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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35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9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35화

 

  "어서 오세요, 신의님. 또 저에게 고통을 주시려 하시는군요."

 

  가시가 선 장미처럼 도발적인 말로 인사를 대신하는 담수란이었다. 물론 소천악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자, 여러 말 말고 어서 침대 위로 올라가시오. 이 짓도 오늘이 마지막이오."

 

  "정말인가요? 오늘이 마지막 치료가 분명한가요?"

 

  얼굴 가득 반색을 한 담수란의 표정에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소천악이었다.

 

  "만날 속고만 살았소, 담 소저?"

 

  "쳇! 허구한 날 거짓말만 했잖아요. 내일은 안 아프다 하시는 말 입에 노상 달고 다니면서 항상 겪어보면 내일이 더 아프더라고요."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대는 담수란의 입술에서 달짝지근한 향기가 풍겨 나왔다. 평정심이 잠시 흔들린 소천악은 내심 당혹감을 감추느라 식은땀을 흘렸다.

 

  "하하,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오. 이건 내가 맹세할 수도 있소. 대미를 멋지게 장식합시다. 담 소저!"

 

  말투에 담긴 진실을 읽은 담수란은 뛸 듯이 기뻤다. 무려 일주일이었다. 그 마지막이 오늘이라 하니 극악한 고통도 하루 정도는 견딜 만한 용기가 솟아났다. 침대에 누운 담수란을 바라보는 소천악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치료하느라 경황이 없어 못 보았던 그녀의 미모가 새삼스럽게 다가섰다.

 

  담수란의 얼굴에는 불그레한 혈색이 소리 없이 돌아와 숨겨졌던 본래의 미모가 더욱 빛났다. 가만히 살펴보니 천하 십대미녀라는 단목산산보다 한 수 위의 미모가 수줍은 듯 시야에 들어왔다. 얼핏 보니 거의 족자 미인에 버금가는 절세미인이 병색을 떨쳐내고 그 본모습을 드러냈다. 잘하면 여기서 천하제일미를 구한다는 기쁨도 함께 자리했다. 울렁거리는 마음을 얼른 진정시키고 말했다.

 

  "자, 이제 치료에 들어가겠소이다. 아파도 오늘만은 잘 넘기기 바라오."

 

  애써 덤덤한 얼굴로 치료에 들어갔다. 오늘은 사실 다리 혈도만 풀어주는 마지막 타혈만 남아 있었다. 내심 쉬운 일이라 생각은 들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라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다리에 손을 대고 진기를 여태혈로부터 시작해 독비혈을 거쳐 복토혈까지 가는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당연히 담수란은 즉시 다리가 오그라드는 격통에 시달려야 했다.

 

  "아악, 제발 좀 살살 해주세요."

 

  "거참, 일주일째인데도 아직도 엄살이오? 시술하는 나도 죽을 지경이오. 제발 입 좀 다물어주시오."

 

  비지땀을 흘리며 소천악이 톡 쏘아붙이자 이마가 빨개지는 담수란이었다. 오기로 참아보려고 악을 썼지만 고통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흑흑, 어머니!"

 

  결국 울고 마는 담수란이었다. 울거나 말거나 무심한 소천악은 줄기차게 치료에 박차를 가했다. 마지막 혈도가 뚫리자 마침내 길고 긴 시술이 끝났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소천악은 일주일간 치료에 전념하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의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그간의 어려움을 대변했다.

 

  아주 연례행사처럼 또다시 기절한 담수란이었다. 소천악은 의식을 잃은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흠잡기 힘든 미인이었다. 거의 족자 미인에 육박하는 미인임에는 분명했다. 음흉한 마음으로 곰곰이 생각하니 자신이 그녀의 몸 전체를 다 본 유일한 외간 남자였다. 회심의 미소가 절로 입가에 떠올랐다. 한동안 쳐다보며 꿍꿍이 속셈을 연구하던 그가 마침내 시녀를 불렀다.

 

  "이보시오! 시녀 분은 얼른 방에 들어오시오."

 

  시녀는 냉큼 목소리를 듣고 방에 날아가듯이 뛰어 들어왔다. 오자마자 이미 익숙한 손놀림으로 흐트러진 담수란의 옷을 여며주었다. 모든 정리가 끝나자 시녀는 눈치 빠르게 방 밖에서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던 가족들을 불렀다.

 

  "장주님, 들어오시지요."

 

  "오, 그래!"

 

  반색을 하며 담대추광 장주를 비롯한 모든 식구들이 나는 듯이 뛰어 들어왔다. 이미 소천악은 창가에 서서 등을 돌린 채 풍경을 바라보았다. 한마디로 표정 관리에 들어선 터였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린 담수란을 보고 유소운이 달려들었다.

 

  "수란아, 이젠 괜찮니?"

 

  어머니의 말에 가만히 자신의 몸을 살펴보던 담수란이었다. 몇 번이고 거듭해 살펴보던 그녀가 기쁨에 차 소리쳤다.

 

  "네, 어머니! 이제는 아프지 않아요."

 

  "아이고! 천지신명이여, 감사합니다."

 

  한동안 방 안은 기쁨에 겨운 가족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귀에 들려오는 소란에 약간 눈살이 찌푸려진 소천악이었지만 일절 내색은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한 모습을 보이는 담대추광 가족이었다. 그때야 다시 침상으로 다가가는 소천악이었다.

 

  "자, 이제 눈을 뜨게 할 차례입니다."

 

  "오! 눈까지 고쳐주는 겁니까?"

 

  감격에 겨운 담대추광 장주의 말에 싱긋 웃음으로 화답하는 소천악이었다.

 

  "당연하죠. 기왕 고치는 거 다 고쳐야지요. 자, 이제 자리를 비켜주세요. 물론 방에서 나가시지 않아도 됩니다. 시녀 분은 창문을 천으로 두껍게 가려주세요. 갑자기 밝은 빛을 보면 환자에게 안 좋습니다."

 

  소천악의 말은 곧 법이었다. 담대추광을 위시한 전 가족이 몇 걸음 물러나 조용히 지켜보았다. 소천악은 침대 앞으로 다가가 담수란의 눈을 손으로 덮었다. 눈꺼풀이 가늘게 떨리는 담수란이었다. 벌써 오 년 전에 시력을 잃고 지내온 세월이었다.

 

  그 눈이 다시 보인다는 말에 희망이 절로 생기는 기분이었다. 이번만은 아무리 아파도 꾹 참을 생각이었다. 부모님이 계신데 비명을 지르면 너무 마음 아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소천악은 서서히 내력을 눈으로 밀어 넣었다. 눈에 치민 탁기를 손바닥을 통해 흡수할 생각이었다. 손바닥에 무언가 끌려 올라오는 감각이 들었다. 천천히 내력을 조절하며 빨아들이는 탁기였다.

 

  불과 반시진이 지나지 않아 이미 거의 모든 독기가 손바닥으로 빨려왔다. 대충 치료가 끝난 걸 안 소천악이 손을 떼고 얼른 내력을 손끝에 모아 손톱 끝을 터뜨렸다. 팍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피가 손바닥을 뚫고 철철 쏟아져 내렸다. 검은 피는 역겨운 냄새를 방 안에 가득 뿌렸다.

 

  그 모습에 담대추광 장주의 안색이 정말 미안한 기색으로 급변하였다. 이렇게 어렵게 치료하는 줄은 꿈에도 모른 그였다. 잠시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는 소천악을 얼른 부축하며 말했다.

 

  "신의님, 이렇게까지 고생하시면서 우리 딸을 구해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사람의 목숨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습니까?"

 

  "오! 역시 신의께서는!"

 

  감격에 겨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담대추광 장주였다. 그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 모든 것이 소천악의 깊은 흉계인 줄은.

 

  소천악이 일부러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연극을 한 거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사실 좀더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일부러 손바닥을 터뜨리는 꼼수를 부렸다. 실로 아무도 모를 절묘한 계획이었다. 자리에 있는 이 모두가 깜빡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자, 이제 눈을 떠보십시오. 담수란 소저."

 

  여유 있게 말하는 소천악이었다. 그도 내심 아리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 그림 같은 미녀가 눈을 뜬다면 과연 어떤 얼굴로 다가설지, 왠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딘 듯한 설레임이 감돌았다.

 

  "네, 신의님!"

 

  왠지 가시 돋친 말투로 대꾸한 담수란이 서서히 두려움을 가지고 눈을 떠갔다. 약간 눈이 부신 듯 처음엔 한동안 실눈을 떴다 감았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순간순간 그 실눈에 담긴 얼굴이 소천악에게 충격으로 다가섰다.

 

  족자 미인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점점 설레는 마음으로 뚜렷이 담수란을 주시하는 소천악이었다.

 

  길다면 긴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담수란은 편안하게 눈을 뜰 수 있었다. 처음으로 온전한 담수란의 얼굴을 바라보던 소천악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절묘한 조화를 이룬 얼굴에 다시 드러난 그녀의 눈은!

 

  사시였다. 한마디로 사팔눈이었다.

 

  뜨악한 눈으로 바라보는 소천악의 귀에 당황한 담대추광의 음성이 들렸다.

 

  "아니, 수란아! 네 눈이 왜 이러느냐?"

 

  "왜요, 아버님? 뭐가 이상하나요? 아닌 게 아니라 영 초점이 잘 안 잡혀요."

 

  깜짝 놀란 담대추광이 고개를 돌려 얼른 소천악 옆으로 다가왔다.

 

  "신의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우리 란아가 왜 갑자기 사팔뜨기가 된 겁니까?"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소천악을 추궁하다시피 하는 담대추광이었다. 유소운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도 일제히 소천악의 얼굴만 바라봤다. 소천악도 내심 황당함에 마땅히 뭐라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제2-1장 색마(色魔) 사냥

 

 

 

 

 

  담수란이 사팔뜨기가 된 사연을 알 리가 없는 돌팔이 의원 소천악이다. 하지만 곧 냉정을 되찾은 그는 곧바로 사태 수습에 나섰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기껏 죽을 목숨 고생고생해서 살려주었더니만 겨우 사팔눈 하나 됐다고 이리 추궁을 하시는 겁니까?"

 

  싸늘하게 말하는 소천악의 말에 아차 한 담대추광이었다.

 

  "아, 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경황이 없어서."

 

  "허, 이거 참.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까 보따리 내놓으란 격이군요. 장님에서 구해줬더니 사팔눈 타령이라뇨? 이거 서운합니다. 커험!"

 

  심히 불쾌한 듯이 톡 쏘아붙이는 소천악이었다. 더욱 당황한 담대추광이 정중히 읍을 하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이거 딸 일이 되다 보니 아비로서 경황이 없어 큰 결례를 한 것 같습니다."

 

  한동안 침묵으로 시위하던 소천악이었다. 위기를 맞이하여 좀더 분위기를 장악하기 위한 수법이다. 번 시간을 이용해 사태수습을 위해 아무리 맹렬하게 머리회전을 해봐야 뚜렷한 해법이 나올 리 만무했다. 고심이 허사로 돌아가자 화가 풀렸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 절묘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하하, 아닙니다. 누구나 다 이런 상황이면 장주님처럼 행동할 겁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의젓하게 말하는 소천악의 내심은 뒤죽박죽 그 자체였다. 도무지 치료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긴 의술이라곤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알면 또 어쩌겠냐는 체념 어린 생각도 들었다. 대충 일이 어찌어찌 마무리되려던 찰나였다. 뾰족한 담수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의님, 이거 어떡할 거죠? 이 눈으로 어떻게 세상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어요. 책임지세요. 흑흑."

 

  "흠흠, 진정하시오. 담수란 소저!"

 

  "지금 내가 진정하게 됐어요? 도대체 어떻게 치료했기에 이 모양이에요?"

 

  카랑카랑하게 소리치는 담수란이었다. 달래려고 애쓰던 소천악이 슬며시 울화통이 치밀었다. 안 그래도 두근거리며 바라본 얼굴이 사팔뜨기란 사실에 기분이 팍 상한 터였다.

 

  "고칠 수 있으니 신경 쓰지 마시오. 담수란 소저."

 

  퉁명스런 천하의 말이 터지자 고개를 얼른 돌리는 담수란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환희가 물결쳤다.

 

  "정말인가요? 고칠 수 있어요?"

 

  "당연하오. 하지만 약간 어려움이 있는 치료법이오. 힘들어도 할 수 있겠소?"

 

  "물론이에요. 고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자신이 있어요."

 

  활짝 핀 얼굴로 대답하는 담수란을 보며 결심을 정한 소천악이 혀에 발린 목소리로 청산유수의 달변을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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