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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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6화
그 외 무공비급들도 당대에 쟁쟁한 위명을 날리던 최절정고수들의 절기였다. 물론 그들 중 한 명도 살아 있는 이는 없었다. 모조리 혈검신마의 손속에 고혼이 되었다.
아침부터 시작돼 해가 질 때까지 혈검신마의 혹독한 재촉이 이어졌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절기를 수련해야 했다. 그렇다고 밤에 쉬는 건 아니었다. 혈천신공을 수련해야 했다.
도대체 쉴 시간이라곤 하루에 딱 두 시진의 잠뿐이었다. 마치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혈사부는 잠시도 쉬지 않고 닦달했다. 한마디로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익혀야 할 절기가 결코 호락호락하게 소천악에게 속살을 내보이지 않았다. 난해한 구결과 수련과정이 끝없이 괴롭혔다.
소천악은 특유의 악바리 근성으로 버텨나갔다. 오기로 똘똘 뭉쳐진 그의 독기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조금이라도 수련 진도가 느려지면 가차 없는 혈사부의 구타가 이어졌다. 아차 실수로 잘못 맞으면 단 한 대에 생을 끝낼 무식한 구타였다.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는 혈사부의 독려에 참다못한 소천악이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혈사부!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하나뿐인 제자를 이리……."
"닥쳐라! 네놈 가르치느라 나도 힘들어. 술도 안 처먹은 놈이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니 가르칠 맛이 안 난다. 에잉!"
"그러니까 살살 천천히 수련하자고요. 아, 세월이 좀 먹나요?"
"시끄러! 나보고 평생 네놈 뒷바라지하다가 무덤에 가라는 이야기냐? 떠들 시간 있으면 좀더 수련해. 진도 부족으로 나중에 터진 후에 투덜거리지 말고."
도대체 씨도 안 먹히는 혈사부의 태도에 어쩔 수 없이 수련에 박차를 가해야 했다. 그렇게 혹독한 무공연마는 그 후로도 더 삼 년을 이어졌다.
혈사부를 향한 소천악의 증오는 날이 갈수록 깊어져만 갔다. 그렇게 흐른 시간은 어느새 사 년을 꽉 채웠다. 어느덧 소천악은 혈사부의 자상한(?) 지도로 11권의 무공비급에 실려 있는 무공을 어느 정도는 익혔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광동성 촌구석 깊은 산속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느닷없이 노성이 산을 울리며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야, 이 능구렁이 자식아! 이게 도대체 밥이냐, 숯이냐?"
"아씨, 또 뭐라 그러네. 그러니까 오래 산 혈사부가 밥하면 이런 일 없잖아요."
나이가 얼마인지 분간도 안 가는 노사부는 혈압이 올라 쓰러지고 싶었다. 허연 백발은 이미 분노로 머리카락이 모두 꼿꼿이 곤두섰다. 그 앞에는 태연하게 말대꾸하는 소년이 젓가락을 들고 앉아 있었다. 소년은 열 살 남짓한 꼬마였다. 하지만 눈가에 서린 독기는 장정이라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매서운 안광을 뿌렸다.
두 사람은 다름 아닌 혈검신마와 소천악 두 사제 간이었다.
"야, 인마. 그거 지금 뚫린 주둥이라고 떠드는 거야? 세상천지 사람에게 물어봐라. 어디 사부가 돼서 부엌에서 밥하는 개 같은 일이 있냐고?"
시큰둥하게 듣던 소년은 시큰둥하게 코를 후비며 바로 대답했다.
"혈사부! 여기 사람이라곤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누구한테 뭘 물어요? 그리고 아무도 안 보는데 또 하면 어때요."
"이놈의 새끼가! 오냐, 오늘 제자 하나 관 속에 입관시켜 보자!"
노화가 하늘로 뻗친 백발의 노인의 손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삽시간에 주위는 타는 듯한 열기로 휩싸였다.
"또 시작이네. 혈사부, 여기서 난리치면 밥상 날아가니 저리로 가서 한판 뜹시다."
"이 새끼가! 먹지도 못할 거 날아가면 어떠냐?"
"밥은 그렇다 치고 혈사부가 내내 자랑하던 이 대저택이 거덜날 거유. 뭐 알아서 하슈."
그 말엔 찔끔하는 혈사부였다. 기회를 안 놓치고 소년은 빠르게 말했다.
"우리가 한판 뜰 때마다 하루 종일 집 지은 거 알죠? 이제 아주 지겨워요."
넌덜머리 난다는 듯 소천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도 안 찬 혈사부가 탄식했다.
"노부가 평생 살면서 제일 후회하는 게 네놈 같은 제자 얻은 거야."
"그러게 누가 얻으래요? 저도 혈사부 같은 스승 만난 것이 이가 갈려요."
"저런 쌍놈의 새끼!"
"어! 내가 쌍놈의 새끼면 혈사부는 쌍놈의 스승이네."
소년의 빈정거림에 더 이상 울화를 못 참은 혈사부가 벌떡 일어섰다.
"더 이상 못 참는다. 나와, 이놈아."
"개뿔도 안 무섭소. 좋아요, 해봅시다."
두 사제는 말과 동시에 답설무흔 경공술로 순식간에 이십여 장 밖으로 날아갔다. 무릎이 전혀 흔들리지 않고 날아가는 그들의 신법은 가공스러웠다.
"이 망할 놈의 새끼! 오늘은 기필코 네놈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고야 말겠다."
"해봅시다, 혈사부! 내가 호락호락 당할 리가 있겠소? 내공은 약속대로 이성의 내공만 쓰는 겁니다."
"에잇! 쳐 죽일 놈! 이성이면 새끼손가락으로도 네놈은 바로 실신이다."
말과 함께 혈사부의 두 손은 수많은 장영을 뿌리면서 소천악의 가슴을 노리고 쏘아져 갔다. 좌우를 점하고 밟아오는 보법은 팔방을 모두 막고 섬전같이 파고들었다.
"얼라! 처음부터 강하게 나오시네. 우리 혈사부가."
태연하게 말은 하지만 잔뜩 긴장한 소천악은 두 손을 십자로 교차하며 덮쳐오는 장력을 막아갔다. 오행의 상리대로 좌측으로 돌며 전신을 노리는 권을 팔목과 어깨로 막아냈다.
파파팍!
수도 없이 권과 권이 격돌하며 폭음이 일었다. 혈사부의 권은 소천악의 수비를 연속적으로 흔들어놓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힘에 겨운 소천악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망할 놈, 입만 살았냐? 왜 비틀거려?"
혈사부의 빈정거림에 얼굴이 붉어진 소천악이 쏘아붙였다.
"젠장! 명색이 사부라 힘을 조절하느라 그래요. 치잇! 받아요. 연환구구탈백보닷."
소천악의 신형이 교교히 흔들리며 혈사부의 얼굴을 노리고 권영이 나비처럼 다가섰다. 권에 실린 살벌한 예기가 폭풍처럼 혈사부를 노리고 밀려왔다. 하지만 혈사부는 태연하게 비웃으며 몸을 살짝 틀었다.
"얼씨구, 꼴에 곰이 재주피우네. 야, 인마! 그게 연환구구탈백보라고? 야야, 지나가던 토끼가 웃겠다. 탈백검마가 살아 있다면 비전무공 모독죄로 네놈을 오뉴월 개 패듯 패 죽였을 거야."
말과는 달리 섬전같이 신형을 이동시켜 소천악의 공세를 무력화시켰다. 권영을 벗어난 혈사부는 허리를 유연하게 흔들며 소천악의 허리를 노리고 권을 날렸다.
"헉, 이럴 수가!"
예상치 못한 반격에 소천악은 다급한 마음에 양발을 교차해 차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수직으로 삼 장을 떠오르자 겨우 공격의 예봉을 피해냈다.
"자식, 재롱피우네. 내가 뭐라 그러디? 하늘에 뜨면 사방이 약점이니라. 자식이 그리 말해도 만날 헤매지. 오냐! 오늘 날 잡았다. 으얍, 광한지!"
쫙 편 혈사부의 손가락에는 보기에도 섬뜩한 열 개의 붉은 지풍이 소천악의 전신혈도를 노리고 허공으로 뻗어갔다. 전신대혈을 노리고 날아오는 지풍의 예기는 섬뜩했다. 절로 다급해진 소천악이 소리쳤다.
"잠깐! 멈춰요!"
"멈추긴 뭘 멈춰! 사부 알기를 지나가는 개로 여기는 네놈은 따끔한 교훈을 받아야 해."
냉정한 혈사부의 말에 이를 악문 소천악은 전신에 내력을 운용했다. 전력을 기울인 내력은 무쇠와 같이 단단해져 광한지를 막았다…….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건 순전히 소천악의 희망이었다.
"으악! 아, 따가워!"
사정없이 내력으로 보호하려던 어설픈 시도를 갈기갈기 걸레로 만들고 파고들어 온 지풍은 소천악의 전신혈도를 사정없이 난타했다. 다행히 살기를 죽여 치명적인 부상은 입지 않게 배려한 혈사부였다. 비명을 지르며 허공에서 몸부림치는 소천악을 바라보며 득의에 찬 미소를 지은 혈사부는 손속을 멈추지 않았다.
"아악, 그만 해요. 이러다 죽겠어요."
애원하는 말투로 소천악이 아픔을 호소했다. 혈사부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차가운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사부에게 반항한 놈의 말로다. 받아랏! 오늘 송장 하나 치우는 거야."
혈사부의 손은 쉼 없이 움직였고 그때마다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광한지의 매서운 위력은 소천악의 온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허공에서 지풍에 격중돼 이리저리 튕겨 다니는 소천악이었다. 참다못한 그가 애원조로 빌었다.
"혈사부, 잘못했어요. 밥 잘할게요."
"웃기지 마라. 네놈이 어디 한두 번 그 말 했냐? 이젠 안 속는다."
"이번엔 진짜예요. 믿어주세요."
"지나가던 토끼를 내가 믿지. 네놈을 믿으라고? 됐다. 그냥 맞아라."
콧방귀도 안 뀌며 매섭게 손속을 뿌리던 혈사부가 갑자기 손을 멈추었다.
쿵!
이미 기절한 소천악이 허공에서 수직 낙하했다. 땅에 충돌하는 충격으로 정신을 차린 소천악은 다리에서 전해오는 아픔에 흠칫 놀랐다. 서둘러 다리를 쳐다보니 다리가 보기 흉하게 꺾여 있었다. 부러지진 않았지만 탈골이었다.
"으아아! 내 다리!"
밀려오는 통증에 소천악은 울부짖었다. 다리가 쉴 새 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시끄러, 인마! 싹수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 놈이 목소리는 커 가지고."
"혈사부, 어찌 이럴 수가! 제자 다리를 이렇게 만드는 사부가 세상천지에 누가 있어요?"
"그런 사부 세상천지에 널렸어. 그리고 네놈이 다른 사부 본 적 있어? 보지도 못한 것이 입만 살아서. 자식이 말이야. 다음엔 손모가지를 확 분질러버릴 거야."
혈사부는 욕설을 퍼부은 후 천천히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천악에게 다가갔다.
"으아, 가까이 오지 마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두려움에 질린 소천악이 발버둥치며 손을 연신 흔들었다.
"이 호래자식아. 그럼 이대로 뼈가 틀어진 대로 살아갈 거야? 자식이 고쳐주려니깐 말이 많아."
그 말에 주춤하며 얼른 말을 바꾸는 소천악이었다.
"알았어요. 얼른 고쳐줘요."
혈사부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소천악의 다리를 잡았다. 다짜고짜 오른쪽으로 탈골된 다리를 더 세게 오른쪽으로 확 비틀었다.
"악! 혈사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왜 더 틀어요?"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소천악이 발악했다.
"조용히 해, 자식아. 원래 탈골이란 어긋난 김에 확 비틀었다가 맞춰야 되는 거야."
혈사부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좀더 다리를 확 잡아당겼다.
"크으으윽! 이건 아니야!"
참혹한 고통에 절절매던 소천악이 마침내 게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그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혈사부였다.
"이놈은 순순히 고쳐주면 안 될 놈이야. 자식이 까불고 있어. 하늘 같은 사부에게."
그랬다. 혈사부는 일부러 탈골된 다리를 더 비틀었다. 세상천지에 탈골된 뼈를 더 비트는 사람은 없었다. 원수가 아닌 다음에야 그랬다. 하지만 혈사부는 상식을 초월한 사람이다. 잠시 기절한 소천악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가 다리를 확 잡아뺐다.
뚜드득!
뼈 맞춰지는 소리와 함께 다리는 제 정상으로 돌아왔다. 기절한 소천악은 움찔거리긴 해도 정신을 차리진 못했다. 가만히 바라보던 혈사부가 한 손으로 목덜미를 잡고 번쩍 들어 몸을 날렸다. 신형이 번쩍하는 순간 벌써 모옥에 들어선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