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40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40화
"두고 보시오. 이 소천악, 최선을 다해 여인과 아이를 구해 오겠소."
나름대로 협객 흉내를 내는 소천악이었다. 그 목소리의 비장감은 듣는 모든 이의 협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가만히 지켜보던 양자청 장로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소협! 의기는 좋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오. 어려운 일이오."
"하하, 대협! 사나이가 뜻을 세웠으면 헤쳐 나가야지요. 제가 돌아올 때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소리치겠습니다."
어느새 말하는 소천악 주위로 수많은 무림인들이 형형한 안광을 번뜩이며 감탄사를 내질렀다.
"오호! 역시 강호의 협기는 아직 살아 있소이다. 소협!"
"부디 무사히 구해 오시오."
많은 무림인들의 찬사를 건성으로 포권하며 답례하는 소천악이었다. 남자들의 칭찬은 그에겐 전혀 관심사가 아니다. 그는 몸에 있던 짐을 모두 한쪽에 모아놓고 강물을 노려봤다. 빌어먹을 강물은 아까보다 더 거세진 느낌이었다. 막 신형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소협! 이 양소아가 참다운 협의를 보이시는 분에게 인사드립니다."
곱게 고개를 숙이는 양소아의 모습에 소천악은 멍할 정도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얼굴도 안 보이는데 마음씨 하나만은 비단결이란 판단이 섰다.
"하하, 아니오. 소저, 부디 성공하기만을 기원해 주시오."
소천악은 크게 신형을 흔들며 빛살처럼 강물로 쏘아갔다. 궁신탄영(弓身彈影) 경신법이었다. 몸을 활처럼 휘게 해서 그 탄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몸을 이동하는 최상승의 경신법이다.
"오호! 젊은 나이에 놀라운 경공실력이외다."
무림인들이 놀라 소리쳤다. 양자청 장로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라고 하기엔 가공할 경공술이었다. 그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허어! 어떤 은거기인이 저런 제자를 만들었을꼬?"
세인의 탄성을 받으며 날아가던 소천악은 탄력이 죽는 걸 느꼈다. 얼른 신법을 바꿔 일위도강(一葦渡江)을 시전했다. 물 위에서 사용되는 경공이었다. 손에서 나뭇가지를 연달아 던졌다. 물 위에 떠오른 나뭇가지를 밟으며 쏜살같이 강 가운데 집으로 접근해 갔다.
"아니, 일위도강까지!"
놀란 눈을 감추지도 않은 채 양자청 장로가 불쑥 소리쳤다. 절정고수도 시전하기 힘든 경공이었다. 초절정 초입에 달한 무인만이 겨우 시전할 수 있는 놀라운 경신법이 보였다. 자신도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절세신법을 발휘하는 소천악의 정체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의문이 가득한 양자청 장로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소천악은 마침내 집 지붕 위에 도착했다.
"아이고, 무림신선님!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여인은 전형적인 촌 아낙이었다. 검게 탄 피부와 손이 고된 삶을 살아왔다는 생생한 증거였다.
"자, 어서 집이 무너지기 전에 갑시다. 내 등에 업히세요."
소천악은 다급히 외쳤다. 그의 귀에 집의 기둥이 물살에 밀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비명을 질러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눈빛에 초조함이 가득하자 여인은 지체 없이 등에 업혔다. 소천악은 왼손으로 아이를 부여잡고 서둘러 몸을 날렸다. 그가 몸을 솟구치자마자 굉음이 들렸다.
우르르릉.
소름 끼치는 붕괴음과 함께 기둥이 와르르 무너지며 눈 깜짝거릴 틈에 흔적 없이 집은 강물에 떠내려갔다.
"아휴……."
강변에 있던 세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겨우 내쉬었다. 소천악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궁신탄영으로 화살처럼 쏘아져 강변으로 날아갔다. 역시 탄력이 죽자 나뭇가지를 연신 뿌려댔다. 두 사람을 업고 안은 채로 나뭇가지가 동동 떠 있는 물을 가볍게 찼다. 놀랍게도 나뭇가지의 그 가냘픈 탄력으로 징검다리 뛰듯 솟구쳤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하아, 저럴 수가!"
강변에 있던 무림인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혼자 몸이라도 불가능해 보이는 신법이었다. 둘을 데리고 아름다운 호선을 그리는 모습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절세신법의 우아함이 무림인들을 황홀경으로 몰아넣었다.
양소아도 흠칫 놀라는 모습이 역력했다. 솟구칠 때는 들떴다가 강물로 내려갈 때는 가슴이 철렁철렁한 기분이었다. 그 모든 것이 다가오는 소천악의 눈에 하나도 빠지지 않고 잡혔다. 물론 다른 무림인이 뭐라 하든 그 말은 관심이라곤 전혀 없었다. 오로지 양소아 하나만을 주시할 뿐이었다.
소천악은 다시 생각을 굴렸다. 시도해 보니 이대로 날아가는 건 별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더욱 효과적인 접근을 위해 머리를 굴렸다.
짐짓 힘이 빠진 듯한 몸짓을 취한 후 바로 물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 안 돼!"
강변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들려왔다. 뜻대로 진행되는 상황에 더욱 흐뭇해지는 소천악이다. 붉은 황톳빛 격류가 소천악의 몸을 곧바로 물속으로 잡아끌려고 했다. 그는 혈검신공을 끌어올려 잠재력을 더욱 촉발시켰다.
이내 물 위에 떠 격류와 싸우며 열심히 헤엄치는 척했다. 물론 등 위에는 여인과 아이를 태운 상태였다. 자연히 헤엄은 개구리헤엄밖에는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짐짓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다.
"이보시오, 내 몸을 꼭 잡으시오. 이제 헤엄쳐 갈 생각이오."
"네네, 조심하세요."
벌벌 떨고 있는 여인과 아이에게 소리쳤다. 물론 그들보다 양소아가 들으란 소리였다. 기를 쓰고 개구리헤엄을 치는 소천악을 금세라도 성난 물결이 쓸어갈 듯했다. 강변에서 지켜보던 양소아는 주먹을 꼭 쥐고 외치기 시작했다.
"소협! 힘내세요."
다른 이들도 비슷한 심정이다. 호호탕탕 휘몰아치는 거센 물살에 목숨을 걸고 뛰어들어 간 한 사나이의 열정에 감복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들도 힘차게 외치기 시작했다.
"힘내시오. 영차영차!"
구령까지 넣어주면서 소리치는 강변의 열기는 거센 폭우를 뚫고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소천악을 응원했다.
거센 격류를 헤치고 한 치 한 치 강변 쪽으로 다가서는 소천악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힘이 들어서가 아니었다. 우아하게 헤엄을 치고 싶은데 아는 수영이라곤 오로지 개구리헤엄이 전부였다. 그 점이 심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혈사부가 순간 원망스러웠다. 제대로 된 걸 가르쳐줘야 유사시를 대비할 수 있었다.
개구리처럼 팔다리를 팔딱이는 꼴은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웃을 일이었다. 조금씩 힘겹게 접었다 펴는 그의 손은 누가 봐도 사력을 다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시간이 멈춘 강변 풍경이다. 가만히 지켜보던 양가 양자청 장로조차도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소협! 힘을 내시오. 조금만 더!"
안타까운 눈빛이 역력했다. 십여 장 내로 오기만 하면 바로 경신법을 펼쳐 허공으로 날아오를 태세였다. 횃불처럼 불타오르는 그의 심장이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협기의 기상이 그의 가슴속에 용솟음쳤다.
일각의 시간이 흐르고 거센 물살을 헤치며 머리가 보였다 말았다 하면서도 소천악은 한 치씩 한 치씩 강변으로 다가섰다. 점점 움직이는 손이 힘겨워 보이기 시작했다. 두 손을 꽉 잡고 응원하던 양자청 장로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드디어 십여 장 내로 들어선 소천악이었다.
"소협, 내가 가겠소."
벼락같이 소리치며 양자청 장로가 물로 날아갈 태세를 취했다. 소천악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놀라운 연기력으로 상대했다.
"대협! 먼저 이 두 사람을 먼저 구해주시오. 전 아직 괜찮습니다."
소천악의 힘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을 걱정하는 소천악을 보자 양자청 장로는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알겠소, 소협. 자, 이제 갑니다."
절정의 경신법이 펼쳐지며 양자청 장로의 신형이 물 쪽으로 날아갔다. 십여 장을 바로 좁힌 후 마치 솔개가 병아리를 채듯 날렵하게 여인과 아이를 잡아갔다. 두 사람의 무게에 양자청 장로가 휘청거렸다.
"자, 내 등을 차고 얼른 가십시오. 대협!"
어려움을 눈치챈 소천악이 내심 열이 받았지만 공손하게 말했다.
"오, 역시… 알겠네. 실례하겠네."
사양할 처지가 아닌 양자청 장로는 가볍게 소천악의 어깨를 차고 날아갔다. 그의 양팔에는 두 사람이 끼어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자 양자청 장로와 두 사람은 어느새 무사히 강변에 도착했다.
"여보, 살았구려. 감사합니다! 무림신선 어르신!"
바로 달려온 남편이 여인과 아이를 부둥켜안고 양자청 장로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양자청 장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한 일이 아니오. 저기 소협이 한 일이오."
양자청 장로가 가리킨 곳에는 아직도 물살과 씨름하며 다가서는 소천악이 보였다. 이제는 거의 다 와 강변턱에 도달했다. 양소아가 급히 달려가 손을 잡아줬다. 소천악의 눈이 번뜩이며 묘안을 떠올렸다.
양소아의 손을 잡고 강변에 올라서던 소천악이 비틀거렸다. 정신을 잃은 척하며 지친 티를 내며 슬쩍 면사를 친 손에 힘없이 면사가 벗겨져 허공으로 날아갔다. 생전 처음 외간 남자에게 얼굴을 보인 양소아였다. 그걸 의식할 겨를이 이미 그녀에게 없었다.
"소협, 괜찮나요?"
다급히 외치는 양소아의 목소리에 겨우 눈을 뜬 척하는 소천악이다. 그녀의 얼굴이 지척에 보였다. 단아한 한 미녀가 그의 눈가에 자리했다. 그린 듯이 오목조목 박힌 이목구비가 자연스러운 미를 보여주었다. 화사한 입술에 감도는 그녀 특유의 향내가 머리를 아찔하게 했다. 단목산산이 장미라면 양소아는 물망초였다.
아쉬웠다. 역시 이 푼이 모자랐다. 십대미녀라 불리기에 손색없는 미모였지만 족자 속의 여인보다는 무언가 부족했다. 목적을 이룬 소천악은 힘겨운 척 몸을 일으켰다.
"소저! 이거 피곤해서 결례했소이다."
"무슨 말씀을… 소협, 정말 고맙습니다. 강호에 아직 협객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신 소협에게 진심으로 감복했습니다."
"뭐 이런 걸 가지고 이러시오. 남자라면 누구나 저처럼 했을 것이오이다."
겸손을 떠는 소천악이었다. 옆에 서 있던 양자청 장로가 다가와 치사를 보냈다.
"허허, 정말 장하오이다. 노부가 진심으로 탄복했소이다."
어느덧 호의를 보이며 따사로운 눈길을 보내는 양자청 장로였다. 그렇게 소천악의 계략대로 양소아와의 첫 만남은 아주 좋은 분위기로 이뤄졌다. 그 후 둑이 넘칠 우려가 있다는 말에 밤 깊도록 흙주머니를 퍼 담으며 막노동을 해야만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협객의 본분이 어쩔 수 없이 그를 떠밀었다.
개고생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객잔에 돌아와 깊은 잠에 빠졌다. 아침이 되자 양자청 장로가 문을 두드리며 나타났다.
"소협, 아침을 같이 먹읍시다."
식사 초대였다. 양자청 장로와 식사라면 당연히 양소아와도 함께 먹을 거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바로 웃으며 대답하는 소천악의 얼굴은 활짝 피었다. 당연히 나오는 말도 부드럽기 한량없었다.
"네, 고맙습니다, 장로님. 얼른 씻고 내려가지요."
얼마 후 양자청 장로의 숙소에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이미 양소아의 얼굴에 쓰였던 면사는 벗겨져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면사를 쓰고 식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양소아가 고운 입을 놀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