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68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68화
"이 정도에서 그만두어야 할 텐데요. 또 오면 피 같은 비도 아까운데요."
그 말을 옆에서 듣던 유조는 혼비백산할 지경이었다. 놀라운 비도술에 놀라고 소천악의 마음가짐에 기가 막혔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비도 아깝다고 투덜대는 그의 머리를 열어보고픈 마음이었다.
복면인 중 지휘자인 한 복면인이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그는 분노에 차 소리쳤다.
"모두 무엇들 하느냐? 적은 몇 명 안 된다. 모두 잡아라!"
"네, 조장님."
대답하는 복면인들은 내심 불만이 가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비도가 날아오면 피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명령은 명령이었다. 할 수 없이 다시 말고삐를 밀며 속도를 서서히 높이기 시작했다. 바라보던 소천악이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도움이 안 되는 분들! 결국 생때같은 비도 날리게 생겼네요. 제기랄입니다!"
아까움은 곧 분노로 변해갔다. 이미 그의 손에는 다시 여덟 개의 비도가 피를 갈구하며 섬광을 번뜩였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손을 뿌리는 소천악이었다. 손끝에서 벼락같이 뻗어간 여덟 줄기의 비도가 또다시 피를 맛보기 위해 날아갔다.
"으악! 또 온다."
이젠 복면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막을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검으로 막아봐야 소용없는 비도였다. 조장이란 지휘자도 흠칫하긴 마찬가지였다.
"모두 정신 차려라. 비도를 제대로 보고 피해라!"
외치는 조장에게 흩어지던 복면인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으아! 비도가 두 개나 조장님에게 향한다."
그 말에 심장이 덜컹한 조장이 전면을 바라보자 아닌 게 아니라 자기를 노리고 날아오는 두 개의 비도가 보였다.
"이런 젠장!"
기겁을 한 조장이 검을 들어 비도를 거세게 내리쳐 갔다. 지휘자답게 검을 내리치는 그의 손속은 상당한 내력이 담겨 있었다.
챙! 챙!
밀려오는 경력에 조장은 아차 하면 검을 놓칠 뻔한 강한 충격을 받았다.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줄줄 흘렀다. 다행히 비도는 겨우 막아낸 터였다. 자신감이 붙은 조장이 복면인에게 소리쳤다.
"보아라. 비도를 못 막는 게 아니다. 모두 저놈을 잡아 죽여라."
의기양양해 말하는 조장에게 복면인들은 바로 대답했다.
"조장님, 조심하십시오. 이번엔 세 개가 날아옵니다."
섬뜩한 조장이 얼른 고개를 돌리자 여지없이 세 개의 비도가 자신을 노리고 달려드는 게 보였다. 아찔한 마음으로 피가 철철 흐르는 손을 들어 다시 한 번 비도를 섬전같이 내리쳤다.
챙.
비도는 세 개인데 소리는 한 번이 끝이었다. 두 개의 비도는 조장의 왼쪽 가슴과 목을 파고들었다.
"크아악! 이런 비겁한 놈!"
억울하다는 듯 신음과 함께 욕설을 퍼붓던 조장의 숨이 이내 끊어졌다. 그 모습에 남은 조원들이 공포감에 질려갔다.
"으아, 저건 아니야."
한 조원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달아나자 나머지 조원들도 망설이다 얼른 그를 따라 도망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관도에는 흙먼지만 자욱할 뿐 복면인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바라보던 소천악이 진철에게 조용하지만 위압적으로 말했다.
"말 세우시오."
말이 속도가 떨어지자 훌쩍 신형을 날린 소천악이 저 멀리 쓰러져 있는 복면인들에게 다가갔다. 주섬주섬 무언가를 하더니 이내 돌아왔다. 얼굴이 환히 펴져 있는 게 기분이 상당히 흐뭇한 표정이었다.
"자, 이제 다시 갑시다. 이젠 좀 천천히 편하게 갑시다."
밝게 말하는 소천악이었다.
"네, 무림신선님! 안전하고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진철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말을 몰아갔다. 자칫하면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긴 기분이었다. 더불어 고용한 이의 고강한 무공에 놀라 자빠질 뻔했다. 그는 식사비 횡령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소천악은 마차 위에서 주섬주섬 천에 싼 물건을 꺼내 햇빛에 비춰 보며 다시 상자에 넣었다. 바라보던 유조는 기가 막혀 물었다.
"소협! 그거 아까 던진 비도 찾아온 겁니까?"
"당연하죠.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요. 돈 주고도 만들기도 힘든 겁니다."
"아니 그래도 이 다급한 판에 그걸 챙길 기분이 납니까?"
"다급은 무슨! 아무리 다급해도 챙길 건 챙겨야지요."
유유히 대답하는 소천악을 보고 더 이상 할 말을 잊은 유조는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도를 챙겨 넣던 소천악이 버럭 소리쳤다.
"이런 제길! 그래도 두 개가 모자라네."
아예 상종하기도 싫어진 유조는 모른 척하고 진철 옆으로 훌쩍 신형을 날렸다. 소천악에게 호감 가던 마음이 일순간에 싹 사라졌다. 비도를 다 챙긴 소천악은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악천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뭐, 그리 존경스런 눈으로 보시나? 대장군가의 장손님?"
"제 이름은 악천수입니다."
"알지요. 아는데 공자는 이름보다 장손이라는 데 더 자부심이 있잖소? 그러니 장손님이 맞지요."
무신경하게 말하는 소천악의 말에 내심 철퇴로 맞은 충격이 온 악천수였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가문의 힘에만 의존했다는 못난 생각이 들었다. 새로 깨달은 사실은 순식간에 그를 한결 성숙하게 만들었다. 다시 소천악을 바라보는 악천수의 눈은 고마움으로 가득 찼다.
"고맙습니다. 깨달음을 주셔서."
"뭘! 그런 걸 가지고. 괜찮소이다."
대꾸하는 소천악은 어리둥절했다. 무엇을 깨달았다는 건지 도무지 영문을 몰랐다. 하지만 얼굴에 철판을 깐 채 그런 듯 내색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바라보던 소천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장손님아! 황궁에는 가보셨소?"
"그럼요. 황제 폐하와 황녀께서 예뻐해 주셔서 가끔 갔습니다."
"오, 그래요? 그럼 황녀란 분은 어디에 사시지요?"
"네, 그분은……."
별생각 없이 악천수는 황녀가 사는 곳을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손으로 표시까지 하면서 일러주는데 머리에 안 들어올 리가 없었다. 하나라도 빠질세라 뇌리 깊숙이 담아둔 소천악이었다.
"그런데 그거 왜 물으시죠?"
"아! 그냥 황녀께서는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해서."
"아, 그래요? 그럼 제가 황녀님에 대해 이야기를 해드리지요."
어린아이답게 신이 난 악천수는 황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취미가 뭔지 성격은 어떤지 줄줄 설명하는 악천수였다. 소천악은 무심히 듣는 척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속은 전혀 아니었다.
사실 소천악이 북경에 가려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사실 황궁에 볼일이 있었다. 중원 십대미녀 중 한 여인이 황궁에 살고 있다는 유일한 이유였다.
황녀 주청령!
그 지고한 신분 때문에 본 이는 드물었지만 암암리에 들리는 말에 따르면 천하 제일미녀로 손색이 없다는 소문이었다. 하오문에서 준 정보를 토대로 나름대로 판단한 소천악이었다. 허구한 날 검이나 들고 설치는 여인만 보다 보니 황궁심처에 다소곳이 지내는 황녀는 무언가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 뒷일을 생각하며 일을 추진할 소천악이 아니다. 황제든 황궁이든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식이었다. 일단 만나보는 게 급선무였다. 마음은 콩밭에 간 채로 건성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꽤 친해진 두 사람이었다.
마차 밖을 바라보는 소천악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안절부절못하는 악천수였다. 이미 그 낌새를 눈치챈 소천악이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시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발발대시지 마시고."
"쳇, 없어요."
삐쭉이는 악천소를 보며 싱긋 웃는 소천악이었다.
"할 말 없으시면 말고요."
"쳇, 좋아요. 하나만 물을게요."
"그러시구려."
"저, 앞으로 형님이라 불러도 돼요?"
조심스런 악천수의 말에 고개를 홱 돌리는 소천악이었다. 그의 눈에서는 섬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말한 의도를 살펴보는 소천악이었다. 아무리 봐도 별다른 꿍심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눈빛을 풀고 말했다.
"대장군가의 장손이 그리 형을 쉽게 만들어도 되나요?"
"쳇! 아직은 대장군이 아니라고요. 싫으면 관둬요."
"하하, 그 녀석… 좋다, 앞으로 형님이라 불러라. 대신 이것저것 부탁하지는 마라. 이 형님이 워낙 공사다망해서 들어주기 힘들다."
여태껏 해오던 존댓말을 바로 거두고 반말로 대답하는 소천악이 누구보다 반가운 악천수였다.
"헤헤! 알았어요. 그냥 살다가 외로우면 찾아오세요. 언제나 반겨줄게요."
해맑게 웃는 악천수를 보며 소천악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놈에게서 사람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는 걸 이제야 느꼈다. 핏줄의 힘인지 악천수는 만인을 휘어잡는 선천적인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놈이라 내심 생각하며 말했다.
"그렇게 하지. 살다가 심심하면 언제라도 들르마."
"그래요, 형님. 이건 절 구해주셔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형님에게는 무언가 거친 느낌이 있는데 그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하는 말이에요."
"거친 느낌이라? 음, 잘 본 거 같네, 우리 장손 동생이! 하하하!"
"전 장손이 아니라 악천수입니다."
악을 쓰며 부인하는 녀석을 보며 그저 웃음으로 무마하는 소천악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쫓긴 거야?"
소천악의 질문에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진 악천수였다. 고민하는 표정이 확 드러날 정도로 고심하던 그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형님이니까 말씀드리지요. 제게는 배다른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그 녀석은 어머니가 명문세가의 여식이지요. 전 사실 몰락한 가문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일찍 태어났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장손이 되어 장차 대장군가를 이어받을 처지지요. 그게 못마땅한 둘째어머니가 사람을 사 절 죽이려 한 겁니다.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절 죽이려 한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평소엔 그렇게 잘해주는 듯 보이니 아무도 믿질 않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건 아버님인 대장군께서도 작은어머님을 사랑하지요."
"참, 네놈도 힘들게 산다. 그냥 쓸어버려야지, 그럴 때는."
시원하게 답을 제시하는 소천악이었다.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아주 지랄을 한다. 네놈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데 뭐 그리 따질 게 많아? 일단 살고 봐야 하는 거야."
이후 두 의형제의 설전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서로 생각이 다르니 당연히 결론이 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동안 마차는 별 이상 없이 달려 무사히 북경으로 들어섰다.
황제가 사는 제국의 수도답게 북경은 처음부터 화려한 성문이 맞이했다.
경비병들도 다른 성과는 달리 차려입은 갑옷에 번쩍거리는 창을 들고 드나드는 모든 이를 철저히 검문하는 모습이었다. 마차가 다가서자 경비병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그냥 통과시켰다. 고관대작이 타고 있으리라 지레짐작하고 알아서 기었다. 성문 안에 들어서자 진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조 님이 대장군가로 가자는데 어쩔까요?"
"그쪽으로 먼저 가십시다."
소천악의 간단한 대답이 나오자 진철은 아무 말 없이 말을 몰았다. 이번 일은 묘한 구석이 많다는 생각이 든 그였다. 위기도 있었고 대장군가의 장손도 모시는 영광도 안았다. 고향에 가면 자랑할 일투성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