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36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36화
"사팔뜨기가 된 건 다리에서 굳어진 경혈이 아직 덜 풀려서 그런 거지요. 치료법은 간단하다면 간단하오. 매일같이 하루에 오십 리 길 정도를 전력으로 달린다면 조만간에 막힌 경혈이 풀어져 사팔뜨기가 바로 나을 것이오."
순간 반색하던 담수란이 곰곰이 생각하다 새하얗게 질려갔다.
오십 리 달리기!
그것도 전력질주란 말에 기가 질려왔다. 더구나 말만 한 처녀가 달린다는 건 그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소천악은 내심 고소함을 느끼며 쐐기를 박았다.
"뭐 평생 사팔뜨기로 사시려면 안 하셔도 상관없소. 편한 대로 하시구려."
"할게요. 할 거예요! 그런데 왜 자꾸 사팔뜨기라 해요? 사시란 말도 있잖아요."
악에 받친 담수란의 목소리를 듣고 빙긋 웃는 소천악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엉거주춤 서 있던 담대추광을 향해 말했다.
"일단은 제가 할 일은 다 했습니다. 이제는 담 소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팔눈은 고쳐질 겁니다."
"아, 이렇게까지 해주셔서 정말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매는 담대추광을 향해 포권하며 말하는 소천악이었다.
"아닙니다. 지금 제가 너무 피곤하군요. 방에 가서 조금 쉬어야 할 듯합니다."
"그러시죠. 제가 신의께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이런 결례를."
두 사람은 서로 덕담을 나누며 그렇게 헤어졌다. 소천악은 담소란이 매일 헐떡거리며 뛰는 모습을 생각만 해도 웃음이 터져나왔다. 한동안 큭큭거리며 웃은 후에야 덤덤한 얼굴로 귀빈 객실로 들어섰다.
침대 위에 벌렁 몸을 눕힌 소천악은 갈수록 꼬여가는 일에 머리가 아팠다. 이제 곧 강호에 자기 이름이 알려질 건 당연했다. 신의로 알려지는 건 별로 득이 될 게 없었다. 의술이라곤 외상 치료가 다인 최초의 신의가 될 판이었다. 혈천신공을 언제까지 믿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한동안 고민하던 소천악이 마침내 해결책을 찾았다. 안광이 번뜩하며 득의에 찬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그때 방문 밖에서 음성이 들렸다.
"신의님! 지금 하오문 지부장이란 사람이 찾아왔는데요. 양원저라는 분입니다."
"오, 어서 들어오시라 해주시오."
양원저 하오문 지부장이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섰다. 고개를 들자 사나운 눈길로 쳐다보는 소천악의 표정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소 소협! 정보수집에 어려움이 많아서 조금 늦었습니다."
"음, 그래. 정보는 가져왔소이까?"
정보란 말에 다소 누그러진 소천악의 말투였다. 그제야 한시름을 놓은 양원저가 여전히 두려움이 실린 말투로 조심스레 말했다.
"네, 많이는 아니더라도 다섯 명의 행적은 찾아냈습니다."
얼른 서찰을 건네주는 양원저 지부장이었다. 소천악은 서찰 내용을 꼼꼼히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나자 서찰을 다시 탁자 위에 놓고 입을 열었다.
"이들은 도대체 색마 서열로 따지면 어느 정도 인물이오?"
당연한 궁금증이다. 양원저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그 서열을 정해놓은 건 아직 아무 데도 없습니다. 세상천지에 색마 서열을 정할 미친 정보기관은 없죠. 다만 막연히 추측하기로는 한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 나름대로 그 계통(?)에서는 한가락 하는 인물들입니다."
"왜 한 사람은 제외한 거요?"
의아한 소천악의 질문이었다. 예상했다는 듯 바로 대답하는 양원저였다.
"그자는 사실상 논외의 인물입니다. 추측하기 어려운 무공실력을 갖춘 고수입니다. 게다가 당한 여자들이 모두 침묵으로 일관하는지라 정확한 평가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오, 그래요?"
소천악은 왠지 그자에게 호기심이 당기는 걸 느꼈다.
"그자의 명호가 뭐요?"
"극락색마라 합니다. 암암리에 불리는 이름이지요. 일반적인 별호는 진천패권이라 합니다."
소천악은 그 별호를 뇌리 깊숙이 집어넣고 말했다.
"음… 좋아요. 이 정도면 일단은 만족이오. 이자들이 아직 여기에 적힌 대로 활동한다는 이야기죠?"
"그렇습니다. 아직은 변경사항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나 변동이 있다면 바로 인편을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좋소. 수고가 많았소이다. 자, 이제 그럼 계산을 해봐야지. 정보비가 얼마요?"
양원저는 광동성 지부장으로부터 받은 전서구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오기 전에 머리에 인이 박히도록 외우고 또 외운 문구였다. 기억을 되살리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정보 수집에 따른 노력을 떠나서 말씀드리지요. 이 정보의 중요성을 볼 때 최소한 천 냥은 주셔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이라? 천 냥? 지금 지부장님이 제정신이시오? 천 냥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아시오? 그깟 색마 몇 놈 정보 말해 주는데 이런 거액을 요구하다니요!"
버럭 화를 내는 소천악을 보자 또다시 하오문에서의 행패가 기억난 양원저 지부장이었다.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
"아니! 그럼 주시는 대로 받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게 현명한 처세라고 봅니다. 자고로 정보란 쓰는 사람이 그 중요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거지요."
가만히 노려보던 소천악은 전낭에서 은자 한 냥을 꺼내 주었다. 그 황당한 금액에 지부장이 넋이 반쯤 나갈 때 귓전에 음성이 들렸다.
"색마 놈들 정보는 은자 한 냥도 과하다고 생각하오."
손바닥 위에 달랑거리는 은자 한 냥을 보며 양원저 지부장이 울상을 지었다.
"활동비는 어쩌라고 이러십니까? 이거 구하느라고 하오문 수십 개 지부가 밤낮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정보란 받는 이가 정당하게 가격을 매겨야 진짜 가격이 되는 것이오. 당신네가 내 정보를 은하전장에 팔아먹은 걸 생각해서 계산한 청부비요. 왜, 유감 있소?"
나름대로 정당성을 부여한 소천악의 말이었다. 사실 그의 기준으로 볼 때 색마들의 정보는 우선순위에서 미녀 정보와는 비교가 안 되는 정보였다. 비록 절실히 필요한 정보임에는 분명하나.
그의 기준!
바로 그게 문제였다. 너무도 억울한 양원저 지부장은 울화가 치밀어 뭐라고 한마디를 쏘아붙이고 싶었다. 다만 다시 분노한 소천악을 절대 보고 싶지 않은 기분이 그 분노를 잠재웠다.
"알겠소이다. 이번 건은 이걸로 끝내는 걸로 하시는 거죠?"
"물론이오. 이걸로 하오문에서 내 정보를 팔아먹은 건 잊어버리도록 하겠소."
뻔뻔하게 말하는 소천악의 면상에 찻잔을 집어 던지는 상상을 하는 양원저였다.
"그럼 우리 하오문도 이걸로 마무리하겠소이다. 이만 가볼까 합니다."
더 이상 얼굴을 맞대고 싶지 않은 지부장이 서둘러 방을 나서려 했다.
"잠깐! 하나 물어볼 게 있소. 도대체 어느 놈이 제일 가까이 있다는 거요?"
"그거야 위치를 보면 아는 거 아니겠소이까?"
기분이 상한 양원저 지부장의 말투가 그리 고울 리는 없었다. 그를 알면서도 소천악은 별다른 추궁 없이 말했다.
"그걸 모르니 묻는 소리지요. 자, 어서 짚어주고 가시구려."
지부장은 영 내키지 않았으나 감히 그런 기색을 내비칠 수가 없었다. 소천악 옆에 와 서찰을 보며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몇 번 의문나는 걸 물어 다 숙지한 소천악이 그제야 만족스런 얼굴로 말했다.
"참 중요한 정보요. 수고했소. 이건 정보제공비요."
전낭을 뒤져 은자 천 냥짜리 전표를 바로 건네주었다. 양원저 지부장은 도대체 정신이 없었다.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느낌이 온몸에서 올라왔다.
"고맙소이다. 이리 후하게 주셔서."
"하하, 고맙긴요. 다 상부상조하는 거지요. 그리고 하나 더 청부할 정보가 있소이다. 현재 강호무림에서 제일가는 의원을 수소문해 주시오. 이 일도 가급적 빠르게 처리했으면 하는 마음이오."
소천악의 요구에 이번에는 쾌히 승낙하는 양원저였다.
"당연히 알아봐 드려야지요. 별로 어려운 정보가 아니니 조만간에 정보를 들고 찾아뵙지요."
"하하! 그래 주신다면야 저야 더 바랄 게 없지요. 참 그리고 강호무림에서 제가 어느 정도의 무공실력이라고 소문이 났습니까?"
나름대로 궁금함을 말하는 소천악을 보고 양원저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가 알기로는 이미 절정의 끝이라는 평가가 퍼진다는 풍문입니다. 이미 각파의 내로라하는 최절정고수급이란 소문도 은근히 나온답니다."
"오호, 최절정이라. 알겠소이다. 다음에도 좋은 정보 부탁하오."
소천악은 스스로의 무공경지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갑니다. 정보 수집을 하려면 서둘러야지요."
생각 외의 부수입에 고조된 양원저 지부장이었다. 그는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져서 돌아갔다. 그가 사라지자 소천악의 입에 괴이한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 혈사부의 말이 사실이군. 사람을 부릴 땐 나락에 빠트리고 다시 건져 올리란 말이 이렇게 딱 맞을 줄이야!"
한마디로 그 사부에 그 제자였다. 필요한 정보를 입수한 그는 슬슬 은하전장을 떠날 차비를 서둘렀다. 한시라도 빨리 색마를 잡아 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조급해졌다. 챙길 짐이라 봐야 별거 없었다. 전낭하고 옷가지를 담은 행낭뿐이라 간단하게 끝낼 수 있었다.
귀빈용 객실을 나선 소천악은 곧바로 장주 집무실로 향했다. 두 손 들어 반색하는 장주에게어색한 투로 말을 꺼냈다.
"장주님! 이제 전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아니 벌써 가실 셈이오? 이런! 안 되지요. 은공이 이리 가면 제가 너무 서운하오이다."
장주는 벌떡 의자에서 일어나며 펄펄 뛰었다. 늘 가슴에 응어리졌던 한을 풀어준 소천악이 너무도 고마운 처지였다.
"아닙니다. 서둘러야 할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들러 인사를 드리지요."
"허어, 이럴 수가!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안사람과 고쳐준 딸이라도 보고 가야 하는 거 아니오?"
아쉬워하는 담대추광을 향해 소천악은 무게를 잡으며 대답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하였습니다. 사람의 인연이 그리 쉽게야 끊어지겠습니까? 다시 볼 기회가 있을 겁니다."
"정히 그러시다면 잠시만 기다리시구려."
장주는 급히 서랍을 열었다. 미리 준비한 번쩍번쩍 빛나는 금패 하나를 소천악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 금패는 우리 은하전장에서 하나뿐인 신패요. 이걸 중원 각지에 있는 은하전장 지부에 내보이면 한 달에 은자 오천 냥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받을 수 있소이다. 은혜는 하늘을 뒤덮는데 이리 급히 가시니 이거라도 일단 받으시지요. 나중에 다시 후히 보상하겠소."
장주의 말에 소천악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건 한마디로 봉 잡은 일이었다. 막말로 몇 달 동안 기루에 처박혀도 채 쓰지 못하는 거금이 매달 들어오는 일이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 소천악이 짐짓 태연하게 말했다.
"하하! 이거 의원이 돼서 이런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닙니다만 이리 호의를 베풀어주시니 좋은 데 쓰도록 하겠습니다."
"보답이라뇨? 안 그래도 우리 딸 때문에 신의님이 온 힘을 기울이느라 기력을 소진하셨잖습니까? 그 점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데 고작 은자로 보상해서 마음이 영 안 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