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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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78화
혈하-第 78 章 패왕보의 개파선언
딸랑! 딸랑!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주 가까운 곳도 같은데 은방울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이상스레 울렁이게 했다.
목대 주위의 수많은 군웅들의 귀에도 방울소리가 들렸는가 보다.
군웅들은 입을 다물었다.
목대 위의 고계의 안색이 굳어졌다.
딸랑! 딸랑!
방울소리가 잠시 더 들리는 것 같더니 군웅들 속에서 경악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아!”
“으음……!”
군웅들의 시선은 일제히 하늘로 향했다.
신비스러운 광경이었다.
마차다.
마치 하늘에서 신선이 하강하듯 네 사람의 모습이 목대로 천천히 내려오는데 가운데는 꽃가마가 보였다.
네 사람은 60세를 훨씬 넘은 것 같은 나이에 채의를 입고 있어 나이와 옷은 전혀 어울리지를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어 들고 있는 큼지막한 꽃가마에서 방울소리가 들려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군웅들은 숨을 죽이고 그 꽃가마를 주시했다.
팽성귀마 고계는 어느 틈엔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잔뜩 굽히고 있는 것이 주종관계의 그것보다 훨씬 더한 모습이었다.
군웅들의 놀라움은 고계의 그 같은 행동에서 더욱 커졌다.
잠시 터질 것 같은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낭랑하기 그지없는 옥음이었다.
“개파 대전을 시작해라!”
꽃가마 안에서 마치 천상에서나 들을 법한 옥음이 짧게 새어나왔다.
팽성귀마 고계는 한차례 몸을 부를 떨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꽃가마를 향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속하 전령당(戰靈堂) 당주가 교주님의 명을 시행하겠습니다.”
놀라운 일이다.
팽성귀마 같은 고수가 일개 당주의 몸이라니.
군웅들이 놀라운 눈길로 고계를 바라볼 때 그는 군웅들에게로 몸을 돌렸다.
“오늘 여러 동도들을 이곳에 모시고 본보가 강호 무림의 존속을 위해 개파를 갖게 되었습니다.”
“말 더럽게 많네!”
“잔소리 집어 치우고 패왕보주는 얼굴이나 한 번 보여라!”
군웅들 몇 곳에서 비웃음소리가 들려졌다.
고계는 그쪽으로 눈길을 슬쩍 돌렸으나 말을 계속 이어갔다.
“본보는 각대문파와 친구이고 모두의 동도입니다. 앞으로 본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무림존속을 위함이니 무림동도들께선 이해와 관용으로 본보의 일에 적극 협조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왜 저렇게 기가 쎄!”
“협조하라는 사람 태도가 그게 뭐냐?”
“우우!”
다시 군웅들 여기저기에서 싸늘한 코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각대문파 장문인들이나 다른 어떤 사람도 앞으로 직접 나서지를 못했다.
누가 무어라 해도 그것은 아마도 그 신비의 꽃가마 때문일 것이다.
꽃가마는 묘한 위압감을 풍겨내고 있었다.
고계는 군웅들을 쭉 둘러보고는 목에 힘을 주어 말을 계속 이어갔다.
“무림동도 여러분! 본보는 오늘 이 순간부터 강호의 일파로, 강호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선두에서 나서 중재하고자 합니다. 본보의 행사를 보게 된다면 강호 동도 여러분들은 한 손 빌려주시고, 양보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결국 뭐냐? 실력행사를 노골적으로 할 테니 그리 알라는 수작이잖아!”
“그렇게 자신만만하냐!”
웅성웅성.
다시금 소란이 일자 고계가 버럭 고성을 외쳤다.
“조- 용-!”
쩌렁! 쩌렁!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듯 엄청난 고성이었다.
“……”
“……”
사위는 졸지에 쥐죽은 듯 조용했다.
고계는 군웅을 두어 번 둘러보고는 고개를 젖히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좋습니다. 아무도 이이를 제기하지 않으시니 무림동도들께서 본보의 모든 뜻에 협력하고 동조하는 것으로 알고……”
그런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히히히…… 꼴좋다! 정말 꼴좋구나……”
돌연 허공으로 괴이한 웃음소리가 넓게 퍼지면서 고계 앞으로 한 사람이 내려섰다.
그자의 신법은 유령과도 같아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인 듯 그 누구도 그자의 등장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렇게 한 명의 노인이 목대에 오르자 여기저기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앗! 만해대학사(萬海大學師)다!”
“유성(儒聖)께서 나타나셨다.”
“오오……”
모든 사람이 놀란 신음소리를 입 밖으로 꺼냈다.
어떤 이들은 목대의 노인을 향해 극경의 예를 취하기도 했다.
만해대학사 장기룡(長基龍)!
백천오성 가운데 유성이라 불리는 노영웅.
어디에 위치해 있고 또 어떤 고수가 있는지 모르는 온통 신비에 가려져 있는 만해서원의 원주다.
지닌바 지혜와 지식은 바다도 덮을 정도로 깊고 넓다는 인물.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자가 바로 유성 만해대학사다.
천재는 엉뚱하다 했나?
만해대학사는 언제나 해학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괴짜였다.
강호 출입을 삼가는 그가 10년 만에 나타난 것이다.
“……”
목대 위의 팽성귀마 고계도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진 채 만해대학사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긴장에도 불구하고 만해대학사는 눈웃음을 쳤다.
“히히히…… 여보게, 나 술 한 잔만 주게. 멀리 왔더니 목이 타는군.”
만해대학사는 고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
고계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는 몸 전체로 겁먹은 모습을 드러내놓았다.
“……”
“……”
목대 주위의 중인들은 숨을 죽이고 목대 위의 일을 지켜보았다.
어느 누구도 이렇게 일이 변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갑자기 만해대학사가 히히덕거렸다.
“히히히…… 어이, 고가야!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쥐새끼라도 잡으려는가? 쥐새끼? 좋지! 기왕이면 살도 통통 찌고 뼈도 무른 놈으로 붙잡아주게.”
그러더니,
“쥐새끼 잡아랏! 앗! 저기 있다!”
쿵! 우르릉! 쿵!
쥐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만해대학사 장기룡은 목대 위를 마구 뛰어다니며 쥐를 잡으라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 광경에 모두들 멍해졌다.
그의 돌연한 괴행에 중인들은 물론 고계는 어안이 벙벙했다.
고계는 꽃가마를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무슨 명라도 내려지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꽃가마 안에서는 아무런 명도 나오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아이구! 같이 잡아주면 어디가 덧나나……놓쳤잖아!”
이리저리 천방지축 날뛰던 만해대학사가 돌연 털썩 목대 위에 엉덩이를 갈고 앉았다.
아니, 벌렁 뒤로 나자빠졌다.
그리고는 이내 코를 골며 잠을 자는 게 아닌가.
“드르렁……쿨……”
모두 멍청한 표정으로 목대 위에 누워 잠을 자는 만해대학사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는 한편, 중인들은 꽃가마와 팽성귀마 고계의 반응을 살폈다.
팽성귀마 고계의 간악함은 물론, 꽃가마 안에 들어있는 패왕보주라는 인물이 언제 만해대학사에게 살수를 펼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때 고계가 꽃가마 쪽을 힐끗 바라보고는 만해대학사에게 말을 꺼냈다.
“흐흐흐……장 노웅, 남의 집 잔치를 망칠 생각입니까? 강호 선배인 점을 감안해 이쯤에서 끝낼 테니 자는 척하지 마시고 어서 내려가 주시지요.”
“드르렁……쿨……”
만해대학사는 맛있게 잠만 잤다.
고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미친 놈!”
“드르렁……쿠울……”
“정년 관을 볼 생각이라면 원대로 해주지!”
고계가 막 살수를 펼치려는 순간이었다.
“앗!”
“저……저기 하늘을 봐라!”
“오오……”
중인들 가운데서 소요가 일어나더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하늘로 시선을 올렸다.
파란 하늘에 세 마리의 백학이 떠 있었다.
아니 백학처럼 새하얀 백삼을 입은 세 명의 노인들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목대 가운데로 내려서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깃털처럼 가볍게 대 위에 내려섰다.
세 백삼노인들이 한 마디도 말이 없었다.
별다른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목대 주위 100여 장 정도에까지 감히 범할 수 없는 위엄이 뒤덮여졌다.
그들이 내려서자 고계는 무척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당……당신들 천외삼협(天外三俠)……당신들이 이곳에는 무슨 일로……”
어쩐지 범상치 않은 백삼노인들이라 했더니 바로 이들이 당금 강호 무림에서 최상의 협명을 펼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픙운권왕(風雲拳王) 종리천(鐘里天).
신주비검(神州飛劍) 운학빈(雲鶴彬).
만리협성(萬里俠星) 호궁걸(胡弓杰).
이들을 강호에서는 천외삼협이라 칭했다.
백천오성에 비해 그 명성이 다소 처지지만 개개인의 실력은 결코 백천오성 아래는 아니다.
한데, 천외삼협이 무슨 일로 패왕보의 개파대회에 나타난 것일까?
더욱이 천외삼협이 한 자리에 모인 일은 극히 드물었기에 중인들의 놀라움과 호기심은 극에 이르렀다.
이 순간 풍운권왕 종리천이 고계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나직이 말을 꺼냈다.
“고계, 네놈 따위가 유성 노선배를 죽일 수 있겠느냐?”
이 말은 ‘너 따위가 감히 만해대학사 노선배에게 살기를 일으키는 것조차 큰 실례다.’라는 무언의 경멸이었다.
“……”
고계는 계속해서 나타나는 무림기인들로 인하여 어느 정도 주눅이 들어 있었다.
화를 내기는커녕 꽃가마의 눈치만 보기 바빴다.
풍운권왕 종리천은 고계가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있자 만해대학사에게 다가갔다.
“노선배, 이런 곳에서 하찮은 소인배와 시비를 나누고 계시면 어쩌십니까? 이곳 일은 우리에게 맡기시고 그만 내려가시지요?”
만해대학사는 웬 개가 짖느냐는 듯 몸을 뒤척이더니 모로 누워 버렸다.
“드르릉……쿨……”
종리천은 어쩔 수 없다는 양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좌우지간 엉뚱한 것은 알아주셔야 한다니까.”
이때, 고계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남의 집 잔치에 와서 자기 집인 양 제 멋대로 구는 만해대학사나 천외삼협의 하는 꼴에 화가 치밀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수시로 변해지고 몸은 노기로 인하여 부들부들 떨려졌다.
“이……이놈, 종리천! 설마 네놈이 다른 늙은이들을 믿고 본보의 개파대회를 망가 트려고 작정을 한 것은 아니겠지?”
종리천은 빙그레 웃었다.
“지금 무어라고 지껄였지? 노부의 귀에는 자네가 죽고 싶다고 그러는 것 같아 확실한 것을 묻는 것이네.”
고계는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더니 괴성을 버럭 질렀다.
“찢어 죽일 놈!”
번쩍-!
허공으로 검광이 짙게 일어나면서 고계의 인영이 검광 속으로 휙! 파고 들었다.
종리천이 무서운 기세로 지면을 박찼다.
고계의 쌍수가 허공을 뒤덮었다.
쐐애애액!
살벌한 검은 빛 기운이 그의 쌍수에서 우박처럼 쏘아졌다.
특히 오른손 손바닥 앞으로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은 시궁창 같은 지독한 악취를 뿜어냈다.
종리천의 얼굴이 살기로 뒤덮였다.
“흥!”
두 손이 부챗살처럼 펼쳐졌다.
꽈우우우…….
칼날 같은 녹색 광망이 그물처럼 검은 기운을 에워쌌다.
녹엽수(綠葉手)다.
“흐흐흐……예전에 나 팽성귀마가 아니다!”
고계가 재차 벼락같이 쌍수를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