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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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88화
288화
“흥! 지옥에는 네놈이나 가라!”
천양묵이 코웃음 치며 몸을 날렸다. 묵혼천마기를 전신에 두른 그는 신도명산을 향해 날아가며 검을 뻗었다.
신도명산도 십성 공력을 끌어올려서 마주쳐갔다.
상대는 만마존 천양묵이다.
천하제일을 다투는 절대고수.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콰과광!
힘과 힘의 충돌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묵혼천마기가 마도의 십대마공 중 하나라면 태천검제의 태천신공 역시 정파의 팔대신공 중 하나다.
신도명산은 최강의 적을 맞이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다 쏟아냈다.
다행이라면 천양묵이 정은맹 수뇌부를 상대하느라 진기를 제법 소모했다는 점이었다.
그 대가로 정은맹 고수 이십여 명이 그의 손에 죽었지만, 신도명산은 휘하 정예고수들의 죽음에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최소 이 성 이상의 공력이 소모된 것 같군.’
그들이 목숨을 던져서 천양묵의 진기를 소모시켰다는 것에 만족했다.
고수들 간의 싸움에서 이 성 공력의 차이는 승부를 가름하기에 충분했다.
한편, 한쪽에서는 공손락이 처음 보는 중년인과 대치하고 있었다.
처음에만 해도 웬 놈이 감히 자신의 앞을 막아섰는가 싶었다.
이런 자리에 비단으로 된 무복을 입고 나오다니.
겉멋만 잔뜩 든 놈 같았다.
하지만 검을 한번 맞대본 후에는 경시하는 마음을 버렸다. 패도적인 자신의 검을 조금도 물러섬 없이 정면으로 맞받아낸 것이다.
“너는 누구냐?”
“지금은 그걸 궁금해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하긴. 결국은 죽일 놈일 뿐인데, 네가 누군지 알 필요는 없겠지.”
후우우우웅.
공손락에게서 폭풍 같은 기운이 휘몰아쳤다.
중년인, 주금화가 검을 가슴 높이로 들었다.
“괜찮군. 하지만 그 정도로는 본좌를 혼내주기 힘들지.”
“건방진!”
공손락은 일갈을 내지르고 주금화를 향해 검을 내밀며 한발을 내딛었다.
삼 장 거리가 찰나에 좁혀졌다.
앞으로 내민 검 끝에서 시퍼런 검강이 쭉 뻗어나갔다.
세상 무엇이든 다 파괴해버릴 것 같은 패도적인 기세!
그러나 주금화는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바라보며 검으로 직경 한 자 크기, 강기로 된 원을 세 개 그렸다.
그가 그린 원은 빠르게 크기를 키우더니, 날아드는 공손락의 검강을 휘감았다.
콰르르릉!
벽력음과 함께 부서진 검강의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막상막하의 격돌.
그때부터 두 사람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백초 대결을 펼쳤다.
***
혁무천이 대혈전의 결과를 전해들은 것은 그날 석양이 질 무렵이었다.
풍마문의 마호걸이 달려와서 창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만마성과 마천문의 무사 이천이 남양으로 가던 중 정은맹 무사들을 만나 싸움이 벌어졌소. 그 결과 천오백여 명이 죽고 오백여 명만 살아서 겨우 빠져나갔다 하오.”
자리에는 삼현만이 아니라 송비와 은설도 있었다. 그들은 경악해서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혁무천은 엄청난 말을 듣고도 무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만마성주와 마천문주는?”
“만마성주는 정은맹주와 싸워 심각한 내상을 입었고, 마천문주께선 정체불명의 고수와 백초 대결을 펼쳤소만,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하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혁무천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천양묵이 아무리 심신이 흔들렸다 해도 신도명산과 싸워 중상을 입은 것은 의외였다.
정상적인 상태였다 해도 최소한 비등한 무위라는 말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신도명산의 강함보다 다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정체불명의 고수?”
“그가 누군데 공손락과 백 초 대결을 펼치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단 말인가?”
송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도명산과 함께 나타났는데, 나이는 중년쯤이었고, 청색 비단 무복에 보석이 박힌 영웅건을 이마에 두르고 있었다 하오.”
혁무천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싸늘하게 번뜩였다.
언젠가 그런 자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객잔 이층에 서 있던 자인가?’
하지만 놀랄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만마성의 당주지부에 남아 있던 자들은 정혈단에 당했소.”
혁무천이 눈을 치켜떴다.
비록 대부분 부상자들이라 하나 팔백이 넘는 인원이라고 들었다.
정혈단이 그곳을 공격했다면 그들 대부분 죽었다고 봐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호걸이 말했다.
“그곳에 있던 자들 대부분이 죽었는데,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서 백여 명을 데리고 도망쳐서 전멸은 면했다 하오.”
무척 아름다운 여인?
설마 사야?
“그 여인의 정체를 아시오?”
“만마성주의 곁에 있던 여인이 아닌가 싶소.”
그렇다면 사야라고 봐야 했다.
‘사야라면 천양묵이 복수를 서두르는 걸 막으려 했을 거다. 하지만 천양묵의 입장에서는 물러설 수 없었겠지.’
어쨌든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반가웠다.
“정은맹의 피해는 어느 정도요?”
“정은맹도 천오백 명 정도 사상자가 발생했소.”
피해가 비슷하다면 결국 정은맹의 승리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묘한 느낌이 가슴 한구석에서 꿈틀댔다.
지금까지의 흐름 자체가 인위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만마성 당주지부 공격, 독살, 천화광의 부상, 당주의 함정, 한가촌의 공격, 그리고 정혈단의 당주지부 재공격.
겉으로만 보면 정은맹과 정혈단의 멋진 합작품처럼 보였다.
전이었다면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손을 잡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손을 잡기는커녕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어도 이상할 것 없었다.
그럼에도 흐름은 그들이 마치 합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정혈단과 정은맹 사이에서 상황을 조정하고 있다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말인데…….’
그때 마호걸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상자 중 일천 명 정도가 기존 정은맹 무사들이오.”
혁무천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싸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현재 정은맹 무사 중 기존 정은맹 무사의 숫자는 이천 정도다. 그 중 절반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반면 천기회와 남황궁 무사는 삼천오백 명 정도. 그런데 사상자 중 그들은 오백 명 정도다.
지나칠 정도로 기존 정은맹 무사의 비율이 높았다.
그들이 약해서?
아마 그게 아닐 것이다.
이현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쳐내고 정은맹을 새롭게 구축하겠다는 거군요.”
“지나치게 자신감이 높아.”
혁무천의 그 말에 이현이 말을 받았다.
“아무래도 신도명산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일 거다. 정체불명의 고수.”
“그가 누군지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지금 정은맹에서 신도명산만큼 큰 힘을 가진 자가 있다면 누구겠나?”
“남황궁주?”
“맞아. 어쩌면 그가 남황궁의 주인일 거다.”
“남황궁주는 어떤 사람인가요?”
듣기만 하던 은설이 물었다.
혁무천의 시선이 마호걸에게로 향했다.
“그자에 대해 자세한 걸 알아봐주시오.”
***
강호가 들썩거렸다.
만마성과 마천문의 연합공격을 정은맹이 막아내고 승리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만마존 천양묵과 사천제일마 공손락이 직접 나섰음에도 패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정은맹 쪽 인원이 배 이상 많았다 해도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복우산 대혈전 이후 벌어진 또 한 번의 대사건으로 인해 정은맹을 바라보는 강호의 시선이 달라졌다.
이제는 어느 쪽이 승리할지 알 수 없는 상황.
무림에 몸담고 있는 무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봤다.
그렇게 겨울이 깊어질 때쯤, 개방으로부터 수룡방 상황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다.
생존자는 모두 칠팔백 명 정도라 했다. 그 중 투항한 자는 이백 명 정도.
오륙백 명은 도주해서 두세 무리로 나누어진 것 같다고 했다.
수룡방 공격을 지휘한 자는 예상했던 대로 천신명이었다.
그가 천화상단의 정예무사 오백과 비천의 무인 일백을 데리고 수룡방을 공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시진 만에 호수를 붉게 물들인 후 수룡방의 주인이 바뀌었다.
보고를 받은 혁무천이 목량에게 물었다.
“소소월 노인은?”
“지 어르신과 계실 겁니다.”
소소월은 정주에서 어제 도착해 있었다.
“가서 모셔와라.”
잠시 후, 소소월이 입을 삐죽거리며 회의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천화상단의 자세한 장원 구조와 비천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한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싶습니다.”
전에 천화상단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긴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인물 중심의 설명이었다.
“장원 구조? 그거라면 어렵지 않지. 그런데 비천은 내가 들어가 보지 못해서 내부의 정확한 구조까지는 알지 못하네.”
“아시는 것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그래? 그럼 뭐 어려울 것 없지.”
그 사이 목량이 종이와 붓과 벼루를 탁자 위에 펼쳐놓았다.
소소월이 붓을 휙휙 놀려서 장원의 구조를 그렸다.
천화상단 장원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직접 들어가 본 혁무천이야 길을 잃을 정도로 넓다는 걸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겉만 본 터라 내부의 규모를 실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소소월이 장원 내부를 그리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화상단은 어지간한 마을의 규모만큼이나 크지. 그런데도 비천은 후원 뒤쪽 동산 너머에 있다네.”
도대체 넓이가 얼마나 될까 궁금할 정도였다.
소소월은 사람들이 놀라자 신이 난 표정으로 붓을 놀려서 한 곳에 원을 그렸다.
“내가 듣기로는 비천을 지휘하는 삼태상이 바로 이곳에 있네.”
혁무천은 소소월이 원을 그린 지역을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어느 곳인지 대충이나마 알 것 같았다.
“비천의 인원은 어느 정도요?”
“한 삼백 명 정도?”
숫자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절정고수 이상 되는 자들만 해도 사오십 명은 된다. 그리고 초절정경지를 넘어선 고수가 십여 명이다.
그들 외에도 천화상단에 일천여 명의 정예무사들이 있었다.
천하의 어느 문파가 그들을 무시할 수 있으랴.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소소월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혁무천은 별 일 아닌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
“조호이산, 차도살인, 각개격파. 소 노인이 말씀하신 대로 해볼 생각입니다.”
소소월이 씩 웃었다.
“좋아,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게.”
***
천화상단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고수가 더 필요했다.
절대경지에 오른 고수는 천하를 다 뒤져도 스무 명 안팎이라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천화상단에 그런 고수가 최소한 다섯 명은 되었다.
반면 무원장에는 자신과 지천주, 밀소림의 일조장인 운정과 이조장인 운월 정도.
초절정경지에 오른 고수가 몇 명 있긴 하지만 천화상단보다 많다고 할 수도 없었다.
결국 무원장의 힘만으로는 천화상단을 상대로 승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
“현재로서는 양패구상이 최선입니다.”
이현이 양 세력을 냉정히 비교해보고 말했다.
사실 그 정도만 해도 굉장한 일이었다.
천화상단의 무력은 팔대마세보다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일 년도 안 된 사이 무원장의 무력이 천화상단과 비교할 만큼 커졌다는 말 아닌가.
그러나 양패구상은 혁무천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잘못하면 실컷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될 수 있었다.
“일단 오절이나 칠사 팔마 정도의 고수가 더 필요할 것 같군.”
혁무천이 간단한 해결책을 내놓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율이명이 혁무천의 눈길을 받고 반사적으로 말했다.
“동백산에 칠사 중 한 사람이 있긴 한데, 성질이 좀 지랄 맞네.”
이현이 그자를 아는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