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67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67화
"좋소이다. 내 의지로 공자를 살려주지요. 앞으로 공자가 어떻게 클지 관심 있게 지켜보지요. 단 싹수없으시게 사신다면 내 기필코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 주지요."
간담이 서늘해질 말을 하는 소천악이었다. 그 말을 들은 소년은 한 치도 흔들림이 없이 대답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래도 난 내 멋대로 살 겁니다."
"좋아요, 좋아요. 그런 마음이면 공자를 구해주는 것도 보람일 거라는 기분이 듭니다. 어서 마차에 타시지요. 추격하는 분들이 점점 다가오시네. 어서 타시오."
소천악의 외침에 소년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마차에 얼른 올랐다. 옆에 있던 남자는 바로 진철 옆자리로 훌쩍 신형을 날렸다. 예사 고수가 아닌 게 바로 느껴질 정도의 고절한 수법이었다.
모두 마차에 오르자 소천악이 진철에게 소리쳤다.
"전속력으로!"
진철은 바로 말을 재촉하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도 눈치가 있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다. 소천악의 결정이 못마땅하기는 했지만 그로서는 도리가 없었다. 단지 열심히 마차를 몰아 위험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다가닥, 다가닥.
열 마리의 명마는 거침없이 관도를 질주했다. 최고속도로 모는 진철의 말 다루는 솜씨가 본격적으로 빛을 발했다. 강약을 조절하며 말의 호흡에 맞춰 조정하는 노련미를 보였다. 아차 하면 목숨이 간당간당한다는 사실이 그가 가진 전력을 드러내게 하였다.
마차 안에서는 초조한 두 명과 느긋한 한 명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느긋한 표정의 소천악이 물었다.
"그런데 공자, 이름이 무엇이오?"
"말조심하시오. 비록 어려움을 당했지만 당신에게 함부로 취급받을 신분이 아니오."
당당하게 외치는 소년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볍게 치는 소천악이다. 물론 맞는 소년에게는 골이 흔들리는 아픔에 정신 차리기가 힘들었다.
"거참, 어린 공자님이 자존심만 살아서! 까불지 마시고 얼른 대답이나 하시지요."
머리를 한 대 맞은 소년은 분한 기색으로 소리쳤다.
"감히 나 대장군가의 장손 악천수(岳泉修)를 이리 대하다니!"
"헉, 대장군가! 컥!"
놀란 등해린이 벌떡 일어서다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고 인상을 긁었다. 놀라운 신분이었다. 군부의 최고실력자이자 대대로 대장군가의 명예를 가진 악씨 가문이다. 그 가문의 종손이었다. 미래의 대장군이 아직은 어린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소천악은 여전히 태연했다. 신경질을 부리는 악천수를 보고 툭하니 쏘아붙였다.
"대장군은 네 아버님이시고 공자는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한 거지요. 어디서 위세를 부리시나? 그리고 지금 공자님이 소리 지를 처지시오?"
"이익!"
분한 듯 악천수가 이를 악물었다.
"뒷배경만 믿지 마시고 쫓기는 영문이나 말해 보시구려."
"말할 수 없소."
단호하게 대꾸하는 악천수의 얼굴에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소천악은 내막을 숨기려는 악천수의 마음을 읽었다.
"오호! 드러내지 못하는 치부가 있으시다는 말이군요."
"시끄럽소. 아무리 도와준다고 해도 이건 너무 무례하오."
"거참, 재미있는 공자님이네요. 죽을 위험에 놓여서도 자존심을 살리신다? 연구대상이야, 연구대상."
실실 비아냥거리는 소천악의 말이었다. 악천수는 화가 치밀어 마차 문을 열고 나가고픈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가면 바로 죽음이 기다린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억지로 마음을 눌러 울화통을 삭여야만 했다.
"도와준 거에 대해서는 본가에 가면 충분히 보상하겠소. 그러니 더 이상 무례하지 않기를 바라오."
"보상이라… 좋지요. 얼마나 보상하는가 한번 보지요. 과연 대장군가의 장손이 말하는 충분한 보상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그런데 왜 내게 감히 말을 하는 거지요? 난 대장군가를 이어갈 장손이란 말이오."
분한 마음에 버럭 소리치는 악천수를 가만히 바라보던 소천악이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공자님, 나보다 나이 많아요?"
"……."
"적잖아요? 나이도 어린 공자님이 무슨 위세를 떠시고 야단이시오."
단순명료한 소천악의 논리에 대꾸할 말이 마땅치 않은 악천수는 분에 떨었다. 나이로 깔아뭉개는 데 대책이 없었다. 도대체 저 인간은 대장군가의 위명에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산에서 살다 갓 내려온 소천악이다. 대장군가의 그 무서운 세도를 알 리가 없었다. 대장군가하면 단지 군대에서 힘 좀 쓰는 집구석 정도가 그의 머리의 한계였다.
소천악이 악천수를 놀려먹다 갑자기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눈이 시퍼런 광망을 뿜어내며 입에서 냉소가 터져나왔다.
"풋, 시끄러운 분들이 나타났군요. 이보시오, 천수 공자! 마차 안에서 숨어 있어요. 아무래도 공자를 노리는 작자 분들이 오시나 보네요."
"헉, 벌써."
악천수의 안색이 굳어졌다. 지난 삼 일간의 추적은 지긋지긋했다. 열 명이던 호위 무사도 모두 죽고 호위대장 격인 유조 혼자 살아남았다. 유조도 가히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격전으로 인한 내상이 심해 싸울 여력이 사실 없었다.
이제 희망은 저 보기 싫은 소천악뿐이라는 걸 알았다. 어린 마음에도 왠지 그가 믿음직스러웠다. 추적자를 말하면서도 당황하는 기색이 전혀 없음은 물론 단지 흥미롭다는 눈빛뿐이라는 게 바로 느껴질 정도였다. 저 자연스러움은 약자는 결코 부릴 수 없는 여유란 생각이 들자 숨어 있는 강자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천악은 악천수의 생각 따위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단지 대장군가의 장손을 노리는 무리가 누구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이 마차의 벽은 화살도 뚫지 못하는 강철이지요. 겁먹지 마시고 문을 잠그시고 편안하게 앉아 있구려."
"누가 겁을 먹었다는 겁니까?"
"흐흐, 어린 공자님.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나 가리시고 큰소리치시구려."
움찔한 악천수는 손을 얼른 감추었다.
"이건 두려워서 떠는 게 아니어요. 분해서 떠는 겁니다."
"거야 편한 대로 떠드시고 잔소리 마시고 마차 안에 있어요. 거참, 어떻게 가는 곳마다 일거리가 생기는지 원. 이놈의 팔자도 참 기구하네요."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늘어놓은 소천악은 비도가 담겨진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이미 마차 밖은 긴장된 신색으로 뒤를 바라보는 두 사람이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소천악은 그들의 시선을 따라 뒤를 바라봤다. 뒤에는 수십여 필의 말이 전속력으로 마차를 추격하는 게 보였다. 말 위에는 검을 손에 든 고수들이 살기를 감추지도 않았다.
"아주 난리군요. 나이 처먹으셔서 어린애 하나를 죽이려고 발버둥을 치시는군."
시큰둥하게 말하는 소천악의 눈에 강한 살기가 살짝 스쳐 지나갔다.
"공자! 아무래도 조만간 잡힐 거 같습니다."
긴장감이 느껴진 등해린의 말이 들렸다.
"잡히기 전에 저놈들을 모두 땅바닥에 처박아야지요. 하하하!"
호쾌하게 웃으며 소천악은 상자를 열었다. 순간 등해린의 눈이 번쩍였다.
"아니 이건 비도가 아닙니까? 비도술도 익힌 겁니까, 공자?"
"그저 심심풀이로 조금 수련했지요. 그 정도면 저놈들 정도야, 하하."
"놀랍습니다, 공자. 참으로 많은 무공을 아시는군요."
새삼 감탄했다는 듯한 말에 소천악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등 대협! 그 이야기는 그만 합시다. 수련을 생각만 해도 아주 치가 떨립니다. 제기랄!"
거친 소천악의 대답에 더 이상 묻지 않는 등해린이었다. 그가 보기에도 소천악은 무공 이야기만 나오면 이를 갈았다. 아무래도 엄청난 고생이 따르는 무공수련을 한 듯 보였다. 소천악은 비도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제길! 비싸게 주고 만든 비도인데 이번에는 회수가 조금 까다롭겠네요. 아깝다, 아까워."
어느새 그의 손에는 여덟 개의 비도가 잡혀 있었다. 비도와 햇빛이 만나자 번뜩이는 섬광이 눈을 부시게 했다. 그가 조용히 진철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진철. 마차를 약간 천천히 모시오. 이러다 말이 지쳐 자빠지겠소."
조용한 소천악의 말에 정신이 번뜩 든 진철이었다. 자신의 실수를 뒤늦게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 전력으로 말을 몰면 말들이 폐출혈이 일어날 건 당연했다. 겁에 질려 무조건 도망갈 생각에 그 점을 깜빡한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공자. 제가 그만."
"괜찮소이다. 살다 보면 다 그런 거지요. 자자, 속도를 줄이세요. 저놈들은 걱정하지 마시고."
안심시키려는 소천악의 말이었다. 진철은 믿기 힘들었지만 이대로도 힘든 일이었다. 말이 자빠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말고삐를 잡아챘다. 말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자 추격하는 자들과의 거리가 급격히 좁혀지기 시작했다.
"등 대협! 혹시 모르니 마차 안에서 대장군가의 장손을 보호하시오."
"그러지요. 부디 조심하시오."
이미 소천악의 무공실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등해린은 아무 말 없이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마차를 추격하는 자들과의 거리는 이백여 장에서 삽시간에 오십여 장으로 좁혀졌다. 가만히 거리를 재며 바라보던 소천악의 눈이 섬광을 발했다.
"으얍! 이 어린애 전문 살수 분들."
손이 일렁이는가 싶더니만 손에 들린 여덟 개의 비도가 일직선으로 쭉 날아갔다. 비도마다 검날에 시퍼런 광채가 출렁거리며 쏘아져 갔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추적하던 자들이 소란스러워졌다.
"헉, 비도다. 모두 검을 들어 비도를 쳐내라."
놀란 그들은 검을 들어 비도를 쳐내려 했다. 고수의 풍도가 물씬 풍기는 장면이었다. 검으로 비도를 쳐내는 건 일류고수가 아니면 상상도 못 할 경지였다. 일제히 안력을 높여 다가서는 비도를 쳐내기 위해 준비하던 그들은 눈이 동그래졌다. 비도는 그냥 날아오는 게 아니었다. 거세게 회전하며 다가서는 비도에 실린 경력을 뒤늦게 깨달았다.
"예사 비도가 아니다. 모두 조심해라!"
지휘자로 보이는 복면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긴 천수비도술이 예사 비도술일 리가 없었다. 공기를 사납게 찢어발기고 마침내 복면인들에게 덮쳐왔다. 복면인들은 필사적으로 검으로 비도를 쳐냈다.
챙! 챙! 그르릉!
비도는 검에 막히자 거센 회전력으로 검을 부수고 달려들었다. 마치 뱀이 흐르듯 검을 박살내고 밀어온 비도는 바로 복면인들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크아악! 무서운 비도술이다."
처절한 비명이 딱 여덟 번 들렸다. 날아온 비도는 단 하나도 실수 없이 복면인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살아남은 복면인들의 귓가에서 주르르 땀이 흘러내렸다. 자신이 목표였다면 피할 자신이 없었다.
가공스런 비도술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수법은 수십 년 전에 대막을 횡횡하던 탈백검마의 숨겨진 절기였다. 쓸 필요가 없어 꽁꽁 감춰두다 혈검신마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절기였다. 혈검신마도 깜짝 놀란 비전절기였으니 그 위력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공포에 질려 추적하던 말들의 속도가 자신도 모르게 떨어졌다. 무의식적으로 살려는 의지가 말고삐를 잡아당긴 일이었다. 지휘자인 복면인마저 그랬을 정도였다. 소천악은 우왕좌왕하는 복면인들을 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