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24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24화
"이래 가지고야 어찌 강호에 이름을 날리는 대장부라 하겠소이까. 에휴!"
깊은 한숨을 토해내는 소천악의 모습은 세상 다 산 노인네와 흡사했다. 보는 이의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곤소우는 같은 남자로서 도와주고픈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런 고충이 있었구려. 좋소이다. 제가 이제부터 강호에 이름난 색마의 근황을 낱낱이 알려드리지요. 자기들이 아무리 숨어 있다 해도 우리 하오문의 눈을 피하긴 어렵지요. 원채 색마들이 여자를 밝히는지라 기루를 통해 다 들어오는 거지요."
"역시 하오대문이오. 가능하면 최고의 색마로 알려주시오. 시답잖은 놈에게 배워봐야 시답잖지 않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소천악에게 미소로 화답하는 곤소우였다.
"역시 공자는 배포가 크시구려. 한데 조심해야 합니다. 살아 있는 색마들은 모두 저마다 비전 무공절기를 가지고 있소. 그 경지가 일류고수를 넘어서지요."
"흐흐, 일류 아니라 절정이라 해도 제놈들이 감히!"
말하며 안광을 번뜩이는 소천악의 눈에서 시퍼런 섬광이 슬쩍 스쳐 지나갔다. 불행히 곤소우는 그걸 보지 못했다. 만약 보았다면 정보를 핑계로 무슨 요구를 해도 했을 터였다. 고수 한 명이 아쉬운 하오문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하오문도 하나가 서찰 하나를 주고 나갔다. 곤소우는 서찰을 한번 쓱 보고 바로 소천악에게 넘겨주었다.
"자! 이게 강호 십대미녀를 포함한 우리가 아는 모든 미녀들의 신상정보요. 가지고 다니시기 편하게 일목요연하게 적어놨소이다."
소천악은 천천히 서찰을 읽어 내려갔다. 읽을수록 과연이라는 찬탄이 절로 나왔다.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서찰에는 수많은 미녀들의 이름을 비롯한 각종 정보가 모두 담겨 있었다. 슬쩍 본 소천악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놀랍소이다. 이런 세밀한 정보를 낱낱이 파악하시다니!"
"놀라기는 아직 이르지요. 여기 이것도 가져가시지요. 강호에 이름난 색마 명단이오. 여기엔 그놈들의 행적과 용모 그리고 무공 등이 모두 적혀 있지요."
"음, 사실 뭐 그다지 구하기 힘든 정보가 아니니 그냥 드리고픈 마음이지만 우리 일이 원래 그래서."
"뜸 들이지 말고 편하게 말하시구려."
잠시 고민하던 곤소우였다. 거액을 요구하자니 흑사방이 걸렸고 덜 받자니 관례에 어긋났다. 하지만 역시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좋소이다. 딱 잘라서 백 냥만 내시오. 원래 백오십 냥은 받아야 하는데 공자가 우리 하오대문을 이리 좋게 봐주시니 어찌 다 받겠소?"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백 냥이라니, 이런 터무니없는."
버럭 소리치는 소천악의 음성에 노기가 가득 실려 나왔다. 좋은 분위기에 취해 있던 곤소우가 다시 소천악의 행적을 떠올리며 눈앞이 깜깜해 왔다. 펄펄 뛰는 소천악의 눈치를 보던 그가 힘들게 말했다.
"아니, 그게 비싸시면 조금 깎아드리면 안 될까요, 공자?"
"닥치시오! 지부장 이거 하오대문을 좋게 봤는데 어찌 이런 망발을. 이런 제길!"
노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소천악이 방에서 펄펄 뛰었다. 점점 심장이 떨려오는 곤소우였다. 아차 하면 오늘이 하오문 광동성 지부 폐쇄의 날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사태를 수습하느라 등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곤소우였다.
"아니, 공자님. 무슨 영문이신지 제발 말씀이라도 하고 화를 내심이."
"들으시오, 지부장, 이 정보는 내게 있어서 너무도 중요한 정보요. 이런 정보가 고작 백 냥이라면 내가 무슨 꼴이 되겠소. 안 그래요?"
"아니, 그럼 얼마나 되어야 만족하실는지?"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적어도 천 냥의 값어치는 있는 정보요. 알겠소?"
엉뚱한 소천악의 말에 할 말을 잊은 곤소우였다.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절실한 깨달음이 뇌리를 때렸다.
"죄송합니다, 공자. 아무래도 제가 실수한 거 같네요. 역시 공자는 정보를 아시는구려."
곤소우가 실수를 인정하자 비로소 소천악의 표정이 약간 밝아졌다.
"이제라도 깨달았다니 다행이오. 내 조금 전의 지부장님을 생각해 많이 참았소. 자, 여기 천 냥어치 전표를 받으시오."
"네, 공자. 고맙습니다."
천 냥 전표를 받는 곤소우의 손이 저절로 떨렸다. 반 년치 하오문 광동성 지부 유지비보다 많은 돈이 저절로 굴러들어 오는데 왠지 씁쓸한 기분이었다. 볼일을 다 본 소천악이 자리를 일어서려 하다가 떠오른 생각에 다시 주저앉았다.
"깜빡할 뻔했소. 당금 강호무림의 사정에 대해 말 좀 해주시오. 가급적 아주 간단하고 쉽게 말해 주시면 고맙겠소. 물론 최절정 고수에 대해서도 말해 주시오."
쏜살같이 물어오는 소천악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는 곤소우였다. 뇌리에 박힐 대로 박힌 일반정보였다.
"현재 강호무림은 구파일방을 주축으로 하는 전통강파 그리고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각 세가가 정파무림을 이루고 있소이다."
"음, 정파무림이 뭉쳐 있소? 뭐 무슨 무림맹이니 뭐니로?"
"하하, 서로 잘났다고 하는 놈들이라 힘들지요. 타파 장문인이나 세가주를 맹주로 모시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죠. 그저 허술한 연대 정도지요."
"그럼 끼리끼리 논다는 이야기인가요?"
"딱 그렇다 하기에는 모자라죠! 무림의 태산북두라는 소림사(少林寺)가 심장부에 자리해 언제라도 소림이 떨치고 일어서면 금방 뭉칠 여지는 남아 있소"
"역시 소림사란 이야기인가?"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변하며 말하는 소천악을 보며 곤소우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소림은 항상 아미타불만 뇌까리며 세속이나 강호무림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를 않죠."
"원래 스님들이야 만날 아미타불 공염불만 외는 거지요."
"소림은 이런 말을 하지요. 흐르는 물을 둑으로 억지로 막으면 더 큰 물난리가 난다고요. 그저 인간의 마음이 가는 데로 강호무림도 흘러야 한다고요."
"말은 잘하네요. 솔직히 말하면 될 텐데요. 귀찮아서 안 한다고 하면 누가 뭐라나요!"
피식 웃으며 소천악이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대충 정파무림에 대해 뇌리에 기억한 소천악이 다시 물었다.
"그럼 사파나 마도무림은 어떻소?"
"거기도 사파의 사존맹(邪尊盟)이 있고 마도는 집마부(集魔府)가 있습니다만 그리 똘똘 뭉친 처지는 아니지요. 물론 두 문파가 가까이 있는 사파나 마도문파는 충실하게 복종합니다. 하나 멀리 떨어진 문파에게는 그다지 영향력이 없다고 봐야지요."
곤소우의 말을 뇌리에 차곡차곡 넣어두며 다시 물었다.
"그렇군요. 그럼 현재 무림정세는 어떻소?"
"말도 마십시오. 하루가 멀다 하고 멸문하는 문파가 부지기수입니다. 정사를 막론하고 늘 피비린내가 진동하죠. 정사의 기둥인 구파일방이나 세가 그리고 사마도의 거파들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한 그런 일엔 신경도 안 씁니다."
대충 머릿속에 현재 강호무림 구도가 자세하게 그려졌다. 앞으로의 강호 여정에 깊이 참고하리란 마음을 정했다.
"자, 그럼 최절정 고수에 대해 말해 주시오"
"그거야 뻔하죠. 아까 말한 문파에 한 명 이상 있다고 보면 정답입니다. 아무래도 강호에서 이름난 고수는 대부분 다 거기에 적을 두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 외에 적을 두지 않고 독보강호하는 몇 명의 고수가 있기는 하지요. 그에 대해 바로 서찰로 전해드리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곤소우는 하오문도를 불러 서찰을 가져오게 하였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번개같이 전달된 서찰을 소천악에게 건네주었다.
"고맙소. 요긴하게 잘 쓰리다. 아무래도 강호초출이라. 하하하!"
"강호무림은 권모술수가 횡횡하는 살벌한 곳입니다. 아무쪼록 조심이 제일입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혈검신마라고 아시오?"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소천악의 질문에 곤소우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헉! 지금 혈검신마라 하셨습니까?"
"그렇소. 사부님이 말씀하신 사람이라 궁금해서요."
"실례지만 사부님 존함이?"
"그건 말해도 모를 것이오. 워낙 우리 사부님이 속세에 관심이 없으셔서 단 한 번도 강호를 주유한 일이 없소."
"음, 그렇소이까? 워낙 살 떨리는 명호를 대셔서."
떨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말하는 곤소우를 보며 의아한 소천악이 물었다.
"그리 혈검신마가 유명한 사람이오?"
"유명한 정도가 아닙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산천초목을 떨게 하는 명호지요. 막말로 일대일로 싸워 이길 고수가 강호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입니다."
"호오, 그렇게까지?"
혈사부의 실체를 알고 나니 더욱 놀라는 소천악이었다. 주책덩어리에 제자 괴롭히기만 능한 줄 알았던 영감탱이였다. 하지만 그 위명은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
"실로 무서운 인물이지요. 마지막엔 누명을 쓰고 무당파를 비롯한 정파무림의 수백 명 고수의 합공을 받았지요. 그 가공할 숫자를 예상을 깬 채 가볍게 짓누르고 사라진 게 마지막 강호 행보였습니다."
"누명을 썼다고요?"
"누명이지요. 정파무림에서 시기해 벌인 일이지요. 다들 쉬쉬하지만 정보를 다루는 이들은 모두 알고 있지요."
소천악의 눈빛이 번뜩이는 섬광을 발했다. 혈사부가 귀에 인이 박히도록 이야기한 게 사실로 드러났다. 그의 머리는 놀라운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억울한 누명이라면 당연히 벗겨줘야 했다. 혈사부의 명예가 아니라 자신의 강호행보에 필요하다는 게 그의 사고방식이었다. 물론 혈사부의 명예를 회복해 주고 생색을 내고픈 마음도 없지 않았다. 당장 필요한 무림 사정을 다 들은 소천악이 흔쾌하게 말했다.
"고맙소. 자세한 정보 주셔서. 이건 그냥 천 냥에 대한 추가 정보로 합시다."
"그러시지요. 하하!"
곤소우는 거액을 받아 챙긴 미안함에 서슴지 않고 동의했다. 소천악은 지나가는 말처럼 툭 한마디를 던졌다.
"오늘 유익했소. 그리고 다른 하오문에게도 말을 좀 해주시오. 혹시 정보를 얻을 일이 있으면 아무래도 소개가 좋으니."
"안 그래도 제가 여기 최우량 고객 패를 준비했습니다. 패 안에 번호가 있으니 하오문 총단이나 어느 지부를 가더라도 환영받을 겁니다."
아무 말 없이 패를 집어 품에 넣은 소천악이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하오문을 나왔다. 그가 멀리 사라지자 멀거니 서 있던 곤소우가 급히 서찰 하나를 써 내려갔다.
<지급 수신 전 하오문 전 지부 및 총단.
위험인물에 관한 건.
최우량 고객 패 번호 : 77번.
성명 : 소천악.
용모 : 긴 흑발에 화려한 무복을 즐겨 입고 다니며 용모는 약간 준수한 편임.
말투 : 자기 편한 대로 말하는 성향이 깊어 보임. 존대에 능한 편이지만 성질은 폭급함.
무공경지: 현재로선 절정급에 육박한 고수로 보임. 더 자세한 정보는 광동성에서 주름잡던 흑사방을 단신으로 박살냄. 이후 손해배상을 빙자해 거액을 뜯어낸 것으로 보임. 아직까지는 무공에 대한 정보 없음.
특기사항: 한마디로 예측불허의 인물. 특기사항은 미녀와 색마에 관한 정보에 관심 많음. 그에 대한 정보료는 기본 천 냥 이하를 부르면 해당 지부가 쑥대밭이 될 우려가 있음. 단 다른 정보료에 대해서는 주는 대로 받아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