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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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91화
혈하-第 91 章 골 때리는 청혼
사군보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다.
이미 제갈빈이 자신의 정체를 안다면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죽이거나!
아니면 내 편을 만들거나!
제갈빈이라면 제갈성민이 말한 ‘금제’에 대해 잘 알 것이고, 또 제갈성민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짜라는 것을 어찌 알았지요.”
제갈빈은 생긋 웃었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어요.”
“그럼?”
“이제 우리는 한 배를 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요? 제갈청곤이 진짜건, 가짜건 상관없이.”
“한 배? 무슨 의미죠?”
“당신이 써 놓은 편지.”
“음……”
“당신은 칼을 쥐었다 했어요. 나보고 칼집이 되어 달라 했어요. 그래서 지켜보았고, 결정을 내린 거여요. 당신의 칼집이 되기로! 그것이 오늘 밤 보자는 의미였지요.”
“단지 그것뿐이오?”
“우선 잔을 받으세요.”
사군보는 그녀가 빙어 같은 손가락으로 술을 따라 주는 것을 받았다.
호박 빛 액체가 몹시 감미롭게 느껴졌다.
사군보는 그녀의 잔에도 술을 따라주었다.
“호호…… 앞날을 위해!”
쨍……!
맑은 소리가 울렸다.
두 남녀는 눈빛을 교환하며 술잔을 들이켰다.
술은 향기로웠다.
더구나 미녀는 더욱 향기로웠다.
밤은 깊어 가고, 주석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술이 열 순배는 돌았다.
제갈빈은 사양하지 않고 계속 마셨다.
어느 덧 그녀의 얼굴은 잘 익은 석류처럼 발그레해졌다.
특히 눈빛이 거의 도발적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사군보의 가슴은 더 차가워졌다.
문득 제갈빈이 고혹적인 눈길로 물었다.
“정말 제가 아름다운가요?”
사군보는 그녀의 약간 취한 것 같은 물음에 흠칫하다가 곧 대답했다.
“아름답군요.”
“음…… 홍살마희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사군보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건 굳이 비교하자면 야화와 장미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갈빈은 입으로 더운 김을 불어냈다.
“호호…… 그녀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무슨 말이죠?”
“제 말은 어느 정도 사이냐는 거예요.”
“홍살마희는…… 협조자일 뿐이오.”
“호호…… 정말 그럴까요?”
“정말이오.”
“제가 보기에 홍살마희는 당신을 무척 연모하는 것 같은데.”
사군보는 그녀의 대담한 눈초리를 피하며 말했다.
“그건 그녀의 자유. 나는 다만 그녀를 도와 편복당을 일으키려 할뿐이오.”
“그런 다음에는 요?”
“그건……”
“호호……그만할 게요. 당신이 쩔쩔매는 모습은 보기 좋은 게 아니군요.”
제갈빈은 짤랑짤랑 웃으며 그의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바람에 그녀의 앞가슴 계곡이 살포시 보였다.
“이젠 당신의 진면목을 보여줘요. 난 내 진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건 불공평하잖아요.”
사군보는 문득 안색을 굳혔다.
“그 전에, 당신 의도는 뭐요?”
“먼저 진면목을 보여 주세요.”
“……좋소.”
사군보는 흔쾌히 대답한 다음 얼굴을 손바닥으로 쓱 문질렀다.
그는 곧 본래의 모습을 하였다.
“이것이 내 모습입니다.”
“아!”
제갈빈은 눈을 크게 뜨며 입술을 고혹적으로 반쯤 벌렸다.
그녀의 고른 치열과 함께 방심이 스스로 문을 여는 것 같았다.
“미남이시군요!”
“과찬입니다.”
사군보는 쓰게 웃었다.
“이제 되었죠?”
“공자님의 이름은?”
“사군보!”
“탈명혈하 사군보! 역시 그랬군요.”
제갈빈은 도취된 듯 사군보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군보는 얼굴이 뜨듯해지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이젠 속내를 드러내놓죠. 내 정체를 폭로하지 않고 오히려 돕겠다는 저의는 뭐요?”
제갈빈은 문득 두 눈에 이상한 광채를 발하며 말했다.
“부탁이 있어요. 날 아내로 삼겠다고 가주에게 말해 줘요.”
“뭐요!”
사군보는 기겁했다.
“당신과 제갈청곤은 고모와 조카 사이인데 어떻게 결혼을! 이건 말도 안 되는 억지군.”
“호호호……당신, 몰랐어요? 제갈세가는 순혈주의라는 것을?”
“순혈주의! 설마!”
“그 설마가 맞아요. 제갈세가는 직계만 아니면 누구와도 결혼할 수 있어요.”
“이런!”
사군보는 뒷퉁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순혈(純血).
순수한 혈통을 잇는 결혼제도다.
오래전부터 중화 한족은 순혈 혈통에 따른 결혼이 죄가 되지는 않았다.
맞 사돈.
사촌지간의 결혼.
이 모든 게 허용되는 게 순혈 결혼제도다.
그건 혈통을 중시하고, 남자의 대가 약한 가문일수록 더 심했다.
제갈세가는 순혈 정통을 중시 여긴다.
이건 오래전, 제갈세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갈공명, 그 이전부터 내려오던 전통이다.
너무나 뜻밖의 말에 사군보의 안색이 변했다.
“진심입니까?”
“왜요? 내가 나이가 많아서 싫은가요?”
“그건 이유가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문제죠? 아! 나 처녀에요. 지금까지 남자라고는 단 한 명도 사귀어 본 적이 없어요. 심지어 첫입맞춤도 못해 봤어요.”
“맙소사.”
쾅쾅.
연거푸 뒷퉁수를 때리는 제갈빈이다.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죠. 난 제갈승과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제갈승!”
제갈승(諸葛昇).
제갈세가의 재정은 강호 곳곳에 퍼져 있는 서원(書院)과 학당(學堂), 그리고 재건상회(材建商會)에서 충당이 된다.
제갈세가는 지략이 뛰어난 가문이다.
서원과 학당을 운영해 그 지혜를 나눔으로써 제자들을 양성하고 재원을 모은다.
동시 기관, 진식, 하도낙서 등을 접목해 집을 짓거나 궁, 화원, 정원 등을 지을 때 설계사를 지원해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중원 대관 가운데 제갈세가 사람들 손이 안 탄 건축물이 없을 정도로 그들의 실력은 뛰어나다.
제갈승은 제갈세가의 모든 재정을 총괄하는 재무총관이다.
제갈승의 현재 나이 50대 초반.
이미 결혼을 해서 슬하에 아들딸이 다섯이다.
제갈빈과는 사촌 관계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결혼 얘기가 오고 간다니.
사군보는 눈썹을 꿈틀했다.
“결혼?”
“가주는 나와 제갈승을 결혼시키려 하고 있어요.”
“왜 그렇죠? 아무리 순혈이라 해도 이미 제갈승은 결혼까지 한 몸인데.”
“그런 건 본가에서는 문제 삼지 않아요.”
“그렇다면 왜 당신은 이 결혼을 안 하려고 하죠?”
“흥! 그 자는 위선자예요! 겉으로는 대장부이자 인의대협으로 행세하지만 실은 겉 다르고 속 다른 비열한 소인이에요. 난 위선자가 제일 싫어요.”
“……”
사군보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저는 그런 자와 결코 맺어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차일피일 혼사를 미루었지만 이젠 더 미룰 수 없어요.”
“그래서 어찌할 셈입니까?”
“저를 도와주세요.”
“나보고 연극을 하란 말입니까?”
“네. 그럼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협조할게요.”
“하나 혼사란 중대지사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일 당신의 명예가 손상되기라도 한다면.”
“저는 개의치 않아요.”
“하지만……”
사군보가 난색을 표하자 제갈빈은 안색이 변했다.
“흥! 거절하겠단 말인가요?”
“그것은……”
“그렇다면 공자의 정체를 폭로해도 상관이 없단 말인가요?”
사군보는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결코 강압을 감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는 기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나를 믿을 수 있나요? 제갈청곤으로 변신해 이곳에 침투한 나를 어떻게 생각하죠?”
“나는 내 눈을 믿어요. 공자는 절대 나쁜 의도로 본가에 들어온 게 아닐 거예요.”
“내 손에 제갈청곤이 죽었습니다. 내가 그를 죽였다고요. 당신 조카를.”
“상관없다니까요.”
“허 참.”
“그리고 청곤은 죽어도 싸요. 그 놈은 날 자기 여자로 만들려고 언제나 수를 쓰던 놈이었어요.”
“개판이군. 아! 미안합니다. 나도 모르게…….”
“개판 맞아요.”
“쩝……”
“그럼 허락하시는 건가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사군보는 진지하게 말했다.
“내 신분을 지켜줘야 하며 이곳에서의 내 활동에 협조해 주는 겁니다.”
“호호호……!”
제갈빈은 느닷없이 교소를 터뜨렸다.
사군보는 묵묵히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는 웃음을 뚝 그치더니 분명한 음성으로 말했다.
“공자는 정말 대담하시군요. 추호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조건을 걸다니.”
“이해를 바랄 뿐입니다.”
“호호…… 좋아요. 대신……”
제갈빈은 그윽한 눈길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오늘부터 저를 다정히 대해 주셔야 해요. 호호…… 우린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거예요.”
사군보는 남자였다.
절세미인의 유혹은 그 누구라도 뿌리치기 힘들다.
그의 입가에 매력적인 웃음이 흘렀다.
“미녀의 호의를 마다할 바보는 아니오.”
“호호호……!”
제갈빈은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얼굴은 더욱 요요롭게 빛나고 있었다.
사내라면 혹하지 않을 수 없는 마력적인 향을 발하는 요화(妖花)였다.
밤의 꽃이었다.
“그런데 공자는 왜 본가에 들어왔어요?”
“……”
사군보는 고민했다.
그녀에게 현 가주가 가짜일지 모른다고 말해야 할까?
제갈세가에 대하교라는 신비세력의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고 말해야 할까?
‘아직은 아니다.’
결정을 내린 그는 그저 담담하게 웃었다.
“조금 더 서로를 신뢰한 다음 얘기합시다.”
“그래요, 어차피 협조하기로 했으니 가만히 있어도 자연히 알게 되겠군요.”
그녀는 선선히 응했다.
“술이나 더 해요. 한배를 탄 동지끼리.”
갑자기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동지가 아니구나, 예비 신랑님. 호호호……”
나이가 있기 때문일까?
그녀는 거침이 없었다.
밤이 다 가도록 두 남녀는 술을 마셨다.
술잔이 거듭할수록 분위기는 뜨거워졌다.
이윽고 새벽녘이 되었을 때 제갈빈은 사군보의 어깨에 기대며 술잔을 떨어뜨렸다.
“취하는군요.”
사군보는 술잔을 멍하니 내려 보았다.
그의 코끝에 여인의 육감적인 체향이 강하게 자극해 오고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곧 쓰러지려는 제갈빈을 부축했다.
그녀는 거의 인사불성이었으므로 그는 그녀를 안다시피 하여 내실 안으로 들어갔다.
분홍빛 휘장이 드리워진 침상에 그녀를 눕히려 했다.
“으음……!”
문득 제갈빈은 무의식적으로 두 팔로 그의 목을 감고 엉켜들었다.
얇은 나삼 사이로 그녀의 뜨겁고 뭉클한 육감이 전해졌다.
사군보는 그녀의 꽃 같은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반쯤 벌어진 붉은 입술은 그를 강하게 유혹하고 있었다.
사군보는 갑자기 피가 빨리 흐르는 것을 느꼈다.
더구나 익을 대로 익은 제갈빈의 젖가슴이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