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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5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3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5화

 

  "이런 돼먹지 못한 놈 같으니라고. 이놈, 집에서 뭘 배운 거야?"

 

  "저 집에서 버림받은 놈이라 했잖아요. 사실 고아나 마찬가지예요."

 

  "으으."

 

  극도로 노화가 치민 장휘경은 이성을 잃고 두들겨 팼다. 당연히 결과는 기절로 마무리되었다. 잠시 후 깨어난 소천악은 원망스런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솔직히 말하는 것도 죄가 되나요?"

 

  질문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장휘경이 대답했다.

 

  "당연히 죄지. 너 솔직히 말하다 제명에 죽은 놈 얼마나 봤어? 진실도 힘이 있어야 하는 거야. 생각해 봐라. 너보다 힘센 나쁜 놈에게 '후레자식아!' 이런 소리를 외쳐봐라. 걔가 널 어쩔 거 같아? 그날로 넌 관 속에 들어가는 거야. 안 그래?"

 

  "……."

 

  할 말을 잊은 소천악이었다. 그렇다고 '딱 나쁜 놈은 너야.' 이 말을 하기엔 조금 전 아픔이 너무 컸다. 사부란 인간은 정말 예측불허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잘못 왔다, 이 생각에 후회가 밀려올 때 목소리도 들려왔다.

 

  "내가 그래도 마음이 따뜻한 사부이니라. 앞으로 나를 대할 때 편하게 대해도 좋다. 마냥 정중하게만 대하면 아무리 사제지간이라도 어색한 법! 평소에는 그냥 하고픈 대로 하거라. 물론 그건 내 기분에 따라 받아들이는 건 다를 것이야."

 

  "기분이 안 좋으면 어쩔 건데요?"

 

  혹시나 하는 소천악의 질문에 역시나 하는 대답이 들렸다.

 

  "그럼 조금 전 상황이 다시 전개되겠지."

 

  그러면 그렇지. 소천악은 반항심이 불쑥 치밀었다.

 

  "그걸 어떻게 눈치로 때려잡아요?"

 

  "어려우면 정중하게 대하든지."

 

  "그렇게는 못 해요. 사나이 자존심이 있지."

 

  나름대로 당당한 말에 장휘경은 무릎을 탁 치며 희희낙락했다.

 

  "그래, 그렇게 해야지. 우리 혈검문에 좀스런 놈이 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새꺄! 네가 무슨 사나이냐? 쪼그만 애새끼지."

 

  그의 구박에 말은 못 하고 속으로 온갖 욕을 퍼부은 소천악이었다. 그런 녀석의 앞에 무공비급이 십여 권 던져졌다.

 

  "자! 이건 우리 혈검문의 무공을 배우기 전에 기초로 배워야 하는 무공비급이다. 뭐 쓰레기 같은 무공이지. 하지만 강호에선 나름대로 한가락 했던 놈들 것이니 배워두면 쓸 만할 거야."

 

  비급을 잠시 내려다보던 소천악은 고개를 들고 물끄러미 그를 쳐다봤다.

 

  "뭘 보냐, 이 녀석아?"

 

  "저 글자 몰라요."

 

  기가 막힌 혈검신마가 조용히 물었다.

 

  "한 글자도 몰라?"

 

  "아니지요. 하늘 천(天) 따 지(地)는 알아요. 그 다음이… 음음……."

 

  두 글자를 말하고 바로 헤매는 소천악이었다. 골머리가 지끈거리는 혈검신마는 손으로 머리를 쥐고 망연자실했다.

 

  "끙, 네놈 집에서 버릴 만했구나. 다행히 내가 글을 아니 이제부터 가르쳐주마. 뭐, 농땡이는 가차 없이 구타로 갚아주마. 그리고 이제부턴 나를 혈사부라 부르거라."

 

  "네, 혈사부!"

 

  그날부터 소천악은 눈물겨운 글공부의 고행 길에 들어섰다. 하루마다 무지막지한 양을 받아 익혀야 했다. 못하면 살벌한 구타가 이어졌다. 도대체 말이 필요 없었다. 목표 미달의 대가는 오로지 구타였다. 이놈의 사부는 두들겨 팰 때는 건망증 환자였다. 소천악이 연약한 일곱 살 꼬맹이라는 걸 잊는 것 같았다. 살기 위해 익히는 글은 상상외로 빠른 속도로 문맹에서 어엿한 지식인으로 바꾸었다.

 

 

 

  일 년 후.

 

  두 사제는 다시 무공비급을 앞에 두고 앉았다.

 

  "이제 드디어 비급을 익힐 때가 되었다."

 

  사부의 말에 이젠 당당하게 무공비급을 집어 들고 소리치는 소천악이었다.

 

  "파성마각. 연환구구탈백검. 풍혼검법. 차기미기. 태형마장. 광한지. 혈사난무. 질풍광마권. 분혼마권. 단정칠절도. 광폭혈랑도. 음양혈마수."

 

  모두 11권의 무공비급의 제목을 좔좔 읽어냈다. 뿌듯하게 바라보는 소천악에게 시큰둥한 말이 들렸다.

 

  "잘 익혀라. 결코 만만한 무공이 아니다. 특히 파성마각과 연환구구탈백검은 나도 잠시 놀란 절기들이다. 물론 나머지 비급의 주인들도 한가락 했지. 이것만 익혀도 강호에 나가 큰소리 땅땅 칠 수 있어."

 

  "혈사부! 그런데 이 비급은 어찌 구했나요?"

 

  "당연히 싸워서 이겨서 구한 거지. 다들 품속에 넣어 다니더라."

 

  "그럼 이 비급의 주인들은요?"

 

  "벌써 뒈져서 뼈만 남았겠지. 죽은 놈이 비급을 가지고 있으면 뭐 하냐? 내가 하나씩 모은 거지. 이제 생각하니 과연 나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다. 클클."

 

  아무렇지 않게 죽였다는 말을 하는 혈사부를 보며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왠지 그 말을 들으며 호승심이 치솟는 묘한 기분도 동시에 느꼈다.

 

  "그런데 혈사부님, 궁금한 게 있어요. 어쩌다가 무림공적이 되신 겁니까?"

 

  "쩝, 사연이 있느니라. 그게 묘하게 일이 꼬여서 말이다."

 

  운을 뗀 혈사부는 사연을 주르르 털어놨다.

 

  그는 강호무림의 절대고수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강하면 부러지는 법!

 

  안하무인으로 다니는 그를 구대문파 등 정파에서 곱게 볼 리 만무했다. 게다가 정파의 치부를 심심찮게 들추어내는 그를 언제까지나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를 제거하려는 각 대문파와 세가의 계략은 상상을 초월했다.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그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결국 그는 함정에 빠져 무당파의 이대제자를 참살하는 일을 저질렀다. 잡혀 온 희대의 음녀 구양설을 이용해 무당 제자가 마치 능욕하려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함정을 꾸몄다.

 

  머리 좋기로 유명한 제갈세가의 작품이었다. 제갈세가의 수뇌부 한 명이 그에게 피맺힌 원한이 있던 게 화근이었다. 지나가던 혈검신마가 당연히 걸려들었다. 무당 제자를 음적으로 오인해 일검에 쳐 죽였다.

 

  기다렸다는 듯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는 그를 무림공적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혈검신마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당당했던 그는 평소 신조대로 오는 적 마다하지 않았다. 처음엔 오는 족족 피바다에 묻어버렸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공격은 매서워졌다.

 

  급기야 각파의 장로급이 친히 나서는 사태로 발전했다. 그 통에 일 년 전과 같은 꼴을 당한 혈검신마 장휘경은 강호무림에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듣고 있던 소천악의 안색은 시간이 갈수록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마지막 말이 끝나자 참다못해 버럭 소리쳤다.

 

  "혈사부! 도대체 정파가 왜 그런 거지요?"

 

  "그게… 쩝쩝."

 

  영 대답이 궁색한 혈사부가 쓴 입맛만 다셨다. 사실 어느 정도는 그 내막을 알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그런 오해 때문에 이리 되다니요? 이 두메산골에 와서 죽어라 배워봐야 바로 무림공적이 될 무공을 배우긴 싫어요."

 

  투덜대는 소천악을 가만히 바라보던 혈사부가 버럭 성질을 냈다.

 

  "새꺄! 그래서 내가 다른 무공 가르쳐준다잖아. 말이 많아, 조그만 녀석이."

 

  소천악의 목이 자라처럼 쏙 들어갔다. 불만이 있어도 더 이상 말했다간 어떤 봉변이 날아올지 두려웠다. 그렇게 무공수련이 시작됐다.

 

  "들어라! 우리 혈검문의 조사는 단 한 번도 무림에 나오시질 않았다. 오로지 무공연마에 평생을 바치신 분이다."

 

  비장하게 말하는 혈사부였다. 하지만 이미 심사가 꼬일 대로 꼬인 소천악이 비꼬았다.

 

  "아, 그분 참 외로웠겠네요. 뭐 한다고 이 깊은 산속에서 사셨대요?"

 

  "이놈이 감히 조사를 비아냥거려?"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듯한 혈사부의 기색을 눈치챘다. 얼른 말을 돌리는 소천악이었다.

 

  "아닙니다. 역시 풍진기인은 뭐가 달라도 다르지요. 그럼 그 다음 조사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험험! 그게, 그 다음 조사가 바로 나다."

 

  소천악은 기가 막혔다. 역사와 전통은 고사하고 달랑 이대에 걸친 문파란 사실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런데 처음에 뭐가 그리 거창할 듯 이야기해요? 나참."

 

  "이놈아! 단 이대 만에 무림을 뒤흔든 문파는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무림공적이 된 일 말인가요?"

 

  코웃음을 치는 소천악을 보고 가만있을 혈사부가 아니었다.

 

  "새꺄! 그것도 힘이 있어야 공적도 되고 그러는 거다. 힘없어 봐라. 명문대파는커녕 삼류무사들도 거들떠도 안 본다."

 

  "그건 그러네요."

 

  혈사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소천악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무림공적도 세야 되는 거였다. 삼류무사가 무림공적으로 지목되는 일은 없다.

 

  "먼저 조사님에게 감사를 드려라. 혈검문 비전심공인 혈천신공(血天神功)은 비밀이 있다. 타파 무공을 그 독문심공을 몰라도 펼칠 수 있는 묘용이 있다."

 

  "그게 무슨 말이죠?"

 

  고개를 바짝 치켜든 소천악의 눈에서 반짝 빛이 나왔다.

 

  "쉽게 말해서 소림이나 무당 가릴 거 없이 모든 무공은 그 기본 심공을 익히지 않으면 수련할 수 없다. 하지만 혈천신공을 익히면 웬만하면 다 익힐 수 있다. 단 십이성 대성은 어렵다는 게 이 혈사부의 소견이니라."

 

  "캬! 그건 멋지네요."

 

  기뻐하는 소천악의 꿍꿍이셈은 따로 있었다. 강호에 나가 비급을 얻어 타파 무공을 익힐 요량이었다. 무림공적을 피하기 위한 눈물겨운 심계였다.

 

  "자, 이제부터 시작하자. 먼저 내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라."

 

  장휘경이 먼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소천악은 바로 앞에 가부좌를 틀었다. 혈사부의 손이 기해혈에 닿으며 따스한 진기가 흘러들어 왔다. 나른한 듯 기분이 좋아질 무렵 혈사부의 입이 천천히 열리며 혈천신공의 구결이 흘러나왔다.

 

  "마음과 몸을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니니라. 하나로서 관(觀)하되 관하는 의식도 비우고 오로지 자연적인 기단(氣丹)을 쌓아야 하느니라. 첫 번째도 정(靜)이요, 두 번째도 정이요, 세 번째도 정이요, 모름지기 고요한 정에서부터 만물이 싹을 틔워야 하느니라. 자연히 시간이 가고 세월이 지나가면 어느덧 하나의 단전(丹田)에 기단이 생기니라."

 

  소천악은 단전이 꿈틀거리면서 진기가 서서히 전신대혈을 도는 걸 느꼈다. 그때 다시 혈사부의 말이 이어졌다.

 

  "단전에서 일어난 진기를 임맥에서 독맥으로 계속해서 이끌어라. 운기하다 보면 자연 따뜻한 기운이 움직이면서 임독맥을 따라 운기된다. 이 운기행공을 하루도 빠짐없이 네 시진 이상 해야 하느니라. 이제 혈천신공의 구결대로 진기를 이끌어라. 역천의 혈기는 대혈을 넘어 세맥으로 조화의 결을 불어넣고……."

 

  들려오는 구결대로 진기를 돌리던 소천악은 어느새 몰아지경에 빠져 정신을 놓고 운기행공에만 전념했다. 이렇게 소천악의 무림인 만들기는 시작됐다. 혈사부가 쓰레기라고 던져준 무공비급은 만만한 무공이 아니었다.

 

  연환구구탈백검(連環九九奪魄劍)!

 

  대막을 주름잡던 탈백검마의 비전절기였다. 일대일 대결에서 불패를 자랑하던 막강한 검공이었다. 총 81검초가 연결되어 펼쳐져 시선을 현혹시키는 환검에 수많은 고수들이 피를 뿌리고 죽어갔다. 대막이 좁다 하고 설치던 그도 유람차 온 혈검신마의 비위를 건드리다 황천길로 직행했다.

 

  파성마각(破星魔脚)!

 

  혈마각의 독문절기였다. 하늘을 찢는 굉음과 함께 각법이 펼쳐지면 가히 무적이었다. 앞에 서 있던 적이 연환퇴에 걸려 속절없이 생을 마감해야 했다. 역시 그도 나무그늘을 두고 혈검신마와 시비가 붙어 산속에서 외로이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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