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86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86화
이천 명의 호위병사는 두 개의 절충부로 나뉘어 단(團)여(旅)대(隊)화(火)의 구성으로 되었다. 절충도위 밑으로 교위(校尉)여수(旅帥)대정(隊正)화장(火長)이 각각 통솔하게 하였다.
교위 5명, 여수 10명, 대정 20명, 화장 100명으로 체계가 이루어졌고 화 다섯을 대로 만들고 대 둘을 여라 하였으며 여 둘을 단이라 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은 그 위압적인 기세에 눌려 고개를 숙이며 전송했다. 건성제의 작은 보복이었다. 칙령을 황도에 아직 내리지 않아 이 병사들이 무슨 목적으로 황도를 나서는지를 대다수의 백성들이 아직 모르는 처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천악은 책사 다섯 명과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천천히 장안을 벗어나 중원횡단에 나섰다.
건성제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드디어 자신의 뜻대로 소천악을 제거할 기회를 찾은 그가 소홀하게 움직일 리가 없었다.
"좌밀위!"
조용한 그의 음성이 들리자 천장에서 스르르 안개처럼 한 사람이 내려와 부복하며 말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좌밀위 채군걸(寀君傑),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그대는 지금 바로 무당파 장로인 진여해 진인을 찾아가 이 서찰을 전하라. 이는 짐의 뜻이니 한 치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고 명하라."
살기 그득한 건성제의 말에 아무런 물음 없이 바로 대답하는 채군걸이다.
"존명!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머리를 방바닥에 꿍 하니 박은 좌밀위는 바로 몸을 날려 떠나갔다.
"우밀위, 나와라!"
건성제의 말에 또 한 명이 소리 없이 나타나 부복했다.
"우밀위는 세작을 동원해 천축로의 강대문파들을 통해 소천악을 죽이도록 청부하라. 단 천축행을 마치고 중원에 가까이 왔을 때 죽이라 하라."
"존명!"
우밀위도 힘차게 대답하곤 사라져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건성제의 입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감히 짐을 능멸한 대가를 죽음으로 갚게 하리라. 뿌드득!"
툭하면 이를 갈 정도로 건성제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다.
소천악도 대장군과의 밀담과 하오문의 정보망을 통해 건성제의 내심을 이미 짐작했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그렇다고 건성제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순순히 목을 내놓을 그는 결코 아니다.
말을 타고 가면서도 그의 머리는 쉬지 않고 회전하며 그 나름대로 대비책을 세우느라 내심 분주했다. 물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화였지만 혈사부의 경험록을 바탕으로 계획을 차곡차곡 세워나갔다.
속 모르는 책사들과 혈살막 살수들은 황제의 명에 따라 천축으로 간다는 긍지와 자부심에 어깨가 자신도 모르게 으쓱거렸다. 바라보던 소천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끙끙거렸다.
중원을 벗어나기는 말을 타고도 두 달간의 강행군이었다. 하지만 도착하는 곳마다 금위대 대주의 행렬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는 지방관리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접대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혹시나 금위대 대주의 눈에 들어 황도나 중앙지역으로 발탁되는 행운을 얻을 수 있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에서 나온 일이다.
소천악은 그들의 접대를 충분히 즐기면서 천축으로 향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전서구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만 소천악에게 쏜살같이 내려와 손등에 앉았다. 가만히 다리에 묶인 서찰을 꺼내 열어본 후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바라보던 종 막주가 의아한 듯 물었다.
"무슨 내용입니까?"
"하하! 온 대인이 이끄는 상단이 오고 있답니다. 사상 유례없는 대형상단이 만들어져 흑마전 고수의 철통같은 보호 아래 이제 곧 도착한다는 서신입니다."
"오, 드디어 오는 겁니까?"
"그렇소이다. 황궁에서 보낸 상단보다 더 크게 오라는 말을 했는데 과연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외다."
"으하하! 이거 잘하면 재주는 곰이 부리고 우리가 실속을 챙길 거 같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흥! 감히 나를 부리고 죽이려 한다는데 어찌!"
소천악의 얼굴은 살얼음이 스륵 내린 차디찬 얼굴로 변해갔다. 가만히 눈치를 살피던 종 막주가 넌지시 귀띔했다.
"금위대 대주! 이제 곧 천축 지역입니다. 여기서 백여 리만 가면 천축에 가는 정파 무림인들이 기다리는 곳입니다."
종천리 막주의 말에 소천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미지의 땅 안 천축으로 간다는 걸 생각하니 약간의 두려움과 호기심이 공존해 가슴이 설레었다.
"수고했소, 막주! 이제 우리는 천축으로 가는 관문에 온 것이오. 기왕 가는 거 화끈하게 장부의 기개를 보여줍시다."
"물론입니다. 가는 길에 덤비는 놈들에게 혈살막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지요. 흐흐!"
음산한 웃음을 짓는 막주를 보며 소천악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명심에 들뜬 자에게 충고란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종 막주님! 심자앙 수석책사를 불러주시겠소?"
"그러지요, 금위대 대주."
금위대 대주란 호칭에 힘을 주어 말하는 종 막주를 보며 어이없는 소천악을 뒤로하고 냉큼 사라졌다.
잠시 후 수석책사 심자앙(沈玆仰)과 밀담을 나누는 소천악이다.
"수석책사! 이제 천축으로 가는 길이 내일이면 보일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지요. 전 금위대 대주지만 휘하에 병력이라곤 오합지졸인 이천 명이 전부입니다. 이 병사 수를 가지고 최선봉에 서서 사신단과 장사치를 보호하며 적과 싸워야 합니다. 사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황제 폐하의 칙령이니 어기면 바로 역적이 되겠지요."
"흠!"
약간은 고민스런 표정의 심자앙을 바라보며 소천악은 속 시원하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내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사실 황제와 난 별로 좋은 사이가 아니오. 어쩌면 지금쯤 황제란 작자가 내 목을 노리고 계략을 꾸밀지도 모르겠소이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천축으로 보내놓고 죽이려 하다니요?"
놀란 심자앙의 말에 얼굴을 굳히며 진솔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천악이다.
"그게 사실은……."
소천악은 숨김없이 건성제와 얽힌 비화를 기억나는 대로 전해주었다. 가만히 듣던 심자앙이 점점 경청하더니만 마침내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니, 그런 내막이!"
안색이 살짝 변하며 고민에 빠지는 심자앙이다. 이야기를 들으니 이번 천축행이 잘된다손 치더라도 벼슬을 얻을 길은 막연했다. 순간 답답했지만 이미 소천악이 가진 힘을 어느 정도 감지한 그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책사란 일은 고리타분한 황궁보다는 어쩌면 강호무림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잘 몰랐던 내막을 듣고 나니 그의 머리는 모든 상황을 유추 해석하는 순발력을 보였다.
"책사!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아무래도 책사의 탁월한 병법이 있어야 하겠소."
"어려운 일입니다. 자고로 병법에 이르길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 하였지요.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닥쳐올 적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게다가 병사 수도 얼마 안 되니 힘든 일이군요."
난처한 듯이 대답하는 심자앙을 보며 소천악이 밀어붙였다.
"그걸 아니까 책사에게 의논하는 것이 아니오. 무슨 좋은 수가 없겠소?"
"난감한 지시군요. 하지만 저는 명색이 책사이니 당연히 금위대 대주의 말에 따라야 하겠지요. 나머지 책사들과 의논하여 조만간 방책을 일러드리지요."
"고맙소이다. 이 일이 잘되면 내 꼭 대장군에게 책사의 천거를 추천하겠소."
"후후! 이야기를 들으니 가봐야 찬밥이네요. 차라리 대주님을 따르는 게 훨씬 매력적인 일이 될 거 같소이다."
"흠! 아직까지 그런 생각은 품어본 적이 없소이다."
엉뚱하게 불꽃이 자신에게 튀자 당혹감에 얼른 부인하는 소천악이다. 바라보던 심자앙이 미소와 더불어 회심의 일타를 날렸다.
"인생이 어디 자기 마음대로 되는 건 줄 아십니까?"
"하긴요. 장래의 일을 그 누가 알겠소이까? 하나 아직까지는 생각이 없소이다."
심자앙의 눈이 반짝이며 총기를 발했다. 아직이라는 말은 장래의 일을 모른다는 말이다. 드디어 자신이 꼭 듣고 싶었던 말이 소천악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내심 쾌재를 부르며 즐거워하는 기색이 확연했다.
심자앙이 물러가자 소천악은 내심 치밀어 오르는 울화통을 누르기가 힘들 지경이다. 차라리 앞에서 죽인다고 했으면 이리 약오르지는 않았다. 앞에서 달래고 뒤에서 칼을 들이대는 건성제의 계략에 치가 떨려왔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밤새도록 건성제를 욕하며 지새운 밤이었다.
제3-4장 위기와 타개
이튿날 낮이 되자 마침내 소천악이 이끄는 거대한 무리는 노숙용 천막으로 뒤덮인 정파 무림인 집결지로 들어섰다. 수백 명의 일류무사가 주둔하는 곳답게 무사들의 기세는 칼을 거꾸로 세운 듯 살벌한 예기가 넘실거렸다.
말없이 들어서는 소천악을 보며 경비무사가 신분을 확인하고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하다못해 경비무사마저도 일류고수의 위세가 바로 뿜어져 나왔다.
"금위대 대주님을 뵈옵니다."
"수고하네요. 진여해 장로님은 어디 있소이까?"
"금위대 대주님, 말씀 낮추십시오. 전 일개 무사에 불과합니다."
경비무사의 겸양에 소천악이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거, 무슨 소리요? 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소이다."
부드럽게 말하는 소천악을 보며 무사는 감개무량한 얼굴로 변해갔다. 장군이 그것도 보통 장군도 아닌 금위대 대주가 자기에게 존댓말을 하리라곤 꿈에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그였다.
더구나 일반 군 출신도 아닌 강호에 위명이 자자한 신의괴협이 이리 겸손하게 나오자 인간적으로 존경심마저 들었다. 당연히 그의 말투는 공경이 가득 담겨져 나왔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소."
무사를 따라간 곳은 유난히 화려한 군막이다. 몇백 명이 안에 들어가도 충분할 만큼 큰 군막 앞에서는 백여 명의 정예무사들이 살벌한 눈빛을 번뜩이며 서 있었다. 무사가 주춤거리며 다가가 소천악의 신분을 밝히자 그들은 별 미동 없이 바로 소리쳤다.
"장로님! 지금 황도에서 소천악 금위대 대주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아무도 소천악에게 군례도 올리지 않은 채 묵묵히 검에 손을 대고 서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무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흠칫하며 얼른 사라져갔다. 고위층의 암투를 보아온 그로서는 당연한 행동이다.
소천악은 별다르게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최소한 이십대 후반의 무사들에게 인사를 받는다는 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다.
얼마 후 천막 안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금위대 대주를 모시거라."
"네, 장로님."
바로 보이지도 않는 장로를 향해 읍을 올리며 소천악에게 말했다.
"금위대 대주님! 어서 드시지요."
"알겠소."
별로 기분이 안 좋아진 소천악이 짧게 대답하곤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에 수많은 무사들이 모여 들어서는 소천악을 예리하게 쏘아보았다. 명목상이지만 자신들을 지휘할 권한을 가진 금위대 대주가 탐탁할 리가 없는 무인들의 눈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