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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290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3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290화

290화

 

 

갈색옷을 입은 중년인, 이정은 이마를 꿈틀거리고는 공력을 끌어올렸다.

“원한다면 상대해주마.”

이정은 검을 사선으로 뻗으며 몸의 중심을 낮추었다.

그의 검신에서 백색 기운이 안개처럼 흘러나오며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검강지기를 끌어올려서 전력을 다해 상대하겠다는 의도인 듯했다.

그 모습만 봐서는 다른 사람들이 왜 그의 성격을 문제 삼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하지만 곧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일부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땅을 박차고 선공을 펼친 이정이 미친 듯이 검을 뻗으며 소리쳤다.

“어디 막아봐라! 건방진 새끼! 으자자자자자!”

말 그대로 광풍폭우와 같은 검강의 소나기가 천위를 향해 쏟아졌다.

천위를 중심으로 직경 이 장 넓이의 대지가 폭격을 당한 듯 구멍이 숭숭 뚫리고, 부서진 자갈이 사방으로 튀었다.

천위도 물러서지 않고 검을 뻗었다. 그의 검첨에서 뻗어나간 시퍼런 검강이 검막을 형성하며 이정의 공격을 차단했다.

이정은 자신의 공격이 모조리 차단당하자 얼굴이 벌게진 채 더욱 강하게 공세를 쏟아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쏟아내는 그의 공세에 천위도 이마에 주름이 그어졌다.

언뜻 보면 빈틈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그 빈틈을 공략하려면 자신 역시 당할 각오를 해야 했다.

동귀어진이라도 하겠다는 듯 달려드는 이정을 보며 천위의 얼굴에도 표정다운 표정이 떠올랐다.

‘소문대로 제멋대로고 거칠군.’

하지만 그도 만만치 않았다.

“좋아! 어디 한번 누가 이기나 해봅시다!”

 

미치광이 검사 둘이 싸우는 듯했다.

두 사람이 싸우는 일대는 폭풍우에 휩쓸린 것처럼 난장판이 된 상태였다.

그래도 결국 결판은 났다.

한 끗 차이였다.

천위가 빈틈을 가르며 검을 뻗자, 이정이 빙글 몸을 돌리면서 천위의 검을 흘리고 반격했다.

약간의 부상이 있었지만 고육지책이었다.

살을 주고 뼈를 깎겠다는 뜻.

약간의 실수만 해도 목숨이 위험한 상황인데도 이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실행으로 옮겼다.

천위는 자신의 검이 스쳐갔다는 걸 느낀 순간 손목을 틀었다.

검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방향을 바꾸었다.

뫄우우우!

검첨에서 뻗어나간 검강이 마치 용틀임하듯 뒤틀리며 이정을 노렸다.

쾌재를 부르던 이정은 날아드는 검강의 용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헛-!”

전력을 다해서 검을 휘두른 그는 뒤로 몸을 날렸다.

콰광!

굉음과 함께 이정은 삼 장이나 날아간 뒤 내려섰다. 거센 충격으로 인해서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일 장 이상 더 날아간 것이다.

안색이 창백해진 그는 중심을 잡고 천위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천위는 더 이상 공격할 의사가 없는 듯 그 자리에 서서 뭔지 모를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정도 그 자리에 서서 진기를 안정시켰다.

‘진짜 무섭군. 어디서 저런 놈이 나왔지?’

그때였다. 계곡 입구 쪽 숲속에서 네 사람이 나오는 게 보였다.

“제길! 이제 무삼곡이 동네북이라도 된 건가? 개나 소나 막 들어오네.”

천위도 그들을 보고 눈빛을 빛냈다.

셋 중에 눈에 익은 사람이 있었다.

“무천?”

“여긴 무슨 일이지?”

“그거야 고수가 있다고 해서 왔지. 고수와 자꾸 붙어보다 보면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싶어서.”

“실마리?”

“너를 넘어설 수 있는 실마리.”

“저런, 그런 거라면 나를 찾아왔어야지.”

“…….”

세상에 자신을 이길 실마리를 찾고 있다는데 자신을 찾아오란다. 자신의 약점을 알려주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니나 다를까 혁무천이 말했다.

“찾아왔으면 말해줬을 것 아닌가.”

“뭘……? 설마 너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네 입으로 말해주겠다는 거냐?”

“아니,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려주었을 거다.”

“…….”

“그리고… 목표를 나로 잡지 말고, 너 자신을 목표로 삼으라고 했을 거야.”

이번만큼은 천위도 충격이 큰 듯 항상 고요하던 눈매가 잘게 떨렸다.

“너를 목표로 삼지 말고 나 자신을 목표로 삼으라?”

“바로 그거야. 옆에서 지켜보며 목표를 키워가는 것도 괜찮고.”

천위의 허무함 가득하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훗,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괜히 빙 돌아가려고 했어.”

그때 이정이 냉랭히 말했다.

“네놈도 나와 한판 하기 위해 온 거냐?”

혁무천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무혈자 이정. 맞소?”

“그래, 내가 이정이다.”

“한판 하고 싶소?”

말을 하며 몸을 돌린 혁무천이 이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정은 ‘저놈이라도 패서 상한 기분을 만회할까?’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해졌다.

혁무천이 걸으면서 천천히 좌수를 들었다.

이정은 그제야 답답함의 정체가 혁무천이라는 걸 깨닫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천위도 저놈에게 패한 것처럼 말했지 않은가 말이다.

‘젠장! 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놈이 자꾸 나타나는 거야?’

“애들처럼 누가 잘 났는지 가리기 위해 싸우는 것도 그렇고, 한판 뜰 거면 내기라도 하지요.”

“무슨 내기를 하자는 거냐?”

“이긴 사람 부탁 들어주기. 싫으면 그냥 애들처럼 개싸움을 하든가…….”

입술을 질겅 깨문 이정이 혁무천을 노려보며 말했다.

“좋아, 하자.”

 

혁무천은 검을 쓰지 않고 적수공권으로 이정을 상대했다.

이정의 무위는 이제 막 절대경지에 접어든 상태였다.

그럼에도 생명선 하나가 더 사라지면서 풀린 공력 덕분에 이제 그 정도 고수는 검을 뽑지 않고도 상대할 수 있었다.

반면 이정은 미칠 일이었다.

상대가 검도 뽑지 않았는데 밀렸다.

그냥 밀린 것이 아니다.

저 개자식이 누구 약을 올리려는 것인지 빈틈을 기가 막히게 파고들어서 두들겨댔다.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해서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통은 고통대로 느껴야만 했다.

두들겨 맞고 고통스러운데 별다른 내상은 없다 보니 멈추자고 할 수도 없었다.

자존심이 있지!

하지만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마아안! 헉헉헉, 내가 졌다.”

이정은 쉬지 않고 벌어진 대결에서 구십구 초식 만에 패배를 시인했다.

저 악귀 같은 놈과 더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내기한 거, 잊지는 않으셨지요?”

태연하게 말하는 놈의 얼굴이 이제는 무섭게 느껴질 지경이다.

“물론이지. 약속은 지킨다. 단,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시키려거든 차라리 목을 쳐라.”

그건 이정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물론 혁무천은 이정의 목을 칠 생각이 없었다.

“삼 년 동안만 도와주시오.”

“도와달라고?”

“무원장에서 빈객으로 모시겠소.”

“무원장이 뭐하는 곳인데?”

이정은 산속에서만 지내다 보니 무원장이라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

“상가요.”

“상가? 장사꾼?”

“그렇소.”

“어이가 없군. 너 같은 놈이…… 험, 자네 같은 고수가 상가에 있다니. 하긴 천화상단이란 곳도 고수가 많긴 하다만.”

이정이 성격이 제멋대로이긴 해도 눈치까지 없는 건 아니었다. 성격대로 대해봐야 좋을 것 같지 않자 슬쩍 말투를 바꾸었다.

“천화상단을 아시오?”

“조금. 십 년 전쯤 태산에 갔다가 한번 붙어봤다. 아주 엉큼한 새끼들이었지. 오만을 떠는 놈이 있어서 두들겨 팼더니 지 사부를 데려오더군.”

그래서 한판 붙었다. 그리고 깨졌다.

물론 그에 대해서는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혁무천이 그에게 말했다.

“그 천화상단과 한판 붙어볼 생각이오.”

이정의 눈이 번뜩였다.

“천화상단과? 흠, 그거 재미있겠는데?”

반드시 전의 패배에 대한 복수를 하고야 말리라!

그때였다.

“사람 더 필요 없나?”

가죽옷을 입은 중년인이 물었다.

“함께 가시겠다면 얼마든지 환영하지요.”

혁무천은 담담히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그도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가 펼친 도법 때문이었다.

구절도문의 구절폭풍도.

천붕십이마 중 구절마군 전광의 독문도법처럼 보였다.

게다가 이현의 말에 의하면, 그의 이름이 ‘전교’라고 했다. 전광과 성도 같았다.

하지만 그의 사문이나 가문에 대해서는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귀찮은 일은 피하는 게 나았다.

 

조구삼은 나름대로 만족했다.

‘좋았어!’

무삼곡의 무시무시한 미친놈들을 무원장의 주인이 끌고 내려간다.

바라던 바대로 동백산에도 평화가 찾아올 것 같았다. 일반 사람들이야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산적들만 신날 일이니까.

하지만 그러한 만족감도 동백산을 내려온 후 나락으로 떨어졌다.

“나도 간다고? 내가 왜?”

조구삼은 호광을 노려보며 따졌다.

혁무천은 호광에게 조구삼도 함께 데려가자고 했다.

인상이 험악한 것만 아니면 나름대로 쓸 곳이 있을 것 같았다. 무공실력도 괜찮았고.

호광도 그 결정을 반겼다.

“왜는 왜야? 쓸 데가 있으니까 함께 가자는 거지.”

“싫어. 안 가!”

혁무천은 강요하지 않았다.

“가기 싫다는데 억지로 데려갈 순 없지.”

그때만 해도 조구삼은 무천을 순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거 봐, 무 장주도…….”

그런데 무천이 마저 말했다.

“머리만 떼어가는 수밖에.”

조구삼은 딸꾹질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고 말꼬리를 돌렸다.

“뭐 꼭 못 갈 이유는 없는데…….”

“산채는 아랫사람들에게 맡겨. 함부로 양민들 털지 못하게 하고. 그런 소문 들리면 동백산부터 깨끗이 정리할 테니까.”

하지 말란다고 안 할 부하들이 아니다.

조구삼은 맹렬히 머리를 굴려서 괜찮은 생각을 하나 끄집어냈다.

“장주, 차라리 쓸 만한 놈들도 몇 데려가면 어떨까? 수당만 제대로 준다면 굳이 산적질 할 이유도 없는데.”

혼자 가면 괄시 받을지 몰랐다. 부릴 수 있는 수하라도 있는 게 나았다.

혁무천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몇 명이나 되지?”

“일류 수준 이상은 십여 명 정도 되고, 그 아래 놈들은 백 명이 조금 넘어.”

“다 데려와.”

어차피 장원도 동서남북에 마련해 놓아서 거처도 충분했다. 교육만 제대로 시키면 쓸 곳은 많았다.

원래 도둑놈들이 도둑들 나타나는 곳을 잘 아는 법이다.

‘이번 길은 이득이 많군.’

 

***

 

무원장으로 돌아온 혁무천은 천화상단에 함께 갈 인원을 정리했다.

천위, 이정, 전교.

세 사람이 합류함으로써 아쉬운 대로 천화상단을 맞상대할 기본적인 힘은 갖추어졌다.

이제는 병법이 승부를 좌우할 것이다.

“우리 쪽에서 이백 명 정도, 뒤쪽 장원의 친구들도 간다. 출발은 모레 아침. 그때까지 준비를 마치도록.”

목량은 혁무천이 작정했다는 걸 알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형.”

“마룡성에도 연락해서 청룡대와 백룡대원 중 일류고수 이상만 보내라고 해.”

“알겠습니다.”

 

사야가 찾아온 것은 하늘이 어둑해졌을 무렵이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얼굴을 면사로 가린 여인이 무사 열두 명을 대동하고 무원장을 방문했다.

혁무천은 무원장의 내원에 있는 청명전에서 그들을 맞이했다.

만마성에서 온 손님이라는 것만 알고 청명전으로 나간 혁무천은 면사를 쓴 여인을 보고 눈이 살짝 커졌다.

면사를 써서 눈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대가 이곳엔 어쩐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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