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65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65화
"치열한 싸움 중에 잠시 실례하오. 불초는 소천악이라고 합니다. 종남파에 전해줄 게 있어 나섰소이다. 자, 종남파의 어느 분이 이놈들을 인계받겠소이까?"
쏜살같이 내뱉는 소천악의 말에 종남파의 고수뿐만이 아니고 구유마방과 흑살방 고수도 깜짝놀랐다.
"신의괴협!"
경악에 차 외치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소천악은 혈수쌍살을 옆구리에 낀 채 종남파 고수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시선은 천하 십대미인이라는 종취취에게서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회의 무복을 걸친 그녀는 머리를 조여맨 채 검을 들고 서 있었다.
과연 십대미인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절세의 미모를 자랑하는 얼굴이다. 휘영청 늘어진 몸매가 무복 사이에서 확연히 느껴졌다. 한 떨기 수선화를 연상케 하는 그윽한 미색이 보였다. 먼저 본 단목산산과 양소아에 비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미모였다.
소천악의 눈빛에 진한 아쉬움이 번쩍거리다 흔적 없이 사라졌다. 종취취 또한 족자 미인에 비해 약간의 부족함이 느껴졌다. 실망감이 잠시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아쉬움이 교차하는 마음을 추스르며 묵묵히 걸은 소천악은 하얀 수염이 멋들어지게 자란 한 노인 앞에 섰다.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입을 열었다.
"종남파의 어른이십니까?"
당당한 모습에 기특한 마음이 든 노인이 바로 물어왔다.
"허, 그렇소. 신의괴협이시오?"
"남들이 그리 불러주신다고 들었습니다."
"반갑소이다. 소협의 협행은 익히 들어 알고 있소이다. 난 종남파의 장로 직을 맡고 있는 종휘소라고 하오."
"반갑습니다, 종 장로님. 제가 온 건 다름이 아니라 이놈들 혈수쌍살이 귀 문파의 제자들을 죽였다는 소리를 듣고 왔습니다. 이놈들이 저를 암습하려 하다 제 손에 잡혔소이다. 아무래도 은원이 얽혀 있는 이리로 잡아 와야 할 것 같아서 이리 초면에 결례를 범합니다."
혈수쌍살이란 말에 흠칫한 종휘소 장로가 다급히 말했다.
"아니 이놈들이 혈수쌍살이란 놈들이란 말이오? 아무리 잡으려 해도 종적을 감춰 애태웠던 놈들인데."
"맞습니다. 이제 종남파에 이놈들을 넘겨주려 합니다."
"고맙소이다. 이거 사례를 해야 하는데 상황이 이래서."
난처하다는 듯 종 장로가 어색한 얼굴을 하자 바로 미소로 화답하는 소천악이었다.
"하하, 아닙니다.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죠. 나중에 세월 좋을 때 한번 방문하면 문전박대나 하지 말아주십시오."
"허허, 그럴 리가! 언제든지 찾아주시구려. 오늘은 아무래도."
"그러지요. 그럼 이만 소생은 물러갈까 합니다."
목적을 달성한 소천악은 만족한 표정으로 길게 읍을 한 후 몸을 돌렸다. 이 상황을 어이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갑자기 나타나 뚱딴지같은 짓을 하는 소천악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가까스로 승기를 잡은 기회를 놓친 분통함이 치밀어 오른 구유마방과 흑살방의 두 방주였다.
하지만 풍문에 들리는 신의괴협은 결코 소홀히 대할 인물이 아니었다. 단신으로 단목세가의 위기를 막아낸 절정고수였다. 게다가 광동성에서 내로라하는 고수인 흑마전주를 물리친 전력도 있었다.
신중하게 대처하던 두 방주였다. 혹시나 종남파의 편을 들을까 봐 염려되어 일체의 도발행위도 자제하는 입장이었다. 그들의 염려와는 달리 소천악이 자기 볼일만 마치고 돌아서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때였다.
"네 이놈! 네 눈에는 우리 구유마방이 우습게 보이더냐?"
외치는 한 인물의 소리에 두 방주는 눈앞이 아찔했다. 구유마방의 열혈남아인 호법 일도섬전 공민후였다. 그는 쾌검식으로 유명한 고수였다. 쾌검만큼이나 성질이 급하기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묵묵히 걸어가던 소천악의 발길이 우뚝 섰다.
"지금 그 말씀 저에게 한 말이시오?"
역시나 곱게 말할 소천악이 아니었다. 어느새 그의 입가에는 냉소가 차디차게 감돌았다.
"그래, 네놈에게 한 말이지. 이런 건방진 놈! 이름 조금 얻었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느냐?"
버럭 소리치는 공민후였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요? 한판 하겠다는 거요?"
"이런 어린놈이 감히!"
"그런 넌 나이 처먹어서 좋겠습니다. 제 말이 마음에 안 드시면 강호의 율법대로 해결합시다. 날도 더운데 시간 끌지 마시고."
계속되는 비아냥거리는 말에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소천악도 거칠게 나왔다. 한참 어린 그가 하대를 하자 공민후 호법은 기가 막혀 말문이 제대로 열리지도 않았다.
"이이… 이런."
"내 경고하는데요, 검을 쓸 거면 목 걸고 쓰십시오. 검을 쓰는 자에게 자비는 없습니다."
거듭되는 소천악의 말에 이성을 잃은 공민후가 막 검에 손을 대려는 순간이었다. 기겁을 한 건 구유마방의 방주인 장이명이었다. 그는 급히 공민후에게 외쳤다.
"공 호법! 애송이에게 검을 쓰면 망신이야. 손속으로 혼을 내주게."
막 신형을 날리려다 음성을 들은 공민후가 검에서 손을 뗐다.
"알겠습니다, 방주님! 네 이놈! 오늘 너에게 하늘 높은 걸 보여주마."
"흥! 당신께서 말씀 안 하셔도 하늘은 오래전부터 높았답니다."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소천악의 말대꾸에 이미 노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공민후가 서서히 다가왔다. 그는 보법을 전개해 마치 땅을 스치듯 거리를 좁혀왔다. 소천악은 여전히 뻣뻣이 선 자세 그대로 다가오는 공민후를 바라만 보았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눈빛에 이미 약이 오를 대로 오른 공민후였다. 하지만 그도 절정을 넘보는 고수였다. 욱하는 마음을 자제하는 한편 좁히는 거리만큼 팽팽하게 긴장했다.
"으얍! 이 하룻강아지 같은 놈!"
허공으로 그 자리에서 일 장 정도 도약해서 일회전하면서 다리를 휘돌려 차며 밀려왔다. 동시에 몸을 비틀어 그 힘으로 큰 원을 그리면서 다리를 휘돌려 차왔다. 선풍각이었다. 마주치는 모든 걸 부숴버리는 각법이었다.
내심 감탄한 소천악이었다. 하지만 이미 손과 발은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향과 각도를 변화하며 수없이 밀려드는 선풍각을 때로는 보법으로 슬쩍슬쩍 피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건 손으로 툭툭 쳐 그 방향을 틀어냈다.
말로는 쉬워 보였지만 실제 격돌은 연신 타격음과 바람 가르는 소리로 요란했다. 사람들이 막 감탄사를 던지려는 순간!
소천악의 눈빛이 번쩍하더니만 섬전같이 몸이 움직이며 삼연타로 발이 움직였다. 쾌속한 발놀림에 허공에서 균형을 잃은 공민후가 미처 피하지 못하였다. 발은 그의 복부를 연달아 강타했다.
퍽! 퍽! 퍽!
가죽 북 치는 소리와 함께 복부에 망치 세 방을 맞은 기분인 공민후였다. 쏟아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의식을 잃어갔다. 쿵 소리와 함께 보기 흉하게 땅에 널브러진 공민후였다.
"누워서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당신이 먼저 보시오."
차갑게 대꾸한 소천악이 좌중을 슥 쓸어 보았다. 이미 좌중은 얼어붙었다. 구유마방에서 서열 10위권 내인 공민후 호법이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 이하의 고수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상위고수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내에 있던 그 누구도 소천악처럼 손쉽게 공민후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장이명 구유마방주는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했다. 소문보다 더 강한 고수였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귀중한 호법 하나를 살린 기분이었다.
소천악은 혈사부의 강호 경험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장이명 구유마방주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결례가 많았소이다. 선공이 와 부득이하게 반격한 점 양해 바라오이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며칠 잘 조리하면 곧 몸을 털고 일어설 것이외다."
나름대로 강호 도리에 따라 정중하게 말하는 소천악이었다. 장이명은 공 호법이 무탈하다는 데 일단 안도하였다. 얼른 답례의 포권을 한 장이명 방주가 대꾸했다.
"아니오. 강호란 힘의 법칙이 있는 곳이오. 오히려 손속에 사정을 봐주셔서 고맙소이다."
"더 이상 은원을 맺고 싶지 않소이다. 이쯤에서 저는 물러갈까 하는데 허락하실 수 있는지요?"
나름대로 장이명 구유마방주의 체면을 살려주는 말이었다. 장이명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상황에 따른 언변이 장난이 아닌 소천악이었다. 물러날 확실한 근거를 잡고 말하는 모습에 더 이상 시비는 어려웠다.
"그렇게 하시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술이라도 한잔하시겠소?"
"하하, 물론입니다. 비록 처음은 얼굴을 붉혔지만 술자리에서 풀기로 하지요. 그럼 이만 실례하겠소이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사라져 가는 소천악이었다. 구유마방의 고수들은 분분히 길을 열어줬다. 공 호법이 무사하다면 굳이 싸우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장이명 방주도 미소로 그를 보내줬다.
종남파의 고수들도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진 그를 보며 어리둥절한 채 망연히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종휘소 장로도 감탄하며 말했다.
"인중지룡이로고. 패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옆에서 말을 듣던 종취취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의 방심에 작은 파문이 일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놀라운 무공실력도 실력이려니와 그 담대함이 진하게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신의괴협의 출현으로 두 거파 간의 생사의 격전은 이미 김이 빠질 대로 빠진 상태였다. 그 누구도 다시 싸우잔 말을 선뜻 꺼내기 어려운 묘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싸움이란 열정이 있어야 하는 법! 맥이 풀린 양 세력은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두 세력은 별다른 말이 없이 더 이상의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다. 한 인물이 주고 간 파문이었다.
두 세력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다 어색한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몸을 돌리고 헤어져 갔다. 도대체 뭘 위해 싸웠는지도 아리송한 입장이었다.
돌아온 소천악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던 등해린이 물었다.
"왜 종남파의 편에서 싸우지 않았소, 공자?"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왜 종남파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오?"
"종남파는 구파일방에 들어가는 명문정파가 아니오? 당연히 그들과 힘을 합치면 강호에서 소협의 위명은 더욱 빛나게 되어 있소."
"그렇다고 구파일방 등 정파에서 나에게 뭘 해주겠소? 어차피 그들 식구가 아닌 다음에야 어디 진심으로 대해주겠소? 항상 이방인일 뿐이오. 그저 오냐오냐 추켜주는 말만 하다가 쌓인 은원에 얽혀 죽으면 '아, 뒈졌구나. 아깝다. 쓸 만한 행동대원 하나 갔네.' 이 정도일 거 아니오?"
"아니, 설마!"
궤변 같지만 현실적인 소천악의 말에 반박하기가 어려운 등해린이 말을 더듬거렸다. 바라보며 싱긋 웃던 소천악이 말을 이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오. 막말로 협사라 해서 밥이 나오나요? 떡이 나오나요? 난 그저 조용히 강호를 유람하고 싶소. 괜한 은원에 얽혀 피 보고 싶지 않소."
"그래도."
일말의 아쉬움에 다시 말하려는 등해린의 입에 못질하는 소천악의 지론이 나왔다.
"정파라고 정파인이라고 항상 옳은 일만 하는 건 아니오. 사람인 이상 어찌 욕심이 없겠소? 그때마다 정의라고 부르짖는 게 더 웃기는 일이오. 정의란 항상 바뀌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