다 오겠소.”
밀소림 사람들이 길 건너편 객잔에 있었다.
무원장에서 출발하기 전.
그들은 천화상단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못마땅해 했다. 자신들이 상대하려는 자는 마도지 상단이 아니었다.
그러나 혁무천이 천화상단과 사대마세의 관계를 이야기 해주자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
다음날.
눈비와 바람을 막기 위해 피풍의를 두른 남녀 십여 명이 제남 동쪽 외곽에 나타났다.
그들은 떨어지는 눈을 밀어내며 거대한 장원을 향해 다가갔다.
하얀 눈이 끊임없이 떨어지는 데도 그들의 몸에는 눈 한 점 묻어 있지 않았다.
십여 명이 걷는데도 옅게 눈이 쌓인 땅에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눈 위를 미끄러지듯 걸어간 그들이 정문 앞에 다다르자, 정문위사가 긴장한 표정으로 앞을 막았다.
평상시 천하제일상가라는 위명을 업고 목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던 그들도 다가오는 자들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안 듯 묻는 말투가 조심스러웠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