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16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16화
316화
운기를 마치고 눈을 뜬 우문척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죽일 놈들!’
정은맹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서 정혈단마저 나타났다.
놈들은 정은맹과 철혈마련을 가리지 않고 살수를 펼쳤다.
그 바람에, 겨우 살아남은 철혈마령대원 삼십 명 중에 스무 명을 또 잃었다.
자신도 무당의 검을 쓰는 놈과의 대결에서 양패구상을 당했고.
특히 마지막에 나타난 놈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했다.
‘그놈이 정혈단주 사마신일 거다.’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더 강했다.
철혈대원들의 몸을 던진 방어가 아니었다면, 순간적으로 천외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우문척은 당시의 광경이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후드득 떨었다.
“소련주께 아룁니다.”
밖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문척은 숨을 몰아쉬고 물었다.
“무슨 일이냐?”
“련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젠장!
우문척은 짜증이 났다.
보나마나 부친에게 가면 한소리 들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나름대로 변명거리를 준비한 그는 가부좌를 풀고 침상에서 내려왔다.
아직도 가슴이 먹먹했다. 아무래도 며칠은 운공을 하며 내상을 다스려야 할 듯했다.
‘역시 정혈단은 무천에게 맡기는 게 낫겠어.’
둘 중 누가 패하든 자신에게는 이득이었다.
***
툭!
뭔가가 얼굴을 때렸다.
흠칫하며 정신을 차린 동대안은 눈을 떴다.
잠깐 정신을 잃었었나 보다.
어느새 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리고 몇 사람이 앞에 앉아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때린 것은 그들 중 한 사람이 뻗은 검집이었다.
“이제 정신을 차렸나 보군.”
동대안은 입을 꾹 다문 채, 말을 한 자를 바라보았다. 새벽 날씨가 싸늘하다 못해 추운데도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제기랄…….’
그였다.
정혈단주 사마신.
“뇌전쾌검. 맞나?”
사마신이 동대안을 보며 물었다.
꼬챙이처럼 가느다란 검. 쥐똥처럼 작은 눈. 그리고 정혈단원의 입에 검을 쑤셔놓을 정도로 빠른 쾌검.
강호에 도는 소문과 일치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뇌전쾌검이 어떤 놈인데요?”
동대안은 일단 부정했다.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라는 듯.
자신이 무원장 사람이라는 걸 알면 죽일지도 몰랐다.
사마신도 더 묻지 않았다.
“그래? 아니면 살려둘 필요가 없겠군.”
뭐라고?
동대안은 재빨리 말을 수정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는 말은 들었는데, 난 그 이름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말이오.”
그러고는 헤, 웃었다.
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 않던가.
웃으면 살심을 거둘지도 몰랐다.
다행히 사마신은 그의 정성을 알아주었다.
“맞나보군.”
“그렇다니까요.”
“무원장주 무천과는 어떤 사이지?”
“형제 같은 사이입죠. 무천은 내 말이라면 꼼짝도 못하지요. 하, 하, 하.”
“그래? 잘됐군.
“뭐가…….”
도대체 뭐가 잘된 건데, 이놈아?
동대안은 그렇게 묻고 싶은 걸 꾹 참고 사마신의 입을 바라보았다.
사마신이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오중, 비양에 가서 무천에게 전해라. 섬전쾌검을 살리고 싶으면 혼자 흑명곡으로 찾아오라고 해. 허튼 수작 부리면 섬전쾌검의 사지를 잘라서 짐승 밥으로 던져줄 거라는 말도 전하고.”
석상처럼 무표정하게 서 있던 장한 하나가 포권을 취하며 대답했다.
“예, 천주.”
동대안은 창백해진 얼굴로 사마신을 노려보았다.
사마신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무천이 그대를 정말 아낀다면 혼자 오겠지.”
***
결국 날이 밝아질 때까지 동대안을 찾지 못했다.
혁무천 일행은 작은 마을에 있는 객잔에서 쉬며 대책을 논의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호광이 투덜대자, 은설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추적을 피해서 산속으로 숨은 것 같아요.”
“젠장, 우리 인원으로 저 넓은 산을 다 훑어볼 수도 없고…….”
항상 표정변화가 없던 전교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어쨌든 시신으로 발견되지 않은 걸 보면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네.”
이정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 그리고 살아 있다면 비양으로 찾아오겠지. 아니면 연락이라도 취하든가.”
혁무천은 잠시 생각하고는 결정을 내렸다.
“오전 동안만 더 찾아보고, 못 찾으면 비양으로 돌아가지요.”
오전 동안 인근 마을과 산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동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오시가 넘자 결국 혁무천 일행은 비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비양의 객잔에 들어가자마자 철호가 빠르게 다가와서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대형! 동 형이 있는 곳을 안다는 자가 와 있습니다.”
“그래?”
혁무천은 반색했다.
잡고 있다는 것은 동대안이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어디 있지?”
“저쪽에 앉아 있는 자입니다. 사시에 와서 계속 기다리고 있습니다.”
철호가 구석진 곳을 가리켰다.
그때, 구석진 곳에 앉아 있던 삼십 대 장한이 일어나서 혁무천 쪽으로 다가왔다.
혁무천은 그 장한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장한은 평범한 양민이 아니었다.
평범한 무사도 아니었다.
장한에게는 혁무천만이 느낄 수 있는 기운이 잠재되어 있었다.
“동 형이 있는 곳을 안다고?”
혁무천이 먼저 물었다.
장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무원장주 무천. 맞나?”
“맞아. 내가 무천이다.”
“천주께서 말씀을 전하라 하셨다.”
갑작스런 그의 말에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 친구 뭐래? 천주가 뭐 어쨌다고?”
“진짜 동 형이 있는 곳을 알긴 아는 거야?”
누가 뭐라 하든 장한은 자신이 해야 할 말만 했다.
“섬전쾌검을 살리고 싶으면 무천 혼자 찾아오라 하셨다. 만약 엉뚱한 생각을 하면 섬전쾌검의 사지를 잘라서 짐승의 밥으로 던져줄 거라 하셨다. 그를 찾고 싶으면 나를 따라와라.”
그러고는 몸을 돌려서 객잔을 나서려 했다.
“이봐!”
호광이 휙, 몸을 날려서 장한의 앞을 막아섰다.
장한이 그를 보며 조소를 지었다.
“섬전쾌검의 사지가 짐승의 밥이 되는 걸 원하나 보군.”
혁무천이 일어났다.
“호 형, 물러나시오.”
호광은 장한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는 한쪽으로 비켜섰다.
혁무천이 장한에게 다가갔다.
“정혈단원인가?”
“나는 천주의 말씀을 전할 뿐이다. 그자를 찾고 싶으면 따라와라.”
“좋아, 앞장 서. 사마신이 무슨 꿍꿍이 속인지 나도 궁금하군.”
“오빠, 혼자 가시는 건 위험해요.”
은설이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혁무천은 고개를 저었다.
“혼자 가지 않으면 동 형의 사지를 잘라서 짐승의 밥으로 던져준다고 하잖아.”
“하지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혁무천은 은설을 안심시키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뭐해? 빨리 앞장서지 않고.”
객잔 안의 사람들 모두가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
으드득.
신도명산은 보고를 받고 이를 갈았다.
우문척을 잡으러 간 사백여 명 중 달랑 이십여 명만이 살아서 돌아왔다.
나머지는 철혈마련과 싸우다가 죽고, 정혈단에 의해 도륙을 당했다고 했다.
애써 영입한 하은곡도 돌아오지 못했다.
쾅!
분노를 참지 못한 그는 두 손을 들어서 탁자를 내리쳤다.
“제기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금화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성급했어.”
신도명산이 주금화를 보며 짜증스런 투로 반문했다.
“무슨 말씀이시오?”
“아무래도 정혈단의 농간에 놀아난 것 같네.”
“정혈단의 농간?”
“우문척의 행적에 대한 보고. 뭔가 이상하지 않나? 누군지도 모를 자들이 보내준 정보였다고 들었네만.”
사실이 그랬다.
하지만 우문척을 치는 것이 먼저여서 정보의 진위만 확인했을 뿐, 누구에게 어떻게 얻었는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럼 놈들이 정보를 우리에게 건네주고 함정을 팠단 말씀이오?”
“어쨌든 놈들에게 우리와 철혈마련이 된통 당했지 않은가?”
신도명산은 입술을 씹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주금화의 말대로 정혈단의 계획에 놀아난 듯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이 당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과거의 잘못이 아니라, 정혈단에게 당했다는 것이오. 놈들을 상대할 방법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또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오.”
“그럼 생각해 본 방법이라도 있나?”
“전혀 없는 것은 아니오. 다만, 자칫하면 정파에게 지탄 받을지 몰라서 함부로 쓸 수 없는 것뿐.”
“일단 말해 보게. 그럼 내가 도울 수 있는지 알아보겠네.”
신도명산은 잠시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무이산의 살귀들에 대해서는 왕야께서도 아실 거요.”
“물론 아네만…….”
아는 정도가 아니라, 천하에서 주금화보다 그들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이산 백마곡은 살수집단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일만 따지면 천하제일이었다.
“설마 그들을 끌어들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달콤한 선물을 내밀고 끌어들여서 동귀어진으로 이끌면 되지 않겠소?”
“그렇게만 된다면 나쁠 것도 없지. 그런데 그들이 제의를 받아들일지 모르겠군.”
“그들이 바라는 것을 해준다고 하면, 마다하지는 않을 거요.”
“바라는 것을 해준다? 흐으음…….”
주금화는 신도명산의 말을 듣고 머릿속 생각을 정리했다.
백마곡이 바라는 것은 중원 진출이었다.
그동안은 팔대마세와 마도십문의 견제로 중원에 뿌리를 내릴 수 없었던 만큼, 중원진출을 보장해준다고 하면 손을 내밀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신도명산의 말대로만 된다면, 자신의 꿈도 시기가 훨씬 앞당겨질 수 있을 듯했다.
“정말 자신 있나?”
“어차피 여기서 밀리면 모든 게 끝장이오.”
***
흑명곡은 비양에서 백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혁무천은 그곳이 혹시 정혈단의 본거지가 아닌가 했지만, 막상 도착해서 보니 평범한 계곡에 불과했다.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바위가 검다는 것과 계곡이 무척 구불구불하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마저도 사천의 촉산에 비하면 애들 놀이터일 뿐이었다.
장한의 안내를 받아서 구불구불한 계곡을 다섯 번쯤 굽어지자, 산촌에서나 봄직한 통나무집이 보였다.
모두 합해서 이십여 채쯤.
혁무천이 장한과 함께 다가가자 사람들이 안에서 하나둘 나왔다.
혁무천은 그들을 보고 또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그곳이 비록 총단은 아닐지라도 정혈단의 근거지임은 분명했다.
통나무집에서 나온 사람들에게서 마기가 느껴진 것이다. 지옥혈천마공의 기운이.
장한은 그 중 가장 큰 통나무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통나무집의 문이 열리고 사마신이 나왔다.
그는 혁무천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 유명한 무천을 이제야 보는군.”
하지만 혁무천은 웃을 수가 없었다.
“동 형은?”
“잘 있네.”
“다행이군.”
“나는 약속을 지켜서 그를 풀어줄 생각이네. 그러니 그에게는 다행인 것이 분명하네만, 자네에게까지 다행인지는 모르겠군.”
사마신이 말하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혁무천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답했다.
“내 일은 내 일이고, 일단 동 형부터 풀어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