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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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10화
310화
전열을 정비한 마황궁은 곧장 동천으로 진군했다.
첫 번째 싸움에서 승기를 잡은 터라 사기가 충천했다.
그들은 단숨에 대정맹 동천지부를 짓이겨버리겠다는 듯 모래폭풍처럼 밀려갔다.
대정맹 동천지부에는 이차 지원대인 남궁무룡이 막 도착한 상황이었다.
“놈들이 온다!”
밖에서 마황궁의 공격을 알리는 고함이 터져 나오자 대정맹 무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고 동천지부 앞으로 집결했다.
남궁무룡이 주요 간부들과 함께 앞으로 나서서 외쳤다.
“정의는 이긴다! 모두 힘을 내서 놈들을 물리쳐라!”
와아아아아!
“맹주께서 오셨다!”
“정의는 이긴다! 검을 들어라!”
장안에 있는 줄 알았던 남궁무룡이 나타나자 대정맹 무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 와중에도 마황궁의 전진으로 인해 피어오른 먼지구름이 점점 가까워졌다.
일차 격전에서 오백 명이 넘는 사상자가 났음에도 오히려 그때보다 인원이 더 많은 듯 보였다.
그리고 사실이 그랬다. 뒤늦게 달려온 마황궁 무사들이 대정맹 공격에 합류한 것이다.
“정파의 잡졸들을 쓸어버려라!”
“정파 놈들에게 마황궁의 위엄을 보여줘라!”
“우리 폭풍혈사대가 선두에 선다! 가자!”
우우우우우우!
양측 합쳐서 육천 명이 넘는 무사들이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단순한 강호의 싸움이 아닌 전쟁이었다.
막상 싸움에 나선 사람들조차도 평생 처음 겪는 대규모 싸움이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다.
피가 튀고, 팔다리가 잘리고, 목이 잘리고…….
죽어가면서도 악을 쓰며 상대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는 그들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일반 무사도, 절정경지를 넘어서 고수들도 누구 하나 제정신으로 싸우는 자가 없었다.
그렇게 피 튀기는 혈전이 한창일 때, 일단의 무리가 측면으로 뛰어들었다.
눈 밑을 검은 천으로 가린 그들은 마황궁 무사들만 골라서 쓰러뜨렸다.
숫자는 칠팔십 명 정도.
그들이 누군지 파악하기도 전에 쓰러진 자가 백 명이 넘었다.
대정맹 무사들은 그들이 적이 아니라는 걸 알고도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때문이었다.
멋모르고 근처에 있던 자들이 기세에 밀려서 나뒹굴었다. 다행히 부상을 당한 곳은 없지만, 그 광경 자체가 공포였다.
게다가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대정맹 무사들은 물러서! 우린 마황궁에 볼 일이 있다!”
대정맹 무사들은 당황한 와중에도 반사적으로 물러섰다. 그저 그들이 자신들의 적이 아니라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대정맹 무사들이 물러서자 마황궁 무사들만 남았다.
복면인들은 어정쩡하게 남은 마황궁 무사들을 덮쳤다.
마황궁의 간부들이 나서서 막으려 했지만, 그들 역시 복면인들의 공격을 제대로 받아내는 자들이 거의 없었다.
쓰러진 마황궁 무사의 숫자가 빠르게 늘어났다.
이백, 삼백…….
삭풍을 뚫고 자란 잡초처럼 살아와서 두려움을 모른다는 마황궁 무사들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워졌다.
복면인들은 어느새 전장의 중앙까지 진입했다.
그들 중 선두에 선 몇 명이 마황궁의 간부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적아를 불문하고 모두의 눈에 가공할 광경이 펼쳐진 것은 그때였다.
기의 폭풍이 이십여 장 일대를 휩쓸었다.
검의 최고봉이라는 검강이 조금도 어려울 것 없다는 듯 가볍게 펼쳐졌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검강을 펼칠 줄 모르는 자신들이 초라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콰과광!
떠더더덩!
쩌저저저정!
천둥벼락 같은 굉음이 연이어 울렸다.
마황궁의 내로라하는 절정고수들이 몇 수 겨뤄보지도 못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개중에는 마황궁의 칠대장로 중 네 명도 섞여 있었다.
사기가 땅바닥에 떨어진 마황궁 무사들은 기가 질린 표정으로 정신없이 물러섰다.
또 다른 복면인들은 그들을 공격했다.
쓰러진 마황궁 무사의 숫자가 칠팔백을 넘어가자, 전장 전체의 전황이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정신 차리고 놈들을 상대하라!”
“놈들을 막아!!!”
대정맹 수뇌부를 상대하고 있던 야율대원과 마황궁의 고위 간부들이 뒤늦게 악을 쓰며 수하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마황궁 무사들의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나 컸다.
그들은 감히 달려들 생각도 못하고, 복면인들이 행여나 자신들 쪽으로 올까 봐 멀찌감치 물러섰다.
야율대원도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오절에 속한 남궁무룡과 양충화는 그에게 뒤지지 않는 고수였다. 한눈을 팔면서 상대할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마황궁은 물론이고, 대정맹 수뇌부조차 공황상태에 빠져 있을 때, 복면인들은 전장을 두 동강내버리고, 바람처럼 내달려서 사라져갔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쓰러진 마황궁 일천무사의 시신만이 즐비했다.
“마황궁 놈들을 쳐라!”
“마를 멸하고 정의를 세우자!”
대정맹 쪽에서 들뜬 고함이 터져 나왔다.
사기가 하늘 끝까지 솟구친 대정맹 무사들이 마황궁 무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야율대원도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 후퇴명령을 내렸다.
“물러선다! 후퇴해!!!”
“후퇴!!!!”
그러나 남궁무룡을 비롯한 대정맹의 수뇌부는 그들을 이대로 보낼 생각이 없었다.
완벽한 승기를 잡았을 때 최대한 몰아붙여야 했다.
“놈들을 쫓아라!”
한편, 전장에서 십 리 떨어진 숲속.
혁무천은 급조한 복면을 벗고 무원장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뒤를 맡은 밀소림 제자들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그들 역시 사망자가 없었다.
혁무천과 절대고수들이 전면을 맡아서 적의 사기를 완전히 꺾은 데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진을 이루고 적을 친 영향이 컸다.
거기다 마황궁 무사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전력을 다해서 휘몰아치고 빠져 나온 터라 반격을 당할 시간조차 없었다.
“어이가 없군. 일천 무사를 쓰러뜨리고도 사망자가 없다니.”
호광이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말하고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한바탕 꿈을 꾼 것만 같았다.
“혼전을 이용한 계획이 적중한 거지요.”
혁무천이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쓰러뜨린 적의 숫자가 일천이나 되었다.
강호사에 이런 싸움이 있었을까?
한번 무림사를 들춰보고 싶을 정도였다.
“아예 마황궁 총단을 치는 게 어떻겠나?”
중리안이 상기된 표정으로 물었다.
서른 살 이후 지금까지 비천에서 지냈던 그는 오늘 같은 대규모 싸움이 처음이었다.
청춘으로 돌아간 것처럼 피가 펄펄 끓었다.
혁무천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정체가 드러나서 좋을 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에 어이가 없었다.
이정이 별 멍청한 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 째려보며 말했다.
“설마…… 얼굴 좀 가렸다 해서, 저들이 우리의 정체를 모를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다른 사람이야 그렇다 치고, 기둥 같은 장봉을 휘두르는 장대산을 몰라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쌍도끼를 휘두르는 철호, 꼬챙이 같은 검을 쓰는 동대안도 눈에 띄는 모습이고.
그럼에도 혁무천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얼굴이 드러난 사람이 없으니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지요. 하지만 끝까지 공격하면 그 자리에서 정체가 드러날 겁니다. 그럼 상황이 복잡해집니다.”
“그 자리에서만 드러나지 않으면 괜찮다?”
“그렇지요. 잡아떼면 되니까요.”
“왜 꼭 그래야만 하지?”
“우리가 마황궁을 공격해서 망하게 했다고 하면, 마도의 거래처들이 불안해 할 거 아닙니까? 그럼 손실이 너무 큽니다.”
은설조차 그 말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
혁무천이 피식, 실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는 농담이고, 더 싸웠다면 혼전 중에 우리 쪽도 몇 명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사람들은 혁무천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밀소림 제자 중 칠팔 명이 제법 심한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싸움이 반각만 더 계속 되었다면 그들 중 몇 명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저는 남의 싸움 때문에 우리 쪽 사람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의를 위해서.
마를 멸하기 위해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그러한 신념을 위해 검을 든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은설, 그리고 밀소림의 제자들만 해도 물어보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혁무천의 말을 반박하지는 못했다.
정의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라고 동료를 죽음 속으로 떠밀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목숨을 내던지는 게 정의를 위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알아서 달려가면 된다.
생각이 다른 남을 종용하지 말고.
혁무천도 그런 사람을 제지할 생각은 없었다.
“누구든 대정맹에 합류해서 마황궁과 싸울 생각이라면 알아서 하십시오. 말리지 않을 거니까.”
혁무천의 그 말에 철명군이 한마디 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우리가 아니더라도 마황궁은 오래 버티지 못할 거다.”
그러고는 묘한 눈빛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
대정맹은 동천에서 사백 리 북쪽 낙천에 있는 총단까지, 사흘 동안 마황궁을 몰아붙였다.
소궁주 야율인이 일천 무사를 이끌고 나와 맞섰지만 사기가 하늘 끝까지 솟구친 대정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마황궁은 간부들 대부분이 죽거나 중상을 당하고, 야율대원조차 남궁무룡의 검에 팔이 잘린 채 겨우 목숨만 건져서 도주했다.
야율대원이 야율인의 등에 업혀서 도주할 때 따라간 사람은 삼백여 명에 불과했다.
마황궁을 무너뜨린 대정맹은 낙천의 마황궁 총단에 지부를 세우고 일천 무사를 주둔시켰다.
이로써 대정맹과 마황궁의 전면전은 결국 대정맹의 대승으로 끝이 났고, 섬서에서 백 년 동안 제왕처럼 군림했던 마황궁의 역사가 막을 내렸다.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만큼 전격적으로 벌어진 변화였다.
심지어 대정맹조차 이런 결과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대정맹이 마황궁 총단을 공격하던 그때, 혁무천은 장안으로 돌아가 장안전장과의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마화공은 낙양전장과의 대금 지불 협약에 대한 것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와 화문역이 경쟁관계라 하나 결국은 상인이었다. 이익이 되는 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장안전장과의 협상이 마무리 된 다음 날, 이사명이 상가장으로 찾아왔다.
“마황궁 총단을 점령했다는 연락이 왔네.”
“잘됐군요.”
“고맙네. 우리 대정맹은 자네 도움을 잊지 않을 거네.”
“저희가 딱히 도와준 것이 있어야지요.”
혁무천이 모른 척하자, 이사명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동천에서 복면인들이 나타나 마황궁을 뒤집어 놓았다고 하더군. 그들에 의해 마황궁의 전력이 절반 정도 괴멸되지 않았다면, 총단 점령은커녕 이기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거네.”
“그래요? 어떤 자들인 몰라도 대단하군요.”
“듣자 하니 그 복면인들 중에 장봉을 쓰는 거한이 있었다고 하더군. 자네 수하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아마?”
“장봉을 쓰는 거한이 세상에 어디 한둘입니까?”
“쌍도끼를 기가 막히게 휘두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더군.”
“제 동생 중에도 쌍도끼를 쓰는 사람이 있는데, 들으면 적수가 나타났다고 무척 좋아하겠군요.”
이사명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혁무천을 빤히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