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0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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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00화
300화
“이곳에 있는 인원 일부를 다른 장원으로 옮기고, 그분들을 이곳에서 지내게 하지요.”
“흠,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강력한 힘이 분산되어 따로 존재하면 관리가 힘들어진다.
그들이 딴 마음이라도 먹으면 분란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의견이 달라서 다투더라도 안에서 다투고 안에서 해결하는 게 최선이다.
혁무천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현은 꼭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을 무원장에 두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혁무천이 아니면 다스릴 수 없는 사람들. 떨어져 있는 거리가 멀수록 자신만 피곤해질 것이 뻔했다.
“그리고 명칭에 대해서도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명칭?”
“현재 저희 무원장은 다섯 개의 장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장원의 이름이 제각각이다 보니 결집력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습니다.”
“어떻게 할 생각인데?”
“전체를 통칭하는 명칭은 무원장으로 하고, 이곳은 중원장, 그리고 동서남북은 동원장, 서원장, 남원장, 북원장으로 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거 괜찮군. 따로 외울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해.”
혁무천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이현의 제안을 승낙했다.
어차피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는 화제를 돌렸다.
“오면서 들으니 섬서성이 한바탕 뒤집어졌다고 하더군.”
“예, 장주. 남궁 대협과 이 대협이 대정맹을 세워서 정파를 규합한 후 마황궁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섬서에서는 추위가 꺾인 대신 지독한 혈풍이 불어댔다.
먼저 막강 무력을 자랑하는 마황궁 장안분타가 일천 무사의 시신을 남긴 채 무너졌다.
뒤이어 동쪽의 위남, 서쪽의 함양, 북쪽의 동천에 있는 마황궁 분타들이 차례대로 피에 잠겼다.
남궁무룡과 이사명이 정은맹에서 나온 무사들을 규합해서 만든 대정맹(大正盟)이 주축이 되어 이룬 성과였다.
대정맹에는 과거 섬서성에서 성세를 이루었던 화산파와 종남파의 제자들도 합류했다.
산속 깊은 곳에서 와신상담하며 무공을 익히던 제자들. 사문을 숨긴 채 뿔뿔이 흩어져 있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든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비록 구문팔가에는 들지 못했지만 무력만큼은 그에 뒤지지 않았던 태백검파와 영호세가의 후예들도 대정맹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마도천하에 탄식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정파의 은거고수들도 세상으로 나왔다.
개중에는 오절 중 창절(槍絶) 양충화와 기절(奇絶) 여만도도 있었다.
반면, 마황궁은 사대분타가 무너지자 발칵 뒤집혔다.
궁주 야율대원은 총단의 무사 중 절반이 넘는 이천 무사를 출진시켰다.
“정파 놈들의 목을 쳐서 창 끝에 매달아 십 리 길에 세워 놓아라!”
야율대원의 분노에 찬 일성이 섬서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이사명이 군사봉을 잡은 대정맹의 움직임은 그들보다 한 수 앞서 있었다.
대정맹에 합류한 정도의 문파들도 지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쳤다.
남양의 상황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사이 섬서의 피바람은 점점 태풍이 되어갔다.
“현재 들어온 정보대로라면 장안에서 화산에 이르는 지역은 정파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현의 설명이 끝나자 혁무천이 물었다.
“혈왕곡은?”
“정파의 저항에 밀려서 진령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주인 혈왕이 그리 되고 지천주마저 떠나왔으니 그들의 전력은 급격하게 약화되었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이현이 말을 이었다.
“문제는 사도맹이 끼어들 때입니다. 풍마문으로부터 마황궁에서 사도맹에 지원을 요청한 것 같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사공곽에게 사람을 보내서 마황궁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해.”
“사도맹주가 말을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할 수 없지. 망하든 말든 지켜보는 수밖에.”
이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공곽과 사공미미, 사공진이 무천과 가까운 사이라는 걸 모르진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마도보다 정파가 싸움에서 이기길 바랐다.
때문에 사도맹이 지원대를 보낼 경우 대정맹이 밀릴까 봐 걱정했다.
그런데 무천은 다르게 생각하는 듯했다.
“마황궁과 사도맹이 힘을 합해도 대정맹에 밀릴 거라 보십니까?”
“정혈단이 너무 조용해. 만약 내가 사마신이라면 사도맹의 뒤를 노릴 거다.”
“아…….”
정혈단주 사마신과 이사명은 숙질 관계다.
피가 섞인 관계는 아니지만 오랜 세월 함께 지냈다.
아무리 사마신이 피에 미쳤다고 해도 그 관계가 쉽게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사마신은 이미 섬서의 혈풍에 관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충분히 가능성이 큰 추측이다.
이현은 그래서 고민이었다. 그렇다면 그냥 놔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무천도 이현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이현이 천기회에 든 것도 정파가 마도를 물리치길 바랐기 때문이었지 않은가.
무천은 속에 눌러놓았던 생각 하나를 말해주기로 했다.
“사도맹이 끼어들면 대정맹이 이긴다 해도 그 다음을 기약하기 힘들 거다. 사마신이 원하는 게 내 생각과 같다면.”
“무슨 말씀이신지……?”
“사마신은 마도를 물리치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최대한 많은 무사들이 죽길 바라는 거지.”
이현이 그 말에 눈을 치켜떴다.
“그가 원하는 건 오직 ‘피’밖에 없다는 겁니까?”
“피는 그가 정한 목표를 쟁취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하면…….”
“무림의 피바람을 멈추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림을 없애는 것이지.”
“맙소사…….”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합니까?”
이현과 백리양이 경악한 표정으로 거의 동시에 말했다.
무천이 그에 대해 답했다.
“원래 미친놈일수록 위험한 법이다. 그리고 사마신은 제대로 미쳤지.”
혈천여록에 있는 지옥의 마공 때문에.
사실 자신이 그 마공을 구상하고 만든 이유도, 목표도…… 바로 그것이었다.
무림을 없애버리리라!
무공을 익힌 자들을 모두 죽여서라도!
사마신은 혈천여록에 있는 그 내용도 봤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 그대로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사마신과 정혈단을 제거해야만 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사도맹은 내가 정리할 거다. 그러니 일단 사공곽에게 연락부터 해.”
***
“끝까지 말썽이군.”
신도명산은 섬서의 상황이 못마땅했다.
정확히는 대정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마성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며 정사대전의 기선을 제압했다. 이 기세를 몰아서 본격적으로 정도문파들을 규합하려 했다.
대정맹만 아니라면 어려울 것 없는 일이었다. 정도문파들의 호응도 좋았다.
그런데 대정맹으로 인해 묘한 기류가 흘렀다.
정은맹에 합류하기로 한 정도문파들이 결정을 보류한 것이다.
문제는 대정맹을 적대시할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주금화는 별 걱정이 없는 표정이었다.
“뭘 그리 고민하나.”
“어찌 고민이 되지 않겠소. 대정맹 놈들 때문에 오던 자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지 않소?”
“저들도 마황궁과 사도맹을 상대하다 보면 많은 무사들을 희생해야 할 게야. 그때 가서 하나하나 정리하게. 어차피 저들도 우리를 공격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듣고 보니 그럴 듯한 생각이다.
대정맹이 마도와 싸우는 걸 구경하며 기다리다가, 상황을 봐서 알맹이만 빼먹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잘하면 섬서를 손도 안 대고 거저먹을 수도 있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소이다. 좀 더 상황을 지켜보지요.”
“솔직히 나는 대정맹보다 무원장이 더 신경 쓰이네.”
주금화의 말에 신도명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원장. 무천.
그 이름만 들어도 이가 갈렸다.
‘죽일 놈의 새끼!’
당장 찾아가서 목을 쳐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면 만마성의 표적이 될 수 있었다.
귀천교와 철혈마련도 경계해야 했다.
더구나 무원장 자체가 만만치 않은 무력을 갖추었고, 무천 또한 자신에게 뒤지지 않는 고수였다.
이가 갈리더라도 지금은 참는 수밖에.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 법이다.
“그놈의 목은 반드시 내 손으로 칠 거요!”
주금화는 표정이 순간적으로 몇 번이나 변하는 신도명산을 보며 입꼬리를 틀었다.
“나도 그러길 바라네. 그런데 귀천교와 철혈마련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무래도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는 것 같은데.”
신도명산은 짐짓 어깨에 힘을 주고 냉랭히 말했다.
“안 그래도 날씨가 풀리고 있으니 그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줄 생각이오.”
***
혁무천이 무원장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비천의 사람들과 천수화가 도착했다.
모두 백오십여 명.
이현은 별원 두 개를 통째로 비우고 시비까지 배치해서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별원은 담장으로 가로막혀 있어서 독자적인 생활에 불편함이 없었다.
철군명과 종리안도 별원을 둘러보고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혁무천은 비천 사람들을 쉬게 하고는, 철명군과 종리안, 천수화와 함께 차를 마셨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생활비도 부족하지 않게 드릴 것이니 필요한데 쓰십시오.”
“고맙군.”
“별말씀을.”
혁무천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천수화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천수화의 얼굴에 긁힌 자국이 하나 보였다.
전에만 해도 없던 자국이었다.
머리카락으로 가려져서 조금 전까지는 보지 못했는데,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보인 것이다.
“너, 얼굴은 왜 긁혔어?”
“어? 아, 아무 것도 아니야.”
천수화가 얼버무리자, 은설도 그제야 긁힌 자국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톱으로 긁힌 것 같은데요?”
“에이,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
천수화가 머리카락으로 다시 긁힌 자국을 가렸다.
혁무천이 뭔가를 짐작하고 이마를 찌푸렸다.
“천상화가 그랬지?”
“…….”
“바보같이 왜 당하기만 해?”
“내가 뭘…….”
“어릴 때부터 많이 당했을 거다. 천상화가 가만두지 않았을 테니까.”
“…….”
‘족집게네. 하여간 별 걸 다 알아.’
“이곳에는 그 여우가 없으니까 편하게 지내.”
가슴이 뭉클해진 천수화는 슬쩍 혁무천의 표정을 살피고는 사실 하나를 말해주었다.
“사실…… 나도 그렇지만, 언니도 긁힌 자국이 두 개나 났어.”
“……뭐?”
“그날 돌아가서 한바탕 했거든.”
혁무천은 두 여자가 머리를 붙잡고 싸우는 광경을 상상하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리가 났겠군.”
“아버지한테 혼나긴 했는데…… 그래도 속은 시원했어.”
천수화가 그 말을 하고는 배시시 웃었다.
혁무천은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좌우간 여기서는 조용히 지내, 멋대로 일 저지르지 말고. 엉뚱한 생각도 하지 말고.”
***
섬서에서 불어대는 혈풍은 멈출 줄 몰랐다.
이삼 일 간격으로 전해지는 소식에서도 피 냄새가 물씬 풍겼다.
혁무천은 소식만 전해 들으며 무원장에서 조용히 지냈다.
그렇게 겨울이 다 지나갈 때쯤, 풍마문의 마호걸이 사공곽의 서신을 가져왔다.
서신에는 혁무천이 사도맹에 보낸 의견에 대한 답변이 적혀 있었다.
서신을 다 읽은 혁무천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사도맹은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인 것 같다. 맹주인 사공헌이 사공곽의 말을 받아들여서 사도총회를 열었는데, 다른 파벌의 주인들이 반대했다는군.”
그의 옆에는 은설이, 앞에는 목량과 이현, 그리고 마호걸이 앉아 있었다.
이현이 먼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공헌이 맹주이긴 하지만, 사도맹은 그가 좌지우지할 수는 없는 구조입니다. 아마도 다른 파벌에서 반대했나 보군요.”
사도맹은 산서의 마도사파 다섯 곳이 힘을 합쳐 결성된 곳이었다.
그 중 사공가의 진마문이 가장 강력해서 맹주의 자리에 있지만, 태원의 흑룡방과 면산의 귀곡이 항상 그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이미 사도맹의 무사들이 섬서에 들어서서 싸움에 끼어들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