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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4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4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4화

 

  "이런 호랑말코 같은 자식! 감히 어른이 생각 삼매경에 빠졌는데 떠들어?"

 

  정신없이 날아오는 욕세례에 반발심이 절로 솟아났다.

 

  "제길! 말도 못 하게 하네."

 

  "뭐? 지금 뭐라고 했어? 이놈의 새끼가 아주 매를 버는구나."

 

  그 후 한동안 산속에선 어린아이의 비명과 씩씩거리는 노인네의 거친 숨소리가 이어졌다. 잠시 후 얼굴이 퉁퉁 부은 채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는 소천악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본 척도 안 하고 장휘경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소천악의 귀에 들리지도 않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육시랄! 하도 오랜만이라 해진법을 까먹었네. 이 일을 어쩌지?"

 

  한참을 끙끙대다 마침내 머리 한 귀퉁이에 잠자던 기억을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으하하! 역시 아직 나의 개세적인 기억력은 살아 있구나."

 

  호탕한 웃음소리에 흠칫한 소천악이 힐끗 돌아보고는 바로 외면했다. 아직 얼굴의 붓기는 여전했고 독살스런 눈빛이 점점 더 광채를 뿌렸다.

 

  "야! 인상 쓰지 말고 내가 말한 대로 걸어 들어가."

 

  장휘경의 말에 곱게 대답할 리가 없는 소천악이었다.

 

  "네? 어딜 들어가라는 거예요? 절벽에 머리 깨지란 말인가요?"

 

  "새끼가 가라면 가지. 어린놈이 더럽게 말 많네. 꼭 정파새끼같이."

 

  다시 두들겨 팰 기세를 본 소천악이 기겁을 하고 말했다.

 

  "들어가면 될 거 아니에요."

 

  "좋아! 내가 시키는 대로 발을 움직여야 하느니라. 한 걸음이라도 삐끗하면 인생 피곤해질 거야."

 

  소천악은 차마 안 내키는 발길을 움직였다. 절벽이 눈앞에 다가오는가 싶더니 놀랍게도 코앞에서 스르르 사라졌다. 바로 안개처럼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풍경이 펼쳐졌다. 미처 놀라움을 말하기도 전에 환각이 나타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퍼런 광채를 뿌리는 칼을 들고 불쑥 나타났다. 그들의 눈에는 살기가 출렁거린 채 눈앞으로 달려들었다.

 

  "으악! 귀신이다."

 

  너무 놀라 도망가려는 소천악의 귓전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인마! 한 걸음도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바로 죽는 거야. 눈감아."

 

  죽는다는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니 나아지리란 생각은 한마디로 꿈이었다. 귓전에 사납게 소리치는 귀신의 소리가 금방이라도 자기를 갈가리 찢어발길 듯 들려왔다. 소천악은 나이는 어렸지만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아, 이런 썩어빠진 귀신 새끼들이 왜 이리 설쳐! 뭐 해요? 어서 빼줘요."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며 꼼짝도 안 하는 소천악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얼마나 힘들게 버티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새꺄! 정신 산란하게 떠들지 말고 좀 가만있어 봐.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골로 가는 거야."

 

  퉁명스런 대답이 들려오자 소천악은 내심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하나씩 원한을 머리에 새겨갔다. 오기로 두 다리를 두 손으로 꼭 부여잡고 사력을 다해 버텨냈다. 아무리 강골이라 해도 어린 소년이 귀신을 이겨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느 소년 같았으면 벌써 혼이 빠져 자기도 모르게 발을 옮겼을 것이다. 장휘경은 가만히 진을 노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제길, 큰일날 뻔했네. 저기가 아리송하더니만 오른쪽으로 한 걸음이 아니고 왼쪽이었군. 그나저나 저 녀석 뱃심 하나는 쓸 만하네. 역시 내가 제자 보는 눈은 있어. 클클!"

 

  소천악이 들으면 칼을 물고 달려들 소리였다. 결국 해진법이 알쏭달쏭한 장휘경의 실험용이었다. 다시 한 번 해진법을 확인한 그가 천천히 진 안으로 들어섰다. 한 걸음씩 옮기다 말고 딱 멈춰서 오른손을 쭉 뻗었다.

 

  여지없이 소천악의 뒷덜미가 느껴졌다. 가볍게 낚아채고 서둘러 해진법의 순서대로 보법을 전개했다. 차 한 잔 마실 무렵이 지나자 다시 세상이 환해지며 무사히 진법을 벗어난 두 사람이다.

 

  "야, 인석아! 눈 뜨고 이 사부의 집을 보아라."

 

  사방을 둘러보던 소천악은 깜짝 놀랐다. 도무지 기도 안 차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왔다. 이 깊은 산중에 전각까지 갖춘 어엿한 저택이 가지런히 시야에 들어왔다. 번듯한 두 채의 집에 연못까지 달린 나름대로 잘 꾸며진 집이었다. 장휘경이 의기양양해 소리쳤다.

 

  "어떠냐, 이 사부의 집이?"

 

  어린애는 어린애였다.

 

  "우와! 정말 이게 사부 집이에요? 세상에 이 산 구석에 이런 집이 있다니! 눈으로 보고도 안 믿겨요."

 

  방금 전의 구타는 어느새 잊어버린 채 감탄사를 연발하는 소천악이었다. 그럴 만큼 집은 충분히 훌륭했다.

 

  "자식아! 이게 다 이 사부를 흠모하는 강호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지은 집이니라."

 

  "쳇! 무림공적에게 행여나……."

 

  영 안 믿긴다는 말에 발끈한 장휘경이 빽 소리쳤다.

 

  "네 이놈! 감히."

 

  "맞아요. 지어줬겠죠. 대단해요. 사부님!"

 

  가슴이 철렁한 소천악이었다. 눈치 빠르게 벌써 사부라는 말을 썼다. 장휘경은 생전 처음 듣는 사부란 말이었다. 그 말이 가슴에 찡하게 와 닿았다.

 

  "험험! 내 사부님이란 말에 이번은 참는다."

 

  낮게 헛기침하는 그는 순간 추억에 잠겼다. 돌아가신 사부의 얼굴이 하늘에 보이는 듯했다. 사실 본인이 말하면서도 약간 찔리는 구석이 없지 않았다. 소천악에게 한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거짓말이었다. 오래전에 오막살이 하나 짓기도 귀찮아 며칠을 고민했다. 생각 끝에 이름난 장인을 납치해 놓고 반강제로 지은 집이었다.

 

  물론 집값은 치렀다. 원가만 일천 냥이 넘는 집값으로 거금 다섯 냥을 주었다.

 

  울상을 짓는 장인에게 딱 한 마디의 명언만 남겼다.

 

  "돈 좋아하다 관짝에 들어간 놈 참 많이 봤다."

 

  그 한 마디에 입을 다문 채 기겁을 하고 도망간 장인이었다.

 

  다음으로 바로 기문진법으로 유명한 제갈세가의 장로 제갈문을 납치해 왔다. 조금 전에 본 절벽기문진은 그의 작품이었다. 제갈문은 수치감에 치를 떨며 기문진을 설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틀리면 개 패듯 두들기는 통에 두려움에 질려 그만 옷에 쉬를 하고 말았다.

 

  실로 알려지면 강호제일뇌(江湖第一腦)라는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할 일이었다. 진을 설치하고 떠나는 길에 제발 이일은 숨겨달라 애걸할 수밖에 없는 제갈문이었다.

 

  풀어줄 때도 올 때와 마찬가지로 눈을 가리고 수백 리 밖에 버리다시피 놓아주었다. 게다가 가볍게 비밀유지비로 약소하게 이천 냥짜리 전표를 받은 비화가 있는 집이었다. 그 원한으로 제갈문이 그를 무림공적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게 되었다.

 

  이미 은퇴를 결심한 장휘경은 별 상관하지 않을 일이다.

 

  "자! 여기가 이제부터 우리가 살 집이다."

 

  "사부님! 여태껏 사부님을 따라다니면서 처음으로 신뢰감이 듭니다. 근데 집이 약간 낡은 기분이 드네요."

 

  아닌 게 아니라 낡았다. 아예 거미집이라 불릴 만했다.

 

  "자식아, 집 떠난 지 오십 년 만이라 그래. 그래도 용케 안 무너지고 버텼네. 하하! 짓기는 잘 지었구먼. 잠시 기다려라. 집을 조금 수리해야겠다."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 호탕하게 웃던 그는 말과 동시에 터덜터덜 걸어서 숲 속으로 들어갔다. 내심 하늘을 날아 신형을 번뜩이며 위엄에 찬 광경을 기대했던 소천악이었다. 잔뜩 실망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 땐 멋지게 신법을 펼쳐 숲 속으로 날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는 걸으며 힐끗 소천악을 보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식이 영웅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구나. 인석아, 볼 사람도 없는데 미쳤다고 힘 빼가면서 신법을 쓰냐! 그리고 넌 이미 내 제자인데 뭐 잘 보이겠다고 난리를 피우냐? 까불지 말고 얌전히 있어. 여기 늑대가 가끔 나오니 조심해야 해."

 

  "헉! 늑대라니요. 저 따라갈래요."

 

  "닥쳐라! 늑대를 두려워하는 놈은 제자 자격도 없다. 설령 나타나도 싸워서 이겨. 지면 일찌감치 죽든가."

 

  매정하게 말한 그는 조용히 숲 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소천악은 황당함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궁지에 몰리니 저절로 오기가 치밀었다.

 

  "에잇! 빌어먹을 노인네. 오냐! 내가 죽나 봐라. 악착같이 살고 말 거야."

 

  사방을 둘러보던 소천악은 집 옆에 녹이 심하게 슨 도끼를 찾아냈다. 말이 도끼지 실상은 녹슨 쇠뭉치였다.

 

  "햐! 이게 도끼냐? 제길! 세게 잡으면 삭아 문드러지겠네."

 

  한심스런 시선으로 둘러보아도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아쉬운 대로 도끼를 들고 눈을 부라리며 사방을 경계했다. 일각이 지옥인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장휘경이 넝쿨에 나무를 묶어 질질 끌고 나타났다. 의외로 통나무의 굵기는 한 아름이 훨씬 넘었다. 아무렇지 않게 그 무거운 나무를 끄는 모습에 소천악은 내심 깜짝 놀랐다. 그는 도끼를 들고 엉거주춤 서 있는 소천악을 보고 피식 웃었다.

 

  "야, 늑대가 호구냐? 네놈이 휘두른 도끼에 맞아 죽게."

 

  빈정거리는 말투에 열이 받은 소천악이 악을 썼다.

 

  "누가 죽을지는 두고 봐야 아는 거죠."

 

  "하하하, 맞다. 누가 내일 일을 알겠느냐? 그 정신, 그게 필요한 거지. 암."

 

  흐뭇한 표정으로 소천악을 바라보던 그는 도끼를 뺏어 나무를 다듬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집은 새로운 나무로 치장되어 나름대로 번듯한 형태를 갖추었다.

 

  "자, 일단 들어가 자자. 이불은 내일 빨고 오늘은 대충 자자."

 

  어디서 가져왔는지 때가 잔뜩 낀 이불을 들고 오며 말했다. 이불이 들썩일 때마다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코를 막고 인상을 구기던 소천악이 물었다.

 

  "저 이불은 얼마나 오래된 거죠?"

 

  "음… 한 육십 년 됐나? 그래도 고급 비단이라 괜찮아. 비밀창고에 꼭꼭 숨겨놓은 거야."

 

  태연한 장휘경의 말에 소천악은 차라리 기절하고 싶었다. 그렇게 두 사제의 첫날밤은 지나갔다.

 

 

 

 

 

  제1-2장 극악 무공수련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이불 빨래를 하고 돌아온 소천악은 장휘경의 부름을 따라 방에 앉았다. 짐짓 엄숙한 얼굴로 장휘경이 낮게 목소리를 깔아 말했다.

 

  "오늘부터 무공을 전수하겠다. 먼저 사부에 대해 말해 주마. 난 강호에서 혈검신마라 불렸느니라. 한창 날릴 때는 내 이름만 들어도 소림이나 무당파가 문을 걸어 잠갔다."

 

  추억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가 감도는 장휘경이었다. 바로 반발하는 소천악이었다.

 

  "요샌 소림사나 무당파가 뒷골목에 있나 보죠?"

 

  뚱딴지같은 소천악의 말에 장휘경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사부가 이름 날린 게 암흑가 아녔나요? 소림사나 무당파는 거기 조직 이름이죠? 다 알아요. 요샌 조직도 이름을 거창하게 지어야 먹고산다고 하더라고요. 거기 두목 이름이 장삼봉 맞죠? 아, 이웃 파는 달마 대사가 두목인가!"

 

  "이 새끼가!"

 

  성질이 난 장휘경은 소천악의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박았다.

 

  "악, 왜 때려요?"

 

  머리를 움켜쥐고 악을 쓰며 소천악이 반항했다. 장휘경은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감히 사부님이 말하는데 그따위 소리나 하는 제자가 어디 있냐? 이놈아!"

 

  "여기 있잖아요."

 

  태연히 말하는 소천악이었다. 장휘경은 코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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