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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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39화
339화
무천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남황궁 삼만 무사가 중원에 들어온다면 지금보다 더한 혼란이 올 것이다. 하물며 오만 명이 들어온다면…….
“그 말씀, 협박으로 알아들어도 되겠습니까?”
“협박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걸세. 자네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 방법밖에 없거든.”
주금화가 어쩔 수 있냐는 투로 말했다.
알고 보면 그의 성격도 무천에게 뒤지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내가 천하를 얻으려는 건 내 욕심 때문만이 아니네.”
“궁주의 욕심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네. 자네도 알지 모르지만, 지금 황궁은 이십 년 넘게 구더기 같은 자들이 설쳐서 뒷간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더러워져 있네. 그런데 황궁에 문제가 있으면 백성이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지.”
무천도 그 점은 알고 있었다.
황제는 간신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간신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에만 급급했다.
그로 인해 힘없는 백성들만 고통을 겪고 있었다.
오죽하면, 황궁에 벼락이 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사람이 수백만 명은 될 거라는 말조차 있었다.
“썩을 대로 썩은 황궁을 뒤집으려면, 확실한 명분과 힘이 있어야 하네. 그런데 아쉽게도 나의 힘은 대부분 노출되어 있어서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네.”
남황궁이 정은맹에 기생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네가 도와준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돈, 힘, 그리고 철저한 계략까지. 자넨 천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네. 자네만 모를 뿐이지.”
주금화는 무거운 어조로 말을 맺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갑자기 포권을 취하며 깊이 허리를 숙였다.
“도와주게, 무 장주. 천만백성을 위해서.”
무천의 표정이 진중하게 가라앉았다.
그도 주금화가 진심을 말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황궁이 그만큼 썩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고. 주성유도 황궁에서 나는 썩은 내를 피해 소림에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천만백성을 위해서라…….’
무천은 그 말을 속으로 되뇌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조부에게 속아서 만인을 죽인 마천제가 언제부터 백성을 위했다고…….
한편으로는 세상에 대한 미안함을 씻을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해보지요.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무천이 그렇게 말한 후에야 주금화가 고개를 들었다.
“아마 후회는 안 할 거네.”
“괜히 말씀하시라고 한 것 같아서 벌써부터 후회가 됩니다.”
무천이 짐짓 냉랭하게 말하자, 주금화가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 거네.”
“그럼 이제 정혈단에 대한 답을 들을 차례군요.”
갑자기 툭 던져진 무천의 말에 주금화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자네 정도라면 짐작하고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아직 독심술을 익히지 못했습니다.”
“후우, 정말 듣고 싶은가?”
“잘 아시잖습니까? 정혈단이 어떤 존재인지.”
주금화는 찻잔을 들어서 다 식어버린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불쑥 말했다.
“차도살인(借刀殺人).”
무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정혈단을 이용해 무림의 힘을 약화시킨다?”
“황제가 명령을 내리면 무림이 어떻게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나?”
“무림과 황궁은 물과 기름 같은 사이라는 걸 아실 텐데요?”
“하지만 무림도 결국 황제의 대지에 존재하지. 나는 무림인 모두가 황제의 명령을 외면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네만.”
“그래서 정혈단을 이용해 무림의 힘을 최대한 약화시키려고 했다는 거군요.”
“그렇다네. 자네가 끼어들면서 다 틀어졌지만.”
“그럼 나는 궁주께 웬수나 다름없는 사람이군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네. 자네 덕분에 더 좋은 방법을 찾아냈으니까.”
무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주금화가 말한 의미를 눈치 챈 것이다.
황궁에서 아무리 뭐라 해도 무림은 당분간 황궁의 명령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더구나 협정이 맺어졌으니 단독으로 대규모 무사대를 움직이는 것도 어정쩡한 상황 아닌가.
주금화라면 그 상황을 얼마든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것이고.
“어쨌든 그로 인해 흘리지 않아도 될 피가 너무 많이 흘렀습니다.”
“어차피 정혈단이 아니어도 흘렀을 피네. 그건 자네도 잘 알 텐데?”
어쩌면 주금화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정마대전은 벌어질 일이었다. 오히려 정혈단이 아니었다면 정파가 구석에 몰려서 더 많은 피가 흘렀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정혈단이 아직 멀쩡하다는 것이고, 그들이 마기에 정신을 지배당해서 오직 피만 갈구할 거라는 점이었다.
“정혈단이 마기에 의해 정신을 지배당하면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 전에 막아야만 합니다. 그들의 총단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시죠.”
“나도 정혈단의 총단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장소는 모르네.”
총단의 위치를 모른다고? 그럼 정혈단을 어떻게 움직였단 말인가?
무천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하지만 그가 한마디 내뱉기 전에 주금화가 말을 이었다.
“다만…… 연락은 취할 수가 있네. 아마 그 연락망을 역으로 추적하면 그들의 본거지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군.”
그러고는 느긋이 남은 차를 마저 마셨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마치…… 한방 먹인 게 통쾌하다는 듯.
***
무천은 풍마문의 정보망을 동원해서 정혈단 추적에 나섰다.
주금화가 연락을 취하면 풍마문이 그 뒤를 쫓기로 했다.
그런데 이틀째 되던 날, 굳이 추적할 필요도 없는 사건이 터졌다.
“사도맹이 정혈단에 당했습니다.”
마호걸이 직접 달려와서 알린 소식은 무원장을 긴장시켰다.
팔대마세 중 그나마 무력을 덜 소모한 곳이 사도맹과 패왕문이다. 그런데 그 중 한 곳인 사도맹을 정혈단이 피로 물들인 것이다.
“피해는?”
“사망자만 이천여 명에 이른다 합니다.”
“사공곽과 사공미미는 무사하오?”
“아직 그것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천은 잠시 생각하고는 지시를 내렸다.
“놈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말고 계속 쫓으라고 하시오. 나는 서평으로 갈 것이니 연락은 그쪽으로 하고.”
우문척과 악사광, 공손두도 서평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보면 정혈단이 적시에 나타난 셈이었다.
“알겠습니다, 장주.”
***
무천은 최고의 정예고수 이백 명을 대동하고 서평으로 갔다.
안 그래도 몸이 근질거리던 사람들은 정혈단을 추적한다고 하자 눈빛을 번뜩였다.
밀소림 제자들과 비천의 고수들도 동행했다.
본래 무천은 밀소림 제자들을 소림으로 돌려보내려 했다. 이제는 정파도 마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자들을 키울 수 있으니까.
그런데 운정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도 소림으로 돌아가고 싶소. 하지만 밀소림의 제자가 될 때부터 우린 자비를 버리고 살계를 택한 사람들이오. 피가 배인 이 몸으로 어찌 부처 앞에 설 수 있겠소. 게다가 아직은 피를 볼 일이 남은 것 같으니…… 나중에…… 세월이 지나 몸에서 피냄새가 빠져나갔다 싶으면 그때 생각해보리다.”
무천도 굳이 떠밀지는 않았다. 그도 아직은 그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무천 일행이 서평의 곡산장에 도착했을 때, 우문척과 공손두가 한발 먼저 정예들과 함께 도착한 상태였다.
철혈마련에서 장로 다섯에 철혈마령대와 철혈사령대, 그리고 십여 명의 철혈귀령까지 출동한 걸 보면 단단히 작정한 듯했다.
그런데 공손두 일행 중에 눈에 익은 사람이 보였다.
사야가 동행한 것이다.
“당신이 왜……?”
무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사야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성주님께서 보냈어요. 마존대와 함께요.”
마존대라면, 천양묵이 부인을 위해 남겨두었다는 만마성 최강의 무사대 아닌가.
“마존대는 성주 부인을 호위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성주님께서 곁에 항상 계실 거예요. 그리고 성주님께서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래?”
“문장이 조금 나아졌다고 부인께서 좋아하세요.”
“다행이군.”
그때 우문척이 말했다.
“자자, 사랑다툼은 나중에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무천이 그 말에 화들짝 놀라서 눈을 치켜떴다.
“무슨 소리야? 사랑다툼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누가 무슨 사랑다툼을 한단 말인가.
더구나 한쪽에는 은설도 있는데 어디서 그런 농담을…….
“사야 소저가 그러던데? 성주께서 자네에게 소저를 맡겼다고.”
“그건 지켜달라고…….”
우문척은 무천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서둘렀다.
“그게 그 말이지. 좌우간 지금은 정혈단을 치는 게 중요하니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세.”
“…….”
무천은 사야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사야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어쨌든 사실은 사실이잖아요.”
“너……!”
“들어가요. 다들 기다리시잖아요.”
사야도 무천의 말을 끊고 몸을 돌렸다.
무천은 고개를 돌려서 은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은설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대신 짧게, 입술을 삐죽이며 한마디 했다.
“나중에 말해요, 오빠.”
‘제길…….’
차라리 천하를 놓고 다투는 게 더 쉽지…….
방 안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굳은 표정으로 풍마문 조장의 보고를 받았다.
사도맹의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이천여 명이 죽고, 그 이상의 숫자가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흑룡방과 귀곡이 진마문을 배제한 채 새로운 사도맹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결국 진마문만 막대한 피해를 입은 셈이군.”
진마문이 곧 사도맹 총단이었다.
그러다 보니 죽거나 다친 무사 중 절반 이상이 진마문 무사였다.
“정혈단 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파악은 했소?”
무천이 묻자, 풍마문 조장이 대답했다.
“사도맹을 친 후 면산 쪽으로 북상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면산이라면 사도맹 총단에서 북쪽에 있다. 그들이 북쪽으로 향했다면, 사도맹의 삼대파벌 중 진마문을 제외한 귀곡과 흑룡방을 노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중원으로 내려오지 않고 산서에서 피를 뿌리는 걸까.
“놈들이 산서에 머물면서 사도맹을 잡아먹고 힘을 키울 생각인 것 같은데?”
공손두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었다.
마도와 정파의 협정으로 전쟁이 멈췄으니 중원에서는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 터, 대안으로 산서를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곳에서 힘을 키운다면 막기가 더 어려워질 거예요.”
사야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듣고만 있던 우문척이 무천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겠나? 아직 귀천교 쪽에서 도착하지 않았는데.”
무천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말했다.
“정주로 가서 기다리지. 여기는 시간 차이가 너무 커.”
소식이 전해지려면 아무리 빨라도 이틀은 걸린다. 그렇게 연락을 받아서는 정혈단의 꼬리를 잡을 수 없다.
“그게 좋겠군.”
“귀천교에게는 정주의 황보가로 오라고 해.”
***
이틀 후. 정혈단 추적대는 정주 황보가에 도착했다.
무천이 포원의 명승연에게 미리 연락을 해놓은 터였다. 을씨년스럽던 장원도 그들이 도착했을 때쯤에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식솔들은 갑자기 몰려온 사람들을 보고 잔뜩 긴장했다.
황보가는 언제 마도인들이 몰려들지 몰라서 장원을 관리할 필수적인 식솔만이 머물고 있었다.
그럼에도 피해가 덜한 것은 황보가가 무원장 소유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백 명이나 되는 무사들이 몰려오니 겁이 날 수밖에.
하지만 그들 중에 무원장 주인인 무천이 끼어있다는 걸 알고 반색했다.
그들에게 무천은 절대적인 믿음의 존재였다.
정혈단 추적대는 황보가에서 휴식을 취하며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귀천교와 악사광은 두 시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정혈단과 사도맹 쪽의 소식이 전해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풍마문의 정보원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와서 보고를 올렸다.
“정혈단이 면산의 귀곡을 공격해서 피바다를 만들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