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39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39화
주변에 장로들이 십대미녀로 꼽히는 그녀를 항상 품안의 보석처럼 애지중지한다는 정보가 마음에 걸렸다. 이번 일에도 장로 한 명이 함께 움직였다. 그 정도까지야 견딜 만했다. 얼굴 한 번 보는데 장로가 있다고 힘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건 외출 때 항상 면사를 쓰고 다닌다는 점이다.
멀고도 험한 일이었지만 소천악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이 정도야 강호제일인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고충이라는 게 기본 생각이었다. 천천히 말은 움직였고 드디어 양주 땅에 발을 들여놓았다.
별다른 묘책이 없는 소천악은 일단 부딪쳐 보기로 작정했다. 정보대로 양소아가 묵고 있는 객잔으로 바로 향했다. 예상대로 객잔은 북적이고 있었다. 젊은 강호인들이 부지기수로 식탁을 점령하고 앉아 있었다. 태연한 척해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뻔히 보였다. 번뜩이는 눈빛은 사방을 예의주시했다.
모른 척하고 소천악은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다행히 한 좌석이 남아 있어 막 앉자마자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눈이 부지런히 흔들리는 게 영악한 티가 물씬 풍겼다.
"어서 오십시오. 무얼 드릴까요?"
"최고급 요리와 술 그리고 빈방 하나 부탁하네."
어디를 가나 변함없는 소천악 특유의 식사 주문이다. 먹을 것에 한이 맺힌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점소이의 눈이 번쩍했다. 비싼 요리 주문보다 어느새 식탁 위에는 은자 한 냥이 다소곳이 놓여 있는 걸 보았다. 슬며시 은자를 손에 넣으며 고개가 얼른 깊이 굽혀졌다.
"안 그래도 주방장님이 며칠 전 새로운 특선요리를 개발했습지요. 얼른 준비시키겠습니다. 그리고 빈방은 있는데 요새 갑자기 손님이 몰려서 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얄팍한 객잔주의 장삿속이 훤히 비치는 말이다. 소천악의 입장에선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는 말이었지만.
"하하, 제까짓 게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나. 특실로 하나 해주게."
역시 호탕하게 나오는 소천악을 보며 점소이는 잘하면 수고비를 톡톡히 챙길 예감이 들었다. 물론 그에 비례해서 고개는 더욱 숙여졌다.
"네, 공자님. 아무 염려 마십시오. 식사가 끝나면 묵으실 수 있게 말끔히 청소해 안내해 드리지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무림인들은 배알이 꼴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감히 돈 푼깨나 있는 놈이 와서 깝죽거리는 꼴이 영 눈꼴시었다. 개중에 항상 말보다 행동이 빠른 사람이 있다.
소천악이 하나씩 준비된 요리와 술을 슬슬 먹을 무렵 그의 탁자로 건장한 두 명의 남자가 다가섰다. 손에 검을 들고 온 걸 보면 시비를 걸러 온 것이 분명했다. 소천악은 그들이 일어설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했다. 일일이 받아주기도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미인도 아닌 자들과 이야기를 하는 게 성가시다는 게 그의 본심이다. 다가선 무인들은 소천악의 맞은편 의자에 허락도 없이 털썩 앉았다.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자들이었다. 나름대로 온몸에 근육깨나 있는 모양새가 외공을 익힌 무인들이었다. 탁자에 팔꿈치를 대고 입을 열었다.
"공자, 돈이 많은 거 같은데 우리같이 불쌍한 무사들에게도 한턱내시오."
말투에 시비조가 가득했다. 힐끗 바라본 소천악이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말했다.
"다른 자리 가서 기다리시오. 내가 시켜주리다."
의외로 순순히 식사를 사겠다 하자 무사들은 더욱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식사도 좋지만 잠자리 그리고 술도 기루에서 한잔 멋지게 사시오. 뭐 여비도 준다면 사양하지는 않겠소. 으하하하!"
이젠 아예 노골적으로 시비를 거는 무사들이다. 소천악의 눈썹이 꿈틀했다. 성질대로 하자면 벌써 초죽음을 내도 시원치 않았다. 사실 소천악은 그다지 참을성이 강한 편이 아니었다.
"딱 한마디만 하지요."
음산한 소천악의 목소리가 들려 나왔다. 뭔가 억누르는 듯한 음성이다. 음성에 담긴 노기를 느끼자 흠칫한 무사들이다. 객잔 안의 다른 이들도 흠칫하며 호기심 서린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해보시오, 귀한 집 공자님. 하하하!"
무사들은 어이없다는 듯 툭 말을 내뱉었다. 잠시라도 어린놈에게 놀랐던 자신들의 모습이 우습게 느껴져 더욱 차가운 시비가 담겨 나왔다. 그 말에 답은 바로 나왔다.
"더 이상 무례하면 나도 참기 힘드오. 분명히 말하지만 난 성인군자가 아니라오."
"이런 어린놈이 감히 우리를 협박해? 이런 물정 모르는 놈을 보았나!"
노기충천한 두 무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천악은 싸늘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검을 뽑으면 곧바로 저승길로 가십니다."
그 말에 담긴 살기는 예사롭지가 않았다. 무사들은 닭 비틀 힘도 없어 보이던 놈이 일순간에 변하자 당혹감이 들었다. 머릿속은 잘못 건드린 게 아닌가 하는 작은 후회감이 들었다. 하지만 곧 본성을 드러냈다.
"웃기는 녀석! 어디서 말만 배워 왔나, 번지르르하게 잘도 하네. 좋다 권으로 해주마. 오늘 형들이 세상 무서운 걸 가르쳐주마."
한 무인이 바로 몸을 날려 권으로 소천악의 얼굴을 때려왔다. 한 자 앞까지 권을 말없이 지켜보던 소천악이었다. 무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권으로 얼굴을 강타하려는 순간 눈으로 보고도 못 믿을 일이 벌어졌다. 소천악의 신형이 흐릿해지는가 하더니 복부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크윽!"
짤막한 신음을 토하며 고통에 바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서 있던 다른 무인도 무언가 번뜩하는 걸 보다 옆구리가 뻐근한 고통과 함께 기절하고 말았다. 삽시간에 객잔 안은 조용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나름대로 고수라 자부하는 객잔 내 무인들조차 소천악의 움직임을 정확히 볼 수 없었다. 금리도천파(金鯉倒千波)의 수법이었다. 금잉어가 엄청난 파도를 넘는 걸 보고 창안한 경신법이었다. 몸을 틀어 그 탄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이동해 두 무인을 두들겨 팬 소천악이었다.
"꼭 보면 이렇게 설치시는 분들이 있어요."
차갑게 소리치는 소천악의 눈길이 객잔 내를 쭉 돌아봤다. 아무도 그 눈길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그 공격이 온다면 막을 자신이 있는 자는 없었다. 굳이 나서서 개망신을 당할 바보가 있을 리 없었다.
더 이상 소천악에게 시비를 거는 무인은 없었다. 소천악은 나온 요리와 술을 유유히 마셨다. 그의 발밑에는 조금 전 기절한 두 명의 무인이 깔려 있었다. 그의 신발은 무인의 등에 놓여진 채 식사를 마쳤다. 더더욱 소천악이 스산하게 보이는 객잔 내 무인들이었다. 자칫하다간 발판 신세로 전락한다는 두려움이 지배하는 객잔 분위기였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며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점소이에게 물었다.
"여기 물난리 난 데 간 무림인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소?"
"네, 이쪽으로 이십여 리 가면 둑이 나옵니다. 거기 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방을 잘 치워놓고 기다리시오. 아, 그리고 야식도 준비해 주시오. 아무래도 힘 좀 써야 할 거 같네요. 하하하!"
호쾌한 웃음을 남기고 소천악이 떠난 객잔 안은 벼락 맞은 풍경이었다. 아무도 말을 못 한 채 식사만 조용히 하고 있었다. 자칭 무림인이라는 자들이 단체로 개망신을 당한 꼴이었다.
말을 부지런히 몰아 점소이가 말한 방향으로 거세게 달려간 소천악이었다. 당도한 곳은 굳이 찾지 않아도 될 형편이었다. 도도한 황톳빛 물이 거세게 넘실거렸다. 금방이라도 주변을 집어삼킬 기세로 굽이쳐 흘렀다.
수많은 백성들이 떠내려가는 집과 소, 돼지 등 가축들을 바라봤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움에 통곡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소천악은 그들을 싹 무시하고 양소아의 흔적만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한쪽에서 한숨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소천악은 눈빛이 반짝 빛났다. 무림인으로 보이는 수십여 명이 웅성거리는 게 시야에 뜨였다. 얼른 다가가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그의 시선은 머지않아 양소아로 보이는 여인을 찾았다. 순간 반짝하던 그의 입이 열렸다.
"이런 제기랄! 면사로 뒤집어쓰고 있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양소아는 턱까지 비단면사를 걸치고 있었다. 두꺼운 면사였다. 아무리 안력을 올려보아도 이목구비의 윤곽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소천악의 인상은 험상궂게 변해갔다. 저 면사를 벗겨야 미모를 확인하는데 도무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양소아를 비롯한 모든 이의 시선은 한곳에 집중되었다. 그제야 그걸 깨달은 소천악이 모두의 시선을 따라갔다. 관심이 모인 곳은 이제는 강이 되어버린 마을이었다. 한가운데 집 한 채가 외로이 버티고 있었다.
소천악의 눈이 커졌다. 그 집 지붕 위에 두 사람이 올라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이십대의 여인과 불과 네다섯 살 정도의 여아였다.
거세게 밀려오는 급류는 금방이라도 여자와 아이를 물속으로 빨아들일 것 같았다. 바라보는 이들은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갔다. 특히 아비 되는 자의 표정은 사색이 된 채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다급한 표정이다.
"제발 우리 아내와 딸을 살려주세요! 무림신선 어르신들, 제발!"
얼마나 소리쳤는지 그의 입에서는 쇠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피가 언뜻언뜻 비쳤다. 아비로서 애걸하던 그였다. 아무도 선뜻 나서기가 두려운 거센 강물이었다. 자신의 호소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자 입술을 질끈 깨물던 그가 강물 쪽으로 달려갔다.
"잡아라! 막아!"
무림인의 고함이 들리며 한 무림인이 신법을 전개해 아비를 낚아챘다. 아비는 몸부림을 치며 절규했다.
"놓으시오. 나는 가야 하오."
"안 됩니다. 이 강물을 어찌 헤쳐 가시려고."
말리는 무림인의 목소리도 메여왔다. 그도 고향에 아내와 자식이 있는 몸이었다. 어찌 이자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두 사람의 실랑이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죽으러 가는 자와 말리는 자도 같은 심정이었다. 바라보던 양소아의 어깨가 가느다랗게 흔들렸다. 그녀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쩔 줄 몰랐다.
"장로님, 어떻게 안 될까요?"
"흠… 어려워! 소아야, 도리가 없구나. 혼자라면 몰라도 두 사람을 안고 다시 돌아오기는 거의 불가능할 성싶다."
양씨세가의 장로인 양자청(梁資晴)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제아무리 무림 절정고수라 하더라도 백여 장을 두 사람을 데리고 돌아오기는 어려운 일이다. 말하는 양자청도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그 대화를 엿듣던 소천악의 눈에 광채가 반짝 빛났다.
기다리던 기회가 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도 영 망설여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생전 처음 하는 일인 데다가 성패 여부가 불투명했다. 아차 하면 얼굴 한 번 보려다가 북망산 구경할 판이다. 잠시 고민에 빠졌던 그가 고개를 들고 천천히 양소아 곁으로 다가섰다.
양자청이 인기척을 느끼고 소천악을 쳐다볼 무렵 이미 양소아 가까이에 선 채 말했다. 양소아도 그를 보고 의아한 시선을 던질 무렵이다.
"소저 제가 한번 시도해 보겠소이다."
"아니, 소협께서!"
"그렇소이다. 어찌 사내대장부가 어린아이가 죽어가는 걸 두 눈 뜨고 보겠소이까?"
"하지만 위험한 일입니다. 아무도 나서지를 못하는 어려운 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