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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322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3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322화

322화

 

 

“저는 성주께서 부인에게 보낼 편지를 계속 쓰셨으면 합니다. 아마 부인께서도 받아보고 싶으실 겁니다.”

천양묵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말이야, 저번에 그러더군. 이제 내용 좀 바꾸라고. 그런데 막상 바꿔보려고 했더니 잘 안 되지 뭔가.”

사실 그 말에 살짝 삐치긴 했다.

하지만 그래서 편지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복수에만 쏠려 있다 보니 붓을 들지 못한 것이지.

“그런데 자네가 다시 써보라고 하니 오늘은 오랜만에 붓을 들어야겠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후 천양묵은 말을 멈추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혁무천을 똑바로 바라본 채 말했다.

“내일 무사들과 함께 조양으로 갈 거네.”

혁무천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단순히 상황 파악 따위를 하기 위해 가겠다는 것이 아니다. 정사대전에 만마성도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전날 그의 말을 들은 터라 놀랄 것도 없었다.

그런데 다음 말이 의외였다.

“나에게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사야가 본 성을 잘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게.”

찻잔을 들고 있던 혁무천이 멈칫하며 눈을 들었다.

“만마성을 사야에게 맡기겠다는 게 아니네. 사야가 지정하는 사람이 성주 위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거네.”

조금 의외이긴 하나, 그 정도는 어려울 것 없었다.

“그녀가 뛰어나다는 것은 압니다만, 그 정도로 신뢰하시는 줄은 몰랐군요.”

“그 아이에게는 사람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네. 믿기 힘들 정도로 정확하지.”

그랬던가? 어쩐지 묘한 느낌을 풍기더라니.

“그랬군요.”

“자네에게 그 일을 맡기려는 것도 그 아이가 요구했기 때문이네.”

‘응?’

사야가 요구했다고?

“그 아이가 그러더군. 자네는 절대 남의 뒤통수를 치지 않을 사람이라고.”

“…….”

“세상에서 백지처럼 깨끗한 사람은 자네뿐이라고. 솔직히 내가 본 자네는 백 년 묵은 능구렁이 같은 면이 있는데……. 아! 혹시 사야가 자네를 좋아하는 건가?”

“하, 하, 하… 설마요.”

 

혁무천은 천양묵과의 만남을 마치고 만마전을 나왔다.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특히 사야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나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되는군.’

그녀도 혼돈의 힘을 얻은 게 분명했다.

어쩌면 단순히 사람에 대한 판별 능력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능력도 있을지 몰랐다.

‘그녀 앞에서는 조심해야겠군.’

 

***

 

이사명이 이끄는 대정맹 무사들은 낙양 북서쪽 백 리 떨어진 곳에 주둔하고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했다.

그곳까지 오는 동안 정파의 무사들이 합류해서 숫자가 삼천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봄기운이 완연한 삼월 중순, 신도명산이 보낸 전령이 이사명을 찾아왔다.

“정은맹의 전령이 신도명산의 서신을 가져왔다고?”

“예, 총군사. 어찌할까요?”

신도명산. 그 교활한 인간이 또 무슨 짓을 꾸미는 걸까?

짐작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현 상황에서 그가 자신에게 할 말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서신만 가져오고 답을 기다리라 해라.”

 

곧 호위무사가 서신을 가져왔다.

이사명은 천천히 봉투의 봉인을 해제하고 안에서 서신을 꺼냈다.

서신은 두 장이었다.

이사명은 서신을 한 자 한 자 꼼꼼히 읽었다.

그의 얼굴이 팔색조처럼 몇 번이나 변했다.

차갑게 굳어졌다가 일그러지고, 이마가 찌푸려지고, 그러다 결국은 씁쓸함만 남았다.

고개를 든 이사명은 초점을 허공에 둔 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병법에 통달한 후 정은맹을 지휘해서 마도연합을 농락한 그조차도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내용은 두 가지에 불과했다.

 

-마도를 물리칠 때까지만이라도 상호 공격을 하지 말자.

-우리 사이의 일은 마도를 물리친 다음에 해결하자.

 

문제는 상대가 의형인 사마진웅을 죽음으로 내몰고 정은맹을 빼앗아간 자라는 것이었다.

‘형님…….’

이사명은 자신의 관점이 아닌 사마진웅의 관점으로 생각해보았다.

의형이 만약 옆에 있어서 이런 서신을 받았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답을 내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멍청한 의형은 오래 생각하지 않고 말했을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내 원한이 문젠가? 일단은 마도를 무너뜨리는 게 먼저네.’

 

자신은 절대 의형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지만.

아마 신도명산은 시간을 벌어서 또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 모른다.

이사명은 다시 서신에 눈을 준 후, 천천히 고개를 들고 말했다.

“일 년, 그때까지만 기다리겠다는 말을 했다고 해라.”

“예, 총군사.”

이사명은 호위무사가 나간 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차가운 냉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신도명산, 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야.’

 

***

 

우문강천은 방성의 언덕 위에 서서 서쪽의 대평원을 바라보았다.

육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노인이 그의 옆에 서 있었고, 좌우에는 백여 명이 늘어서 있었다.

“대장로, 대정맹이 낙양까지 내려왔다는군요.”

우문강천이 대평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노인이 붉은 코를 씰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들었소, 련주. 그나마 놈들이 정은맹과 손을 잡지 않은 게 다행이오.”

“정은맹과 대정맹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나, 결국은 같은 정파요. 아무래도 싸움을 길게 가져가봐야 좋을 것은 없을 것 같소이다.”

“하면……?”

“피해가 크더라도 한쪽을 정리하는 수밖에.”

우문강천의 차가운 말에 귀천교 대장로 악전웅도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게 낫겠지요. 그럼 언제 시작할 거요?”

“내일 아침에 출발하지요.”

 

방성에 있는 철혈마련과 귀천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도맹과 패왕문까지 합해져 무사의 숫자만 해도 칠천 명이 넘었다.

이동속도는 전보다도 훨씬 느렸다.

대신 하루가 지나자 인원이 팔천 명으로 늘어났다.

남양 일대가 다시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 시각.

만마성을 나선 혁무천은 비양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심심했을 텐데도 철명군과 중리안은 실망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들은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 만마성이라는 곳을 구경한 것만으로도 즐거운 듯했다.

그런데 미시 말쯤, 동백산의 북쪽 끝자락을 지나갈 때였다. 유유히 걸음을 옮기던 혁무천의 미간에 주름이 그어졌다.

뒤이어 철명군이 한마디 했다.

“손님이 온 것 같군.”

그 말을 하면서도 표정은 밝았다.

본래 여행이란 구경만 하면 조금 심심해질 수 있다. 자잘한 놀이(?)가 있으면 더 즐거운 여행이 되는 법이다.

그때쯤에는 다른 사람들도 손님이 왔다는 것을 눈치 채고 반사적으로 진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곧 일단의 무리가 전면에 나타났다.

숫자는 대략 삼백여 명쯤 되었다.

그들은 혁무천 일행이 십여 명밖에 안 된다는 걸 알고 기세 좋게 다가왔다.

그들 중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자가 소리쳤다.

“나는 적산의 백추완이라 한다! 너희들이 마도에서 밥 빌어먹는 무원장 놈들 맞느냐?”

혁무천은 대꾸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대신 이정이 상대의 정체를 눈치 채고 한마디 했다.

“적산검협 백추완? 생각보다 무식한 것 같은데?”

백추완은 이정의 도발에 눈을 치켜떴다.

“흥! 역시 마도에 물든 놈들은 어쩔 수가 없구나! 정은맹의 이름으로 네놈들을 지옥으로 보내주마!”

“헛소리 그만하고 검이나 뽑으시지?”

“오냐, 이놈!”

백추완은 버럭 소리치고는 명령을 내렸다.

“놈들을 죽여라!”

좌우로 늘어서 있던 삼백여 무사들 중 오십여 명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상대는 열한 명. 어차피 삼백여 명 모두가 공격할 수도 없었다.

혁무천 일행 중에서도 이정과 전교, 호광, 장대산, 철호, 탕초양, 귀원이 먼저 나섰다.

혁무천과 철명군, 중리안, 천위는 움직이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정은맹 무사들을 살펴보던 혁무천이 조소를 머금었다.

‘신도명산이 남황궁 무사들을 주로 보냈군. 천기회의 전력을 보존시키려고 잔머리를 굴린 건가? 뭐 우리야 좋지만.’

혁무천이 신도명산의 속셈을 간파하는 사이, 먼저 나선 사람들이 정은맹 무사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치 양떼 속으로 뛰어든 호랑이 같았다.

부아아앙!

장대산의 장봉이 바람을 가르며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철호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도끼를 휘둘렀다.

그나마 다른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차분하게 적을 상대했다.

달려들던 정은맹의 무사 오십여 명이 숨을 몇 번 쉬는 사이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기겁한 백추완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모두 놈들을 쳐라!”

그러고는 자신도 몸을 날렸다.

백추완 옆에서 어깨에 힘을 주고 서 있던 정은맹의 장로 셋도 땅을 박차고 공격에 가담했다.

 

무원장의 무사 중에는 자신과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 고수들이 있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뭐, 뭐야? 무천만 조심하면 된다고 했는데……!’

검을 빼든 그는 이정을 향해 날아갔다.

정은맹 장로들도 눈을 치켜뜨고 싸움판에 뛰어들었다.

철산검 황수공은 전교를 상대하고, 진천일수 이홍은 호광을 향해 쌍장을 뻗었다.

광풍도 진명화는 장대산을 덩치만 클 뿐 동작이 느린 느림보처럼 생각하며 장봉을 칼로 쳐냈다.

그런데 쳐냈다고 생각한 장봉이 거의 밀리지도 않고 날아들자 황급히 몸을 뒤로 숙여서 피했다.

휘이이잉!

콧등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심장이 오그라든 진명화는 뒤로 눕힌 몸을 그대로 굴려서 일 장 이상 벗어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철호가 하늘에서 떨어지며 도끼를 내리쳤다.

막 일어나던 진명화는 욕설을 퍼부으며 칼을 광풍처럼 휘둘렀다.

“이런 건방진 애새끼들이!”

저 작은 체구에 도끼도 작았다. 그까짓 게 무슨 위력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철호의 쌍도끼가 팔랑개비처럼 휘돌면서 떨어지자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따다다다당!

천근짜리 철추가 떨어지는 듯했다. 칼이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장대산의 장봉이 허리로 날아들었다.

‘젠장! 애새끼들이 뭐 이리 사나워?’

속으로 욕을 퍼부은 그는 허공으로 몸을 띄워서 멀찌감치 벗어났다.

그때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자가 보였다.

이제 서른쯤 되었을까? 제법 무게가 느껴지는 젊은 놈이었다.

거리는 이 장 정도. 한발만 내딛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저놈이라도……!’

진명화는 땅에 내려서자마자 튕기듯 몸을 날리며 젊은 놈을 공격했다.

천위는 자신을 향해 칼을 휘두르며 날아드는 진명화를 보며 검을 뽑았다.

쉬아악!

찰나 간에 진명화의 칼과 천위의 검이 스쳐 지나갔다.

진명화는 자신의 칼이 허공을 갈랐다는 걸 알고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가슴 부위에서 뭔가가 솟구쳤다.

피시이이익.

가느다란 피리소리를 내며 뿜어지는 그것은 붉은 피였다.

위치는 그의 왼쪽 가슴이었다.

고개를 숙여 피가 나오는 곳을 내려다 본 진명화의 몸이 비틀거렸다. 그리고 곧 눈앞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이, 이런 개…….”

털썩.

앞으로 꼬꾸라진 진명화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제대로 겨루었으면 십여 초는 겨룰 수 있는 상대였는데…….”

천위는 좀 더 진득하니 겨루지 못한 걸 아쉬워하며 정은맹 무사들이 떼로 몰려 있는 혈전장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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