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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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90화
혈하-第 90 章 들통 난 정체
담여운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군보가 그녀에게 찻잔을 내밀고 있었다.
느닷없는 행동에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이게 뭐예요?”
사군보는 진지하게 안색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찻잔에 코를 대면 향기가 날 거야.”
담여운은 찻잔을 받아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녀의 안색이 기묘하게 변했다.
“이건 천리향(千里香)이예요!”
“천리향, 맞지!”
“네, 틀림없어요. 이 향은 일단 몸에 배게 되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아요. 뿐만 아니라 특수한 훈련을 받은 사람은 천 리 밖에서도 맡을 수 있어요. 한데 왜 찻잔에?”
사군보의 눈이 번쩍였다.
“그럼 천리향이 몸에 밴 사람이 차를 마시면 이렇게 찻잔에 냄새가 남게 되지?”
“그래요. 한데?”
“이제야 알겠군. 백현대사의 고육지계의 뜻을!”
“에에?”
담여운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군보는 의자에 앉아 잠시 명상에 잠겼다.
백현대사는 두루마리 속에 천리향을 집어넣었다.
그 두루마리를 푼 자의 몸에 향이 배이도록 했다.
그런 후, 향을 쫓아 범인을 밝히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양자가 죽은 이유는 그가 바로 백현대사를 죽였기 때문이다.
원흉은 그에게 두루마리를 받은 후 그의 입을 막기 위해 그를 죽였을 것이다.
원흉은 바로 천리향의 향기를 풍기는 자다!
사군보는 벌떡 일어났다.
“나 좀 나갔다 올게.”
“어디로요? 좀 쉬어요.”
담여운은 울상을 지었다.
“어차피 세가 안인데 뭐.”
사군보는 빙긋 웃었다.
그는 담여운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금방 올게.”
담여운은 멍하니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
제갈성민은 크게 분노했다.
“이놈! 이 아비의 당부도 무시할 수 있느냐? 네놈이 지금 벌이고 있는 일은 이 아비는 물론 본 세가의 식솔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짓이다. 당장 네가 꾸미고 있는 일을 모두 중단해라!”
그는 제갈청곤, 즉, 사군보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사군보는 이른 아침 제갈성민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에게 천리향에 대해 말했다.
그의 반응을 보기 위함이다.
그런데 노발대발이다.
‘역시 뭔가 있다.’
사군보는 속내를 감추며 겉으로는 불만을 토했다.
“아버님, 어째서 소자를 나무라시는 겁니까? 소자는 본가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을 자체적으로 해결해 보려고……”
제갈성민은 말을 끊었다.
“그만 두자!”
그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사군보의 어깨를 두드리며 탄식했다.
“네가 편복당의 정보망까지 마음대로 주무르는데다가 무양자에게 당당히 도전했던 그 모든 모습이며 행동에 이 아비는 뛸 듯이 기뻐했다. 네가 후기지수 가운데 최고가 되고 제갈세가 최고의 젊은 고수가 된다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하나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금제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자중해라.”
사군보는 번뜩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무언가가 있다.’
금제(禁制).
바로 그것이다.
이때다.
“이놈!”
제갈성민의 음성이 싸늘해졌다.
“바른 대로 실토해라!”
“무엇을 말씀입니까?”
“네놈이 그 동안 무슨 기연을 만났는지 냉큼 말해라!”
“기연이라니요?”
“이놈! 아비가 아들의 무공 성취를 모를 성 싶으냐?”
“네?”
사군보는 흠칫했다.
잠시 어깨를 만졌을 뿐이다.
그 가벼운 손짓으로 제갈성민은 대번에 사군보의 내공 성취를 알아본 것이다.
사군보는 일단 오리발부터 내밀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소자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놈, 네놈이 밖에 나갔다 온 이후, 그 무공이 무서울 정도로 증진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찌된 일이냐?”
“그것은……”
“이놈! 아비에게조차 속일 셈이냐.”
사군보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은……”
“옳지, 무엇이냐?”
“영약을 복용했습니다.”
“무슨 영약이냐?”
“설련실(雪蓮實)입니다.”
“설련실!”
제갈성민은 입을 딱 벌렸다.
“그래서 네 공력이 배로 늘어났구나!”
“……”
“왜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
“그건…… 태우때문입니다.”
“흠……”
“제 성취에 기쁜 나머지 아버지께서 이를 공표라도 하게 되면 태우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그 아이는 욕심이 많고, 음흉합니다.”
“흠……”
제갈성민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잠시 사군보를 응시하던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구나.”
“죄송합니다.”
“아무튼 너는 가문의 미래를 짊어진 몸이다. 각별히 몸조심해라.”
사군보는 어깨를 펴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아버님.”
사군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재차 물었다.
“그나저나, 정녕 이대로 있어야 합니까?”
제갈성민은 신음을 흘렸다.
“가 쉬거라. 아직 밝힐 때가 못 된다.”
“아버님!”
“아비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겠다.”
사군보는 할 수 없이 깊이 읍한 후 내청을 물러 나왔다.
그의 가슴속은 의문이 가득 차고 있었다.
‘누가 제갈세가에 금제를 펼쳤을까?’
제갈성민이 금제란 말을 거론한 것을 보아 금제는 제갈성민에게만 걸린 게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제갈세가 전부가 어떤 제약에 걸려있는 것 같았다.
***
담여운은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군보가 들어서자 몸을 일으키며 걱정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공자님, 제갈세가주가 눈치를 챘나요?”
“아니.”
사군보는 의자에 앉았다.
담여운이 조바심을 낸다.
“너무 드러내신 것이 아닐까요? 그 동안 암암리에 움직였다 해도 제갈세가의 눈과 귀는 많아요.”
“어쩔 수 없었어. 그 보다는……”
그는 백현대사의 고육지계와 천리향에 대해 전음을 보냈다.
그 말에 그녀는 놀란 듯했다.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요?”
“가보는 곳까지 가볼 생각이오.”
“할 수 없군요. 이미 말을 탄 형국이에요. 어쨌건 조심하세요. 만일 공자님이 가짜라는 것이 밝혀지면 저도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을 거예요. 공자님께서 제갈청곤을 죽였으니까요.”
“추호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알아요. 하지만 제갈세가는 거대해요.”
“유념하리다.”
사군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담여운이 문득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조금 전에 제갈빈이 찾아왔었어요. 그는 오늘밤 삼경 자신의 처소를 방문해 달라고 했어요.”
“그런 일이 있었군.”
사군보는 흠칫했다.
“혹시 그가 무슨 약점을 잡고 협박을 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사군보는 생각을 굴렸다.
‘이곳에 온 첫날 밤, 그가 이곳을 엿보았을 때부터 그는 항상 날 눈여겨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이 넘도록 내게 접근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날 찾는다?’
사군보는 명상에 빠졌다.
담여운이 물었다.
“공자님, 언제까지 이곳에 계실 것인가요?”
사군보는 생긋 웃으며 담담히 말했다.
“이곳은 현재 사건의 중심지나 다름이 없어. 가능한 한 이곳에서 많은 것을 탐지할 예정이야. 그런 다음 나대로의 계획이 있고.”
“계획 요?”
담여운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그날 밤.
휙-
공명전에 한 가닥 인영이 스며들었다.
인영은 정실 안으로 연기처럼 스며들었다.
정실 안에 들어선 사람은 사군보다.
그는 방안에 내려서자마자 흠칫했다.
탁자에 술상이 차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이 오르는 것으로 미루어 준비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때다.
“호호호……!”
은방울 구르는 듯 청아하고 고혹스런 여인의 웃음소리와 함께 내실 안으로부터 한 미녀가 걸어 나왔다.
미녀를 보는 사군보는 눈앞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두 눈동자는 보석처럼 빛나고 피부는 희다 못해 투명했다.
구름 같은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유연한 허리까지 내려왔다.
하늘거리는 연홍빛 나삼은 은은한 몸매를 투영시키고 있었다.
미녀는 입가에 혼백마저 녹일 것 같은 미소를 담고 있었다.
“호호…… 왜, 뜻밖이냐, 이런 모습이?”
사군보는 숨을 들이마셨다.
“큼! 큼!”
사군보는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사실 지금 그는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안했다.
제갈빈은 제갈청곤에게는 막내 고모다.
문제는 제갈청곤이 막내 고모인 제갈빈을 어떻게 부르느냐 하는 점이다.
평소 제갈빈은 남장을 했다.
심지어 새로 온 하인이나 시녀, 제갈세가 3대 제자들은 그녀가 남장여인이란 것을 모를 정도다.
그런 그녀가 사군보를 초빙해 놓고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래, 오랜만에 고모의 모습을 보니 어때?”
‘이거 조심해야 하겠는데.’
사군보는 경각심을 올렸다.
“오랫동안 남장을 했다가 여장을 하니 어색하네. 흉하냐?”
“아, 아니요. 너무나 아름답기에……”
“호호…… 진심이냐?”
“네, 진심입니다.”
“고모 나이 벌써 38이다. 다 늙었는데 아름답다니. 빈말이라도 기분은 좋구나.”
“진짠데……”
사군보는 빙긋 웃었다.
“나는 거짓을 몰라요.”
“호호……그 거짓말 진짜 거짓말이지?”
“진짜라니까요.”
“호호…… 과연 절묘하군요. 제갈청곤의 흉내를 완벽하게 하고 있군.”
갑자기 제갈빈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
“무슨 말이에요?”
사군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심 가슴이 철렁했다.
제갈빈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일단 앉죠.”
조카를 대하듯 편하게 말하던 말투가 묵직해졌다.
“어서 앉아요. 술 한 잔 하면서 우리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해요.”
살기는 없었다.
적의도 안 보인다.
사군보는 그녀를 담담하게 응시하다 이내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제갈청곤의 흉내라니? 오늘은 이상한 말만 하네요. 안하던 여장도 하고.”
“끝까지 오리발이군요.”
“오리발이라니요?”
“흥! 청곤은 나에게 반말을 합니다. 그것도 마치 자기가 갖고 노는 성적 노리개 게집을 보듯 그런 눈을 하면서.”
“……!”
사군보는 움찔했다.
설마 그럴려고?
어찌 되었건 고모다.
그런 고모를 노리개 취급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혹시 떠보는 건 아닐까?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내가 언제 그랬다고요? 누가 들으면 날 패륜아라 하겠어요.”
“용과 지렁이의 차이를 아나요?”
사군보는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누가 용이고, 누가 지렁이지요?”
“물론 진짜 제갈청곤이 지렁이죠. 가짜 제갈청곤 공자!”
제갈빈은 웃으며 그를 보았지만 그녀의 눈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