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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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40화
340화
무천이 그에게 물었다.
“그 이후 움직임은?”
“북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태원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상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풍마문의 정보원은 이후로도 몇 가지 사항을 보고하고 밖으로 나갔다.
방 안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무천은 탁자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우문척과 공손두, 악사광, 사야를 보며 말했다.
“내일 아침 황하를 건너가지. 꼬리를 잡으려면 며칠 걸릴 것 같군.”
사야가 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들도 우리가 쫓고 있는 줄은 모를 게 분명해요. 그렇다면 늦어도 사흘 안에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겠지. 사마신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왜요?”
“그놈은 세상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아.”
“장주님만 빼고 말이죠?”
사야가 입꼬리를 올리며 놀리듯 말했다.
하지만 무천은 무심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놈은 나도 두려워하지 않지. 그래서 놈은 죽을 수밖에 없다.”
우문척이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누구 손에 죽을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그때 공손두가 탁자를 탕! 치며 일어났다.
“당연히 내 손에 죽을 거네. 그러니 자네들은 욕심내지 마.”
순간, 거구인 그의 몸에서 무거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반사적으로 우문척이 마주 기운을 흘려서 공손두의 기운을 밀어냈다.
“지금 뭐하자는 거지?”
드르륵.
사야는 의자에 앉은 채 석 자 정도 뒤로 물러나고, 악사광은 굳은 표정으로 공손두의 기운을 받아냈다.
공손두가 씩 웃으며 말했다.
“추적대가 결성되었으니 수장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지금 수장을 가리자?”
“내일부터 바빠질 것 같은데, 오늘이 좋지 않을까?”
“하긴…….”
냉소를 지은 우문척의 몸에서도 기운이 점점 힘을 키우며 흘러나왔다.
묘한 상황이 벌어지자, 무천이 무심한 눈빛으로 공손두와 우문척을 바라보았다.
그도 두 사람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혼돈의 힘을 얻은 자들이 거의 같은 시기에 힘을 각성했다. 하늘의 뜻이라면 참으로 절묘한 안배였다.
어쨌든 원하던 힘을 얻었으니 몸이 근질거렸을 것이다.
저번 전쟁에서 호적수라 생각했던 사람들 역시 힘을 얻은 걸 알았으니, 얼마나 강한지 알아보고도 싶었을 것이고.
더구나 이들은 피가 끓을 나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잘난 척할 때도, 궁금함을 풀기 위해 힘을 겨룰 때도 아니었다.
“힘은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써. 이번 일은 수장이 없어도 되니까.”
무천이 다그치듯 한소리 한 후, 폭발할 것 같던 기운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공손두는 이마를 씰룩이더니 한소리 투덜거렸다.
“제길, 이 정도로도 힘들다는 건가? 도대체 자넨 정체가 뭐야?”
“무천. 지금은 장사꾼이지.”
“장사꾼은 무슨…….”
공손두가 재차 투덜거리려 하자, 사야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공손 공자는 무 공자가 계속 장사꾼으로 있길 바라세요.”
“응? 그게 무슨…….”
“무 공자가 장사꾼 때려 치고 무림에 나서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 거 같아요?”
“……”
공손두는 바로 대답을 못했다. 정말 그리 된다면 자신은 영원히 이인자로 밀려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것도 우문척을 이겼을 때의 이야기지만.
우문척도 사야의 말에 흠칫했다.
“올해 들어본 말 중 제일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말이군.”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무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가서 쉬어. 내일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
정혈단 추적대는 아침 일찍 황하상선 다섯 척을 이용해서 황하를 건넌 다음 경공을 펼쳐서 태행산 남단을 넘어갔다.
그리고 그날 늦은 오후, 어스름이 깔릴 때 사도맹 총단인 진마문에 도착했다.
사도맹 총단은 정혈단에 공격당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참혹함이 그대로 느껴질 만큼 엉망이었다.
바닥은 그날의 일을 알려주듯 온통 검붉은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시신조차 제대로 다 처리되지 않아서 한쪽에 쌓여있다시피 했는데, 따뜻한 날씨로 인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도맹 무사들은 수백 명이나 되는 무사들이 빠르게 다가오자 바짝 긴장했다.
그런데 그들 중 몇 명이 정혈단 추적대 고수들을 알아보았다.
“철혈마련의 우문척 대공자다!”
“귀천교 무사들이다!”
“저건 마천문 복장 같은데?”
“맞아! 저 앞에서 오는 분은 사천마룡 공손 공자다!”
사도맹 무사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간부로 보이는 중년인이 옆을 향해 소리쳤다.
“안에 가서 말씀드려라!”
“예, 당주!”
정혈단 추적대가 사도맹으로 들어섰을 때, 안쪽에서 몇 사람이 달려 나왔다.
그들 중에는 얼굴 한쪽을 천으로 감은 사공진도 있었고, 왼팔을 싸맨 채 늘어뜨리고 있는 사공곽도 있었다.
그들은 장원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뒷짐을 지고 들어선 무천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 장주?”
“무 형이 어떻게 여길……?”
“정혈단을 쫓고 있지.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는 게 좋겠군.”
“아, 들어오시오.”
사공곽이 씁쓸한 표정으로 사대세력의 대표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커다란 진마대전의 문은 한쪽이 떨어져 나가고, 그 안은 피로 범벅되어 있었다.
“놈들은 사람이 아니었네.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확인사살을 했지.”
사공진이 이를 갈 듯 말했다.
무천은 물론이고, 우문척이나 악사광도 그들의 광기어린 살행을 직접 대해본 사람들이었다.
사공진의 말에 조금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소. 그런데 장례를 치를 수도 없는 상황이오.”
사공곽이 분노를 씹으며 한 말에 무천 등은 흠칫했다.
우문척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맹주님께서 돌아가셨다고? 오면서 그런 말은 듣지 못했는데…….”
“중상을 입으신 상태로 겨우 버티셨는데, 오늘 아침에 돌아가셨소.”
“이런…….”
사공진이 추가로 몇 마디 더했다.
“오늘 부로 곽 조카가 문주 대행이 되었네. 정식 취임은 상황을 수습한 다음에 하기로 했네.”
“그럼 사도맹은……?”
“사도맹은 해체하기로 했네. 공포에 질려서 맹의 형제들을 내팽개치고 도망친 귀곡과 흑룡방 놈들과는 두 번 다시 함께 하지 않을 생각이네.”
그때 사공곽이 말했다.
“우리도 정혈단을 추적하는 데 함께 하겠소.”
무천이 그를 보고 이마를 좁혔다.
“괜찮겠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오. 복수를 하지 못한다면 살아서 뭐하겠소? 무 형! 복수할 수 있게 도와주시오!”
말하는 투나 표정이나, 과거의 사공곽이 아니었다.
눈빛도 달라져서 분노의 화염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무천은 그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혈단을 추적하다 보면 지리도 잘 알아야 했다. 산서의 지리는 진마문 무사들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터.
“좋아, 백 명 정도만 뽑아. 특히 발이 빠르고 지리를 잘 아는 사람들로.”
그때 한 사람이 전각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 공자!”
사공미미였다.
그녀는 무천을 보더니 눈물을 쏟아내며 달려들었다.
무천의 가슴으로 달려든 사공미미는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앙!”
오늘만큼은 무천도 그녀를 피하지 않고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하지만 사공미미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나직이 말했다.
“네가 울면 살아남은 많은 사람들의 사기가 더 떨어진다. 그러니 참아.”
그제야 사공미미는 훌쩍거리며 무천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흑, 흑. 그 살인귀들을 죽여줘요, 무 공자. 그럼 제가 매일 밤 안마를 해드릴게요. 흑, 흑…….”
“…….”
무천은 사공미미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 난감했다.
‘죽이란 말이냐, 죽이지 말란 말이냐?’
***
흑룡방은 태원 동쪽 마금산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태원 일대에는 정파 중 큰 문파가 없는 터라 그들은 백수십 년 전부터 태원의 패자로 군림해왔다.
사도맹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부터는 더욱 기세를 올려서 가히 제왕의 위세를 자랑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 거대한 흑룡방의 대지에 비명과 악다구니만 난무했다.
그자들이 흑룡방의 일 장이 넘는 담장을 넘어온 것은 미시 무렵이었다.
점심을 먹고 느긋이 휴식을 취하던 흑룡방 무사들은 안으로 날아드는 그들을 보면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저 새끼들 뭐야?”
“웃기는 새끼들이네. 멀쩡한 문을 놔두고 왜 담을 넘어?”
목에 힘주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 정도.
하지만 상대의 정체를 눈치 챈 자들은 악을 써댔다.
“정혈단 놈들이다!”
“정혈단이 쳐들어왔다!”
“비사아아앙!”
그리고 곧 그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타난 자들은 무자비했다.
산서의 삭풍 속에서 버텨오며 나름대로 잔혹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흑룡방 무사들도 그들 앞에서는 이름조차 내밀지 못했다.
반각.
겨우 그 시간이 흘렀는데, 사지가 잘리고 몸이 동강난 시신들이 드넓은 마당을 가득 메웠다.
흑룡방 내부에 있던 일천오백 명이 죽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일각이 채 되지 않았다.
흑룡방주 구태광도 팔 하나와 다리 하나가 잘리고 머리가 터진 채 죽었다.
오백 명 정도는 공포에 질려서 도망쳤다.
그렇게 태원에서 제왕처럼 군림했던 흑룡방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흑룡방을 피바다로 만든 정혈단원들이 사라진 지 이각쯤 지났을 때, 일단의 무리가 흑룡방 안으로 들어섰다.
진마문에서 달려온 정혈단 추적대였다.
그들은 굳이 이런저런 조사를 하지 않았다.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시신들을 살펴보던 장한 하나가 돌아서서 보고했다.
“이제 곧 얼굴을 볼 수 있겠군.”
우문척이 입술 끝을 비틀며 싸늘하게 냉소를 지었다.
하지만 시신을 둘러보던 무천은 그런 비웃음조차 지을 수 없었다.
‘달라졌다. 마침내 마기의 폭주가 시작된 건가?’
정혈단원들은 전에도 마기가 폭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본인이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시신을 보니,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 흔적이 여기저기 드러나 있었다.
즉, 본성조차 마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놈들의 흔적이 동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흑룡방 외곽을 살펴보며 정혈단의 흔적을 찾던 진마문 제자 하나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무천은 후미에서 추적대를 따라가며 일행에게 주의를 주었다.
“정혈단원들은 마기가 폭주한 상태요. 손에 정을 남겨두지 말고 살수를 펼쳐서 상대해야만 하오.”
은설이 그 말을 듣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대부분 정파의 기재라고 했던 제자들인데…… 안타깝네요.”
“잊지 마라. 네가 손에 정을 두는 순간, 잘못하면 네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죽을 수 있다.”
“알았어요, 오빠.”
***
흑룡방을 나선 추적대가 동쪽으로 한 시진쯤 달렸을 때, 진마문 무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놈들이…… 놈들이 저 앞쪽에 있는 음혼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음혼문(陰魂門)은 산서 십대문파 중 하나로, 나름 명성을 떨치는 무파였다.
인원은 오백 명 정도로 많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독문무공인 음혼독장의 지독함 때문에 사도맹의 삼대파벌조차 그들을 상대하지 않으려 했다.
음혼독장은 스치기만 해도 음독이 몸에 스며들었는데, 사람을 지독한 고통 속에 서서히 죽게 만들었다.
그런 음혼문의 제자들이 오늘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