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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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19화
319화
철혈마련과 귀천교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다 사도맹과 패왕문에서 보낸 지원무사들이 방성에 도착했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무천만 아니었다면.
아들을 죽인 원수만 아니었다면!
신도명산은 이를 악다문 채 눈을 들어 허공을 응시했다.
‘평아를 죽인 그놈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는 없어!’
자신이 복수를 외면한다면, 아들의 혼이 자신을 원망하며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눈을 내린 신도명산이 진효에게 말했다.
“백추완을 불러라.”
백추완은 삼전 중 하나인 천강전의 주인이기 이전에 칠웅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이 높았다.
신도명산과는 팔 년 전에 만났는데, 초절정경지의 고강한 무공뿐만 아니라, 상황판단도 빨랐다.
“하오면…….”
“그에게 장로 셋을 붙여주고, 천강전의 정예 이백을 데리고 가서 놈의 목을 가져오라 할 것이다.”
진효는 신도명산의 마음을 짐작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맹주.”
“그리고 너는 대정맹에 내가 써주는 서신을 전해라.”
움찔하며 고개를 쳐든 진효가 눈을 홉떴다.
“예?”
“철천지원수라 해도 적의 적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법이다. 대정맹이 제아무리 우리를 싫어한다 해도 마도만 하겠느냐?”
신도명산이 말하면서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후후후후. 이사명과 남궁무룡은 속이 끓겠지만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거다.”
***
이틀 후.
혁무천 일행이 만마성에 들어서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비록 정은맹과 정혈단에 의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긴 했으나, 만마성은 명실상부한 마도 제일 세력이었다.
조용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간이 작은 사람은 숨을 쉴 수 없는 만큼 압박감이 느껴졌다.
혁무천 일행 중 그 압박감 때문에 긴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어서 오세요, 무 장주님.”
호위무사들과 함께 만마대전 앞에 나와 있던 사야가 담담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슬쩍 고개를 끄덕인 혁무천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성주님께선?”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만마대전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저를 따라오세요.”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는 행동인데도 사야는 표정 변화 없이 대답했다.
혁무천은 사야를 따라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그때 건물군이 있는 쪽에서 십여 명이 빠르게 다가왔다.
칠십 대 노인부터 사십 대 중년인까지. 만마성의 고위급 간부들이었다.
“누구신가?”
다가오던 자들 중 나이가 칠십 대로 보이는 노인이 물었다.
백발에 눈썹이 역 팔자여서 유난히 싸늘한 인상인 노인이었다.
천조익. 천양묵에게는 오촌 숙부가 되는 자로, 만마성 서열 오위이자 검마전의 주인이기도 했다.
그의 질문에 사야가 대답했다.
“무원장의 무천 장주님이십니다.”
“무천?”
천조익은 칼날 같은 눈으로 혁무천을 쓸어보았다. 무언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무원장주가 여긴 어쩐 일인가?”
목소리에도 왠지 모를 날이 선 게 느껴졌다.
혁무천은 모른 척하고 포권을 취하며 대답했다.
“성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성주님을? 무슨 일로?”
“장사꾼이 장사 이야기 말고 뭐가 있겠습니까?”
“좀 더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겠나?”
“죄송하지만, 영업비밀이라 이 자리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군요.”
천조익은 혁무천의 두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어깨가 축 처지더니 급히 눈을 돌렸다.
고개까지 돌린 그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눈빛에 힘을 실어서 무천의 기세를 꺾으려 했는데, 오히려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저의 늪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아마 조금만 늦었으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을지도 몰랐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인상을 썼다.
“노부는 외부인이 본 성의 내밀한 일에 관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더구나 상인 따위가 끼어드는 건 더더욱 싫어하지. 혹시라도 엉뚱한 욕심을 품고 있으면 포기해라.”
천조익은 비록 서열 오위지만, 실제로는 천양묵의 지위를 위협할 정도로 만마성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다.
혁무천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가 무엇을 우려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만마성의 복잡한 상황에 끼어들 생각이 조금도 없으니 걱정 마시지요.”
“그 말, 잊지 마라.”
그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조익?!”
혁무천은 목소리의 주인이 천두공이라는 걸 알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천두공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왼팔 옷자락이 허공에서 펄럭거렸다.
미소를 띠고 있던 혁무천의 얼굴에 싸늘한 한풍이 불었다.
천두공이 중상을 입었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설마 하니 팔이 잘렸을 줄이야.
“공자, 무슨 일이신가?”
“별일 아닙니다. 성주님을 만나러 온 이유가 궁금하셨나 봅니다. 그건 그렇고…… 그 팔은 어떻게 되신 겁니까?”
“이거? 빌어먹을 사마곡에게 속아서 독에 당했네. 그래서 독을 팔에 몰아넣은 다음 잘라냈지. 아직은 죽고 싶지 않거든.”
천두공은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태연히 말했다. 하지만 입가의 씁쓸함만은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그는 천조익을 상대로 씁쓸함을 털어냈다.
“설마 무 공자에게 함부로 하진 않았겠지?”
천조익은 천두공에게 말대꾸할 만큼 간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전까지의 일이었다. 천두공의 팔이 하나 사라지면서 그의 간도 그만큼 커졌다.
“아닙니다, 백부. 그냥 궁금해서 몇 가지 물어봤을 뿐입니다.”
고개를 쳐들고 대답하는 천조익을 뚫어지게 쳐다본 천두공이 혁무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들어가세.”
“그러지요.”
천조익은 몸을 돌려서 안으로 향하는 혁무천과 천두공을 곤혹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백부님과 저놈은 무슨 사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접점도 없어보였다.
그런데 그때, 곁을 지나가던 중리안과 철명군이 말했다.
“마귀들이 바글바글 하다고 해서 어떤 곳인가 했는데, 이곳도 결국은 사람 사는 곳이군요.”
“경치 하나는 좋군.”
천조익은 눈을 가늘게 좁히고 두 사람을 흘겨보았다.
‘이놈들이……!’
하지만 곧 흠칫하며 눈이 커졌다.
‘뭐, 뭐야?’
자신도 모르게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마치 무너뜨릴 수 없는 철벽을 마주한 느낌.
철명군은 천조익을 향해서 눈에 한번 힘을 주고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멀어진 후에야 천조익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젠장.’
돌아선 그는 옆에 서 있는 중년인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대장로와 저놈이 어떤 관계인지 알아봐라.”
“예, 전주.”
천양묵은 만마대전의 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실에는 혁무천만 들어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대전의 커다란 탁자에 둘러앉아서 기다렸다.
천두공조차 철명군 앞쪽에 앉아서 굳은 표정으로 철명군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요히 앉아 있는 철명군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무형의 기세를 느끼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허어, 공자 옆에 저런 자가 있었다니…….’
철명군 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는 중리안 역시 천두공을 놀라게 했다.
‘왜 세상이 무원장, 무원장 하는지 알겠군.’
혁무천이 사야의 안내를 받아서 내실로 들어가자, 천양묵이 의자에 앉아 있고, 좌우에 호법 넷이 서 있었다.
어둑한 실내를 기둥에 매달린 유등이 밝히고 있었지만, 총 열 개중 다섯 개만 켜져 있어서인지 조금 어둡게 느껴졌다.
천양묵의 앞까지 다가간 사야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모셔왔습니다.”
양팔을 탁자 위에 올리고 두 손을 깍지 낀 채 턱을 받치고 있던 천양묵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이제 편지를 쓰지 않았다.
“왔나? 앉게.”
혁무천은 사양하지 않고 천양묵의 맞은편에 앉았다. 사야는 앉지 않고 한쪽으로 가서 섰다.
안에서 시비가 차를 들고 나오더니 두 사람 앞에 잔을 놓고 따랐다.
“요즘 본 성의 분위가가 말이 아니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떻든가?”
천양묵이 불쑥 물었다.
혁무천은 시비가 따른 차를 한 모금 맛보고 나서 대답했다.
“성주님께 불만 있는 사람이 많은가 봅니다.”
“최근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지.”
천양묵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혁무천이 그에 대고 한마디 더했다.
“솔직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엉망이더군요. 날이 서 있긴 한데 제멋대로 섰다고나 할까요? 거기다 엉뚱한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 말에 사야가 짧게 말했다.
“들어오기 전에 검마전주님을 만났습니다.”
천양묵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래? 그 양반이라면 전부터 나에게 불만이 많았지.”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직 자네 힘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네. 여긴 만마성이야. 그리고 내가 바로 만마존이네.”
천양묵이 허리를 세우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혁무천도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싫으시다면 저도 신경 끄고 다른 이야기를 하지요.”
혁무천은 뚫어지게 바라보는 천양묵의 시선을 외면한 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이제는 괜찮네.”
“부인께서 많이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만.”
“험, 그거야 뭐…….”
천양묵이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화제를 돌렸다.
“귀천교와 철혈마련의 피해가 컸나 보더군.”
“정은맹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그 친구들도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거야.”
“사도맹과 패왕문도 도착한 것 같더군요.”
만마성으로 오기 직전 풍마문의 보고를 받았다. 아직 전격적인 이동은 아니었지만, 산서의 사도맹과 하북의 패왕문에서 각각 오륙백 명씩 보낸 무사들이 방성에 도착했다고 했다.
게다가 사천으로 돌아갔던 마천문 역시 일천 무사가 재차 중원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도 움직여야 할 것 같네. 그래서 자넬 보자고 했지. 자네 생각을 들어보려고.”
“나서는 건 상관없습니다만, 앞장서지는 마십시오.”
혁무천이 천양묵의 초대에 바로 응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천양묵은 혁무천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왜 그래야 하지? 나는 놈들에게 피의 대가를 반드시, 확실하게 받아낼 생각이네. 남 뒤꽁무니나 쫓아가고 싶진 않아.”
“자칫하면 싸움에서 이기고도 빈털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귀천교나 철혈마련은 만마성의 복수심을 철저히 이용할 겁니다. 정은맹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강한 곳이 만마성이니까요. 결국 이긴다 해도 이득은 그들이 챙길 거라는 거지요.”
“으으음.”
천양묵도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었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뒤로 처질 수는 없으니, 검마전과 혈마전을 앞세우고 성주님께선 한발 뒤처져서 움직이십시오.”
혁무천의 말에 천양묵의 눈빛이 반짝였다.
“흐으음, 검마전과 혈마전을 앞세운다?”
“어떻게 되든, 성주님으로선 손해 볼 것이 없잖습니까. 만마성의 자존심도 지킬 수 있을 것이고요.”
검마전과 혈마전 모두 천양묵에게 불만이 많았다.
그들의 힘도 약화시키고 만마성의 자존심도 지킬 수 있다면 천양묵으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괜찮은 생각이군. 그런데 자넨? 무원장도 나설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