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52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52화
"좀 웃기지 마시오. 내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보이시오? 까짓것 소공자님들이 죽으시면 그냥 떠나면 그만이지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말에 두 형제는 소름이 돋았다. 절대 빈말이 아닌 걸 눈빛으로 느끼고야 말았다. 저 사부란 자는 절대 자기가 한 말을 부인할 부류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이제야 희미하게라도 알 것 같았다. 절로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 자리에서 자기들이 이가장 소장주인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피눈물을 흘리며 항복을 선언하는 대공자 이자용이다.
"졌소. 제발 혈을 풀어주시오."
가만히 말을 들으며 쳐다보던 소천악이 싸늘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직 멀었소. 말투에 반항심이 가득해 보이오."
"아니 무슨 반항심이 있다고?"
밀려오는 고통을 참고 억지로 말하는 이자용은 미칠 지경이었다. 억울한 듯한 그의 말에 소천악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어린 분들이 이젠 잔머리도 굴리시네. 안 되겠소. 뭔가 부족한 모양이신데 하나 더 선보여주지요."
말과 함께 소천악은 두 형제의 소요혈을 찍었다. 찍히면 바로 웃음이 터져나오는 혈이다. 그 혈을 풀어주지 않으면 웃다가 죽는 무서운 점혈법이었다.
"으하하하하!"
두 형제는 갑자기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한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근육과 뼈는 제각각으로 놀아 고통에 죽어나는데 웃음이 나오니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웃음은 점점 심해지고 이젠 곧 숨이 넘어갈 것같이 호흡이 어려워져 갔다. 참혹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바라본 소천악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자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두 형제를 엄습했다. 이자용이 힘겹게 입을 벌려 말했다.
"살려주십쇼.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소천악은 가만히 돌아보며 다시 말했다.
"공자님들이 무슨 잘못을 했소이까?"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웃기는 분들이시네요. 자신들이 잘못한 것도 모르시면서 무엇을 잘못하셨다고 떠드시나? 아직 멀었소이다. 조금 더 구른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소천악은 차갑게 말하고 주섬주섬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탁자에 턱 발을 올리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보고 있었다. 두 형제는 돌아버릴 것 같았다. 저 작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차가운 피를 가진 냉혈한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느낀 형제는 두려움을 넘어 이제는 지긋지긋한 마음까지 들었다.
비명도 지를 힘도 없고 웃는 것도 이제는 힘이 들어 컥컥 거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는 여전히 그들을 지치게 하고 있었다. 도저히 힘이 들어 막 생을 포기하려는 순간 소천악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둘의 혈을 번개같이 짚어 분근착골 수법을 먼저 풀어주고 소요혈을 짚어 웃음도 없애주었다. 형제는 고통은 사라졌지만 아무런 힘이 없어 맥을 놓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소천악은 그들을 보고 태연히 다시 말했다.
"똑바로 못 앉소이까? 셋 셀 동안 앉지 못하시면 다시 시작하는 걸로 하겠소. 하나, 둘."
미처 셋을 세기 전에 형제는 죽을힘을 다해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의자에 앉은 다리는 연신 후들거리며 떨렸고 몸도 사시나무처럼 떨려 왔다. 그런 그들에게 소천악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정신을 차리셨나요?"
두 형제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정신을 차리기는 무엇을 차리겠는가? 자신들을 참혹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소천악을 당장에라도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숨겨야 했다.
"물론입니다. 저 사부님을 존경하고 따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소천악이 피식하고 웃었다.
"아직 멀었네요. 공자님들! 어디서 다시 잔머리를 굴리고 있어요? 또다시 시작해야겠소이다."
"무슨 말씀을요?"
기겁을 한 이자용이 부인하자 소천악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공자님들 마음을 짚어볼까요? 공자님들은 지금 이 생각을 하고 있지요? 인편을 보내 무당파에 사람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지요. 공자님들이 억울한 일을 당한 것처럼 서찰을 꾸며 무당파의 고수들을 데려올 꿍심이지요? 그들로 하여금 나를 제압할 생각이었지요?"
형제는 가슴이 뜨끔했다. 사실과 똑같았다. 어떻게 자신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당연한 이야기지요. 그리고 나를 제압하면 어떻게 하고 싶소이까? 똑같이 고통을 당하게 하고 아예 안 풀어줄 속셈이었지요? 그대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요?"
"절대 아닙니다."
치 떨리는 고문수법을 다시 당할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진실을 악착같이 숨기게 만들었다.
"절대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이제부터 다시 거짓말하는 공자님은 재미가 영 없으실 겁니다. 자, 말해 보시구려. 내 말이 틀렸소이까?"
"......"
형제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자니 다시 그 고통을 당할 것이 너무도 두려웠다.
"정신 똑바로 차리시지요. 이 귀하신 공자님들! 두 분 마음은 내가 훤히 꿰뚫고 있소이다."
소천악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여지가 없었다.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한다면 그게 꼭 형제의 생각과 일치했다. 어쩌면 형제와 자기는 똑같은 종류의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속마음을 숨긴 채로 천악은 형제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공자님들에게 내가 글공부를 시킬까 하는데 따라오겠소이까?"
"물론입니다. 따라가겠습니다."
하지만 두 형제의 마음은 전혀 달랐다. 이 자리만 빠져나간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천악이라는 자를 핏덩어리로 만들 속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천악은 피식하고 웃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검은 환약 2개를 꺼내 형제의 손에 던져주었다.
"자, 드시지요."
"아니! 이게 무슨 약인지?"
"여러 소리 하지 말고 드시지요. 셋 셀 동안 안 드시면 또 시작입니다."
형제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환약을 입에 꿀꺽 넣었다.
"혓바닥에 숨기신 거 못 삼키나요? 어디서 또 잔머리를 굴리고 난리시지요?"
형제의 얼굴이 참담하게 찌그러졌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야 저 사부라는 작자의 손에서 벗어날 길은 도저히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환약을 마치 독약 마시는 기분으로 목구멍으로 삼켰다. 목울대가 출렁이는 걸 보고 소천악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지금 드신 환약이 무엇인지 궁금하지요?"
"예, 그렇습니다만."
"그거 별거 아닙니다. 한 달에 한 번씩 해약을 먹지 않으면 그 결과는 안 봐도 뻔하지요. 바로 관 속에 들어가지요."
"네? 그럼 우리가 먹은 게 독약입니까?"
경악한 두 형제가 반문했다. 소천악은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보면 됩니다. 그 약을 해독할 사람은 나 이외에는 세상에 아무도 없지요."
너무 황당한 이자용이 급히 물었다. 그의 기억에 이렇게 악랄한 수법을 쓰는 자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도대체 사부는 어떤 사람입니까?"
"내 실체에 대해 알면 공자님들은 기절합니다. 모르는 게 약이지요. 단 한 마디만 해주지요. 무당파에서 고수들을 불러오고 싶으시면 불러오시오. 내 그것은 허락하지요."
"아니, 그게 무슨?"
자신만만하게 소천악이 말하자 오히려 두 형제가 주춤거렸다. 소천악은 눈매를 좁히며 다시 말했다.
"단 그 결과에 책임져야 할 겁니다. 설사 무당파의 장문인이 온다고 해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지요. 물론 그날 이후에 공자님들은 관 속에서 새벽 해를 보게 될 겁니다. 분명히 약속하지요. 그 순간 공자님들의 목숨은 지워질 겁니다. 이간희 장주님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노린 자는 난 절대 용서한 적이 없지요."
형제는 소천악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소천악의 말을 듣다 보니 소문의 한 인물의 언행과 너무나 흡사한 점을 느꼈다. 자세히 바라보니 들었던 용모도 비슷해 보였다.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대공자인 이자용이었다. 그는 얼굴이 새파래진 채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신의괴협 소천악 소협이 아니십니까?"
소천악은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그를 쳐다보았다. 침묵은 긍정이었다. 대공자 이자용은 자신의 생각이 맞자 새파랗게 질린 채로 굳어갔다.
소천악!
실로 무서운 이름이었다. 혼자의 힘으로 일개 방을 쓸어버린 인물이었다. 단목세가에서 보여준 소문을 생각하면 그 놀라운 무공실력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사부의 정체를 파악하자 아득한 절망감이 들었다. 자신들이 뭣도 모르고 호랑이 코털을 뽑은 꼴이 된 걸 알았다. 동생 이재룡도 얼굴이 사색이 다 되어갔다.
신의괴협이라니!
광동성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명성을 가진 인물이다. 검사권생(검을 잡으면 죽고 주먹은 산다.)의 일화를 만들어낸 당금무림의 떠오르는 신진고수였다. 말이 신진고수였지 이미 기라성 같은 강호 절정고수 대열에 합류한 자였다. 누가 저 나이에 흑마전의 전주를 권으로 격퇴할 수 있단 말인가!
소천악은 두 놈이 경악하는 걸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자기를 무서워한다는데 굳이 겸양할 위인이 아니다.
"이거저거 귀찮으니 딱 한 마디로 하지요."
살벌하게 말하는 소천악의 말에 이자용 형제는 다급히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사부님!"
어느새 말투조차 바뀌어 있었다. 검을 들고 덤빈 자를 살려준 일이 없는 신의괴협이다. 자신들의 주무기가 검인 게 평생 처음 후회스런 형제들이다.
"뼈가 매일 하나씩 부러지면서 배울래요? 아니면 순순히 공부할래요?"
살벌한 말에 형제는 이구동성으로 날렵하게 대답했다.
"헉! 물론 열심히 공부해야지요."
"지금 그 말 책임지기 바랍니다. 나도 제자 분의 뼈를 분지르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는 이 진심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이 자상한 사부의 마음을 잘 헤아리기 바라겠소이다."
"제자들, 사부님의 마음에 감복합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두 형제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소천악이 다짐하듯 말했다.
"뭐, 최선을 다하고 안 하고는 공자님들 마음이고 난 결과로서 평가할 뿐이지요."
"믿어주십시오."
"좋소이다! 그럼 믿고 시작하지요. 일단 오늘은 아주 기본적인 천자문을 다 외우는 걸로 시작합니다."
"헥! 천자문을 다 외우라고요?"
놀라는 두 형제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창가에 다가서며 말하는 소천악이다.
"시간은 오늘 밤 자정! 한 자 틀리면 열 대씩입니다. 알아서 하시지요. 난 잠시 나갔다 오지요."
소천악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섰다. 이 좋은 날 방구석에 처박힐 이유가 하나도 없다. 정원을 걸으며 나무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번쩍 안광이 빛을 발하며 한 나무에 시선이 집중됐다.
"오호, 여기서 철심목을 볼 줄이야?"
그는 누구보다 철심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혈사부의 구타용 나무가 바로 철심목이다. 운남지방에서 자라는 철심목은 그 단단함이 무쇠에 결코 뒤지지 않는 희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