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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304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5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304화

304화

 

 

눈치를 살핀 호경안은 땀이 찬 손을 슬며시 검에서 뗐다.

마침 진국충이 호경안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무원장의 장주께서 직접 오셨을 줄은 몰랐소. 대정맹 멸마대 삼대주 진국충이오. 섬서에는 어쩐 일이신지?”

“이사명 군사를 만나려 하오. 듣기로는 장안에 계시다고 하던데.”

“그렇소. 한데 무슨 일로 만나시려는 거요?”

“미안하지만 지금 그 말을 하기는 적당치 않은 것 같소. 다만, 대정맹에 손해되는 일은 아니니 걱정하실 건 없소.”

“사람을 보내 장주께서 오신 걸 알리도록 하겠소이다.”

“그래주신다면 고맙지요.”

혁무천을 돕기 위해 알리겠다는 것이 아니다. 혹시 모를 상황을 염려해서 미리 알리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긴장되었던 분위기가 한결 풀어졌다.

그런데 그때,

덜컹!

객잔 문이 세차게 열리고 장한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대주!”

진국충이 고개를 돌려서 그 장한을 바라보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표정이 무척 다급해 보였다.

“무슨 일이냐?”

“평문에서 지원 요청이 왔습니다!”

진국충은 이를 악물고 눈을 치켜떴다.

평문은 화음에서 백 리 정도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황궁의 남하와 사도맹의 동진을 차단하기 위해 대정맹의 무사 칠백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지원을 요청했다는 건 싸움이 일어났다는 것이고, 불리한 상황이라는 뜻.

“상황은?”

“남하하는 마황궁 무사들의 숫자를 오백 정도로 예상했는데, 야율호가 오백 무사를 이끌고 우회해서 합류하는 바람에 적의 숫자가 일천이 넘는다고 합니다.”

“젠장!”

마황궁 쪽의 무사 수가 일천이 넘는 상황이면 평문의 대정맹 무사들이 위험했다.

“그 바람에 일단 삼십 리 정도 후퇴해서 방어선을 치고 적을 막을 거라 합니다.”

“가자! 대원들에게 출동준비 하라고 해! 화산에도 연락하고!”

진국충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명령을 내리고는, 혁무천 쪽을 바라보며 포권을 취했다.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뵙겠소이다.”

그러고는 홱 몸을 돌려서 곧장 객잔을 나섰다.

혁무천은 그들이 모두 나가자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은설이 슬쩍 곁눈질로 혁무천을 바라보고는, 젓가락으로 요리를 콕콕 찍었다.

대정맹을 도와주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원장이 강호의 싸움에 뛰어드는 순간, 무원장과 구룡상단이 그동안 지켜온 중립적인 위치가 한쪽으로 기운다.

혁무천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컸다.

만마성과 철혈마련, 귀천교, 사도맹 등 마도 전체가 무원장을 적으로 돌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쫌만 도와주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은설이 아쉬워하고 있을 때였다. 동대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예 다지는군. 고기가 그렇게 질겨? 나는 괜찮은데.”

은설은 그 말에 콕콕 찍던 젓가락질을 멈췄다.

돼지고기 한 점이 납작하게 다져져 있었다.

“일단 식사부터 해.”

혁무천이 고기와 야채를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

“먹어야 힘이 나서 싸우지.”

“오빠…….”

우물우물…….

“야율호, 그 자식만 안 왔어도 모른 척했을 건데.”

“피이.”

“우린 은설, 너와 무원장을 모욕한 그 녀석만 때려잡는다. 나머지는 대정맹이 알아서 하라고 해.”

은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야율호는 대정맹과 싸우는 마황궁 무리의 수장으로 나섰다고 했다.

수장을 잡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녀도 모르지 않았다.

야율호를 잡는 와중에 지키려는 자와 잡으려는 자가 대판 싸우게 될 것이 뻔하다.

오빠는 명분을 갖고 끼어들겠다는 뜻이다.

“알았어요. 근데 정말 야율호 때문에 나서려는 거예요?”

“내가 그 자식 아니면 왜 마황궁과 싸워?”

“그래야 대정맹에 빚을 지울 수 있으니까.”

“……꼬맹이가 여시 다 됐네.”

은설이 정확히 봤다.

하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어차피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자주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확고하게 마련해 놓아야 해.’

요리 한 점을 입에 넣은 혁무천의 눈빛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동대안이 또 한마디 했다.

“요리가 그렇게 맛없어? 왜 그렇게 심각하게 씹어?”

“…….”

 

***

 

평문에서 서남쪽으로 삼십 리 내려가면 깎아지른 황토절벽 사이에 폭이 좁은 협곡이 뱀처럼 구불구불 형성되어 있었다.

대정맹 무사들은 그 협곡 안으로 들어가서 마황궁 무사들과 맞섰다.

머릿수도 머릿수지만 고수의 숫자에서도 밀렸다.

칠백여 명이었던 무사는 이제 사백 명도 남지 않은 상태. 사기가 오른 마황궁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지원대가 곧 올 것이다! 힘을 내서 놈들을 막아라!”

대정맹 평문지부장 관호염은 악을 쓰듯 소리치며 무사들을 독려했다.

두 시진에 걸친 싸움으로 무사 대부분이 지친 상태였다.

마도를 물리치고 정의를 세운다는 사명감 하나로 혼신의 힘을 다 끌어낸 터였다.

그나마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서 막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조차 짐작하기 어려웠다.

평문을 적에게 내주고 후퇴해야 하나, 아니면 여기서 목숨을 던져 결사항전을 해야 하나.

갈등이 일었다.

누군들 죽고 싶을까.

살아서 자식과 마누라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산다 한들 정파가 무너지면 마도는 끈질기게 자신과 가족을 죽이려 할 것이다.

정파가 이기면 ‘배신자’, ‘비겁한 놈’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고.

그런 소리를 듣느니 남자답게 멋지게 살다 죽는 게 나았다.

가슴이 울컥 달아오른 그는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소리쳤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가슴에 정의를 품고, 마도 놈들의 가슴에 검을 꽂아라!”

와아아아!

“죽여라!”

“마도 놈들의 목을 쳐라!”

“물러서지 마라! 곧 지원대가 올 것이다!”

대정맹 무사들은 꺼져가는 횃불에 다시 불을 일으켰다.

 

마황궁 지휘자들은 짜증이 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도 앞에 벌벌 기었던 놈들 아닌가.

정체도 숨긴 채 숨어 다니던 겁쟁이들이 어디서 감히!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놈들에게 마황궁의 위엄을 보여줘라!”

마황궁 간부들도 악다구니를 쓰며 몰아붙였다.

 

시간이 가면서 대정맹의 저항이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인원이 삼백 명 이하로 줄어들자 좁은 협곡에도 하나둘 틈이 생겼다.

마황궁 고수들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대정맹 무사들이 쓰러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누런 황토 협곡을 물들인 붉은 피가 점점 더 넓게 퍼져갔다.

“으하하하! 이 죽일 놈들! 어디 더 버텨봐라!”

승리가 확실해 보이자, 야율호가 광소를 터트렸다.

대규모 싸움에 처음으로 나선 그였다.

이번 싸움만 승리로 이끌면, 후계자로서 형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서걱!

칼을 휘둘러서 대정맹 무사의 목을 친 그는 얼굴로 튄 피를 손으로 닦으며 살기 띤 미소를 지었다.

“정파의 쓰레기 놈들이 어디서 감히 날뛴단 말이냐!”

그때, 대정맹 무사들 뒤쪽에서 함성이 들렸다.

“마황궁 놈들을 쳐라!”

와아아아아!

“지원대가 왔다! 힘을 내라!”

함성이 커지는 것만큼이나 야율호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저 개자식들이!”

대정맹 무사들을 공격하던 마황궁 무사들이 주춤거리는 게 보였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다니!

분노가 치밀었다.

‘제기랄! 일단 물러서야 하나?’

그는 밀어붙이는 마황궁 무사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마침, 곁에 있던 간부 하나가 그에게 소리쳤다.

“놈들의 인원이 얼마 안 됩니다, 이공자! 이대로 밀어붙이지요!”

그제야 야율호도 적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간부의 말이 맞았다. 대정맹의 지원대 인원이 생각보다 적었다

기껏해야 이삼백 명?

그 정도라면 아직도 자신들의 숫자가 많았다.

“지옥을 구경하고 싶어 달려온 놈들이다! 목을 쳐서 지옥으로 보내줘라!”

악을 쓰던 그의 눈에 허공을 날아오는 자들이 보였다.

십여 명 정도?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디서 본 듯한 자들이 그 속에 끼어 있었다.

“저, 저놈들은……!”

야율호의 눈이 점점 커졌다.

목소리도 들렸다.

“오랜만이군!”

그놈이다. 무천!

“네, 네놈이 어떻게 여길……!”

놀랄 틈도 없었다.

허공을 걷듯이 날아든 자들이 마황궁 무사들 속으로 내려섰다.

 

장대산과 철호가 언제나처럼 선두에 나서서 마황궁 무사들을 파도처럼 휩쓸었다.

부아아앙!

터덩!

장대산의 거대한 장봉이 바람을 가로로 가를 때마다 마황궁 무사 두세 명이 몽둥이에 맞은 돌조각처럼 날아갔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장봉을 휘두르는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장이었다.

간혹 마황궁 무사의 칼이 장대산을 때렸지만 옷자락만 갈랐을 뿐 살갗에는 옅은 흔적만 남길 뿐이었다.

철호는 쌍도끼를 휘두르며 마황궁 무사들 사이를 누볐다.

그의 도끼질은 이전보다 빠르고, 강했다. 거기다 부드러움까지 더해져서 움직임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좌우로 오가는 잠깐 사이 서너 명이 그의 도끼질에 살이 갈라지고 뼈가 쪼개지며 무너졌다.

한발 늦게 싸움에 나선 동대안은 그림자조차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섬혼을 내질렀다.

쾌(快)에 변결(變訣)을 완숙하게 접목시킨 그는 이제 초절정경지에 이른 고수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이정과 전교도 괴팍한 자신의 성격을 마음껏 쏟아냈다.

탕초양과 귀원도 그동안 쌓은 자신들의 실력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마황궁 무리 중 그들을 일대일로 막을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았다.

비천의 고수들도 마황궁 무리 속으로 내려섰다.

비천오검과 은화삼절은 냉혹하게 느껴질 정도로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았다.

그들이 일 검, 일 수를 떨칠 때마다 마황궁 무사들이 튕겨지듯 날아가고,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철명군과 종리안이 산책을 하듯 휘적거리며 가볍게 손을 떨치면 서너 명씩 훌훌 날아갔다.

절정경지에 올랐다는 마황궁 간부들이 그들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해본 채, 피로 물든 황토 바닥에 처박혔다.

그야말로 무인지경이었다. 그들이 지나간 곳은 거대한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듯했다.

순식간에 백 수십 명이 쓰러지자, 마황궁 무사들이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제는 수적인 유리함조차 사라진 것이다.

 

그 사이 혁무천이 마황궁 무사들의 후위로 처져있던 야율호 앞에 도착했다.

“야율호. 마황궁에 조용히 처박혀 있을 것이지,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온 거냐?”

“이 죽일 놈이……!”

“너는 우리를 건드리지 않았어야 했다.”

“내가 언제 너희를 건드렸단 말이냐?”

“벌써 옥가장의 일을 잊었나?”

전날의 일을 떠올린 야율호는 어이가 없었다.

“설마 그것 때문에……?”

“우리 무원장은 원한을 잊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어이없어 하는 야율호를 보며 혁무천이 씩 웃었다.

“사실 나도 그 핑계가 조금 약하다는 생각이 들긴 해. 하지만 말이 되든 안 되든 사실인 건 분명하지.”

무천은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자.

야율호는 혁무천이 말하는 틈을 이용해서 전력을 다해 뒤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이놈을 막아라!”

야율호의 호위무사 세 명이 무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혁무천은 천망검을 뽑으며 좌우로 그었다.

초식도 필요 없었다.

쉬아아악!

쭉 뻗어나간 강기가 호위무사들을 훑으며 지나갔다.

쩌저정!

부러진 도검 조각이 허공으로 튀고,

“크억!”

“켁!”

달려들던 호위무사들은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일초식에 야율호의 호위 셋을 쓰러뜨린 혁무천은 도망간 야율호 쪽을 바라보았다.

은설이 야율호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죽어라, 계집!”

은설을 알아본 야율호는 욕을 퍼부으며 칼을 빠르게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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