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75화
무료소설 혈하마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75화
혈하-第 75 章 다시 만난 소제제
동백산(桐栢山).
호북성(湖北省)에서 북으로 하남성(河南省)의 접경에 위치한 산.
그 줄기를 타고 북으로 올라가다 보이는 마을이 동백현(桐栢縣)이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을 시각.
본래가 술꾼들을 때와 장소가 그리 필요치 않은가 보다.
동명주루(棟明酒樓).
주루에는 벌써부터 술을 즐기려는 인물들의 발길이 줄줄이 이어졌다.
“어서 오십쇼? 헤헤……손님 혼자이십니까?”
지금 막 주루의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에게 기다렸다는 듯 점원이 헤픈 웃음과 입을 놀렸다.
잠시 주루 안을 둘러보는 사람은 사군보다.
“헤헤……이리로……”
점원은 봉이라도 잡았다는 듯 사군보의 앞에 서서 주루 1층의 구석진 곳으로 안내했다.
창이 있는 탁자였다.
“헤헤……무엇으로 드릴까요?”
“아무것이나 주게.”
“예? 아! 예, 아무거나……그러죠……헤헤……”
점원은 허리를 굽실하더니 주방으로 횡 하니 사라졌다.
주루에는 술꾼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잠시 후, 점원은 두 병의 술과 세 접시나 되는 음식을 가져왔다.
누구를 식충이로 보았나?
그러나 사군보는 마침 시장하기도 하였기에 두말없이 술과 음식을 들었다.
몇 잔의 술을 마셨을까?
사군보는 그제야 눈앞에 누가 서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헤헤헤……”
점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싱거운 웃음을 만들었다.
사군보도 피식 따라 웃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아, 아닙니다. 그냥……”
“그냥이라니?”
점원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헤헤……손님께서도 개파대전을 구경하러 오셨습니까?”
사군보는 미간이 약간 찌푸려졌다.
“무슨 말이야. 개파대전?”
“에이, 손님도……시치미를 떼실 것 없습니다. 오늘의 패왕보(覇王堡) 개파에는 무공이 없는 사람도 마음대로 구경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저도 손님을 따라 좀……헤헤……”
사군보는 검미를 좁혔다.
강호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대소문파들이 개파하고 또는 사라진다.
하나의 방파가 개파 하는 것은 강호에 있어서 흔한 일이다.
그러나 무공도 없는 사람까지 개파대전에 초대할 정도이고, 널리 소문이 날 정도면 패왕보의 개파는 보통 방파의 개파와 다르다.
사군보는 빠르게 생각을 굴렸다.
‘심심치 않은 일이 생겼구나.’
항간에 들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방파들.
게다가 은거해 있던 거마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사해맹과도 같은 세력들이 대륙을 넘보는 시기에 개파를 하는 패왕보.
사군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나도 심심하던 참이었는데.”
“아! 헤헤……그럴 줄 알았습니다. 난 오늘 일이 끝났으니 여기 앉아서 손님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점원은 권하지도 않았는데 털썩 앉더니 연거푸 세 잔이나 마셨다.
사군보는 그런 것에는 상관치 않고 주루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 모두가 외지에서 온 것 같았다.
“캬! 좋다!”
이런 제기랄!
점원은 어느새 술병 하나를 비우고 손등으로 입술을 쓱 닦는 것이었다.
“손님, 여기에 손님의 이름과 소인의 이름을 적어 주십시오. 소인이 단숨에 달려가 명부에 올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준비했던 조그만 종이와 붓을 꺼내놓았다.
“구경하는 사람의 명부가 있어야 하느냐?”
“그렇습니다. 어서 적어주십시오. 소인의 이름은 평탁(平託)입니다.”
사군보는 잠시 망설이다 붓을 들어 평탁과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점원은 종이를 받아 고개를 꺄우뚱하더니 불쑥 물었다.
“손님의 이름은 무엇이라 적은 것입니까?”
그러면 그렇지!
일자무식인가 보다.
사군보는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사군보.”
“헤헤……사군보……”
그런데 점원은 몸을 막 돌리려다 갑자기 몸을 부를 떨었다.
“손……손님, 지금 무어라 했습니까?”
“사군보.”
점원은 안색이 새파래졌다.
“아이쿠! 사람 살려! 탈명혈하(奪命血河) 사군보다!”
정신없이 소리치며 걸음아 나 살려라고 주루 밖으로 도망갔다.
쿵! 우지직!
쨍그랑!
대번에 주루는 수라장으로 변했다.
점원의 외침을 들은 술꾼들이 앞을 다투어 주루 밖으로 도망가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주루에는 사군보 한 사람만 남았다.
괴변이었다.
사군보는 어찌된 영문을 모른 채 주루 문만 바라보았다.
이 순간 주루의 주인인 것 같은 뚱뚱한 중년인이 안으로 들어서려다 사군보와 눈길이 마주치자 찔끔하고는 게눈 감추어지듯 사라졌다.
‘어째서 내 이름을 듣고는 탈명혈하라고 하는 거지?’
사군보는 궁금한 생각에서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
펑! 펑!
주루의 문이 힘없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동시에 인영이 번쩍이는 것 같았는데 사군보의 앞으로 다섯 명이나 되는 흑삼인들이 내려섰다.
모두가 골라 모인 듯 못생기고 우락부락한 인물들이었다.
사군보는 이들의 인상에서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으나 짐짓 모른 척 부드럽게 물었다.
“내게 무슨 볼 일이라도 있나?”
다섯 흑삼인들 중에서 매부리코주부가 침을 탁 뱉었다.
“네놈이 사군보냐?”
사군보는 속이 뒤집혀졌으나 꾹 눌러 참았다.
“그렇소만……”
“그렇소만? 흐흐흐……”
매부리 장한은 사군보의 아래위를 두어 차례 훑어보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네놈이 정말 사군보라고?”
“그렇다니까.”
“정말 탈명혈하란 말이냐?”
사군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히히힛……”
“흐흐흐……”
다섯 흑삼인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녀석!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이기에 남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느냐? 네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허허……무슨 말이지? 누가 누구의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이냐?”
“이놈아! 탈명혈하가 무슨 이름인지도 모르는 놈이 사군보라는 이름은 어디서 들었느냐? 만약 이것을 사군보가 직접 들었다면 네놈은 벌써 황천객이 되었을 것이다.”
사군보는 조금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혹시 내게 생긴 별호가 아닐까?’
강호에 출도 해 많지는 않았지만 몇 차례 격전을 치렀다.
더욱이 그가 상대한 자들은 한 결 같이 절정고수들이었다.
그로 인해 자신의 이름이 강호에 알려져 그런 별호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자기 본인만 몰랐지 이미 강호엔 그 이름이 알려 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군보는 슬며시 마음이 통하여 매부리 장한에게 물었다.
“당신 탈명혈하 사군보를 보았어?”
“못 보았다.”
사군보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친구들은 오늘 천운을 타고 났군. 사군보는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으니 말이야.”
매부리 장한의 눈이 금방이라도 밖으로 퉁겨져나올 것만 같았다.
“이 찢어죽일 놈이 끝까지 장난치네!”
그는 이를 부드득 갈고 냅다 사군보의 가슴을 후려쳐 들어왔다.
휙!
매부리 장한의 일격이 무섭게 허공을 갈랐으나 그가 후려친 것은 바람뿐이었다.
“어?”
흠칫 놀란 매부리 장한은 등에서 검을 빼들었다.
“육시랄 놈! 네놈이 동백오음(桐栢五陰)을 희롱하려 들다니……”
나머지 네 명의 장한들도 검을 빼들고 사군보의 주위에 짙은 살기를 일으켰다.
사군보는 그들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보는 모양이었다.
허긴 동백오음이라면 동백산 일대를 주 무대로 하는 녹림도의 무리였다.
“불쌍한 친구들……”
그의 웃음 섞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매부리 장한의 외침이 터졌다.
“쳐라!”
뒤따라 싸늘한 코웃음이 들려왔다.
“흥!”
듣는 사람의 가슴까지 얼음으로 만드는 것으로써 동백오음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주춤했다.
바로 이 순간,
버언쩍-!
그들 동백오음의 머리 위로 가늘면서 짧은 백광이 번쩍인 것 같았는데 주루에는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아악!”
“아악!”
조금 전까지 펄펄 날뛰던 동백오음이 칠공에서 피를 흘러내며 두 번씩 비틀거리다 쿵쿵 쓰러졌다.
사군보는 전혀 몸을 움직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주루 안에 사군보 외에 동백오음을 쓰러트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군보는 시신들을 차가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다 주루 밖으로 천천히 걸음을 떼어놓았다.
그에게는 한 가지 특이한 것 있었다.
평소에는 일개 서생과도 평범한 청년처럼 보이고, 또 행동도 그렇게 하는 사군보가나 일단 살초를 펼쳐 상대를 쓰러뜨렸을 때는 더없이 차가운 사람으로 변해지는 것이었다.
사군보가 부서진 주루 문밖으로 나갔을 때다.
“탈명혈하다!”
주루 안을 멀찌감치 기웃거리던 한 무리의 구경꾼들이 보고는 기급을 하고 놀라며 온데간데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데 구경꾼들이 있던 곳에 한 사람만이 우뚝 서 있었다.
사군보는 그 사람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나직이 신음소리를 꺼냈다.
붉은 옷을 입고 묘한 얼굴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여인.
“아! 소제제……”
그렇다.
태음봉을 내려올 때 만났던 소제제였다.
얼마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날 그녀와의 피치 못할 사연으로 관계를 가졌다는 일도 일이지만 사군보에게는 어쩐 일인지 그녀가 마음 구석에 뚜렷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 이것이 사랑일지도 몰랐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얼마 후 소제제는 사군보에게 무슨 말인가 꺼낼 듯 말듯 하려다 끝내 입술을 움직이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
사군보는 그녀가 10여 걸음이나 떼어 놓았을 때까지도 멍청히 서 있기만 했다.
그러다가,
“아!”
퍼뜩 제정신을 찾은 듯 그는 소제제에게 달려갔다.
“낭자, 기다려요!”
소제제는 잠깐 주춤했을 뿐 걸음을 계속 떼어 놓았다.
사군보는 그녀 앞을 가로막으며 말을 꺼냈다.
“낭자는 내가 무서운 거요?”
“……”
“내가 진짜 탈명혈하라고 믿는 거요?”
“믿지 않아요.”
사군보의 눈빛이 반짝였다.
“어째서? 다른 사람은 나를 탈명혈하라고 부르는데……”
소제제가 고개를 돌렸다.
“공자는 나를 믿나요?”
“물론이오. 믿어요.”
“대체 날 어떻게 믿죠?”
“그, 그게……”
사군보는 다음 말을 잃었다.
아니, 더 할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얼굴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소제제는 가볍게 고개를 젓고는 이내 사군보를 비켜 다시 걸었다.
“낭자.”
사군보는 급히 그녀 옆을 따라 걸었으나, 그 이후 그도 그녀도 말이 없었다.
그저 두 사람은 묵묵히 길만 걸을 뿐이다.
문득 걸으며 소제제가 입을 떼었다.
“공자를 찾아 다녔어요.”
사군보는 걸음을 늦추었다.
“아! 나를? 어째서요?”
“아버님의 혼령에 따라서예요.”
“혼령이라니……”
“제게는 매달 한 번씩 규칙적으로 아버님의 혼백이 나타나 제가 해야 할 일을 시키고 있어요. 그 중에서 공자와 관계된 일이 있기에……”
멍……
사군보는 입만 쩍 벌린 채 소제제를 바라보았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죽은 자의 혼백이 나타난다니……
그것도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 딸의 눈앞에 나타난다니……
“에이, 거짓말이죠?”
사군보는 무의식중으로 마음의 말을 내뱉었다.
소제제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거짓말로 들리시나요?”
사군보는 찔끔했지만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렇지 않나요? 어찌 죽은 자의 혼령이 나타난단 말이야? 난 귀신 따위를 믿지 않아요.”
“그럴 테죠……하지만 사실이에요. 그리고……공자님은 이미 아버님의 혼령과 얘기까지 나누시지 않았나요?”
“내가? 내가 낭자 아버님 혼령과 얘기를?”
“그래요. 그때……그러니까……”
소제제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문득 사군보는 소제제가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는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흠!”
기실 소제제가 말하고자 하는 일이란 태음봉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여자의 몸으로 뜨거웠던 정사를 입에 담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법.
그러다가 문득 사군보가 놀란 외침을 발했다.
“헉! 설마……그때 낭자를 안으라고 말하고, 진법을 펼쳤던 신비인!”
사군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사람밖에 없다.
소제제와의 일을 알고, 춘약에 중독되어 신음하는 소제제를 안으라고 말하고, 그가 가려는 길에 진을 펼쳤던 사람은 그 사람뿐이다.
소제제가 말한 아버지의 혼령이란 바로 그 신비인을 말함이다.
아연실색한 나머지 사군보는 멍하니 소제제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