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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323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8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323화

323화

 

 

“그 친구는 내가 맡지.”

철명군은 이정을 몰아붙이고 있는 백추완 옆에 내려서서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

밀리고 있던 이정은 백추완이 자신보다 반 수 정도 고수라는 걸 인정하고 있던 터였다.

게다가 주위에는 온통 정은맹 무사들이었다.

아차하면 목이 달아날 판.

그러던 차에 철명군이 나서자, 이때다 싶어서 뒤로 물렀다.

물론 그 와중에도 자존심은 지켰다.

“아쉽지만 어르신께 양보하지요.”

그러고는 다른 화풀이 대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철명군은 터벅, 터벅, 백추완을 향해 다가갔다.

백추완은 상대가 바뀌자 인상을 썼다.

곧 목을 칠 수 있었는데…….

하지만 성질대로 짜증을 내지 못하고 숨을 멈췄다.

단지 걸어오고 있을 뿐인데, 마치 거대한 산이 통째로 자신을 향해 밀려드는 느낌이었다.

“누, 누구신지……?”

백추완은 자신도 모르게 말조차 조심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나? 철명군. 아마 자넨 잘 모를 거야.”

생긴 모습만으로는 자신과 별 차이가 없는 나이 같았다. 그런데 말투로 봐서는 한참 더 산 노인처럼 느껴졌다.

‘철명군?’

말대로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저런 고수가 강호에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검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는군. 연구목이라는 친구가 그런 검을 썼었지.”

철명군의 말에 백추완의 눈이 커졌다.

적산일검 연구목. 그의 스승 이름이었다.

“어떻게 스승님을 아시는 거요?”

“전에 십초 비무를 해본 적이 있네. 그때 실수로 귀를 자르는 바람에 무척 미안한 마음이었지.”

연구목의 귀를 자른 사람?

백추완은 오랜 기억을 떠올리고 안색이 해쓱해졌다.

 

“내 귀를 자른 자가 있다. 그를 만나면 절대 싸우려 하지 마라. 무조건 피하는 것만이 네가 살 길이다.”

 

스승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렇게 말씀하셨었다.

천하에서 가장 강한 사람 중 하나일 거라는 말도 했었다.

심지어 삼성조차 그의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는, 믿기 힘든 말도 했었고.

그런데 그 당사자가 눈앞에 있었다.

“설마…… 귀하가 무천의 스승이오?”

“스승? 내가 저 친구의 스승이냐고?”

철명군이 묘한 표정으로 반문하고는 웃었다.

“하하하하, 그럼 좋겠지만, 나는 저 친구의 스승이 될 자격이 없다네. 졌거든.”

“…….”

백추완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한때 강호에서 이름을 날렸던 스승을 십초 만에 패배시킨 절대고수가 무천에게 패했다고?

맙소사!

“어디 그 검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세.”

철명군이 담담히 말하며 검을 뽑았다.

백추완은 이를 악물고 전 공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검에서 하늘빛 푸른 검강이 쭉 뻗어나왔다.

“스승보다 나은 것 같군.”

철명군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말하며 검을 사선으로 내밀었다.

그의 검에서 은은한 빛이 흘렀다. 언뜻 봐서는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백추완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상대는 형체조차 없는 무형의 기운을 자유롭게 절대지경의 고수였다.

백추완은 숨막히는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선공을 시작했다.

 

혁무천은 벌떼처럼 날아드는 정은맹 무사들을 향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살수를 펼쳤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중원의 무공과는 조금 다른 검법과 도법을 펼치는 자들, 남황궁의 무인들이었다.

삼백이십여 명이나 되었던 정은맹 무사들의 숫자가 잠깐 사이에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기세등등하게 달려들던 정은맹 무사들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워졌다.

자신들이 노렸던 무원장 고수들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은 상태였다.

전멸도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그때, 백추완이 뒤로 튕겨나가서 비틀거렸다.

검을 늘어뜨린 그의 얼굴에는 아연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단지 팔 초식 만에 전신 기혈이 잘리고 막혔다. 겉으로는 피 한 방울 나지 않았지만 내부는 이미 엉망이었다.

‘어떻게 이런 검이…….’

상대는 자신이 감히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과연 누가 철명군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문득 철명군이 무천에게 패했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말도 안 돼…….’

만약 사실이라면, 신도명산은 지금 큰 실수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한이 깊어도 정은맹을 위해서라면 무천을 건드려선 안 되었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말하게.”

“귀하는…… 무천은 마도의 사람입니까?”

“아니네.”

“그런데 왜……?”

“장주도 그렇지만, 나도 정파나 마도를 따지지 않네. 그저 사람을 따질 뿐. 내가 알기로는 장주가 정은맹을 먼저 공격한 적이 없다더군. 신도명산의 아들이 도적질을 하며 무원장 사람들을 죽인 게 문제였지.”

백추완은 그제야 무엇 때문에 일이 어긋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도명산이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정파 쪽에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부디…… 정파에 자비를 베풀기를…….”

그는 마지막 몇 마디를 내뱉은 후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정은맹 무사들은 사오십 명 정도만이 살아서 도주했다.

혁무천 일행 중에는 호광과 탕초양이 약간이 부상을 입었을 뿐, 죽은 사람은 없었다.

옷이야 항상 그렇듯이 장대산이 제일 너덜너덜했다. 하지만 살에 붉은 자국만 몇 군데 났을 뿐 피를 보지는 않았다.

“신도명산이 생각지 못한 곳에서 명분을 세워주는군요.”

혁무천은 담담히 말하며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

 

마도연합 무사들이 남양에서 오십 리 떨어진 곳에 도착했을 때는 인원이 구천 명에 이르러 있었다.

남양의 정은맹과 정파무사들은 물론이고, 남양성의 황군조차 잔뜩 긴장해서 상황을 주시했다.

근 일만에 이르는 강호의 무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단순한 강호무사들의 싸움이 아니라, 전쟁이었다.

황군으로서는 무림의 무뢰배들이 양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만 바랐다.

도지휘사사도 삼만 병력에게 명령을 내린 채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하지만 우문강천은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세상에 그를 두렵게 할 사람은 없었다.

피를 보기로 작정하고 칼을 빼든 지금은 황제조차도 그의 발길을 막을 수 없었다.

신도명산도 모여든 정파무사들을 재배치하고 마도연합에 맞섰다.

중원 각지에서 몰려든 정파무사가 구천 명이 넘었다. 거기다 남황궁의 무사 역시 삼천 명이나 되었다.

마도연합에 밀릴 이유가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낙양에서는 호시탐탐 마도 세력의 빈틈을 노리는 대정맹이 있었다.

 

“훗,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사마신은 남양 근교 작은 마을의 객잔에서 전황을 보고 받으며 하얗게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상황이 예상했던 것보다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신도명산과 우문강천의 욕심 때문이었다.

그는 우문강천의 욕망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이 기회에 철혈마련을 마도제일세력으로 만들고, 본인은 마도제일인이 되고 싶겠지.

사대천마 중 천양묵과 공손락이 패배를 겪었고, 혈왕 능전평은 죽었지 않은가.

“일단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응할 것이다. 굳이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 허나, 차후 명령이 떨어지면 최대한 피를 본 후 물러나라.”

사마신의 앞에 앉아 있던 정혈천 팔대주 중 허운을 비롯한 사대주가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천주.”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천주.”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사마신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봄비라도 오려는지 하늘에 구름이 많이 끼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후후후, 무천, 네 덕분에 마(魔)의 령(靈)을 얻었으니 목숨을 한 번은 살려주마.’

 

***

 

정은맹과 마도연합은 남양에서 동쪽으로 삼십 리 떨어진 십전평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근 이만 명에 이르는 무사들이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오늘 만큼은 우문강천을 비롯한 마도연합의 수뇌부가 앞장서서 싸웠다.

정은맹 쪽에서도 신도명산과 정파의 고수들이 나서서 마도연합의 고수들과 맞섰다.

혈전은 반 시진 가까이 벌어졌다.

새싹이 나오던 봄의 들판이 시뻘겋게 물들고, 시체가 들판을 뒤덮어서 발을 딛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우문강천은 신도명산과 승부를 내지 못하고 물러섰다.

아쉬움이 많았지만 신도명산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우문척도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듯 일말의 인정을 두지 않고 적을 죽였다.

죽고 죽이는 싸움은 양측 합쳐서 오천 명에 이르는 무사들이 죽어간 후에야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단지 소강상태일 뿐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정은맹과 마도연합은 십 리 간격을 두고 물러난 뒤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격돌했다.

치고 빠지는 싸움은 그날 하루 종일 이어졌다.

밤이 찾아왔을 때까지 죽은 인원만 해도 칠팔천 명에 달했다.

 

***

 

혁무천은 비양에 도착해서야 남양의 소식을 들었다.

목량이 보고를 올렸다.

“어제 오시부터 시작된 싸움은 술시 초에서야 끝을 맺었습니다. 정은맹은 남양으로 후퇴하고, 마도연합 쪽도 오십 리 정도 후퇴한 상태입니다.”

혁무천은 보고를 받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대정맹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정혈단 역시 나타났다는 보고가 없었다.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대정맹은 지금 어디 있지?”

“낙양 쪽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의외였다.

정은맹을 공격하지는 않더라도 마도연합의 꽁무니는 공격할 줄 알았다.

이사명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혁무천이 의문을 품고 있는데 목량이 말했다.

“풍마문의 정보에 의하면, 정은맹의 전령이 대정맹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래?”

정은맹의 전령은 신도명산이 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도명산이 이사명에게 뭔가를 제안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 제안의 내용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사명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거다.’

마도의 꽁무니를 치지 않은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른다.

정은맹의 힘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키기 위해서.

하지만 계속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라고 봐야 했다.

“목량, 준비해놓고 대기하라고 해. 내일 이동할 거니까.”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사진으로 간다.”

사진은 방성에서 팔십여 리 정도 남쪽에 있었다.

그곳이라면 전장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직접 뛰어들 생각이십니까?”

“상황 봐서. 어쩌면 우리보다 정혈단이 먼저 움직일 가능성이 커.”

“아…….”

“이곳에서는 정혈단의 움직임에 대처할 수 없다.”

그때 눈치를 보던 은설이 물었다.

“오빠, 정혈단이 마도 쪽을 친다면 굳이 우리가 그들을 막을 필요가 있을까요?”

혁무천도 은설이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혈단은 단순히 마도와 싸우려는 정파의 무력이 아니었다.

근본은 정파의 무인들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그들은 마도연합의 무사들보다도 더 지독한 마공을 익힌 자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전에 본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피를 갈구하는 마인이 된다고 봐야 했다.

그 전에 제거하고 지옥의 마공을 회수해야만 한다.

“몇 달 지나면 그들은 육체만 인간일 뿐, 정신은 수라가 되어 있을 거다. 그 전에 제거하지 않으면, 수만의 죄 없는 생명이 사라질 거다.”

은설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하아아, 정말 그 미친 마천제 한 놈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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