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27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27화
327화
능우를 빤히 바라보던 혁무천의 입술 끝이 비틀어졌다.
“역시 그 인간이군.”
“후우, 아들의 복수를 하려고 살수를 고용했나 봐요.”
은설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디서 용케 백살귀혼의 후손을 찾은 모양이야.”
“백살귀혼요?”
“어, 백 년 전에 천하제일살수라는 이름을 얻은 자지. 무공은 조금 떨어져도 사람 죽이는 기술만큼은 최고라고 들었어.”
혁무천을 죽이러 왔다가 몇 대 맞고 기절했는데, 정신이 들자 자결하려고 했었다.
혁무천은 그의 자결을 막고 수하로 만들었었다.
“살고 싶으면 따라와. 죽고 싶으면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든, 아니면 바위에 머리를 처박든 마음대로 하고.”
혁무천은 그 말만 던지고 몸을 돌렸다.
“설아야,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저 사람은……?”
“왜? 도망칠까 봐? 괜찮아. 지금은 일반인만도 못해. 정 걱정되면 다리라도 하나 부러뜨릴까?”
“아니에요. 저 사람도 결국 신도명산이 시켜서 온 것뿐이잖아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여신은 얼굴만 아름다운 게 아니었다. 마음도 여신이었다.
능우는 난생 처음으로 얼굴 예쁜 여자에게 감격했다.
“그, 그냥 따라가겠소.”
방 안으로 들어간 혁무천은 능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 능산과 많이 닮았군.’
백 년이 넘는 세월. 오대조라고 했다.
그런데 얼굴이 판박이였다.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
“능우라고 했지?”
끄덕끄덕.
“신도명산이 나에 대한 살해임무를 한 사람에게 맡겼을 리는 없고…… 내 생각으로는 일행이 있을 것 같은데.”
없다.
‘제길!’
능우는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원래 백마곡주인 부친은 세 명을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이 고집을 피웠다.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명색이 백마곡 서열 삼 위의 살수가 다른 사람과 함께 살행에 나선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자존심이 있지!
게다가 실제 살수 능력은 백마곡에서 자신이 가장 뛰어났다.
부친은 곡주니까 일 위, 노장로는 나이가 많아서 이 위일 뿐.
목표물이 이런 괴물 같은 놈인 줄 누가 알았다면 혼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설마 혼자 나를 죽이러 온 건 아니겠지?”
“혼자…… 왔소.”
혁무천은 묘한 표정을 지은 채 능우를 바라보았다.
‘그 고집도 똑같군.’
그렇다면 방법이 있었다. 능산을 닮은 고집불통 후손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이.
“뭐 상관없어. 당신은 오늘 부로 죽었으니까.”
“…….”
“살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잡힌 순간 죽은 거야. 안 그래?”
능우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 말은 백마곡의 백 년 넘는 역사에서도 변하지 않은 절대적 명제인 것이다.
“그리고 죽은 순간 자신의 몸도 아닌 거지. 그러니 이제부터 너는…… 내 거다.”
“…….”
“일 각을 줄 테니, 싫으면 죽어.”
능우는 찢어진 입술을 깨물고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자존심이 상한 것만으로도 죽고 싶은데, 모욕까지 해?
죽이지 못한 게 한으로 남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아마 내 옆에 있다 보면 살수로 사는 것보다 재미있을 거야. 세상을 뒤집어볼 생각이거든.”
능우의 분노에 찬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재미있을 거라고?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오직 사람 죽이는 것만 재미 삼아서 살아왔다.
할 일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죽일지, 어떻게 죽이는 것이 더 재미있을지, 나름대로 연구도 해봤다.
인생 별 거 있나? 재미있으면 됐지.
그런데 살수로 사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 거라고?
정말일까?
“아! 미리 말하는데, 너는 죽은 몸이니, 너의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묻지 않을 거다. 약속하지.”
능우의 흔들린 눈빛이 반짝 빛을 발했다.
“그럼 일 각 동안 잘 생각해 봐.”
혁무천은 그 말만 남기고 돌아서서 방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은설이 측은해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 당신을 위해서도 그게 좋을 거예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았는데 사람만 죽이면서 살 수는 없잖아요?”
능우는 이상하게 가슴이 아려왔다.
절에 한 번도 가보진 않았지만, 보살의 얼굴이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었다.
“새, 생각해 보겠소.”
혁무천은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섰다.
자결해야 할 자가 생각해본다고 했으면 이미 결정이 났다고 봐야 했다.
‘괜찮은 손을 하나 얻었군. 신도명산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일 각 후.
능우는 혁무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신 혁무천 외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겠다고 했다.
혁무천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능우에게 첫 번째 임무를 맡겼다.
“돌아가서 내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
그런 명령을 내릴 줄은 생각지 못한 듯 능우의 이마에 주름이 파였다.
“과거는 묻지 않는다고…….”
“그래서 안 물어봤잖아.”
“…….”
***
다음 날 밤.
마도연합이 주둔하고 있는 군막에서 세 사람이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백마곡의 살수에게 살해당했다.
그런데 네 번째 살수가 들어간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감히!”
벌떡 우문척은 일갈을 내지르며 아무것도 없는 군막의 벽을 향해서 일장을 내질렀다.
팡!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던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더니, 희미한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림자는 이를 악다문 채 몸을 날렸다.
“흥! 도망가려고?”
우문척이 코웃음 치고 몸을 날리면서 쌍장을 내밀었다.
이 장 공간을 두고 가공할 위력의 철혈마장이 발출되었다.
도주하려던 그림자는 방향을 급하게 틀어서 피하려 했지만, 우문척의 격공장이 먼저 그를 뒤덮었다.
콰광!
군막의 천막이 터져 나가고, 은형술이 파훼된 그림자가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며 바닥을 굴렀다.
삼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자였다.
몸에 달라붙은 회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암살이 실패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우문척이 홱 몸을 돌리더니 어둠의 공간을 향해 장력을 쳐냈다.
쾅!
다시 굉음이 울리고, 한 사람이 훌훌 이 장이나 날아가서 나뒹굴었다.
삼십 대 중반의 회의인은 그 광경을 보고 눈을 치켜떴다.
‘우문척이 이 정도의 고수였을 줄이야.’
그동안 입수된 정보를 발판으로 계획을 세웠거늘, 뭔가가 틀어졌다.
백마곡 서열 오 위인 자신과 구 위인 사제가 나선 일이다.
우문척을 죽인 후에는 우문강천까지 죽일 생각이었다.
사대천마라 해도 자신들의 살수를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우문척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배는 더 강했다.
“소련주! 괜찮소이까?!”
“놈들을 잡아라!”
철혈마련의 무사들이 순식간에 일대를 포위했다.
그림자는 자신이 선택해야 할 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제를 쳐다본 그는 망설이지 않고 입안의 독단을 깨물었다.
그의 사제는 한발 먼저 자결을 실행으로 옮긴 듯 몸을 떨고 있었다.
“이놈!”
우문척이 득달같이 달려가서 그림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안색이 이미 새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욕설을 내뱉은 그는 즉시 주위의 무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른 곳을 살펴봐라! 당한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시신은 모두 세 구가 발견되었다.
두 사람은 장로였고, 한 사람은 혈궁당 당주 추관이었다.
우문강천은 자신의 거처에서 보고를 받고 이를 갈았다.
“누가 보냈을 거라 보느냐?”
그의 질문에 우문홍이 대답했다.
“신도명산일 겁니다.”
“신도명산…… 네놈이 살수까지 동원하다니.”
“소문으로만 돌던 백마곡 놈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문홍의 말에 우문강천이 호안을 치켜떴다.
“백마곡? 무이산에 있다는 그 살귀들?”
“예, 련주.”
“찢어죽일 살수 나부랭이가 감히……!”
탕!
침상을 손바닥으로 내려친 우문강천이 일어섰다. 눈에서는 불길 같은 안광이 폭사했다.
“시간을 더 끌 이유가 없다. 내일 아침에 각 세력의 수뇌들을 소집하라.”
“예, 련주!”
아침이 밝자 마도연합이 다시 꿈틀거렸다.
살수에 의한 간부 암살 소식이 전해진 터라 분위기가 흉흉했다.
아침식사 후. 마도연합의 당주급 이상 수뇌부들이 우문강천의 커다란 군막 안에 모였다.
“왜 모이라 했는지는 모두 알 거요!”
우문강천의 냉랭한 말에 수뇌부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놈들을 쓸어버릴 거요!”
이번에는 우문강천도 확실하게 역할을 구분해서 공격할 작정이었다.
그동안은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면 정파쯤이야 간단하게 짓밟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파가 완전히 무너진 후 칠십 년 동안 마도의 머릿속에 박힌 고정관념의 산물이었다.
마도에게 정파는 짓밟을 수 있는 대상일 뿐, 적이 아니었다.
가끔 토벌대를 파견해서 쓸어버리고 머릿수에 따라 공과를 선물처럼 나누어주면 되었다.
그게 정파였다.
복우산대혈전에서도 그런 마음이었고, 심지어 복우산에서 엄청난 피해를 본 이후에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변했다면, 정파가 이제 기어오를 정도로 컸다는 생각을 하는 정도.
그래봐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팔대마세가 작정하고 나서면 자근자근 짓밟아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같잖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정파가 마도천하에 위협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다 만마성과 마천문 연합이 정은맹에 밀리고, 마황궁이 대정맹에 무너지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철혈마제 우문강천이 직접 나선 것도 그러한 위기감과, 이 기회에 마도의 제왕이 되겠다는 그의 야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싸움이 벌어졌다.
비등한 결과가 나오면서 우문강천의 자존심이 구겨졌다.
이후 두 번째 싸움 역시, 대정맹이 남하하면서 후퇴를 해야만 했다.
우문강천은 우둔한 자가 아니었다.
장대한 체구임에도 머리 쓰는 게 섬세했다. 냉혹할 정도로 냉정한 성격으로 인해 냉혈의 철혈마제라 불릴 뿐.
그는 같은 실수를 세 번이나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척이가 일대의 선봉에 선다. 양아가 뒤를 받쳐라.”
우문강천의 명령이 떨어지자, 우문척과 우문양의 표정이 전과 거꾸로 바뀌었다.
우문강천은 두 아들의 경쟁심을 신경 쓰지 않았다.
사자와 호랑이는 경쟁을 하면서 크는 법이다.
“척이가 철혈마령대와 철혈혈령대를 이끌고 적의 중심을 친다. 철혈귀령 이십 명을 내줄 테니 최대한 놈들을 흔들어 놓아라.”
우문척은 삼대 중 이대를 지휘하라는 말에 눈이 번뜩였다.
거기다 철혈귀령 이십 명을 지원해준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 전력이면 어지간한 문파는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양이가 철혈사령대를 이끌고 뒤를 지원해라. 명심해라! 이번에도 실패하면 지휘권을 박탈할 것이다.”
“존명!”
우문강천은 두 아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머지 사 대의 수장들을 바라보았다.
“우리 철혈마련이 중심을 칠 거요. 이대와 삼대는 좌측을, 사대와 오대는 우측으로 우회해서 공격하시오.”
듣고 있던 귀천교의 악전웅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련주, 대정맹이 또 나타날지 모르는데, 그에 대한 대책은 있소?”
우문강천이 냉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너무 걱정 마시오. 만마성과 마천문의 정예무사들이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소. 아마 오후쯤이면 도착할 거요. 조금만 버티면, 정은맹은 물론, 대정맹 놈들도 쓸어버릴 수 있을 거요.”
“오오! 그거 잘 됐군요.”
“이번에는 정파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