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26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26화
326화
이사명은 혁무천이 무원장 고수들을 이끌고 사진으로 이동한 것만 보고도 혁무천의 마음을 정확히 짚어냈다.
혁무천은 옅은 미소를 띤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혼돈은 세상을 피폐하게 만들 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지요.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정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옳은 말이네.”
“다만, 협이니 정이니 하는 걸 추구해서 나서려는 건 아니니, 서운한 일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십시오.”
이사명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내 어찌 모르겠는가. 걱정 마시게. 나는 그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네.”
“고마운 건 우리지요. 무원장이 떼돈을 벌게 생겼는데요.”
“응?”
“천하제일세력에 물품 납품을 이십 년 간 독점하면 얼마나 이득을 볼지, 그걸 계산하려면 삼 일 밤을 새야 할 겁니다.”
그제야 혁무천의 말뜻을 이해한 이사명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천하제일세력이라니, 이거 너무 띄워주니 절벽에서 떨어질까 겁나는군.”
“더도 말고 딱 이십 년 간만 버티십시오. 그 이후에는 알아서 하시고요.”
“너무 인정머리가 없군. 이십 년 간이나 챙기면 천하제일부를 이룰 텐데, 좀 더 뒤를 봐주어야지 말이야.”
“이익이 된다면 못할 것도 없지요.”
혁무천이 가볍게 너스레를 떨자, 이사명이 상체를 앞으로 바짝 내밀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오늘 만난 김에 기간을 늘리면 어떻겠나? 한 삼십 년으로 말이야.”
“이거 괜히 무서워지는데요?”
“무서워할 것 뭐 있나? 무원장은 그만큼 이득일 텐데.”
“그럼 아무 조건도 없는 겁니까?”
“험, 그건 아니지.”
헛기침을 하며 슬쩍 손을 저은 이사명이 혁무천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오십만 냥만 더 빌려주게.”
“…….”
지속될지 무너질지 모르는 대정맹과의 거래 십 년을 늘리는 조건으로 오십만 냥을 더 빌려 달라?
설령 지속된다 해도 단순 계산으로 하면 삼십 년이 아니라 사십 년으로 늘려야 한다.
하지만 혁무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이십 년 동안 대정맹이 커지면 초기보다 몇 배의 규모가 될 것이다. 말이 십 년이지 앞서 이십 년보다 더 큰 이득을 취할 수도 있다.
물론 이자도 제법 쌓일 거고.
그런데 이사명이 말했다
“한 가지 더 있네.”
“뭡니까? 설마 저희더러 마도와 싸울 때 앞장서라는 건 아니겠지요?”
“나도 염치가 있지, 그것까지 바라지는 않네. 자넨 그저 정혈단만 막아주면 되네.”
혁무천은 이사명이 돌아간 뒤 혼자서 차를 마셨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구름이 낀 듯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정혈단원들이 비록 마에 물들긴 했지만 본래 정파의 기재였던 아이들이네. 마를 물리치고 정과 협을 되찾기 위해 자신들을 희생한 거라 할 수 있네. 의형과 내가 그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셈이지. 염치없지만, 그 아이들 중 아직 마에 덜 물든 아이들은 구제해주게.”
이사명의 말을 떠올린 혁무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군사, 당신은 그들이 익힌 지옥혈천공을 너무 모르는군요. 그리고 사마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나직한 목소리가 혁무천의 입안에서 흘러나왔다.
눈빛은 무심하게 가라앉은 상태였다.
‘어쩌면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지도 모르겠소. 그들을 막지 못하면, 세상이 혈해에 잠길 테니까.’
그때였다.
무심하게 가라앉아 있던 혁무천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동시에 몸을 가볍게 튼 그는 우수를 들어서 허공을 저었다.
뭔가 미세한 느낌이 손바닥에서 전해졌다.
손을 펴보자, 머리카락 굵기의 가느다란 침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은은한 청색을 띤 침이었다.
‘독?’
손바닥에서 저릿함이 느껴졌다.
창문을 넘어간 혁무천은 침이 날아든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침은 자신이 바라보던 방향에서 날아들었다.
객잔 별채에 있는 어두운 정원에서.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본 혁무천은 손바닥에 진기를 집중시켰다.
스스스스.
푸르스름한 연기가 손바닥 위에서 흩어졌다.
‘도대체 누가……?’
천하의 누가 자신의 감각을 속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뚫렸다.
지금도 무사 몇 명이 장원 일대를 돌아다니며 경비에 열중이었는데, 그들 누구도 살수가 들어왔다는 걸 알지 못했다.
‘누가 보낸 거지?’
헛것을 본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그의 손 안에 가느다란 침이 들어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장주님?”
경비를 서고 있던 무원장 무사 하나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혁무천은 가볍게 대답하고 몸을 돌렸다. 그들이 안다 해서 어떻게 할 수 일이 아니었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잘못 걸렸다, 이놈!’
***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다 끌어올려서 겨우 빠져나온 능우는 소리 내지 않고 한숨을 쉬웠다.
‘후우우우, 그걸 막다니.’
백마곡 서열 삼 위. 지금까지 절정고수 스물네 명의 숨통을 완벽하게 끊은 자신이 실패했다.
그것도 완벽한 기회였는데.
어디 그뿐이랴? 상대는 자신이 쏜 무영침을 손으로 잡아냈다.
맙소사!
이 밤중에, 그토록 가느다란 침이 소리 없이 번개처럼 날아갔는데 잡아채다니.
그 순간, 그는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정원을 빠져나왔다.
아마 조금만 늦었더라도 그에게 들켰을 것이다.
‘제기랄! 상인이라고 하더니…… 너무 쉽게 생각했어.’
물론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살수는 실패하면 죽는다.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살수의 운명이다.
능우는 아직 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좋아, 날이 새기 전에 반드시 놈을 죽인다!’
그때였다.
“여기 있었군.”
갑자기 허공에서 들리는 목소리.
능우는 반사적으로 귀영신법을 펼치며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신형은 허공으로 떠올랐다 싶은 순간에 사라졌다.
그런데…….
“내 앞에서 신법 자랑을 하겠다?”
가소롭다는 듯 조소를 띤 목소리가 들리더니,
퍽!
옆구리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헉!’
오랜 수련을 거친 눙우는 비명조차 속으로 질렀다.
그러고는 충격에 실린 힘을 역이용해서 옆으로 날아가며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려 했다.
그 순간……
덥석!
갑자기 뒷덜미가 누군가에게 잡히는가 싶더니, 몸이 허공에서 붕 떠서 한 바퀴 돌았다.
능우는 백마곡의 최고살수 중 한 명답게 그 와중에도 좌수를 휘둘렀다.
쉬악!
그의 손에는 소매 속에서 튀어나온 한 뼘 길이의 가느다란 소검이 들려 있었다.
소검에는 독이 묻어 있어서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무서운 독이 묻어 있어도 상대에게 상처를 내지 못하면 나무막대나 다를 것 없었다.
소검이 허공을 반쯤 갈랐을 때 손목이 누군가의 손에 잡혔다.
그리고……
쾅!
얼굴부터 바닥에 떨어지면서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능우는 안 그래도 깨진 입술을 깨물며 다급히 정신을 차리려 했다.
살수에게는 눈 한번 깜짝할 짧은 순간조차 소중했다.
임무의 달성여부를 가름하는 순간은 결코 길지 않다. 눈 깜짝할 순간에 생사가 결정된다.
때문에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거센 충격을 받았음에도 악착같이 정신을 차리려 했다.
빠져나갈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자결이라도 해야 한다.
그때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백살귀혼(百殺鬼魂) 능산과 무슨 관계지?”
능우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모르나? 그럼 살려둘 필요도 없겠군.”
무심한 목소리와 함께 뒷덜미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며 목뼈가 부러지고 살이 오그라들어서 목의 굵기가 본래보다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 같았다.
능우는 난생 처음으로 간절히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참으로 이상했다. 임무에서 실패하면 자결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백살귀환 능산이라는 이름 때문일지도 모른다.
백마곡의 제자 외에 세상 누구도 모르는 그 이름을 이자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걸 모른 채 죽으면 저승에 가서도 궁금해 미칠지 몰랐다.
뭐, 핑계일지도 모른지만.
“아, 알고…… 있다.”
“응? 알아?”
“그분은…… 오대조 어른…….”
“그럼 네 성도 능 씨?”
“그, 그렇…….”
뒷덜미를 조이던 힘이 조금 느슨해졌다.
능우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기회를 엿보았다.
‘알고 보니 순진한 놈이군.’
하지만 너무 이른 판단이었다.
“헛짓거리 할 생각 하지 마. 사지가 하나하나 뽑혀서 죽고 싶지 않으면.”
능우는 움직임을 멈추고 생각을 수정했다.
놈은 절대 순진한 놈이 아니었다.
“누가 나를 죽이라고 했지?”
그제야 능우는 자신을 지옥의 입구에 반쯤 밀어 넣은 자가 누군지 눈치 챘다.
“…….”
“오호, 입을 다물겠다? 하긴 살수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고 하더군.”
“…….”
“오늘 밤 심심하진 않겠어. 사지의 뼈를 하나하나 부수다 보면 날이 새겠지.”
“…….”
“그래도 어디에서 왔는지 정도는 알려줄 수 있겠지?”
아무 말도 안하면 정말 뼈를 부술 거 같다.
그래, 자신의 고향 정도는 알려줘도 되겠지.
“……무이산에서…… 왔다.”
“이름은?”
“……능우.”
“나이.”
“서른둘.”
“혼인은?”
“안 했다.”
“어떤 여자를 좋아하지?”
“…….”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놈 같다. 이 판국에 그런 걸 물어보다니.
그래도 자신은 좋아하는 여자의 유형이 확실했다.
“요리 잘 하는 여자.”
“그건 나와 생각이 같군. 솔직히 얼굴만 예쁜 여자는 별로거든.”
능우는 처음으로 동질감을 느끼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물론 우리 설아는 빼고.”
아니, 이번에도 잘못 생각했다. 설아라는 계집을 보진 못했지만, 보나마나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무조건 예쁘게 보이는 게 분명하다.
“오빠, 무슨 일이에요?”
그때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설아야. 별 일 아니야.”
설아? 목표물의 눈에 콩깍지를 씌운 여자?
“그 사람은 누구예요?”
“나를 죽이려고 우모침을 날린 친구.”
“오빠를 죽이려 했다고요? 그럼 바로 목을 쳐버려야지, 왜 놔둬요?”
능우는 엎어진 상태에서 움찔했다.
역시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저렇게 무식하고 살벌한 여자를 좋아하다니.
‘얼굴값을 못하는군.’
이 판국에 할 생각은 아니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알아볼 게 있어서.”
“작두를 가져올까요? 일단 손가락 발가락부터 하나씩 잘라 봐요. 그럼 말할 거예요.”
능우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정도 협박은 협박도 아니었다. 자신은 그보다 열 배는 더 심한 협박도 해보았다.
그리고 수련을 할 때 죽음의 문턱도 몇 번이나 넘어 봤다.
그런데 겨우 작두질에 땀이 나다니.
‘목소리. 그래 목소리 때문이야. 그런 말을 저렇게 고운 목소리로 태연하게 하다니.’
그때 몸이 붕 뜨는 게 느껴졌다.
철퍼덕.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바닥에 앉혀진 능우는 재빨리 눈알을 굴려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목표물 옆에 한 여자가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달빛 대신 화톳불에 비친 그 모습은…….
‘여, 여신이 분명해.’
그제야 무천이란 자의 눈에 왜 콩깍지가 씌었는지 이해가 됐다.
조금 전에 ‘목을 쳐버려야지.’라고 했던 말은…… 그럴 수도 있지 뭐. 오빠를 죽이려 했는데.
“말해 봐. 누가 나를 죽이라고 했지? 신도명산인가?”
불쑥 치고 들어간 혁무천의 말에 능우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끄덕이려는 것을 참았지만, 미세한 움직임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