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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85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85화

 

  "이이제이라뇨?"

 

  "잘 들어보시지요. 만약 정파의 고수만이 천축길에 나선다면 당연히 사도나 마도에서 눈꼴시다는 표정을 지을 게 분명합니다. 게다가 이번에 정파가 나선 건 겉으로는 명분이지만 속으로는 교역을 통한 자금 확보가 제일 큰 이유일 겁니다."

 

  심자앙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소천악이 말했다.

 

  "아마 그럴 겁니다. 안 그러면 콧대 높은 정파에서 이리 흔쾌하게 천축길에 자파의 알짜배기 고수를 보낼 리가 없지요."

 

  "그러니 사마도의 기둥인 사존맹이나 집마부에 사람을 보내 이런 내막에 대해 넌지시 말하고 참가를 권유하는 겁니다. 아 은자 벌어주겠다는데 거부할 리가 없습니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정파나 황궁에서 사마도를 천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영!"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란 판단에 눈살을 찌푸리는 소천악이다. 거절이란 말이 나오기 전에 얼른 다음 말을 잇는 심자앙의 눈빛은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암암리에 따라붙는 걸로 해서 일단 중원을 벗어나면 떳떳하게 행렬에 들어오면 됩니다. 중원 땅도 아닌데 거기서 따질 정파수뇌부나 황궁인사는 없을 테니까요. 설령 시비를 걸려 해도 충돌이 두려워 피할 건 분명합니다."

 

  "오호!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정파의 나부랭이들도 화를 내려 해도 싸움은 꺼려할 테니까요."

 

  무릅을 탁 치며 동의하는 소천악을 보며 웃음을 짓던 심자앙이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어서 사존맹과 집마부에 사람을 보내시지요."

 

  무릅을 탁 치며 환성을 지르는 소천악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감추진 않은 심자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우선 명색이 금위대 대주인 소천악 공께서 서찰을 적어주셔야 합니다."

 

  "알겠소이다. 대신 서찰을 적어주세요. 인장은 여기 있으니 찍어서 신뢰가 가게 해주시지요. 후후! 재미있겠소이다. 중원을 떠난 곳에서 정사파의 대립이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재미있는 일을 발견한 듯한 소천악이다. 그에게 다시 다른 문제를 꺼내는 심자앙은 조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병사들 문제인데요. 황상이 윤허한 병사들이라면 당연히 데려가야 합니다."

 

  "그게 골치요. 오합지졸이라 적이 오면 "

 

  걸음아, 나 살려라

 

  " 도망갈 게 뻔한데 걱정입니다."

 

  또 다른 난제에 산 넘자마자 또 산이라는 기분을 지우기 힘든 소천악이다. 노련한 책사인 심자앙이 그런 그를 살살 달랬다.

 

  "그 문제도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저희가 알기론 무림에 암기를 전문으로 하는 세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있지요. 사천당가가 대표적인데 듣자하니 아주 폐쇄적이라 외부인과의 거래는 없답니다."

 

  하오문과의 접촉으로 강호에 대한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춘 소천악이었다. 말을 들은 심자앙이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렇게 위력 있는 암기라면 좋지만 일단은 위력이 떨어지더라도 대량으로 줄 만한 곳이 더 적당합니다. 제가 알기론 사파의 비도문 같은 곳의 암기통이면 적당할 듯합니다. 그쪽에 은자를 준다 하고 암기통을 받으셔서 병사들을 무장시켜야 합니다."

 

  "음, 그런 수가!"

 

  감탄하는 소천악의 눈은 새삼스레 심자앙 수석책사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책사의 위치란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공보다 더 귀한 게 머리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바뀌며 좀더 잘해줘야 겠다는 결심이 섰다.

 

  "오합지졸을 훈련해 봐야 30일 만에 얼마나 정병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암기훈련을 시키면 훨씬 쓸모가 있을 겁니다."

 

  "좋소. 그 방안도 채택하겠소. 앞으로 좋은 묘안이 떠오르시면 사후 재가를 받으시고 일단 시행하도록 하세요. 시간은 금입니다."

 

  "대주님!"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자 심자앙의 눈이 감개무량한 듯 젖어갔다. 자고로 책사란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마저 바치는 거라 배워온 그로서는 참으로 훌륭한 주군을 얻은 기분이다.

 

  방책이 나오자 행동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하오문을 통해 사존맹과 집마부에 연통을 넣자 안 그래도 정파가 가는 것에 대한 배아픔을 해소함은 물론 실리마저 챙길 수 있다는 유혹에 바로 넘어갔다.

 

  거기에는 실질적으로 병권을 장악한 소천악의 제안이라는 게 더욱 매력적이었다. 최소한 정파무리들에게 모욕을 당할 이유가 없다는 게 기분을 고무시켰다. 두 파는 바로 장로회의를 열어 전격적으로 고수파견을 결정했다. 두 파는 고수선별과 교역물품을 선정하느라 모처럼 부산하게 움직였다.

 

  전격적으로 행동한 두 파는 불과 열흘 만에 일류고수 오백 명과 절정고수 열 명 그리고 최절정고수 네 명을 급파했다. 그 규모는 정파에서 파견한 수보다 오히려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 소식이 정파에 안 들어갈 리 없었다. 놀란 정파에서는 다급히 추가로 고수를 급파하느라 난리법석을 피울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심자앙의 머리에서 나온 계략이었다. 소문을 내서 정파에 경각심을 일으키려는 속셈이 숨어 있었는데 여지없이 걸려든 정파무림이다.

 

  덕분에 사신단 호위세력은 점점 더 커지며 만약에 발생할 위험을 감소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코도 안 풀고 이뤄졌다.

 

  비도문에 보낸 자도 희소식을 가지고 왔다. 가뜩이나 재정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비도문에서는 창고에서 고이 잠자고 있던 섬전탈명침(閃電奪命針)을 무더기로 방출했다. 아무리 싸게 해도 평소라면 섬전탈명침 하나에 은자 오십 냥을 받아야지만 워낙 대량주문인데다가 황궁의 이름을 걸자 어쩔 수 없이 은자 열 냥에 협상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을 밀위를 통해 보고받은 건성제는 어이가 없었다. 그저 무공이나 제법 하는 놈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용병술마저 능하자 더욱 경각심이 일었다.

 

  "밀위! 앞으로 소천악이라는 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하게 감시해 보고하도록."

 

  "존명!"

 

  건성제는 결코 자신에게 거역한 자를 용서한 경우가 없었다. 그 점이 소천악에게 특별히 예외로 할 리도 만무했다.

 

  "네 이놈! 어디 두고 보자. 감히 황제를 거역한 자의 처참한 말로를 내 보여주리라. 안 그런가, 좌밀위?"

 

  "옳은 말씀이옵니다. 하오나 무림인들은 전부터 황궁과 서로 간섭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혹여 문제가 생길 염려가 있사오니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잘 안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차도살인지계를 쓸 것이야. 남의 손을 빌어 해치우면 뒤탈도 없고 말끔하게 처리될 거다."

 

  음산하게 말하는 건성제의 얼굴에 득의의 미소가 서서히 피어났다.

 

 

 

  건성제와 소천악의 불꽃 튀는 신경전이 벌어지는 동안 심자앙 수석책사와 책사들은 준비한 일들을 착착 진행해 가는 순발력을 보였다. 책사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인정하는 주군을 보자 물 만난 물고기처럼 종횡무진 활약상을 보였다.

 

  먼저 적어도 왕복 일 년 이상 걸리는 장거리 여행에 따른 식량 등 보급물자 확보를 완료했다. 또한 각종 돌발변수를 가정한 여러 가지 대처 방안 등을 면밀하게 검토하느라 밤을 낮처럼 일에 열중했다.

 

  병사들을 인수한 후 종천리와 협의한 후 혈살막 살수를 동원해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훈련에 박차를 가해 나름대로 전력에 포함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살수들은 사정없이 병사들을 독촉해 섬전탈명침 사용법을 숙지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보람은 하루가 다르게 나타났다. 오합지졸이던 이천 명의 병사들은 팔괘진법을 형성해 암기를 발사하는 삼중방어태세를 서서히 갖추어갔다. 아무리 초보적인 진법이라지만 진을 형성해 움직이자 상상외로 놀라운 효과가 나타났다. 최소한 비슷한 병사들이 공격해 온다면 낭패를 면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할 기미를 보였다.

 

  훈련받는 병사들도 날이 갈수록 자신들의 힘을 자각하고 더욱더 훈련에 매진했다. 미지의 땅으로 가는데 무력이 향상된다면 생존확률이 높다는 걸 모를 리 없는 그들로서는 한 가닥 동아줄을 잡은 기분으로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어쩌면 새로운 병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되는 훈련장이다.

 

 

 

  소천악은 출발을 며칠 남기고 도착한 사존맹과 집마부에서 파견한 고수들과 면담을 시작했다. 사존맹에서는 외당 당주인 구지귀왕(九指鬼王) 요문략(姚文略)이 왔고 집마부에서는 흑혈대의 대주인 탈혼검(奪魂劍) 지공타(志拱拖)가 왔다.

 

  사십대 중반인 두 사람은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는 전형적인 무인이다. 요문략이 약간 호리호리하다면 지공타는 전신이 탄탄한 근육으로 덮인 열혈남아로 보였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소천악의 첫 인사에 아직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채 두 사람이 포권하며 답했다.

 

  "이리 불러주시니 뭐라 말해야 할지."

 

  "다 잘되자고 하는 일이지요. 저는 정파 무림인보다 당신들을 믿습니다. 같잖은 정의수호보다 실리를 따지는 편이 이번 일에서는 더욱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허허,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우리야 좋지요."

 

  서서히 경계심을 풀며 대화의 창이 열리면서 그들만의 이야기가 오갔다. 때론 웃음이, 더러는 심각한 음성이 흘러나오는 밀담의 현장이다.

 

 

 

  모든 준비를 마친 천축 사신으로 임명된 관무평과 함께 소천악은 건성제를 알현하기 위해 황궁으로 들어갔다. 보안 관계상 관무평과 호위총책임자인 소천악만이 황제를 만날 수 있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 폐하! 이제 천축으로 가기 전에 윤허를 바랍니다."

 

  약간은 아부적인 관무평 사신의 말에 흐뭇한 미소로 답례하는 건성제였다.

 

  "오! 부디 성공적으로 무사히 다녀오기를 바라오."

 

  "이를 말이옵니까? 심력을 다해 황명을 수행하고 돌아오겠나이다."

 

  사신단장인 관무평과 건성제의 부드러운 덕담이 오고 갔다.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천악은 내심 웃긴다는 기분으로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를 건성제가 조용히 보낼 리가 만무했다.

 

  "금위대 대주는 들어라! 이번 사신행에 호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해라. 그리고 정파 무림인들이 고맙게도 합류했다. 그들과 잘 협의하여 좋은 결과를 보이도록 하라. 가는 길에 적대적으로 대할 나라들이 몇 있으니 조심하여야 한다. 이번 원정길에 지원된 자금에 부끄럽지 않게 임무를 수행해라. 만약 실패한다면 엄히 책임을 물을 것이다."

 

  드디어 가시가 달린 말이 들려오자 소천악은 순간 확 뒤집어버리고픈 마음을 애써 누르며 담담하게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딱 두 마디로 건성제에게 보고를 마친 소천악이다. 미사여구가 일절 생략된 말투에 기분이 다시 한 번 불쾌해진 건성제의 내심 정도는 안중에도 없는 소천악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번이 마지막 대면이라는 마음이 진하게 깔려 있었다.

 

 

 

  건성제에게 보고가 끝나자 바로 천축을 향한 대장정의 서막이 올랐다.

 

  서안, 난주, 주천, 돈황, 투루판, 우루무치, 쿠차, 카스로 이어지는 엄청나게 먼 길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지명을 보니 천축으로 간다는 실감이 난 소천악이다.

 

  군기를 앞세우고 호호탕탕 황도를 나서는 이천 명의 기마병들이 말을 타고 질서정연하게 행진했다. 불과 삼십 일 만에 천하의 오합지졸이 겉으로 보기에는 정병처럼 보일 정도였으니 혈살막 살수의 훈련이 그 얼마나 독했는지는 가히 짐작이 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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