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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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86화
혈하-第 86 章 그는 왜 미끼를 자처했나?
“간세요!”
“물증은 있습니까?”
“설마, 본가에도?”
중인들이 크게 놀랐다.
백현대사는 침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음……비록 물증은 아직 잡지 못했지만 각 문파의 주요 정보가 어디론가 흘러나가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게 확인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럼 그 정보가 최종적으로 패왕보로 가고 있다는 겁니까?”
“허! 대체 이런 일이 왜?”
“패왕보가 이렇게 갑자기 부상한 힘은 어디서 온 걸까요?”
“오랫동안 준비한 게 분명해.”
“그렇겠네요.”
좌중이 웅성거리자 백현대사가 낮게 기침을 했다.
“흠! 기찰전의 보고를 계속 하겠습니다.”
“어서 말해 보세요, 대사.”
“다들 조용하고 얘기를 마저 들읍시다.”
“아미타불……지금 기찰전에서 심층 조사 중에 있습니다. 마침 제갈세가 개파 기념일을 맞아 각 문파에서 사절단이 오는지라 이 기회에 이 사실을 알리고자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제갈세가주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개파 기념 연회가 끝난 후 갑자기 회동을 갖자고 한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 각파의 사절단주들이다.
“심증뿐이지만 사실 몇 가지 물증을 찾았습니다.”
“오! 다행이군요!”
“어서 말해 주시오, 대사.”
“본가에 간세가 있다면 당장 잡아 들여야 합니다.”
“과연 본가에도 간세가 있을까? 있다면 누구고, 어느 누가 개입이 되었을까?”
“으음……”
좌중 곳곳에서 무거운 신음이 흐른다.
백현대사는 중인들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이 자리에 우리가 모인 것이 어쩌면 벌써 패왕보 간세 귀에 들어갔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겠군.”
“이런 젠장!”
사절단주들의 회의.
사절단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제자들을 대동하고 왔고, 단주들만 회의가 있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이미 발설한 상태다.
만약 그 많은 제자들 중 단 한 명의 간세라도 있다면 이미 이 회동은 패왕보의 주목을 받고 있을 게 뻔하다.
“누구나 자신의 비밀이 밝혀지기를 원하지 않을 겁니다. 특히 모종의 큰 뜻을 가지고 일을 꾸미는 자일수록 그 일이 중간에 멈추어지는 것을 원치 않겠지요.”
그의 말은 당연한 이치다.
백현대사는 문득 품에서 둘둘 말려진 두루마리를 꺼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좌중의 인물들은 모두 백현대사의 손에 쥐어진 두루마리에 집중되었다.
“이 안에는 그 동안 소림사에서 은밀하게 알아낸 패왕보의 분포와 그곳에 속한 인물들의 명단이 적혀져 있습니다. 물론 이 두루마리에 있는 연명부는 기찰전도 모르는 일이외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찰전 모르게 기찰전에 소속되어 있는 자까지 조사했고, 그리하여 기찰전 안에도 그 세력의 간세가 있음을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설마 기찰전까지!”
“놀라운 일이군.”
중인들의 얼굴에 불신이 가득했다.
대정회 기찰전.
그곳은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의 신분은 만천하가 보장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하고, 그 협기가 출중한 인사들뿐이다.
그런 인사들 속에 패왕보의 간세가 있다는 것은 곧 패왕보에서 앉아서 대정회의 움직임을 훤히 꿰차고 있다는 말이 된다.
기찰전은 대정회의 귀와 눈이다.
그런 곳까지 간세가 있다는 사실은 중인들의 가슴을 더욱 무겁게 했다.
그런데 더 무겁게 하는 것은 이어진 백현대사의 말이다.
“만약 빈승이 누군가에 의해 죽는다면 그때 여러분들은 이 두루마리를 열어보십시오. 그럼 누가 패왕보의 간세인지 알게 될 겁니다.”
“설마 대사께서 미끼가 되실 생각입니까?”
“그건 아니 될 일입니다.”
“차라리 여기서 공개를 하시지요.”
“아미타불……공개할 수 없습니다.”
“왜요?”
“타초경사란 말을 아시지요?”
“음……꼬리가 밝혀서 몸통이 숨을 수 있다 이거군요.”
“더 확실한 확증을 잡아야 합니다. 아미타불……”
마치 다시는 입을 열지 않겠다는 듯이 백현대사는 눈을 감았다.
그의 말은 중인들을 커다란 충격과 경악 속으로 몰아넣었다.
“설마 이 안에도?”
“아니겠지?”
좌중의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백현대사가 한 말은 이곳에도 간세가 있다는 말이 되니 어찌 그렇지 않으랴.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을까?
점창의 화양도장이 입을 열었다.
“대사. 그 두루마리를 어떻게 처리할 셈이시오.”
백현대사는 눈을 뜨고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빈승이 품속에 지니고 있을 겁니다.”
“만일 그것마저 탈취된다면?”
“……”
백현대사는 눈을 감은 채 함구했다.
그는 왜 패왕보의 간세에 대한 정보가 담긴 두루마리를 자신이 갖고 있다는 것을 공개했을까?
이것이 이곳에 모인 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러나 모두 그 점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제갈성민이 입을 열었다.
“일단 각파 상황을 예의 주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겠군. 허~ 본문의 정보를 유출시키는 간세라니……”
좌중의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회의는 곧 끝났다.
자비원에 모였던 각파의 고수들은 결국 뿔뿔이 헤어졌다.
하나 그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 쌍의 맑은 눈동자가 오래 전부터 그들의 모든 대화를 주시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자비원의 어두운 처마 밑.
그것에는 사군보가 은신해 있었다.
‘소림사……막여천 아저씨가 조심하라 하더니, 역시 소림인가?’
사군보의 눈빛은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 노승은 대하교에 대해 알고 있음이 틀림없다!’
사군보는 백현대사의 말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사군보는 자비원에 아직도 백현대사가 눈을 감고 홀로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소림은 대하교에 대한 심증과 확신을 가졌지만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 이와 같은 고육지계를 펼치고 있다. 백현은 스스로 미끼를 던져 대하교의 마각을 드러내게 하려는 의도다.’
어둠 속에서 사군보의 두 눈이 강하게 빛났다.
‘그렇다면 백현은 어떤 방법으로 증명하겠다는 것일까?’
사군보의 눈길이 두루마리에 머물렀다.
‘문제는 저것이다! 저 두루마리 속에 비밀의 열쇠가 들어 있다.’
사군보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살펴보았다.
머지않아 날이 밝을 것이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설마 오늘 중에 독수를 뻗지는 않겠지.’
사군보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몸을 움직였다.
그는 가느다란 연기가 되어 날아갔다.
이때다.
눈을 감고 있던 백현대사는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아니었는가?’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군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문득 그의 미간에 잿빛 그늘이 덮였다.
**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담여옥은 초조함에 방안을 서성거렸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제갈세가 밖으로 나가서 편복당에 연락을 하고 싶었다.
간단하다.
편복당 제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암호를 근처 아무 객잔이나, 주루, 기방 입구에 그려놓으면 된다.
올해 열린 제갈세가의 개파 기념일 행사는 지금까지 치러온 행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보통 사람들은 흥청망청, 즐거움에 행사를 즐겼지만 각 문파의 사절단과 주요 인사들의 언행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뭔가가 있는데……”
현 제갈세가주는 가짜로 심증이 확실한 상태다.
지난 한 달 동안 담여운은 제갈세가 안에 근무하는 시녀들과 무척 가깝게 지냈다.
집안의 대소사를 담당하고, 온갖 궂은일을 하는 시녀들이야말로 그 집안 내력을 살필 때 가장 중요하고 유용한 정보원이다.
침실 청소하는 시녀의 말을 들으면 제갈세가주 부부의 금슬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수라간의 시녀들을 잘 구슬리면 가주의 식성,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
내당 시녀들과 친하면 가주의 행동반경이 나온다.
그런데 특별한 것이 없었다.
아무리 철저한 사전 준비 끝에 변장을 했다 해도 완벽할 수 없다.
특히 식습관과 성적인 습관은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설마 가짜가 아니란 말인가?
이젠 회의마저 들 정도다.
그런데 개파 기념행사 후 구대문파와 사대세가 사람들이 은밀하게 회동을 했다.
자연 그 내용이 궁금해 미칠 지경인데 알아낼 길이 없었다.
믿는 건 은밀하게 움직이는 사군보뿐.
“아직 회의가 안 끝난 건가? 도대체 무슨 얘기가 오가는 거야?”
발을 동동 구르며 궁금해 할 때다.
“어디 안 좋아요?”
담여운의 등 뒤로부터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담여운은 일순 빙글 몸을 돌렸다.
그와 동시 그녀의 입가에 고혹적인 미소가 번졌다.
“왔어요!”
언제 나타났는지 그녀의 등 뒤에 사군보가 오연히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내가 온 게 반가운 거요? 아니면 내가 갖고 온 소식이 반가운 거요?”
“둘 다요. 그래 무슨 내용이었어요?”
“회의 내용이 더 궁금했구먼.”
“나 궁금해 미치겠다고요.”
“누가 편복당주 딸 아니랄까봐.”
픽 웃은 사군보는 회의 내용을 알려 주었다.
그의 이야기가 계속 될 동안 담여운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경청하면서 뇌리를 굴렸다.
잠시 후, 사군보의 말이 끝나자 그녀가 질문을 던졌다.
“지금 백현대사가 모종의 증거가 될 수 있는 명단을 갖고 있다 이거죠?”
“그렇다고는 하는데……그게 사실인지 덫인지 그것도 좀 애매모호하더군.”
“사실이건 덫이건 중요한 건 대정회 기찰전이 움직이고 있다는 거고……”
“그렇지.”
“기찰전의 정보망은 개방 못지않은데……”
“그러나 소림사에서는 기찰전 안에도 간세가 있다고 보더군.”
“백현대사가 기찰전 부전주잖아요. 단독으로 움직일 수 있는 권한 정도는 있어요.”
“결국 기찰전 안에도 간세가 있다고 보는 게 맞겠군.”
“그럴 거예요.”
담여운은 곰곰이 고심했다.
“구대문파와 사대세가가 전부 있는 자리에서 그 사실을 거론했다는 건 그들 중에도 간세가 있다 보는 건데……설마 제갈세가주가 가짜라는 걸 알고 있는 건가?”
“글세……”
“확실시 소림사네요.”
“그렇지. 나도 그 점은 높이 사. 스스로 목숨을 걸고 자리를 만들었으니.”
“저어, 나 부탁 하나 있어요.”
“뭐죠?”
“내일 아침에 나 밖에 좀 나갈 수 있게 도와줘요.”
“흠……”
담여운은 그 동안 제갈세가 밖 출입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심지어 제갈세가 안에서도 운신이 폭이 좁았다.
그녀가 밖에 나갔다 온다는 것은 결국 편복당의정보를 캐온다는 의미다.
“무슨 핑계를 대면 의심을 사지 않을까?”
“차라리 같이 나가는 건 어때요? 그럼 의심 따위는 안 할 것 같은데.”
“그것도 한 방법이군.”
그때였다.
사군보가 갑자기 손가락 하나를 입술 앞에 세우며 눈을 찡긋했다.
그 눈치에 담여운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군보의 전음이 들린 것도 그때다.
[누군가가 지붕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