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56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56화
"눈치챘다. 쳐라!"
놀란 두 명의 살수들이 급히 비수를 던졌다. 새파란 광채가 길게 꼬리를 물고 소천악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번뜩이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비수는 한 자 앞으로 다가섰다. 막 소천악의 심장을 관통하려는 순간이었다. 그의 신형이 스르륵 옆으로 이동했다. 마음이 움직이면 몸이 따르는 보법이었다. 비수는 허공을 가르며 벽에 박혔다. 소천악은 손을 슬쩍 휘저으며 바람같이 신형을 날렸다.
"이 벌레 같은 살수님들! 남들 다 자는데 나타나서 잠을 깨우시면 결코 좋은 소리 안 나오지요!"
소리치며 다가선 소천악의 발은 어느새 수십 개로 불어났다. 환영각이었다. 가공할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드는 각법은 마치 수십 개의 발이 일시에 덮치는 환상을 보여줬다.
퍽! 퍽!
두 번의 격타음이 들렸다. 한 명은 기문혈(氣門穴)을 격타당했다. 기문혈을 격타당한 살수는 바로 기도가 폐쇄되어 즉사하고 말았다. 다른 이는 기해혈을 격타당했다. 영문을 알기 위해 일부러 내력을 줄여 목숨을 살려둔 터였다.
"커억!"
비명과 함께 살아남은 한 명의 살수가 방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잠시 동안 기다리자 살수가 고통에서 벗어나 독기 어린 시선을 던졌다. 소천악은 바로 무시하며 냉소를 쳤다.
"이 살수님들! 감히 나를 암살하려 해요? 어디 귀하신 살수님들도 한번 당해보시지요."
소천악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살수의 아혈을 봉쇄한 채 분근착골을 시전했다. 이자용 등을 상대로 할 때와는 그 강도가 천지 차이였다. 분근착골은 혈을 짚은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 고문수법이다. 살수는 비명도 안 나오는 극악의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발악했다.
바라보는 소천악의 눈길에는 한 줌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적으로 간주한 자에 대한 자비란 있을 수 없는 성격이었다. 일각 동안 지속된 고통이 살수를 초죽음으로 만들었다. 다시 혈을 푼 소천악이 으스스한 음성을 토해냈다.
"아직 입을 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넘기셔야 할 과정이 많이 남았으니 좀더 즐겨보시고 다시 이야기를 해봅시다."
이후 차마 인간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고문이 여러 차례 자행되었다. 살수는 두려움을 넘어 정신이 황폐해져만 갔다. 이런 극악한 고문이 있다고는 그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철저한 훈련이 지켜낸 정신력은 이미 오간 데 없이 사라져만 갔다.
"딱 두 가지만 묻겠소이다. 거부는 바로 다시 시작이란 점을 명심하세요. 이번엔 하루 종일 즐기게 해주지요."
잠시 말을 끊고 기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말을 이었다.
"살수님들이 소속된 살문의 이름, 그리고 청부자를 대시오."
"무정살막입니다. 청부자는 이자용입니다."
이미 인간 한계를 넘긴 고문에 정신이 나간 살수는 아무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사실을 토설했다.
"좋아! 당신은 역시 살 가치가 있군요. 잠시만 기다리시오."
소천악은 다시 혈을 찍고 이자용 형제를 부르러 갔다. 잠시 후 소천악은 형제와 함께 돌아왔다. 잠결에 끌려온 이자용은 누워 있는 고깃덩어리를 보고 바로 사태를 직감했다. 얼굴이 새파래진 채 공포감이 밀려왔다.
"자용 님! 공자께서 감히 사부를 죽이시려 하다니.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시지요."
음산한 소천악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자용은 절로 마음이 다급해졌다.
"사부님, 제가……."
"한마디만 하시지요. 슬프게도 이번 일을 귀한 제자님이 시킨 겁니까? 거짓말은 죽음이란 걸 잊지 말길 바라오. 단 유의할 점은 이미 이 사부가 사건의 전모를 모두 안다는 슬픈 현실을 명심하면서 대답하시오."
"……."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처지인 이자용이다. 바로 자신의 목이 날아갈 것 같은 공포감은 실로 심장을 금방이라도 멈출 듯이 옥조였다.
"거짓은 바로 죽음! 묵비권도 죽음! 어서 말하시지요. 이 사부의 성정이 급한 건 제자님이 더 잘 아실 거라 생각하오만."
도무지 피할 길을 안 주는 소천악의 말에 이자용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사부님, 용서해 주십시오. 지금이라면 다시는 이런 짓을 안 합니다."
"당연히 안 하겠지요. 이런 꼴을 당하고도 또 하면 제자님이 사람 머리겠소? 닭대가리지요."
비아냥거리는 소천악의 말에 이자용은 눈앞이 깜깜해져 왔다. 사부는 절대 사정 봐줄 인물이 아니다. 이가장의 이름도 그의 행보를 막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무릎을 꿇고 통사정에 들어갔다.
"사부님!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사부님이 행하는 모든 걸 따르겠습니다. 제발!"
애절하게 호소하는 이자용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렁주렁 떨어졌다.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바라보던 소천악의 시선이 이재룡에게 향했다.
"저기 작은 제자님은 뭘 잘했다고 뻣뻣이 서 계시는 거지요?"
날카로운 추궁에 놀란 이재룡이 서둘러 바닥에 엎어졌다. 그도 이자용과 별반 다름없이 행동한 건 당연했다. 형제를 죽일 듯 쏘아보던 소천악이 고개를 돌려 살수에게 말했다.
"살수님은 지금 바로 무정살막주를 데리고 다시 오시오. 같이 오면 살려주고 만약 안 돌아오면 무정살막은 강호에서 지워질 거란 걸 명심하시오."
소천악은 지풍을 튕겨 살수의 혈을 풀어주었다. 어이없는 말에 잠시 당황하던 살수가 냉정을 찾고 말했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오?"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오늘이 지나면 알 일이지요. 단 올 때는 손해배상금을 가지고 와야 할 겁니다."
살수는 아무 말 없이 소천악을 바라보다 안개처럼 신형을 날려 창문으로 사라졌다. 이제 자기들만 남자 더욱 불안감이 커진 형제에게 소천악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에 청부했나요?"
잠시 머뭇거리던 이자용이 체념 어린 말을 꺼냈다.
"사만 냥입니다."
돌아선 소천악의 눈이 번쩍 빛났다. 마치 먹이를 앞에 둔 늑대 눈과 흡사했다.
"많이도 줬네. 거참, 내 목이 비싸기는 한 모양이네요. 그럼 나머지 돈은 언제 주기로 했소?"
"일이 처리되면 바로 주기로 했습니다."
"돈은 있는 모양이네요. 이리 내놓으시지요. 어찌됐든 일이 처리된 건 사실이니깐요."
이자용은 지체 없이 방에 다녀와 가죽으로 된 전낭을 건네주었다. 받아 열어보니 묘안석이 수십 개나 보였다. 크기가 새끼손톱만 한 묘안석도 여러 개 눈에 띄었다.
"합치면 육만 냥 가까이 될 겁니다. 원래 잔금은 삼만 냥인데 나머지는 사부님이 알아서 쓰십시오."
이자용은 살수와의 대화로 소천악의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했다. 오로지 살기 위해 비위를 맞추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눈물겨웠다. 실수라고 하긴 너무 큰 실수였다. 감히 신의괴협을 암살하려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음, 제자님들이 잘못은 했다만 반성하는 기미가 역력하시구려. 좋아, 이번만은 내 용서해 주지요. 단 조건이 있답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기분인 이자용은 앞뒤 가릴 겨를이 없었다.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이 제자 충심으로 사부님의 거룩한 조건을 받아들일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뭐, 별거는 아니고 나중에 이 사부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보태주도록 약조를 해주신다면야……."
"물론입니다. 약속드리지요."
"난 원래 입으로 하는 약속은 별로거든요. 확실하게 문서를 만들어 손으로 수결해 주는 바람직한 방법을 좋아합니다만."
이자용은 소천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른 지필묵을 준비했다. 정성껏 글을 쓰고 먹을 잔뜩 묻혀 수결까지 마쳤다.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던 소천악은 만족스런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성의를 표시하시니 기분이 좋구려. 됐소이다. 이제 가서 푹 주무시구려."
"네, 사부님. 은혜가 하늘과 같사옵니다. 그럼 불민한 제자들이 물러가겠습니다."
길게 읍을 하자마자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는 형제들이다. 가만히 바라보던 소천악이 낮게 입을 열었다.
"오셨으면 어서 들어오시구려.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오세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창으로 한 인영이 소리 없이 들어왔다.
"무정살막의 막주 손두호(孫頭湖)라고 하오. 오늘 저지른 실수를 사과드리러 왔소이다."
손두호는 이미 소천악의 성격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알고 있어 순순히 찾아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당당하게 떠드나요? 뭐 이런 분이 다 있습니까? 죽이려다 실패한 분이 뭐 잘했다고 고개를 뻣뻣이 들고 지랄입니까?"
바람처럼 소천악의 신형이 손두호를 덮쳐갔다. 흠칫한 그가 얼른 보법을 밟으며 옆으로 비켜섰다. 이미 그의 손은 검집을 잡아갔다. 소천악의 손이 부챗살처럼 확 퍼지며 시야를 혼란스럽게 만들자 다급히 신형을 솟구치던 손두호는 복부에 망치로 두들겨 맞는 듯한 격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내공으로 막아도 소용없는 격공장(隔空掌)이었다. 말 그대로 허공을 격하여 폭발적인 위력을 발하는 가공할 장법(掌法)이었다. 도달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위력이나 형체를 알아채기가 극히 힘들지만, 일단 그 위치에 도달하면 방어할 방법도 없이 기가 상대에게 강한 타격을 주었다. 아무렇지 않게 격공장을 펼친 소천악의 신위에 손두호 막주도 질려갔다.
"싹수없는 막주님! 잘못하셨다고 빌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어디다 목을 뻣뻣이 들고 지랄이십니까!"
"으윽!"
발길질이 수도 없이 손두호의 몸에 내려박혔다. 손발이 닿을 때마다 살이 으깨지는 고통이 밀려왔다. 비명조차 지를 겨를이 없는 연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두호는 문어처럼 흐느적거렸다. 분이 풀릴 때까지 구타한 소천악이 입을 열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손해배상금은 가져왔나요?"
격통을 무릅쓰고 억지로 손을 놀려 전표를 꺼냈다. 잠시만 지체하면 다시 구타가 재연될 조짐이 바로 느껴졌다.
"여기 사만 냥입니다."
바로 주는 금액은 소천악이 받으려던 액수와 일치했다. 소천악은 한결 풀어진 목소리로 약간은 다정하게 말했다.
"좋아요. 이제야 이야기가 되는군요. 이것은 기본이고 다른 하나가 더 있소이다. 나중에 내가 부르면 언제 어디서라도 한 번 일을 처리한다는 게 마지막 조건이오. 어때, 할 생각이 있소?"
챙길 것 다 챙긴 소천악의 말투는 어느새 부드럽게 변했다. 그 점을 눈치챈 손두호 막주였다.
"물론 해야지요. 염려 마십시오."
흔쾌히 대답하는 손두호 살막주였다. 그는 진저리쳐지도록 치가 떨렸다. 이런 악종이었는지 알았다면 죽어도 청부를 받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정보에 조금 더 투자할 계획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맴돌았다.
"원래 믿어야 하는데 가슴이 거부하네요. 자, 이거 먹으시오. 무슨 약인지 물으면 바로 사망이오. 잔소리 말고 먹으시오."
스산하게 말하는 소천악의 말에 아무 소리 못 하고 검은 환약을 꿀꺽 삼켰다. 완전히 목으로 넘어가는 걸 본 소천악이 다시 흰 환약을 주었다.
"이거 일 년치 해약이오. 나중에 딴소리하면 그 결과는 알아서 생각해 보고 행동하시오."
"네, 그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