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48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48화
348화
“길게 가봐야 좋을 것 없으니 일찍 끝냅시다.”
무심하게 입을 연 무천이 신도명산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신도명산도 무천을 향해 한발 내딛었다.
방은 무척 커서 두 사람 사이가 삼 장이나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발을 내딛었다 싶은 순간,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 일 장으로 줄어들었다.
동시에 두 사람은 쌍장을 내밀어서 상대를 공격했다.
떵-!
단발의 굉음이 울리고, 폭발의 기운이 탁자와 의자를 가루로 만들며 날려버렸다.
등잔불이 꺼지면서 방 안이 어둠으로 뒤덮였다.
두 사람은 어둠을 상관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재차 공격했다.
떠더덩!
다시 굉음이 터지면서 먼지구름이 방 안을 뒤덮었다.
찰나, 신도명산의 눈이 어둠속에서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튀어나올 듯이 커진 그의 눈에 본능적인 공포가 드리워졌다.
먼지구름을 뚫고 무시무시한 그림자가 날아들고 있었다.
그 순간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콰직!
아수라의 그림자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신도명산의 가슴에 박혔다.
“크억!”
뒤로 붕 날아간 신도명산이 벽을 앞에 두고 떨어졌다.
성큼, 걸음을 내딛은 무천이 다시 우장을 뻗었다.
고오오오오.
우장에서 튀어나간 아수라가 신도명산을 재차 덮쳤다.
이를 악물고 일어나던 신도명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신도명산이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천이 기로 그의 몸을 제어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이다.
털썩.
무릎을 꿇은 신도명산이 겨우 고개를 들었다.
무천이 그를 보며 말했다.
“그대가 죽어도 정은맹은 온전할 것이니, 정파에 해가 되는 일은 없을 터. 그 점을 위안으로 삼아라.”
“아, 안 돼…… 살려줘…….”
신도명산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한마디 할 때마다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악착같이 삶을 갈구했다.
무천은 그 말에 냉소를 지었다.
그 말을 들은 덕분에 미련을 남겨두지 않고 손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살려줘요!”
누군가가 뒷문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아버지를 살려줘요, 무 공자!”
신도명산의 딸이자, 신도평의 여동생인 신도영이었다.
무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멈췄다.
그 사이, 신도영이 신도명산 앞을 가로막고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간절히 말했다.
“제발…… 아버지를 살려줘요. 오빠가 죽을죄를 지었다는 것도 알아요. 아버지가 잘못한 것 역시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살려줘요, 무 공자…… 흑흑흑. 살려주시면, 다시는 강호에 나오시지 않게 할게요.”
이마를 찌푸린 무천은 신도영을 바라보며 손을 내렸다.
신도평은 죽었고, 신도명산은 단전이 부서졌다. 혈맥마저 막혀서 다시는 무공을 펼칠 수 없을 몸이 되었다. 살아 있는 게 다행일 정도.
게다가 자신의 욕심이든 뭐든, 신도명산이 마도와 대항해서 싸운 것만은 사실 아닌가.
무천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렸다.
“대정맹이 알기 전에 오늘 이곳을 떠나서 무이산으로 돌아가라. 산에서 조용히 살아가면 십 년은 더 살 수 있을 거다.”
“흑흑, 고마워요, 무 공자.”
신도영은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고개를 들었다.
어둑한 방 안을 창문에서 들어온 희미한 빛이 밝히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도 무천은 없었다.
그때 방문이 세차게 열리며 몇 사람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맹주! 부맹주님과 장로와 호법 몇 분께서 시신으로……”
하지만 그들은 방 안의 상황을 보고는 얼어붙었다.
그날 새벽.
신도명산이 중상을 입은 것 외에도 정은맹의 천기회 주요 인물 여덟 명과 정파의 고수 다섯 명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모두가 신도명산의 최측근인 고위간부들로, 개중에는 부맹주 팽조환도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장로 이척과 무사 다섯 명이 호위하는 마차 한 대가 조용히 정은맹을 나섰다.
마차에는 신도영과 정신을 잃은 신도명산이 타고 있었다.
그 시각.
무천은 남양의 한 객잔에서 능우로부터 신도명산이 떠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장로인 이척과 호위 몇 명만 데리고 갔수.”
무천은 능호에게 서찰 두 장을 각각 내밀었다.
“이건 군독광에게, 그리고 이건 대장로 제갈경정에게 갖다 줘.”
능우는 무천을 힐끔 보고는 서찰을 받았다.
군독광은 남황궁의 이인자이자 정은맹의 부맹주로, 주금화가 떠난 지금 남황궁 무사들의 총책임자다.
반면 대장로 제갈경정은 정파 쪽 고수들의 지주.
그들을 만나라고 하니 께름칙했다.
‘차라리 죽이는 게 더 편한데…….’
“직접 줄 필요는 없어. 머리맡에다 놓으면 알아서 보겠지.”
그렇다면야…….
“알았수.”
능우는 표정이 조금 펴져서 서찰을 품속에 넣고 방을 나갔다.
무천은 혼자 남은 방 안에서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지금쯤이면 이사명도 출발했겠군.’
***
다음 날 새벽, 군독광은 잠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섬뜩한 기분을 느끼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이불을 확 젖혔다.
사타구니 있는 곳에 하얀 뭔가가 있었다.
서찰처럼 보이는 종이였다.
굳은 표정으로 서찰을 집어든 그는 조심스럽게 펴보았다.
그리고 곧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천이 보낸 서찰이었다.
그런데 누가, 언제 그 서찰을 자신의 사타구니에 놓아두었단 말인가.
등골이 오싹해진 그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주군께서 왜 그를 높이 평가하는가 했더니…….’
제갈경정이 가슴에 얹어진 서찰을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일각 후였다.
그날 아침, 제갈경정은 정말 오랜만에 아침식사를 걸렀다.
차를 두 잔이나 마셨는데도 입안이 바짝 말라서 식사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래,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군.’
그는 겨우 그렇게 결론을 내린 후에야 이른 점심을 먹었다.
***
이틀 후.
한 무리의 무사들이 금룡장에 몰려왔다.
객잔에서 금룡장으로 거처를 옮긴 무천이 전금환과 차를 마시고 있다가 그들을 맞이했다.
무원장에서 온 비룡단원과 비천단, 밀소림의 고수들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남문 밖 십 리 떨어진 곳에서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목량의 보고를 받은 무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전금환을 향해 말했다.
“말씀드린 대로, 일이 잘 되면 정은맹 쪽의 거래는 금룡장에 맡길 겁니다.”
전금환은 벌게진 얼굴로 연신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야 고맙지요.”
“수수료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만 잊지 않으시면 됩니다.”
“허허허, 걱정 마시구려.”
어찌나 두 손을 잡고 흔드는지, 말할 때마다 전금환의 엉덩이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무천은 포권을 취해서 작별인사를 나누고 몸을 돌렸다.
이제 무림사 이래 보기 드문 큰 건을 해결하러 가야 할 때였다.
“목량, 대정맹은 어디쯤 왔지?”
“서문 밖 이십 리쯤 왔다고 들었으니, 시간 맞춰서 도착할 겁니다.”
“좋아, 가자.”
그날 미시 말.
남궁무룡과 이사명이 이끄는 대정맹 고수들과 무원장의 주요고수들이 정은맹을 전격적으로 방문했다.
하나같이 간부급인 고수들로 숫자만 해도 오백여 명.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옥가장 정문에서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자들은 언뜻 봐도 삼사천 명은 될 듯했다.
신도명산이 떠난 후 혼돈에 빠져 있던 정은맹은 대정맹과 무원장 무사들이 몰려온다는 말을 듣고 바짝 긴장했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상부에서 대항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항 명령은커녕 그들의 대표들이 오면 정중히 안으로 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대부분의 무사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다행으로 생각했다.
대정맹은 같은 정파 세력 아닌가. 그들과 싸우는 것부터가 께름칙했다.
게다가 무원장과는 아예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과 싸우는 건 정은맹이 망하는 지름길이었다.
특히 중원 정파의 고수들은, 안 그래도 남쪽의 외세에 정은맹의 주도권이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던 터였다.
대항하기는커녕 혼란에 빠진 정은맹을 대정맹이 수습해주기를 은근히 바라며 환영했다.
남황궁 쪽 무사들은 남의 일이라도 되는 듯 무관심했고.
덕분에 대정맹은 정은맹에 무혈입성 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일 각 후.
정은맹 총단이 된 옥가장에서 가장 큰 대전인 천옥전에 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정은맹의 간부들이 사십여 명, 대정맹의 간부 삼십여 명. 그리고 무천을 비롯한 무원장의 주요 고수 이십여 명.
그들은 오 장 거리를 둔 채 세 방위로 나누어져서 대치하듯 자리했다.
내부 넓이만 해도 삼백 평이나 되는 드넓은 대전 안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간 끌 것 없이 논의를 시작해보도록 하지요.”
정은맹 쪽에서 정은맹 최고위장로이자 제갈세가의 원로인 제갈경정이 나섰다.
“무슨 논의 말인가?”
무천은 제갈세가에 들렀을 때 그를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었다.
와룡림에서 만난 제갈운정의 형 되는 이로, 현재 정은맹에 와 있는 제갈세가 사람 중 가장 큰 어른이었다.
“대정맹과 정은맹의 합맹을 논의하자는 겁니다.”
단도직입적인 무천의 말에 정은맹 간부들이 웅성거렸다.
대정맹이 정은맹 수습에 도움을 주는 건 바랐지만, 설마 합맹까지 제의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터였다.
“합맹이라…….”
정은맹의 정파고수들로서는 조건만 좋다면 나쁠 것도 없었다.
어차피 남황궁 때문에라도 정은맹이 반으로 쪼개질 판이었다.
“의협을 행하는 이들끼리 힘을 합친다는 것도 나쁠 건 없는 일이지. 안 그런가?”
제갈경정이 동의를 구하듯 옆을 보며 말했다.
중원 정파의 고수들은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남황궁 간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대조차도.
그런데 그때,
“잠깐!”
한소리 외치며 한 사람이 벌게진 얼굴로 한 걸음 나섰다.
오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노인이었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정은맹과 무원장 쪽을 노려보았다.
“보자보자 하니 가관이군! 맹주께서 부상 때문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우리 정은맹을 통째로 꿀꺽 삼키겠다는 겐가? 어디서 감히……! 흥!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것이니 그만 가보시게!”
정파의 고수인 칠웅 중 한 사람, 일검단산 육과중이었다.
최근 정은맹에 합류한 그는 괄괄한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자신의 거취를 남들이 정한다는 게 영 못마땅했다.
“옳소이다! 이 강 모도 육 대협과 같은 의견이오!”
“맞소! 우리 정은맹 일에 무원장이 왜 나선단 말이오?!”
대여섯 명이 육과중을 편들며 나섰다.
개중에는 노골적으로 무원장을 터부시하는 자들도 있었다.
“상인이면 장사나 할 것이지 말이야. 힘 좀 생겼다고 아무 데나 나서는 건 아니지!”
“돈 좀 버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제갈경정은 미간을 좁혔다.
나선 사람들은 마도와 협정을 맺은 후 정은맹에 들어온 자들이었다.
아마도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그는 나서서 그들을 막지 않고 돌아가는 상황만 지켜보았다.
잘하면 대정맹과 무원장으로부터 상당한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무천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몰랐소? 저번 무림 협정에서 우리 무원장이 중재자가 되기로 했다는 걸.”
육과중이 그 말을 듣고 코웃음 쳤다.
“흥! 상인이 무슨 자격으로 무림의 일에 나서서 중재를 한단 말이냐?”
“자격이라…… 귀하들이 말하는 자격이 뭔지 모르겠군. 무림의 자격은 결국 힘 아니던가?”
“훗, 젊은 친구가 정혈단의 어린놈 하나 꺾더니, 우리가 우습게 보이는가!”
육과중의 비꼬는 말에 무천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