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23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23화
"돈도 없으신 팔자에 더럽게 말 많으시오!"
신경질적으로 말한 소천악이 다시 손가락 하나를 잡아 가차 없이 똑 부러뜨렸다.
부드득.
뼈가 으스러지며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뇌리에서 덮쳐오는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에 기절할 지경인 흑사방주 조일비였다.
"으악! 이 잔인한!"
"귀하신 분이 아직도 반말이네요. 그런데 뼈 부러트리는 손맛이 짜릿하네요. 어지간하면 계속 돈 없다고 버티시오. 이 맛도 돈맛 못지않아요. 흐흐."
다짜고짜 손을 잡아챈 소천악이 이번에는 두 개의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극심한 고통에 절로 식은땀이 나는 흑사방주 조일비는 미칠 지경이었다.
"돈 없다고 제발 이러지 마시오!"
아픔에 굴복한 그가 아예 사정 조로 나왔다.
"음, 돈 없어도 돼요. 남은 손가락이 여섯 개고 발가락 열 개 그리고 갈비뼈, 등뼈, 팔목뼈 아직도 분지를 뼈는 많아요. 다 부러지면 마지막은 목뼈인가요?"
실실 웃으며 말하는 소천악이 이젠 악마로 보이는 흑사방주 조일비였다. 저 인간은 능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란 생각이 들자 몸의 뼈란 뼈는 죄다 부러져 병신으로 길거리에서 동냥하는 자신의 미래가 보였다.
"잠깐! 우리 말로 합시다."
"말씀은 무슨. 내가 언제 말하고 싶다고 했나요? 조금만 참으시구려. 몽땅 분지르고 이야기를 해도 합시다. 몸 풀게 했으면 손해배상을 해야지. 오리발을 내밀고 지랄이십니까?"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없는 돈이 손가락 부러진다고 나옵니까?"
"시끄럽소이다! 당신은 이런 말도 모르나요?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돈 벌어놔야 이런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겁니다. 자, 여러 말 말고 뼈로 때우시지요."
흑사방주 조일비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괴물을 맞이한 아득한 절망감에 빠졌다. 경험상 저런 인간은 자기가 하고픈 일을 반드시 한다는 생각이 들자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스산한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다가서는 소천악의 손을 보며 기겁했다.
"잠깐 기다려보시오. 제가 일단 만들 방법을 찾아보겠소."
"네? 좋소이다. 알아보시구려. 대신 명심하시오. 알아보고도 오리발이면 이번에는 한 냥당 뼈 하나로 모시겠소. 아주 모든 뼈를 토막낼 각오를 하시구려."
냉정하게 말하는 소천악을 보며 흑사방주 조일비는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어쩔 수 없이 옆에 서 공포에 떨고 있는 섬정기 총관을 불렀다.
"이봐, 가서 소협이 말씀하신 은자 오천 냥을 준비해 와라.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가져와."
부들부들 떨면서 말하는 흑사방주 조일비였다. 섬정기 총관은 옆에 서서 벌벌 떨다 기회를 잡은 듯 번개같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방주. 바로 준비하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바람같이 섬정기가 사라지자 흑사방주는 아까움에 몸이 떨려왔다. 살면서 감히 자신에게 은자를 뜯는 인간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한 처지였다. 돈에 목숨 걸던 그로서는 피눈물이 절로 났다.
"이보시오, 방주님. 그러니까 돈 아까우시면 다음부터 사람 가려가면서 일을 해야지요. 아차 하면 이 험한 꼴 나잖아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소천악의 말에 흑사방주 조일비는 금방이라도 때려죽이고픈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힘없는 자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는 흑사방주였다.
얼마 후 숨이 턱에 걸린 섬정기가 두 명의 무사와 함께 방에 들어섰다. 그는 바로 탁자 위에 금원보와 전표가 보이게 전낭을 열어놓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기 방주님이 말씀하신 은자를 가져왔습니다."
내려놓자마자 얼른 집어 든 소천악은 묵직한 전낭에 심히 흡족한 마음이었다. 천천히 금원보의 숫자와 전표를 보며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계산에 열중했다.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내리는 섬정기였다. 전낭을 가지고 오면서 조금 빼돌릴까 궁리하다 체념한 게 너무도 훌륭한 선택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윽고 액수가 맞자 소천악이 환히 웃으며 말했다.
"진작 이리 나오셨으면 몸은 안 상했잖소이까? 꼭 보면 돈 아끼시다가 골병드시는 어리석은 분이 많아요."
"으으."
흑사방주 조일비는 열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런 그의 머리에 불길을 퍼부어대는 소천악이었다.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있으면 한동안 은자 걱정은 안 할 텐데요. 이보시오, 방주님! 잘 생각해 보시구려. 어디 무공 강한 놈 하나 물색해 데리고 와도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흥!"
흑사방주 조일비가 아주 찬바람이 쌩 불도록 외면했다. 돈을 챙긴 소천악은 더 이상 핀잔을 주지 않고 전낭을 짊어진 채 발길을 옮기려다 주춤했다. 흑사방주와 섬정기는 간이 콩알만 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보시오, 섬정기 총관님! 얼핏 봐도 한정보하겠어요!"
"네? 별말을요."
느닷없는 말에 당황하는 섬정기에게 빙긋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너 혹시 강호사정에 밝은 데를 아나요? 모르면 당연히 뼈 몇 개 부러지는 거지요."
"헉, 압니다. 물론 압니다."
기겁을 한 섬정기가 얼른 다가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기… 아무래도 그런 건 하오문이 빠릅니다."
"어디 있소이까? 하오문이?"
"지금 계신 천국제일루 바로 옆에 건물이 하오문 광동성 지부입니다."
"음, 알았소. 고맙소이다. 여기 수고비이오이다."
소천악은 섬정기의 손에 은자 한 냥을 냉큼 주고 흑사방을 나섰다. 얼떨결에 은자 한 냥을 받은 그는 밀려오는 모멸감에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대흑사방 총관이 은자 한 냥짜리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소천악이 방주실을 나서서 흑사방을 직선으로 관통하며 정문으로 향했다. 중간 중간 보인 어느 곳이든 골병이 다 든 흑사권대들이 놀라 얼른 딴청을 피웠다. 오죽 당황했으면 한 일반 무사는 손에 든 검이 빗자루인 줄 알고 열심히 땅을 쓰는 놈도 있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소천악은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제1-6장 하오문과의 인연 - 있는 정보 다 내놔라
하오문 광동성 지부는 밖에서 보긴 초라했다. 다 기울어져 가는 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한 인물이 들어섰다. 의자에 앉아 꼬박꼬박 졸고 있던 한 중년인이 얼른 고개를 들고 보더니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하오문 광동성 지부를 책임지고 있는 곤소우(琨素雨)였다. 소천악은 거침없이 그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여기가 하오문 맞소이까?"
"그렇습니다. 어떤 일로 여기를 찾아오셨는지요, 공자?"
담담하게 말하지만 왠지 긴장한 기색을 감추려 애쓰는 곤소우 하오문 광동성 지부장이었다. 바람보다 빠른 하오문의 정보망은 흑사방을 박살낸 소천악을 이미 알고 있었다. 번개 같은 정보망이었다.
"딱 잘라 말하겠소! 강호에서 이름난 풍류공자를 말해 주고 그 소재를 말해 주시오. 아, 그리고 현재 강호에서 이름난 미녀가 사는 데도 빠짐없이 적어주시오."
"아, 공자님. 그런 정보는 함부로 물어보시면 안 됩니다. 어서 이리로 오시지요."
안색이 변해 급히 소천악을 일층 깊은 곳으로 안내했다. 사방에 밀폐된 방에 탁자를 두고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이었다. 곤소우가 낮은 헛기침을 내며 말을 꺼냈다.
"공자님, 우리 하오문은 아시다시피 강호에 관한 한 개방과 버금가는 정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점은 알고 계시지요?"
"모르오!"
생뚱맞은 소천악의 대답에 하오문 광동성 지부장인 곤소우는 노화가 하늘로 치솟았다. 하지만 이미 흑사방을 초토화 시킨 화려한 전력을 가진 그에게 아무 소리도 할 수 없었다. 감히 뭐라고 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인물로 구분된 작자였다.
"이제 곧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공자께서 말씀하신 일은 너무 광범위합니다. 하나둘도 아니고 너무 많아 어떤 정보를 드려야 할지."
실로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곤소우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소천악은 무표정한 얼굴로 바로 받아쳤다.
"쉽게 생각하십시다. 난 손님이고 당신은 주인이니 손님에게 맞춰야지 어디 주인 입맛대로 하려고 하시나."
"아니, 그게."
"여러 말 말고 달라는 정보 다 주시오."
막무가내로 말하는 소천악을 보며 곤소우가 체념 어린 어조로 물었다.
"먼저 공자가 말씀하신 미녀들의 정보는 일단 강호 십대미녀가 있습니다. 거기다 숨어 있는 미녀를 합치면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사실 미녀는 알려지지 않는 미녀가 더 아름다운 법입니다."
"오, 그런 일이……."
이마를 바짝 들이대며 호기심을 표하는 소천악을 보며 곤소우는 어이가 없었다. 시치미를 뚝 따고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제가 척 보니 공자님은 아무래도 강호제일미를 찾으시나 본데. 그건 우리 하오문밖에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광대한 미녀의 수를 거의 파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오, 왠지 하오문이 좋아질 것 같소!"
진심으로 말하는 소천악을 보며 곤소우는 여태껏 품었던 악감정이 일시에 사라지는 걸 느꼈다. 사실 하오문이라는 데는 말이 좋아 문파였다. 강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천시받는 말 그대로 삼류방파에 불과했다. 그 광대한 정보망이 필요해 다른 문파에서 봐주는 거지 인간 취급이란 애초에 받기를 포기한 터였다.
"역시 공자는 큰 대장부이시구려. 하하, 오늘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까짓것 공자님이 필요한 정보 모두 드리죠! 일단 우리가 소재를 알고 있는 미녀에 대한 정보를 모두 드리지요."
진정으로 호쾌한 기분이 든 곤소우가 인심 쓰듯 말하자 소천악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으하하, 역시 하오문은 멋진 문파요. 내 감탄했소!"
서로 죽이 착착 맞는 두 사람이었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곤소우가 하오문도를 불러 미녀전도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소천악이 따스하게 물었다.
"지부장님, 그건 그렇고 이제 강호에서 이름난 풍류남아를 알아야겠소!"
"음, 공자. 그건 사실 어렵다면 어려운 말인데 어떤 남아를 원하시나요?"
"아, 별거 아니오. 여자 잘 후려치고 거 있잖소, 밤에 능한 남자. 그 두 가지에 능통한 자를 원하오!"
"허, 이거 참. 공자가 원하는 정보를 가만히 들어보면 완전히 강호에서 이름난 색마들이 대뜸 떠오르니."
입맛을 쩝쩝 다시며 곤소우가 말했다. 소천악은 반색하며 얼른 말을 이었다.
"아, 색마면 어떻소. 다 말해 주시오. 사실 내가 지부장이니까 말해 주는데요. 이거 동네 창피해서 원."
"아니, 무슨 일이죠?"
차마 말하기가 어려워 주춤대던 소천악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내가 요즘 천국제일루에서 한동안 취향이란 기녀와 지냈다는 거 아니오. 거참, 어쩌다 보니 그녀의 이야기를 엿듣게 됐는데."
목이 잠겨와 잠시 말을 끊은 소천악을 보고 곤소우가 재촉했다.
"그래서요?"
"아, 글쎄 그년이 나보고 하는 말이 처음엔 멧돼지, 끝날 때는 토끼라고 하질 않소."
"험험."
곤소우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려고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코가 간질간질하는 게 금방이라도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얼른 가장 슬픈 일을 기억에서 떠올리며 참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