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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62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62화

 

  "얼마 정도요?"

 

  "한 달에 적어도 은자 오백 냥은 줘야 하오."

 

  "천 냥 주겠소. 구해주시오."

 

  소천악의 말이 떨어지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던 낭인 무사들의 눈이 번뜩였다. 큰손님이었다. 오백 냥에 바로 천 냥으로 응수하는 배포가 마음에 들었다. 접수대의 노인의 눈빛도 흔들렸다.

 

  "좋소이다. 잠시만 요 앞 객잔에서 기다리시오."

 

  거래를 마친 소천악은 객잔에서 가볍게 식사와 술을 즐겼다. 마음먹은 대로 순조롭게 일은 풀려가는 기분이었다. 한 시진이 흐르자 접수대 노인과 두 명의 검을 찬 무사가 올라왔다. 무사들은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는 자세가 예사 무인 같지 않았다. 다가온 노인이 입을 열었다.

 

  "낭인 무사 중에 골라온 두 사람이오. 공자가 말한 조건을 말하자 예상외로 관심을 표한 분들이오. 우리 낭인계에서 유명한 분들이시오. 서로 인사하시오."

 

  "독검 냉철상(冷鐵相)이라 하오."

 

  "칠절도 등해린(登海隣)이라 하오."

 

  섬전 같은 안광을 빛내며 두 사람이 포권으로 인사했다. 소천악은 자리에서 일어나 같이 포권하며 말했다.

 

  "반갑소이다. 전 소천악이라 하오이다."

 

  "헉, 신의괴협!"

 

  냉철상과 등해린은 경악에 찬 소리를 자신도 모르게 질렀다. 놀라운 이름이었다. 강호출도 몇 달 만에 이미 사해에 요란한 신고식을 치른 이름이었다. 놀란 냉철상이 급히 물었다.

 

  "강호에 위명이 자자한 신의괴협이 무슨 일로 낭인 무사를 찾는지요? 혹시 큰 싸움이라도?"

 

  "하하, 아닙니다. 제가 강호초출이라 지리도 어둡고 경험도 부족하지요. 여러분 같은 낭인 무사와 함께하는 게 아무래도 좋을 듯해 내린 결정입니다."

 

  겸손을 떠는 소천악이다. 냉철상과 등해린은 내심 감탄했다. 자신의 약점을 솔직히 털어놓는 것에 신뢰가 갔다. 가만히 뒤에서 듣던 노인이 불쑥 말했다.

 

  "독검과 칠절도는 사실 우리 낭인 무사계에서 초일류고수입니다. 가히 절정을 넘나드는 고수지요. 천 냥에 걸맞는 분들입니다."

 

  "하하, 어련히 알아서 모시고 왔으리라 믿소이다. 자, 그럼 우리는 이만 가야지요. 여기 소개비로 백 냥입니다."

 

  전표 하나를 턱하니 노인에게 건네주고 두 사람과 함께 객잔을 나서는 소천악이었다. 노인은 멍하니 전표를 바라보았다. 묘한 웃음을 지은 채 혼자 중얼거렸다.

 

  "묘한 인물이군. 주의해 볼 필요가 있어."

 

  노인의 표정은 순간적으로 번뜩거리며 나가는 세 사람을 주시했다. 조금 전에 보였던 평범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차가운 안광이 소천악을 따라갔다.

 

  독검과 칠절도를 데리고 하오문에 온 소천악은 마차에 올라타며 포권했다.

 

  "자, 이제 우리는 동반자니 편하게 지냅시다. 말은 번갈아 가며 몰아주시길 바라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공자라고 불러주시오."

 

  화려하기 그지없는 마차를 보며 어리둥절한 독검이 말했다.

 

  "걱정 마시오. 마차 하나는 정말 죽이는군요. 그런데 목적지는 어디요?"

 

  "섬서성에 있는 종남파로 갈 겁니다."

 

  이미 소천악은 마차 안에 들어가 말했다. 처음에 독검이 마부석에 앉아 말을 몰아갔다. 하오문에서는 아무도 내다보지도 않았다. 조난향 하오문주의 엄명이었다. 결코 인사를 하지 말라는 지시에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모든 일을 다 짐작한 소천악이다. 피식하니 웃음을 던지며 속 좁은 여자의 질투라고 치부하고 말았다. 마차는 빠르게 하오문을 벗어나 섬서성으로 향했다.

 

 

 

  한편 중원의 한 은밀한 곳에서는 두 사람이 머리를 마주 대고 깊은 대화에 잠겨 있었다. 둘 다 복면을 한 모습이었다.

 

  "도대체 소천악이라는 놈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런 정보도 들어온 게 없나?"

 

  "네, 각주님. 아무리 조사해도 나오는 게 없습니다. 다만 과거 대막을 주름잡던 탈백검마의 유진(遺塵)을 이은 건 확실합니다. 다만 직계제자인지 아닌지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다른 권법이나 비도술을 사용하는 걸 보면 냄새가 나긴 납니다."

 

  "음, 탈백검마의 검법을 쓰는 걸 보면 정파에서 내보낸 놈은 아닌 거 같은데."

 

  윗사람으로 보이는 복면인의 말에 다른 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놈의 행적을 추적해 보면 정파 나부랭이와는 상당한 성격 차이를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보게."

 

  점점 더 호기심이 당긴다는 듯 각주란 복면인의 머리가 다가왔다.

 

  "제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그자가 행한 협행은 다 만들어진 겁니다. 즉 본심이 아니라 어떤 복선을 가지고 한 일이란 거지요. 단목세가의 일은 단목산산이란 미녀를 만나기 위한 일이었지요. 다음에 수재민을 구하고 은자를 쾌척한 일은 양소아라는 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한 수작이란 겁니다."

 

  "거참, 묘한 놈일세."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며 각주가 피식 웃자 다시 다른 복면인이 말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이번 하오문 건도 다 은자와 정보를 받기 위한 일이란 게 밝혀졌습니다."

 

  "도대체 그놈의 목적이 뭐냐?"

 

  "모든 정보를 취합해 보면 오로지 미녀사냥 하나만 나옵니다."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네. 그런 놈에게 우리 회 고수들이 세 번이나 당했단 말인가? 씹어먹을 놈!"

 

  어이없다는 듯 각주가 말하자 다른 이가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아무래도 셋 다 우연인 것 같습니다. 재수 없게 그놈 가는 길에 묘하게 우리와 얽힌 거지요."

 

  "나참! 이놈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골치 아픈 기색이 확연한 각주라는 복면인이었다. 살살 눈치를 보던 다른 복면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 생각에는 더 이상 손을 안 쓰는 게 상책 같습니다. 무공도 추측이 어려운 놈입니다. 초절정고수급인 거 같은데 괜히 더 건드렸다간 벌집 때린 꼴이 날 거 같습니다."

 

  "음,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고개를 끄덕이던 각주가 울컥 화를 내며 말을 이었다.

 

  "육시랄 놈! 아무리 생각해도 열 받네. 세 번이나 우리 회 고수들을 몇 명이나 죽인 거야, 도대체!"

 

  "죄송합니다. 제가 불민해서."

 

  쩔쩔매며 고개를 깊이 숙이는 복면인이었다. 각주는 가만히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그게 왜 자네 탓인가? 길 가다 재수 없게 똥 밟은 거지."

 

  각주의 말이 끝나자 두 사람 사이엔 한동안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곰곰이 생각하던 각주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냥 모른 척하기는 억울하니 혈살막에 청부를 넣게. 제길! 밑져야 은자 깨지는 것밖에 없잖은가?"

 

  "아, 그런 방법이! 역시 각주님입니다."

 

  안색을 펴며 복면인이 말하자 각주의 얼굴이 자부심으로 물들어갔다.

 

  "뭘 그걸 가지고. 어서 혈살막에 연통을 넣어 일 처리하게."

 

  "네, 각주님! 그럼 전 이만 혈살막주를 만나러 가겠습니다."

 

  길게 읍을 한 복면인이 뒷걸음질로 밀실을 나섰다. 고개를 끄덕임으로 인사를 대신한 각주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말하고도 왠지 켕기는 게 마음에 걸렸다. 후회감이 약간 들었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하고 마음을 접었다.

 

 

 

  얼마 후 한 교외의 장원.

 

  깊은 밀실에서 두 사람이 모여 있었다. 한 사람은 아까의 복면인이었다. 다른 이는 혈살막주 추혼비검 류운상(柳雲霜)이었다.

 

  혈살막!

 

  두려운 이름이었다. 그들이 강호에 나타난 이후 수백 명의 무림고수들이 암습으로 죽어갔다. 다른 살수집단과 달리 무림고수의 약점만을 철저히 노리는 곳이었다. 일단 그들의 표적으로 지목되면 편한 잠은 애당초 포기해야 했다. 얼마나 지독한지 화장실에서 당한 무림고수도 수십 명에 이르렀다. 똥통 속에 하루 이상 숨어 있다가 빈틈을 노려 죽이는 그들의 살수 행각은 한마디로 공포였다.

 

  수많은 살행을 저지르는 동안 단 한 번도 실패한 일이 없는 살수계의 전설이었다. 그 비밀에 쌓인 혈살막주가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순간이었다. 깊은 죽립을 써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죽립 사이로 비치는 안광이 순간순간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복면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청부하오. 대상은 신의괴협 소천악."

 

  소천악의 이름이 거론되자 무심한 듯한 혈살막주 류운상의 눈빛이 잠깐 흔들리며 바로 대답이 나왔다.

 

  "불가! 이유는 무공수위 추측불가요."

 

  가만히 혈살막주를 노려보던 복면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청부금 은자 삼십만 냥!"

 

  이번에는 류운상이 움찔거렸다. 상상을 초월한 거금이었다. 혈살막의 절정고수 청부가 통상 이만 냥인 걸 비교하면 구미가 당기는 청부금액이었다. 한참을 고심하던 류운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좋소. 청부금은?"

 

  "십만 냥 선불. 나머지는 청부 성공 후 주겠소."

 

  복면인은 전표로 십만 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앞으로 보름 이내로 강호에서 신의괴협이란 별호를 가진 놈은 없어질 것이오."

 

  "으하하하! 제발 그래 주시오."

 

  두 사람은 호쾌하게 마주 보며 웃었다. 그렇게 음모의 밤은 깊어만 갔다.

 

  이런 죽음의 계약을 모르는 소천악은 두 낭인 무사와 함께 섬서성으로 움직였다. 열 마리의 준마는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관도를 질주해 갔다. 처음 며칠간은 노숙으로 일관했다. 초호화판 마차답게 숙식시설은 훌륭했다. 마차 안의 의자를 펴면 세 명이 넉넉하게 잘 공간이 나왔다.

 

  노숙을 거듭하자 차츰 지루함을 느낀 소천악이었다. 호북성(湖北省) 무한(武漢)이 가까워져 오자 마침내 유혹의 손길을 뻗었다.

 

  "이보시오, 독검 대협. 이거 죽어라 달리기만 하다 보니 삭신이 근질거리지 않소? 무한에 잠시 들러서 한잔 마시고 다시 갑시다."

 

  혹하는 제안에 거부할 리 없는 독검이었다.

 

  "허허, 신의괴협이 풍류를 아신다더니, 좋소이다."

 

  "으하하! 역시 독검 대협이 화통한 데가 있습니다. 자자, 어서 갑시다. 명주와 기녀들과 놀아봅시다."

 

  두 사람의 대화를 마부석에서 듣던 칠절도도 빙긋 웃음을 지었다. 며칠간의 여정으로 이미 어느 정도 친숙해진 세 사람이었다. 시원시원한 소천악의 성격에 거친 두 낭인이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는 순간이었다.

 

  무한에서 제일가는 기루에 들어선 두 사람은 놀라고 말았다. 무조건 초특급을 외치는 소천악의 배포에 질려갔다. 하룻밤에 은자 삼백 냥을 부르는 총관에게 오히려 백 냥을 수고비로 던져주는 소천악이었다.

 

  냉철상과 등해린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초호화판으로 걸판지게 놀았다. 값만 들어도 기절할 만한 명주가 수도 없이 입으로 들어갔다. 얼굴이나 몸매나 환상적인 미녀들이 양옆에서 교태를 떠는데 아주 삭신이 노곤 노곤하게 늘어져만 갔다.

 

  은자를 마구 뿌리는 소천악의 호기에 모든 기녀들은 행복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다만 비파 타는 한 기녀만 이를 갈았다. 피멍이 든 손을 보며 골방에서 눈물을 글썽거려야만 했다. 그렇게 행복한 밤이 조용히 지나갔다.

 

  이튿날 기루를 나서던 두 사람은 기절하고픈 심정이었다. 새파란 애송이로 보였던 소천악이 밤을 지새운 기녀로부터 눈물의 이별식을 치르고 있었다.

 

  "가가! 이제 가면 언제 또 오시려나요?"

 

  "험! 내가 일단 중원을 돌고 시간나면 오마.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아라. 이별이 있어야 다시 만남의 기쁨도 있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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