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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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6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29화
329화
언덕 앞쪽은 지평선이 보이는 대평원이었다.
봄의 기운을 받은 새싹들이 자라나서 연초록색으로 물든 평원은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장관이었다.
북쪽 하늘도 구름이 걷혀서 쪽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저 멀리서 벌어지는 혈전이 옥의 티였다.
수천 무사들이 벌이는 혈전도 광활한 평원에 비하면 그저 손바닥만 한 오물덩어리에 불과했다.
혈전이 벌어지는 곳을 향해 밀려가는 자들도 먹이를 향해 달려가는 개미떼처럼 보일 뿐이었다.
목량이 그곳을 보며 말했다.
“장사진(長蛇陣)과 학익진(鶴翼陣)을 혼용했군요.”
“힘만으로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겠지. 편하게 쉬면서 구경이나 하자고.”
혁무천은 풀이 무성하게 자란 평평한 곳에 앉았다.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를 둘러보며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았다.
***
신도명산은 이천 무사가 마도연합의 선봉대를 공격한 후에야 아차하며 후회했다.
마도의 선봉대는 지금까지 대했던 그 어떤 무력보다 강했다.
숫자는 천 명에 불과했지만, 모두가 철혈마련 최강의 무력단체인 삼대의 무사였다.
더 놀라운 것은 우문척이었다.
우문척이 절대경지에 올라서 팔대마세 주인들과 막상막하의 무공을 지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터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강했다.
그 한 사람에게 절정급 고수는 물론이고, 정예라 할 수 있는 무사들이 백 명 이상 죽어갔다.
심지어 공포에 질린 정은맹 무사들이 그를 공격하지 못하고 피하는 판이었다.
저래서는 사기가 급전직하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무혼단과 검정단이 출전해서 저들을 지원하라!”
신도명산은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천기회 장로였던 무혼단주 조광유와 검정단주 이척이 거의 동시에 대답하고 소리쳤다.
“예! 맹주!”
“무혼단은 출전하라!”
“검정단은 나를 따르라! 마도 놈들을 사냥하러 간다!”
정은맹의 일천 정예가 전장을 향해 튀어나갔다.
신도명산의 명령이 이어졌다.
“연 장로와 곽 장로가 우문척을 맡아주시오!”
무거운 표정으로 전장을 바라보던 장로 연희명과 곽두관이 몸을 날렸다.
신도명산의 고개가 주금화 쪽으로 돌아갔다.
“궁주께서 북쪽을 맡아주시오! 내가 남쪽을 맡겠소이다! 양 날개를 꺾으면 놈들도 크게 힘을 쓰지 못할 거요.”
주금화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신도명산과 주금화는 각자 사천 무사들을 이끌고 좌우로 진영을 펼쳤다.
그때쯤에는 마도연합의 이대와 삼대, 사대와 오대가 남쪽과 북쪽에서 정은맹 무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한편, 멀리서 전장을 바라보던 혁무천과 무원장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학의 날개처럼 펼쳐진 마도연합 쪽 무사 수천 명이 양쪽에서 호선(弧線)을 그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날개를 오므려서 품안에 안으려는 것처럼.
반면 정은맹 무사들은, 다가오는 마도연합 무사들을 향해 화살 같은 형태를 취한 채 달려갔다.
워낙 멀리서 보니 느리긴 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양측의 무사들이 충돌 부위부터 뒤섞이기 시작했다.
천둥처럼 울리는 소리도 더욱 커졌다.
멀리서 바라보는 무원장 무사들은 사람의 모습이 개미처럼 작다보니 처절한 전쟁 상황이 실감나지 않았다.
하지만 전장에서는 숨을 몇 번 쉴 짧은 시간에 수십 수백 명이 죽어가고 있었다.
아마 계속 그렇게 죽어간다면 일 각도 되지 않아서 수천 명이 죽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고수들이 나서고 서로가 경계하면서 죽어가는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대신 전면적인 싸움으로 확대되면서 전장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제 일어날 때가 됐군.”
혁무천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하며 몸을 일으킨 것도 그때였다.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따라 일어났다.
뒤따라서 무원장 오백여 무사들이 일어나자, 갈대밭 위에서 파도가 이는 듯했다.
그들이 전장을 구경한 지 이 각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북쪽 멀리서 일단의 무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전장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북쪽에서 달려오는 무리를 본 자들이 악을 쓰듯 외쳤다.
“대정맹이다!”
“대정맹 놈들이 온다!”
무사들이 놀라 외치는 소리에 마도연합 쪽 간부들이 소리쳤다.
“침착하게 대응하라! 후위는 미리 이야기한 대로 대정맹을 막아라!”
“놈들의 공격에 휘말리지 마라! 방어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
대정맹의 무사는 삼천에 이르렀다.
그들이 후위를 공격하자 마도연합 쪽이 금방이라도 위기에 몰린 듯 보였다.
하지만 마도연합 쪽에서도 미리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전선을 형성한 채 방어에 치중하자 희생되는 숫자가 빠르게 늘지는 않았다.
그렇게 일각쯤 지났을 때였다.
이번에는 정은맹의 뒤쪽에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만마성 놈들이 온다!!!”
“뒤를 막아라!”
“마, 만마존이다!”
“마천문 놈들도 있다!”
뒤쪽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을 듣고 신도명산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대정맹이 나타나서 겨우 승기를 잡는가 싶었는데 만마성이 나타나다니.
그뿐이 아니었다.
마천문 무사들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런, 빌어먹을! 도대체 당하분타에선 뭘하고 있었던 게야?!”
버럭 화를 낸 신도명산이 주금화가 간 쪽을 노려보았다.
당하분타에는 이천 명이 넘는 무사들이 있었다. 주력은 남황궁 무사들이다. 남황궁 최강의 고수들인 남황오로 중 셋이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들이 제대로 막았다면 만마성과 마천문 무사들이 저리 멀쩡하게 달려올 수 없어.’
최소한 절반은 그곳에서 죽거나 다쳤어야 한다. 그럼 나머지도 이토록 빨리 도착하지는 못했을 것 아닌가.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신이 주금화를 너무 믿은 것 아닐까?
하지만 패하면 자신도 손해일 텐데, 왜?
잠시 갈등을 겪는 동안 만마성과 마천문 무사들이 지척까지 달려왔다.
대충 봐도 이천 명은 넘을 듯했다.
“후위 쪽은 만마성과 마천문 놈들을 막아라!”
상황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대정맹의 출현으로 우세를 보이던 전세가 빠르게 뒤집어졌다.
만마성과 마천문이 후위를 공격하자, 신도명산이 이끄는 정은맹 주력이 앞뒤에서 공격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은맹 무사들은 방어에 치중하면서 한쪽으로 밀려갔다.
“신도명산! 나와 다시 한 번 붙어보자!”
천둥 같은 천양묵의 목소리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신도명산도 이를 으드득, 갈고는 천양묵 쪽을 향해 소리쳤다.
“오냐, 천양묵! 오늘은 반드시 네놈의 심장을 두 쪽으로 갈라주마!”
그러고는 땅을 박차고 천양묵 쪽으로 몸을 날렸다.
바로 그 시간. 또 하나의 변수가 등장했다.
“나타났네!”
눈 좋은 동대안이 혁무천을 보며 말했다.
일어나서 상황을 지켜보던 혁무천이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쪽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숫자는 대략 칠팔백 명. 전쟁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들의 정체였다.
칠팔백 명이 물 흐르듯 내달리며 마도연합 남쪽 무리의 후위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작정을 한 듯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마도 연합의 후위를 공격했다.
“정혈단 놈들이 분명해!”
동대안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는 아직도 그때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자신보다 눈 좋은 사람 있으면 나오라며 고집을 피워서 따라왔다.
자신의 배에 구멍을 낸 놈들을 가만둘 수 없었다. 알고 보면 자신도 뒤끝이 무척 질긴 사람이었다.
“개새끼들! 싸움 더럽게 하는군.”
혁무천이 욕하는 그를 슬쩍 스쳐보고는 발걸음을 떼었다.
“갑시다.”
정혈단원들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시신만 남았다.
귀천교와 사도맹 무사들은 공포감마저 느끼며 전력을 다해 대항했다.
“놈들을 막아!”
“저, 정혈단이다!”
“몇 놈 안 된다! 전력을 다해서 막아라!”
정혈단원들은 철저히 살수를 펼치며 상대를 쓰러뜨렸다.
부상을 당해서 버둥거리는 자에게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도검을 휘둘렀다.
사지를 자르고, 목을 치고, 심장을 갈라서 철저하게 죽였다.
정혈단이 왜 공포의 대상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이 악마 같은 놈들!”
오죽하면 마도 무사들이 그들을 악이라 부르며 소리쳤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중앙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달려드는 자들을 격살하고 있는 자였다.
사마신.
그는 입가에 미소마저 띠고 있었다.
은은하게 붉은 빛이 도는 눈빛은 마주보는 자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크하하하하! 이제 곧 정혈의 세상이 도래할 것이니라!”
콰광!
퍼벅!
광소를 터트린 그가 손을 뻗을 때마다 달려들던 자들 두세 명이 피를 뿌리며 훌훌 날아갔다.
단순히 내상을 입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장력에 맞은 자들은 머리가 터지고, 배가 터져 나갔다.
삼십여 명이 그렇게 죽어가자 누구도 그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사마신은 피로 젖은 대지를 제왕처럼 걸었다.
그 사이 정혈단의 공격에 죽은 자들만 일천여 명에 이르렀다.
반면 정혈단원들은 처음과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은맹 무사들은 나타난 자들이 정혈단원이란 것을 알고 눈치를 봤다.
지금까지 정혈단에 당한 정은맹 무사만 해도 수백 명이나 되었다.
오늘 나타나서 마도의 뒤를 치고는 있지만 아군이라 할 수는 없었다.
“정혈단은 신경 쓰지 말고 마도 놈들을 쳐라!”
정은맹 쪽에서 적상천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그로서는 위기 때 나타난 정혈단이 고맙기만 했다.
그들에게 죽은 자는 죽은 자고, 지금은 자신들을 위기에서 구해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라는 것을 오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정혈단원들은 앞에 있는 자들은 누구든 죽였다.
마도의 무사도, 정은맹의 무사도.
“저, 저 미친놈들! 물러서!”
눈을 치켜뜬 적상천이 악을 썼다.
정은맹 무사들이 물러서자 마도연합의 무사들만이 남았다.
정혈단원들은 그들을 향해 살수를 펼쳤다.
그렇게 정혈단의 공포는 일각 정도 이어졌다.
죽어간 사람만 이천 명에 이르렀다.
만마성과 마천문이 합류하면서 점했던 마도의 우세가 빠르게 희석되었다.
“사마신!!!”
노성과 함께 악전웅이 몸을 날리며 사마신을 공격했다.
사마신은 악전웅을 향해 몸을 돌리며 검을 뽑았다.
느릿하게 뽑혀 나온 검이 악전웅에게로 향했다.
악전웅도 피하지 않고 전 공력을 끌어올려서 칼을 휘둘렀다.
일격필살!
작금의 상황을 풀어내려면 자신이 부상을 당해도 정혈단주인 사마신을 죽여야만 한다.
츠츠츠츠츠!
귀왕도마라는 그의 별호답게 현란한 그의 도법에서는 귀기마저 느껴졌다.
사마신은 날아드는 악전웅의 칼을 보며 하얗게 웃었다.
순간, 악전웅의 강기가 서린 도세가 사마신을 뒤덮었다.
‘놈! 죽어라!’
악전웅은 득의의 조소를 지으며 사마신의 목을 후려쳤다.
그때 눈앞으로 붉은 기운이 쭉 뻗어왔다.
가공할 기운에 이를 악문 악전웅은 피하지 않고 마저 칼을 휘둘렀다.
푹!
숨이 턱 막힌 악전웅은 눈을 부릅떴다.
놀랍게도 사마신이 목으로 날아든 자신의 칼을 왼손으로 잡고 있었다. 그리고 사마신의 검은 자신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은 상태였다.
“이, 이런…….”
쉬아악.
사마신이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검을 옆으로 그었다.
심장을 뚫은 검이 갈비뼈를 모조리 자르며 옆으로 빠져나왔다.
몸통이 갈라지며 피가 쏟아졌다.
악전웅은 눈을 뒤집어 까며 기괴하게 꺼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