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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15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1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15화

 

  "엄살피우지 마시지요. 얼른 안 일어나시면 아예 관속에 넣어주겠소."

 

  살벌한 협박에 순사기 의원은 가슴이 철렁했다. 잠시 후 겨우 숨 쉴 정도가 되자 억지로 통증을 참고 무릎을 꿇고 말했다.

 

  "소협! 무림인이신 줄 모르고 이놈이 실수를 했습니다. 제발 용서를."

 

  "어째 의원님 말씀은 내가 힘없는 놈이면 이런 말 안 하실 거로 들리는 거 같소이다."

 

  차가운 소천악의 비아냥거림에 기겁하며 대답하는 순사기 의원이다.

 

  "제가 어찌 감히!"

 

  "당신은 그러고도 남을 분이시오. 용서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하든지 말든지 결정하겠소. 한마디만 묻겠소이다. 만약 거짓이라 느끼면 바로 황천길로 갈 줄 아시오. 이 산삼 값이 얼마라고 하셨소?"

 

  "그게 저……."

 

  그 말에 선뜻 대답하기 힘든 순사기 의원이었다. 이십 냥이라 했다간 당장 죽일 듯한 기세였다. 그렇다고 제값을 말하자니 더 빨리 죽음이 찾아올 조짐이었다. 진퇴양난의 어려움이 선뜻 말문을 열지 못하게 만들었다. 머뭇거리는 의원을 보며 소천악이 험악하게 말했다.

 

  "오호라! 죽고 싶으시구려. 알았소. 소원대로 해드리지요."

 

  다가서려는 소천악을 보고 기겁을 한 그가 얼른 말했다. 더 이상 잔머리를 굴릴 여지가 없어 체념한 채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말하겠습니다. 그 산삼은 삼백 년근 산삼으로 아무리 못 받아도 이백 냥은 족히 될 겁니다."

 

  의원의 말에 소천악의 안색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돌팔이 의원님! 근데 왜 당신은 이십 냥이라 했소이까? 이게 아주 도둑 분 아니십니까?"

 

  "잘못했습니다. 제가 그만 눈이 멀어서. 사실 요새 경기가 안 좋아 그랬습니다. 집에는 저만 바라보는……."

 

  "노모가 있고 자식 새끼들이 줄줄이 배고프다고 울고 있다고 말하려는 거지요? 그거 언제 적 이야기인데 아직도 쓰시오?"

 

  한심하다는 듯이 의원을 바라보는 소천악의 눈이 번뜩였다. 묘책이 떠오른 그는 행낭에서 도라지를 하나 꺼내 방바닥에 척하니 내놓았다.

 

  "자! 이제 다시 거래하는 게 좋겠소. 이거 몇 년 된 산삼으로 보이오?"

 

  도라지를 꺼내놓고 말하는 소천악의 눈에는 시퍼런 안광이 줄기줄기 서려 나왔다. 절로 오금이 저린 의원이 얼떨결에 말했다.

 

  "이거 도라지 아닙니까?"

 

  퍽! 퍽!

 

  가볍게 몇 대 더 밟아준 소천악이 다시 물었다.

 

  "이런 도둑 같은 의원님! 자세히 보시지요. 아직도 이게 도라지로 보이시오?"

 

  물으면서도 소천악의 손이 쉬지 않고 순사기 의원의 전신을 가격했다. 극도의 통증이 온몸에서 올라온 의원은 발악하며 소리쳤다. 가만있다간 맞아 죽을 판이었다.

 

  "으악! 제발 그만 때리세요. 산삼입니다. 산삼!"

 

  "좋소이다. 이제야 이야기가 제대로 될 듯하오이다. 몇 년이나 묵은 거로 보이오, 의원님? 이 훌륭한 산삼이?"

 

  이미 극도의 공포에 질린 의원이 다급히 말했다.

 

  "몇 년을 부르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어허! 도둑 새끼 의원님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셨네. 그걸 왜 내게 물으시오? 의원인 당신이 말씀하셔야지요. 뭐 나라면 삼백 년짜리라 말할 거 같소만."

 

  의원은 그제야 소천악의 속셈을 간파했다. 하지만 상대는 아무리 봐도 인정머리라곤 약에 쓰려도 없는 인물 같았다. 자칫 비위를 건드렸다간 명년 오늘이 제삿날일 거란 두려움이 엄습했다. 체념한 의원이 마지못해 말했다.

 

  "네. 삼백 년근 산삼 맞습니다."

 

  "음, 이제야 보는 눈이 생기셨구려. 감축드리오. 그래, 아까 삼백 년 산삼이 얼마라고 하셨소이까?"

 

  의원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말했다.

 

  "이… 백… 냥… 입니다."

 

  "네, 그 가격이구려. 좋소이다. 내 특별히 이 귀한 산삼을 의원님에게 팔겠소이다. 어서 이백 냥을 주시구려. 뭐 정 사기 싫으시면 안 사도 되긴 하오만."

 

  조용히 말하며 탁자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손에 걸린 탁자 한 귀퉁이가 순식간에 가루로 변해 푸스스 방에 떨어졌다. 바라보던 순사기 의원의 안색은 겁에 질려 아예 잿빛으로 변해갔다.

 

  "사야지요. 물론 사야지요."

 

  그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가져온 돈 상자에서 얼른 이백 냥을 꺼내 소천악에게 건네주었다. 태연하게 은자를 받아 챙겨 행낭에 넣던 소천악이 깜빡한 듯 넌지시 말했다.

 

  "아! 그런데 다른 데 물어봐서 삼백 년근 산삼이 이백 냥이 넘으면 알아서 하시구려. 난 그 슬픈 마음을 참지 못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전혀 짐작이 가질 않소."

 

  당장에라도 도륙을 낼 기세가 풍겨 나오는 그를 보며 의원은 다급히 말했다.

 

  "저, 그게… 요새 산삼 값이 하도 춤을 춰서 어떤 의원에 가면 이백오십 냥도 줄 겁니다."

 

  "그런데 왜 도둑새끼 의원님은 이백 냥만 주시오? 이거 아주 나쁜 의원님 아니시오? 안 되겠소. 여기서 요절을 내야 만인을 위해 좋은 일인 거 같소이다."

 

  금방이라도 살벌한 구타가 시작될 듯 기세를 뿌리는 소천악이었다.

 

  "아닙니다. 소협! 제가 오십 냥을 더 드리지요."

 

  의원은 속으로 이를 갈며 오십 냥을 더 꺼내 줬다.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미소지으며 소천악이 말했다.

 

  "그리고 소협 소협 하는데 이거 하나는 아셔야 합니다. 시절이 하수상할 땐 대협보다 소협이 더 까칠한 법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소협!"

 

  의원은 기겁을 하며 얼른 대답했다. 일단 주고 나중에 복수하려던 생각도 바로 접었다. 아무리 봐도 성질 더러워 보이는 젊은 놈이었다. 오랜 인생 경험에 저런 놈은 그저 재수 없다고 소금 뿌리고 말아야지 더 집적대다간 하나밖에 없는 목이 달아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여기서 소천악은 마무리를 짓고 있었다.

 

  "이봐요! 아주 질 나쁜 의원님."

 

  이젠 소천악을 마치 돌아가신 조상님 보듯 깍듯해진 순사기 의원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머리가 깊이 숙여진 다소곳한 태도였다.

 

  "네! 소협."

 

  "아무래도 산삼 한 뿌리 더 팔아야겠소이다."

 

  "켁! 소협, 한 뿌리면 충분합니다. 다음에 다시 사드리지요."

 

  놀란 자라목처럼 쏙 들어가는 의원의 표정을 보며 소천악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집어넣은 진짜 산삼 한 뿌리를 꺼내 손에 들고 달랑달랑 흔들었다.

 

  "이거 팔라는데 살 생각이 없으시오?"

 

  "아, 그거라면 제가 여유가 없더라도 사드려야지요."

 

  얼른 반색을 하며 산삼을 잡아채는 의원이었다. 아무래도 의원의 탈을 뒤집어쓴 건달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든 소천악이었다.

 

  "이거는 특별히 이백 오십 냥에 팔겠소이다."

 

  "아, 감사합니다. 소협."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례하는 의원이었다. 소천악은 못마땅한 듯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인사는 그만 하고 돈이나 내주시면 고맙겠소이다. 그리고 이백오십 냥에 샀다는 증서도 써주시길 바라오."

 

  "네, 물론입죠. 소협,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신이 난 의원은 얼른 이백오십 냥과 증서를 써주었다. 받은 증서를 품속에 잘 갈무리한 소천악이 말했다.

 

  "이 증서는 의원님이 만약 내게 누명을 씌우신다면 바로 내밀 것이오. 이백오십 냥짜리를 제값에 판 내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지요. 안 그런가요?"

 

  그제야 용의주도한 소천악의 심계를 짐작한 의원은 혀를 내둘렀다.

 

  "염려 마십시오. 제가 어찌 은거 고수님을 모함하겠습니까? 아무 염려 마십시오."

 

  "험! 염려는 무슨. 혹시나 질 나쁜 의원님이 실수하신다면 내가 분노할까 봐 그게 무서운 거지요. 그런 일이 있다면 의원님 집 안에 풀 한 포기도 성치 않을거란 염려가 듭니다그려. 매사는 안전한 게 좋지요. 자, 이제 거래도 화기애애하게 끝났으니 소생은 이만 물러갑니다."

 

  은근한 협박에 간이 철렁한 의원이었다.

 

  "네! 소협 살펴 가십시오."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마친 의원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소천악을 보고 귀신을 본 듯 경악했다.

 

  "으휴! 정말 엄청난 고수구나."

 

  놀란 의원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속으로 셈을 하느라 바빴다.

 

  "제길! 모두 오백 냥을 줬구나. 산삼 팔면 사백 냥은 받으니 그래도 백 냥은 손해네. 그나마 저놈이 진짜를 한 뿌리나마 팔았으니 여기서 끝내야지. 더 끌다간… 으휴!"

 

  한숨을 푹푹 내쉬는 의원이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소천악은 두툼해진 전낭을 두드리며 주루를 찾아갔다.

 

 

 

  광동제일루(廣東第一樓)

 

 

 

  고색 창연한 현판이 멋들어지게 쓰여진 으리으리한 주루를 보고 성큼 들어갔다. 안은 고급 주루답게 휘황찬란한 실내장식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각종 도자기와 산수화가 절묘하게 배치되어 품위를 더욱 높여주었다. 십대 후반의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와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응, 여기서 제일 좋은 자리를 주시고 최고의 음식 그리고 술을 준비해 주시게."

 

  소천악은 전낭에서 집히는 대로 은자 두 냥을 집어 주었다.

 

  "헉, 이런 많은 돈을! 감사합니다, 손님. 저를 따라오십시오. 우리 주루 최고 귀빈석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점소이는 마치 재신이 강림한 듯 신주 모시듯 소천악을 인도해 올라갔다. 그 뒤엔 소천악이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따라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보게, 점소이! 혹시 광동성 제일미녀가 누군지 알고 있소?"

 

  "네, 미녀요?"

 

  종업원의 머리는 재빠르게 돌아갔다. 아무래도 이 젊은 재신은 호색가인 것 같았다. 대놓고 어디라고 말하지 않고 돌려 말하는 낌새가 여간내기가 아닌 것 같았다. 판단이 끝난 점소이가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아, 그거라면 소인이 꽉 잡고 있지요. 아무 염려 마십시오. 식사가 끝나면 바로 최고미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지요."

 

  말투가 영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안내한다는데 별생각 없이 넘어가는 소천악이었다.

 

  "음, 알았소. 일단 시장하니 얼른 음식이나 가져다주시오."

 

  "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얼른 오늘의 주방장 특별요리를 대령합지요."

 

  주문을 마친 소천악이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나름대로 방귀깨나 뀌는 사람들만이 자리한 모양새였다. 생애 최초의 호강이 흐뭇하기만 하였다. 잠시 후 소천악의 식탁 위에는 산해진미가 하나둘씩 올려져 갔다. 점소이의 열성으로 차려진 식탁은 금방이라도 휘어질 듯 풍성했다.

 

  소천악은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한 요리에 넋이 반쯤 나갔다. 입이 벌어진 채 다물리지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많은 손님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킥킥거리는 게 보였다.

 

  "호호, 저 남자 왜 저리 촌스럽냐. 안 그래?"

 

  "맞아. 촌뜨기가 졸지에 갑부 된 모양이야. 아휴, 촌스러워."

 

  귀에 들리는 가려운 소리에 얼굴이 붉어지려 했다. 하지만 소천악이 누군가! 혈사부의 수많은 핍박을 이겨낸 혈검문의 장문제자였다. 이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점소이를 불렀다.

 

  "이보시오, 여기 왜 후아주가 없소이까?"

 

  "네? 후아주라뇨?"

 

  "술주정뱅이 원숭이가 만든 술 말이오. 이 요리를 먹으려면 후아주가 곁들여져야 제격인데 혹시 없나요?"

 

  난처한 소천악의 트집에 점소이는 순발력 있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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