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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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화
혁무천은 슬며시 눈길을 돌렸다.
‘그래, 다 나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거두려 하는 것…….’
“그런 인간은 나타나지 않았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그쵸?”
‘미안하다, 나타나서.’
“거봐요, 제가 전에 마천제는 삼두육비의 괴물이라고 했잖아요.”
‘그건 아니지. 이렇게 잘 생긴 괴물 봤어?’
“그런 악마 같은 인간은 우리 오빠를 만났어야 하는데…… 그럼 오빠가 그놈의 목을 쳐버렸을 텐데…….”
‘자살하라는 거냐?’
혁무천은 더 충격적인 말이 나오기 전에 슬쩍 화제를 돌렸다.
“목량, 무원장의 상행은 이상 없겠지?”
“예, 대형. 저…… 그런데, 자경산과 자화미가 이곳에 왔습니다.”
“뭐?”
혁무천은 확! 짜증이 났다.
“왜 그 여자가 와? 자경산은 왜 데려온 거야?”
“아시잖습니까, 자 형은 자 소저를 이기지 못한다는 걸.”
“젠장, 느낌이 안 좋군. 왜 하필 이런 때…….”
그때 문이 열리더니 자화미가 들어왔다.
“왜는 왜예요? 도와드리려고 왔죠.”
고개를 돌린 혁무천은 눈을 치켜떴다.
정말 자화미였다. 자경산은 한발 늦게 들어왔는데,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슬쩍 돌려서 혁무천과 시선이 마주치는 걸 피했다.
혁무천이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냉랭히 말했다.
“훗, 도움?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니까 돌아가. 너는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어차피 철혈마련과도 부딪칠 거잖아요. 그런데 철혈마련에 대해서 저보다 잘 아는 분 있어요? 무 공자가 더 잘 알아요?”
“그건…….”
“걱정 말아요. 방해하지 않고 제가 아는 것만 도와드릴 거니까요.”
혁무천은 자화미가 못마땅했지만, 더 이상 다그치기도 어정쩡했다. 더 다그쳐봐야 순순히 말을 들을 자화미도 아니고.
더구나 사람들이 모두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다. 썩 좋은 눈빛은 아니었다. 한마디만 더 해도 나쁜 남자가 될 것 같았다.
“좋아. 네가 진짜 그런 마음이라면 돌려보내지는 않으마. 대신 엉뚱한 일 벌이지 말고 조용히 지내.”
“알았어요. 공자가 하라는 대로 할 게요.”
자화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얀 이가 드러난 그녀의 웃음은 누구든 시선을 떼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다.
연약하게(?) 보이는 데다, 말투도 고분고분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혁무천이 지나치게 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혁무천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고 장내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의외의 장면을 보고 눈빛이 반짝였다.
‘응?’
목량이 자화미를 슬쩍슬쩍 훔쳐보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이 약간 상기된 듯 보였다.
‘혹시……?’
뭔가를 짐작한 혁무천이 말했다.
“목량.”
“예? 예, 대형.”
“이제부터 네가 자화미 옆에 붙어 있어라. 바짝 붙어서 엉뚱한 짓 못하게 지켜 봐.”
목량이 자화미를 슬쩍 바라본 후 나직이 대답했다.
“예…….”
자화미는 의외로 그에 대해서 반발하지 않았다. 반발은커녕 오히려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잘 부탁해요, 목 공자.”
목량의 볼이 더욱 벌게졌다.
***
철혈마련과 귀천교가 중심이 된 마도연합은 대평원에 진영을 구축하고 있었다.
첫 번째 대혈전 이후 계속된 국지전으로 사상자 팔천이 났음에도 인원은 처음과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중원 각지의 마도 문파들이 위기를 느끼고 파견한 무사들이 속속들이 합류했기 때문이었다.
마도십문에서 무사를 보내지 않은 곳은 검마보와 남천문, 마룡성, 그리고 세력이 급격히 위축된 백마성 정도.
나머지 육문과 중소 마도문파는 물론이고, 이번 전쟁에서 기회를 잡아서 성공해보려는 마도 무사들도 상당수였다.
의외라면 정은맹 역시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정파의 무사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정파 무사 중에는 정은맹보다 대정맹을 정파의 대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정은맹으로 몰려든 것은, 정은맹이 마도와 직접적으로 전쟁을 벌이기 때문이었다.
신도명산이나 정은맹은 마음에 안 들어도 마도를 물리쳐야 한다는 대의를 좇아 달려온 무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중원의 마도와 정파 무사들이 집결하면서 전운이 감돌고 혈풍이 점점 거세졌다.
그 즈음, 남양의 정은맹 임시총단에서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뭐야? 실패?”
신도명산은 무천을 제거하려던 계획이 실패한 것을 알고 분노했다.
삼백이십여 명이 달려가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오십여 명.
어이없는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분노에 사로잡힌 신도명산은 그 상황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참으로 질긴 놈이군.”
옆에 앉아 있던 주금화가 이마를 찌푸렸다.
신도명산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신도명산은 무천이 습격을 받고도 살아난 것을 단순한 ‘운’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불안감이 들었다.
‘자칫하면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를지도 모르겠군.’
그는 마도가 멸망하든, 정은맹과 대정맹이 멸망하든 상관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강호재편’이었다.
양쪽의 세력이 최대한 약해져야만 그의 계획이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또 다른 변수가 나타나는 것은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물론 그도 무천의 강함을, 무원장의 무력이 생각보다 강함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강함도 그의 계산 하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계산에서 벗어난 듯 느껴지는 것이다.
‘무원장의 무력을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군.’
신도명산은 그와 생각이 조금 달랐다.
“흥!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만, 네놈이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직이 코웃음 치며 이를 간 신도명산이 주금화를 보며 말했다.
“살귀들에게 그놈을 먼저 먹이로 던져줘야겠소.”
그 일 역시 주금화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은 마도연합과의 싸움에 전념해야 할 때다. 무천을 처리하는 건 이후에 해도 된다.
“그 일은 마도를 부순 후에 하는 게 어떻겠나?”
주금화가 냉정하게 생각해서 말했지만, 신도명산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놈이 마도에 물자를 공급하고 있지 않소? 그놈을 제거하면 마도 쪽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거요.”
“나라간의 전쟁이 아닌 이상 무원장이 아니어도 마도에 물자를 공급할 곳은 얼마든지 있네.”
“어쨌든 차질은 있을 것 아니오? 살귀 몇 명 무원장 쪽으로 돌린다 해도 전체적인 전력에 큰 차이는 없을 거요.”
신도명산이 워낙 완강하게 주장하자, 주금화도 한발 물러섰다. 아직은 신도명산과 대립각을 세울 때가 아니었다.
“흠, 그것도 그렇군. 그럼 그렇게 하지.”
“하하하, 고맙소이다, 왕야.”
***
대평원에 세워진 군막 안에는 우문강천을 비롯해서 철혈마련의 주요 간부들이 집결해 있었다.
“이번에는 양아가 선봉에 서라.”
우문강천의 말이 떨어지자, 우문척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아버님? 양 아우의 실력을 의심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들의 수뇌부를 상대하기에는 아직 미진합니다.”
“어차피 저들도 수뇌부가 전면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정 걱정 되면 네가 뒤를 받쳐줘라.”
우문척은 고개를 돌려서 우문양을 바라보았다.
우문양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이번에는 저에게 양보해주시죠.”
우문척의 이마가 씰룩였다.
그도 부친의 뜻을 모르지 않았다.
몇 번에 걸친 싸움에서 특별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자 징벌성 교체를 단행한 것이었다.
불만이 많았지만, 부친의 뜻에 정면으로 반발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알았다. 내가 뒤에서 받쳐주긴 하겠지만, 조심해야 한다. 놈들은 예전의 정파가 아니야.”
우문양은 우문척을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형님.”
그렇게 우문척이 양보하며 물러서자, 우문강천이 말했다.
“곧 놈들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철저히 준비하고 대기하라. 죽는 걸 겁내는 자는 내가 직접 목을 칠 것이다!”
그날 밤.
우문척은 침상 위에서 운기에 전념했다.
일반적인 운기가 아니었다.
혼돈의 기운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운기였다.
그동안에는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위험성 때문에 감행을 망설였다.
지금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천하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넓었다.
강한 자들도 많았다.
지금의 능력만으로는 그들을 넘어설 수 없었다.
사대천마도, 신도명산도, 정은맹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도. 그리고 정혈단주 사마신과 무천 역시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부친인 철혈마제를 넘어서서 강호제일고수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는 무림제국을 건설할 수 있다.
‘오늘 밤, 내 모든 걸 걸고 하늘의 뜻을 알아볼 것이다!’
성공한다면 하늘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뜻.
그때는 오롯이 자신의 뜻대로 모든 걸 행하리라!
***
혁무천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뭔지 모를 묘한 전율이 온몸을 내달렸다.
뭐지?
마치 무언가에 동화된 느낌이랄까? 아니면 동질의 무언가가 세상에 나타난 느낌?
그게 무엇이든 심상치 않은 느낌이 본능을 자극했다.
그때 그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정체 모를 기운이 미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혁무천도 처음으로 느껴보는 기운이었다.
‘아니야, 언젠가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은데…….’
문득 사마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그가 기이한 기운에 휩싸여 있을 때의 모습이.
‘맞아, 그때도 이랬어.’
그때는 다급한 상황 때문에 인지하지 못했었다.
이제야 몸이 기억하고 그때의 느낌을 되살리고 있었다.
혁무천은 미미한 그 기운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서 이끌어냈다.
그런데 수줍은 아이처럼 쉽게 끌려나오지 않았다.
아니, 수줍다기보다는 고집 센 여인 같았다.
그래도 몇 번 반복해서 시도하자 천천히 끌려 나왔다.
그제야 그는 그 기운이 얼마나 거대한지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흐름에 거침이 없었다. 무엇도 막지 못했다.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기운이 세맥은 물론 전신 구석구석 탐험하듯이 헤집고 다녔다.
‘이게 혼돈의 기운?’
하지만 그때, 지옥명화의 기운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며 그 기운에 맞섰다.
순간, 신이 나서 돌아다니던 기운이 놀란 듯 무저의 구멍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이, 이런……!’
혁무천이 급히 지옥명화의 기운을 다스리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혼돈의 기운이 구멍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그는 다시 그 기운을 끌어내려 했다.
그러나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쉬웠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몸속에 있는 이상 언젠가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는가 말이다.
혁무천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번에는 사마신이 이 기운을 끌어냈다. 이번에는 누굴까?’
***
그 시간.
숭산 깊은 곳에서도 세 사람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공대선사와 철우, 그리고 무곡진인이었다.
“허어, 이제 깨어나기 시작하는 건가?”
원공의 말에 무곡진인이 이 빠진 웃음을 흘렸다.
“흘흘흘, 하늘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군.”
“에잉, 피바람이 불지 모르는데 뭐가 그리 좋은가?”
“우리가 인상 찡그린다고 불 바람이 불지 않을까?”
“그거야 그렇지만…….”
두 사람이 티격태격 하는 동안 철우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공이 의아한 듯 물었다.
“땡초, 왜 그런 표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