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20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20화
320화
천양묵이 묻자, 혁무천은 어깨를 으쓱 추켜올리고 일단 부정했다. 무원장의 참전을 미리 말할 필요는 없었다.
“전 장사꾼입니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를 하는군.”
“그래도 정은맹과 달리 만마성은 우리 고객이니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지요.”
“기대하지. 곧 밤이 될 텐데, 오늘은 이곳에서 쉬었다 가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
혁무천 일행에게는 영빈각 별원의 전각 하나가 통째로 주어졌다.
혁무천은 일행을 영빈관으로 보내고 천화광을 찾아갔다.
천화광은 그의 거처에 누워 있었다.
창백한 안색. 살도 많이 빠진 듯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몸에서 내공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뭐 하러 왔어? 내가 이 꼴 되어 있으니 보기 좋아?”
그래도 성깔은 죽지 않은 듯, 혁무천이 방으로 들어가자 툭툭 쏘아붙였다.
혁무천도 그런 천화광을 보고 한마디 해줬다.
“용케 입은 안 다쳤군.”
“흥.”
“내가 온 게 싫으면 그냥 가지.”
“쳇. 누가 싫다고 했어?”
여자처럼 입을 삐죽인 천화광이 상체를 일으키려 하자, 옆에 있던 호위가 재빨리 다가가서 도와줬다.
혁무천은 침상 옆의 의자에 앉아서 천화광을 바라보았다.
“너를 이렇게 만든 사람. 정혈단주였지?”
천화광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한.”
그러고는 혁무천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그도 그 힘을 얻은 것 같더군. 너나 내가 얻은 그 힘을.”
혁무천도 굳이 부인하지는 않았다.
굳이 자세한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인정하고 있던 일이었다.
“역시 그랬군.”
“천하에 그 힘을 얻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내가 짐작하는 사람만 해도 일고여덟 명은 되니, 어쩌면 더 될지도 모르지.”
“크크크크크크.”
갑자기 천화광이 소리죽여 웃었다. 웃음조차도 충격을 주는지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발갛게 상기되었다.
“그것도 모르고… 난 하늘이 나에게만 천은을 내린 거라 생각했지. 아! 어쩌면 나 외에 다른 놈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거야.”
혁무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마 천화광 말대로 대부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마신도.
하지만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 그 힘이 깃든 것조차 몰랐으니까.
그렇다고 그에 대해서 말해줄 수도 없었다.
지옥화를 잠재우기 위해 빙천관에 들어갔다가 백 년 만에 깨어났다고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말이다.
“그래도 어쨌든 그 힘 덕분에 목숨을 구했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군.”
천화광이 씁쓸한 어조로 말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그나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기적이었다.
그가 나아진 것은 의원의 능력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특별한 영약을 복용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몸속에 잠재되어 있던 그 기운이 알아서 치료했다.
그래도 워낙 심한 내상을 입어서 공력 손실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영원히 내가무공을 펼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무천, 네가 정말 내 친구라면 부탁 하나 하자.”
“말해봐.”
“그 새끼, 정혈단주. 네가 좀 죽여다오. 난 아무래도 힘들 것 같거든.”
혁무천은 이미 사마신과 붙어보았다.
죽이기 쉬운 자는 아니지만, 죽이지 못할 정도로 강한 자도 아니었다.
더구나 자신은 이제, 생명선 한 개 반을 잃은 대가로 공력이 일 성 정도 늘어난 상태였다.
아마 지금 다시 붙는다면, 며칠 전보다는 사마신을 더 강하게 몰아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순순히 그의 부탁을 받아주었다. 어차피 사마신은 자신이 처리하려 했으니 부탁이라 할 것도 없었다.
“좋아. 그놈은 내가 처리하지. 친구를 위해서.”
“그 새끼 죽이기 전에 내 말도 전해줘. 넌 죽지만 난 살아 있다고.”
“알았다. 전해주마.”
“고맙다, 무천.”
천화광은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네고 혁무천을 빤히 바라보았다.
기이하게도 이전보다 훨씬 편하게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힘을 잃으면서 욕망도, 시기도 내려놓은 듯했다.
“이런 말하긴 뭐한데…… 아마 네가 아니었다면 난 미쳐버렸을 거다.”
“왜?”
혹시라도 자신을 좋아해서?
혁무천은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다시 무공을 펼칠 수 있게 된다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너를 이길 수는 없을 것 같거든. 누워서 그 생각을 하니까 욕심도 덧없게 느껴지지 뭐야. 그래서 복수 외에 다른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흠, 이제야 사람이 됐군.”
혁무천의 말에 천화광이 다시 입술을 삐죽였다.
“……쳇.”
“너도 곧 알게 될 거다. 힘을 앞세웠을 때보다 앞으로가 더 행복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꼭 경험해본 사람처럼 말하네.”
“솔직히 내가 말을 안했는데, 너보다 몇 살 더 먹었거든. 그래서 그런 것도 경험해봤지.”
“…….”
“쉬어라. 사마신은 나에게 맡기고.”
“그래. 알았어.”
대답하는 천화광의 표정이 방에 들어와서 봤을 때보다 훨씬 편해보였다.
혁무천은 천화광의 방을 나섰다.
어느새 태양이 서산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앞으로 상승 무공을 펼치기는 힘들겠군.’
무형의 기로 천화광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기경팔맥의 곳곳이 막혀서 영약, 영단을 복용한다 해도 정상이 되기는 힘들었다.
굳이 방법을 찾는다면, 절대경지에 오른 고수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막힌 기맥을 뚫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 방법도 가능성이 반반이나 될까 싶었다.
천화광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천화광도 자신이 남긴 혈천여록의 마공에 의해서 저리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어쩌면 내가 말한 것처럼 지금이 나을지도 모르지.’
그때 정원을 돌아서 나오는 사람이 보였다.
사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자였는데, 곧장 혁무천을 향해 다가왔다. 아마도 혁무천이 천화광을 찾아간 것을 알고 기다렸던 듯했다.
“대장로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장로. 천두공을 말함이었다.
“안내하시오.”
***
장로원에서 기다리던 천두공은 혁무천이 들어오는 걸 보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앉으시구려.”
혁무천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천두공도 맞은편에 앉더니 직접 차를 따라주었다.
그러고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말문을 열었다.
“우리 만마성의 꼴이 말이 아니오.”
혁무천이 봐도 그랬다.
만마존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혁무천도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천양묵이 거절한 이상은.
“쳐 죽일 놈들이 사사건건 성주의 명령에 토를 달더니, 이제는 대놓고 위세를 떨고 있는 판이라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성주께선 그들 때문에 흔들릴 정도로 약한 분이 아닙니다.”
“그건 이 늙은이도 아오만……. 에잉…….”
천두공은 못마땅한 게 많은지 머리를 휘휘 젓고는,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그렇고, 이걸 좀 보시구려.”
얇은 책자였다.
“접힌 곳이 사마곡에 대한 기록이오. 예전 본 성의 무사였을 때 조사해놓은 정보인데, 마침 없애지 않고 그대로 있더구려.”
혁무천은 천두공의 말을 들으면서 책자를 펼쳐보았다.
접힌 곳을 펼치자 사마곡에 대한 정보가 보였다.
그런데 책의 내용을 읽어가던 혁무천의 눈빛이 어느 순간 반짝였다.
책자의 내용 중에는 사마곡의 고향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사마곡의 고향은 고요진이다. 상낙에서 동쪽으로 이백오십 리, 장안에서는 육백 리 거리다. 사마 씨를 쓰는 씨족이 모여 살고 있다.
아주 단순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혁무천이 관심이 가진 것은, 그곳이 바로 복우산의 서쪽 끝자락, 깊은 산속 마을이기 때문이었다.
‘정은맹의 처음 총단이나 복우산 임시 총단과 아주 멀리 떨어지지는 않은 곳이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터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는 본능이 있다.
정은맹이 사마가의 집성촌에서 가까운 곳에 총단을 둔 것도 우연은 아니리라.
그렇다면 사마신이 힘을 키운 곳, 정혈단의 숨겨진 총단도 그 근처일 가능성이 컸다.
‘그러고 보니 정혈단이 처음으로 활동한 곳도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어.’
물론 안경까지의 거리는 천 리나 되었다. 그래도 천하에 비하면 먼 거리도 아니었다.
혁무천은 책의 내용을 좀 더 읽어본 다음 덮었다.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허, 그래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려.”
“저에게 달리 할 말은 없습니까?”
혁무천이 다시 말하자, 천두공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공자, 하나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말씀해보십시오.”
“성주는 스스로 해결할 생각인가 봅니다만, 이 늙은이는 생각이 다릅니다. 해결될 문제였다면 진즉 해결되었을 거요.”
차분하게 입을 여는 천두공의 눈에서 분노가 일렁거렸다.
굳이 묻지 않더라도, 혁무천은 무엇 때문인지, 누구 때문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말씀이오만, 언제 기회가 되면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좀 보여주시오. 책임은 이 늙은이가 지겠소이다.”
혁무천은 돌려서 말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까지 손을 대면 됩니까?”
시원스런 혁무천의 대답에 천두공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천하의 어느 누가 만마성을 상대로 저리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만마성의 대장로이면서도 천두공은 흡족하기만 했다.
“공자 마음대로 하시구려. 병신을 만들어도 좋고…… 죽여도 탓하지 않겠소이다.”
혁무천은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띤 채.
***
장로원을 나온 혁무천은 거처가 있는 영빈관으로 향했다.
영빈관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장한 하나가 다가왔다. 주위를 슬쩍 둘러본 그가 혁무천에게 말했다.
“검마전주께서 만나 뵙기를 바라십니다.”
잠시 장한을 바라본 혁무천이 물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나,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내일 가지요.”
천두공의 부탁이 있으니 어차피 천조익을 한 번쯤은 만나야 했다. 하지만 서둘러서 만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장한이 마저 말했다.
“혈마전주님께서도 함께 계십니다. 무원장주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 하셨습니다.”
만마성의 물을 흐려놓은 사람은 두 전주다.
두 사람이 한 곳에 있다면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잘하면 하려던 일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으니까.
“알겠소. 앞장서시오.”
검마전으로 가자, 장한의 말대로 검마전주 천조익과 혈마전주 덕원이 함께 있었다.
넓은 방 안에는 그 두 사람 외에 중년 나이로 보이는 두 명의 호위무사만 있었다.
“무원장주님을 모셔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혁무천은 장한이 열어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천조익과 덕원은 의자에 앉은 채 눈길만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혁무천은 제 집이라도 되는 듯 뒷짐을 진 채 느긋이 걸어서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천조익과 덕원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대놓고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어서 오게.”
천조익이 먼저 화를 참으며 말했다.
혁무천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전각 안을 둘러보았다.
천양묵의 방과는 달리 제법 화려한 면도 있었다.
천천히 방을 둘러본 혁무천이 천조익을 보며 말했다.
“이 밤에 무슨 일이십니까?”
천조익이 답했다.
“자네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불렀네.”
“그래요? 뭘 알고 싶은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