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84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84화
그리고 위(衛) 위에 사령부 총부(總部)가 중앙에 위치하여 중앙과 지방의 군령권(軍令權)을 행사하였다.
금위대 대주란 직책상으로는 절충도위(折衝都尉) 급이지만 실질적인 권력에서는 거의 장군을 능가하는 실세 중의 실세였다. 황제의 친위군이라는 지위는 군부에 위압적으로 다가서 장군들은 물론 대장군도 함부로 하기는 어려운 처지였다.
소천악의 청원대로 건성제는 시원하게 높은 직급을 하사했다. 물론 그 내막은 얼마 후 천축으로 떠나면 사실상 유명무실한 직책이란 걸 이용해 인심이나 후하게 쓴 셈이다. 소천악도 그 사연을 잘 알았지만 불리할 게 없는 일이라 모른 척했을 뿐이다.
군의 최고위 기관인 총부를 찾아간 소천악은 배정받은 병사들의 신상명세를 보고 분노가 치밀어 자칫하면 총부를 엎어버릴 뻔한 위기를 애써 참아냈다.
천축사신단 보호라는 막중한 사명과는 달리 병사들은 직업병도 아닌 부병제(府兵制)로 구성된 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부병제란 20∼60세에 이르는 장정들에게 병역의무를 주어 농사철에는 농사짓게 하고 농한기(農閒期)에는 책사 훈련을 받게 한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다.
전쟁 경험이라곤 귀동냥이 전분인 병사들은 나이도 제각각이다. 오죽하면 턱에 허연 수염이 난 노인마저 보여 실소를 머금게 했다.
"이 병사들이 금위대 대주께서 인솔하실 자들이외다."
한 절충도위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자리한 인물들을 보던 소천악은 기가 막혀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아니, 저들이 이번 천축원정군에 소속될 병사들이오이까?"
"그렇소이다. 보기에는 저래도 조금의 훈련은 거친 병사들이오."
그의 설명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소천악의 눈에는 한심스런 모습이 연달아 들어왔다. 이천 명의 병사는 숫자는 일단 눈어림으로도 비슷하긴 했다.
숫자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형색이 말이 아니었다. 군복도 너덜너덜거려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한 모습이었고 소천악을 바라보는 얼굴엔 잔뜩 두려움이 실려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는 소천악이 옆에 서 있는 장수에게 물었다.
"저들이 병사 맞소이까?"
"맞소이다. 자랑스러운 대당제국의 병사들이지요."
동문서답을 하는 장수를 금방이라도 찢어발길 듯한 눈초리를 쏘아 보내는 소천악이다. 살을 에는 소름 끼침을 느낀 장수는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이보시오, 좋은 말 할 때 좀 자세히 말해 주시구려. 더 이상 겉도는 이야기만 한다면 이 사람 어찌 변할지 모르오. 후회하지 말고 조심하심이 좋을 듯하오."
"아니, 지금."
격노한 듯 장수가 반발하며 소천악을 쳐다보다 매섭게 쏘아보는 시선을 보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주친 소천악의 눈에서 혈광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와 그물처럼 전신을 감싸는 걸 느꼈다.
"내 분명히 경고했소이다. 또다시 헛소리를 한다면 그 대가에 대해 후회해 봐야 이미 마차 떠난 걸 알 거외다."
찰나에 살기 어린 눈에 기가 질린 장수는 더 이상 비아냥거리지 못하고 쩔쩔맸다.
"말씀해 보시오. 제가 아는 건 말해 드리지요."
"저들은 도대체 어떤 병사들이오? 아무리 봐도 정병이라기엔 한참 모자라 보이오만."
"음!"
잠시 대답할 말이 궁색해진 절충도위가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저들은 이번 원정을 위해 징병된 자들이오. 대부분이 농민인 걸로 알고 있소."
"농민? 아니 군사훈련은 받긴 받은 것이오?"
"알기로는 일주일간 훈련을 받았다고 하오."
"일주일이오? 아니 전쟁터에 온 병사들이 고작 일주일 훈련에 싸울 수 있다고 봅니까?"
"전 모릅니다."
울화가 치민 그는 절충도위에게 넌지시 물었다.
"도대체 이건 누가 배정해 준 겁니까?"
"얼핏 듣기로는 주청령 황녀 마마께서 직접 장군님에게 서찰을 보냈다 하오이다."
"이런."
그제야 숨겨진 비밀을 알아낸 소천악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일국의 중요한 정책에 한낱 복수심에 어이없는 행동을 자행한 주청령의 머리 구조를 분해해 보고픈 마음이다.
"이거 정정은 안 됩니까?"
"이미 황제께서 윤허하신 일이라 다시 번복한다면 황제 폐하의 위엄이 손상이 가는 무엄한 일이지요."
딱 잘라 거부하는 절충도위의 말에 이미 때가 늦었다는 걸 직감한 소천악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머리는 되로 받고 말로 줄 계략을 서슴없이 짜냈다.
"좋소이다. 어차피 출발일이 삼십여 일 남았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지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소천악의 눈에서 시퍼런 살기가 절충도위에게 쏘아져갔다. 그 두려운 기운에 도위는 순간 지옥이 무엇인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갈수록 기운은 거세지기만 했고 이미 버틸 한도를 넘어선 그는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니, 대주님! 제발 기운을 거둬주시지요."
사정조로 애걸하는 도위를 보며 차가운 미소를 보냈다.
"사람을 대할 때는 항상 명심하실 게 있습니다. 건방떠시다가 골로 가시는 수가 있답니다. 쥐꼬리만 한 권력 있다고 어깨에 힘주다 큰일나십니다."
기운을 거두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도위는 앞에 선 인물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 인간은 권력이란 힘으로 누를 자가 아니란 걸 알았다. 바로 그의 태도는 돌변했다.
"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병사들이 마음에 안 드시면 다시 청원해 올릴까요?"
절대 불가를 외치던 조금 전의 모습은 간데없었다.
"아니오. 황상께서 주신 소중한 병사들인데 어찌 그럴 수가 있겠소이까! 내일 중에 제가 보낸 자가 있을 겁니다. 병사들을 잘 인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소천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시달리던 절충도위는 넋 놓고 그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다.
장원에 돌아온 소천악은 심자앙 수석책사 등 5인의 책사와 함께 심도 깊은 회의에 들어갔다.
상황을 설명하자 심자앙 등 책사들은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일이 어려울수록 자신들의 진가를 발휘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생각이다.
"대주님! 이건 오히려 기회입니다. 진실은 어차피 나중에 밝혀질 테니 그때 이런 내막이 드러나면 전화위복이 되는 겁니다."
"그건 그렇지만 당장 닥친 현실이 문제입니다. 병사들은 모두 오합지졸이고 시간은 없어요."
분기탱천한 소천악을 달래며 묘책을 내놓는 심자앙과 책사들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날이었다.
다음 날 다시 총부를 찾아간 소천악은 절충도위를 만나자 다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꾹 참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자신에게 벌어지자 새삼 황제의 그늘이 얼마나 길게 드리워진 건지 깨달았다. 허탈해진 마음을 추스르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절충도위, 이 병사들의 생사여탈권이나 모든 지휘권은 분명히 내게 있는 거지요?"
"그렇소이다."
어제의 후유증으로 긴장감을 감추진 못한 절충도위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소. 이제 가보시구려. 난 내 병사들과 상견례를 치러야겠소."
말과 동시에 기세를 풀자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바짝 얼어 있던 장수가 그제야 비로소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뒤돌아선 소천악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 말없이 사라져갔다.
소천악은 그런 그의 심중 따윈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저 금방이라도 도망갈 듯한 오합지졸을 어떻게 지휘해 선봉군을 진격시킬지 암담하기 그지없는 마음이다. 고민하는 그의 옆에 어느새 종천리 막주가 다가와 말을 꺼냈다.
"아주 가관이군요. 이건 생각보다 더한데요."
"짐작하셨소?"
"당연하죠. 권력이란 생리를 너무도 잘 알지요. 살수 일을 하다 보면 정적을 죽여달라는 청부가 지겹도록 오곤 했소이다. 그때마다 그 비정함에 치를 떨곤 했지요. 심지어 형을 죽여달라는 동생도 부지기수로 있는 형편입니다."
"그렇군요. 이거 어디 더러워서 권력이란 놈 근처에 가겠습니까? 하하!"
기분을 풀고 호탕하게 웃는 소천악을 바라보며 종천리는 내심 감탄성을 질렀다. 나름대로 배짱과 호기를 지닌 묘한 인물이다. 나이는 어려 보여도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니란 경각심이 절로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요량이십니까?"
"후후! 어제 책사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비록 저들이 전투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지만 꼭 필요할 때가 있을 거란 의견입니다."
"아니, 무슨 말씀이신지?"
"이제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소천악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두려움에 가득 찬 병사들에게 다가섰다.
"모두 들으시오. 난 여러분들과 앞으로 생사를 함께할 소천악 금위대 대주라 하오."
첫마디가 터졌다. 일반 병사들이라면 우렁찬 군호를 외치며 환호할 터였다. 하나 대부분이 얼마 전만 해도 농사만 짓다 갑자기 징병되어 끌려온 이들이 며칠 훈련을 받았다고 바로 정예병이 될 리는 만무였다.
당연히 눈만 멀뚱거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에 소천악은 실소마저 나왔다.
"이제 우리는 천축에 가는 사신단과 상단의 호위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소. 힘들고 어려운 일은 분명하오."
"헉, 천축행이라니."
놀란 병사들이 겁에 질려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그들도 소천악이 말하는 의미를 뼈저리게 느낀 처지다. 멀고 먼 천축길을 가야 한다는 암담감이 모두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제 그들이 그 일을 하기 위해 머나먼 원정길에 올라야 한다니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죽으라는 말이 속편하게 들릴 정도였다.
동요하는 병사를 바라보던 소천악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모두 들으시오. 여러분들은 비록 이번 원정에 포함되었으나 격렬한 전투에는 투입되지 않을 것이오. 다만 시키는 일이 조금 힘들 수는 있소이다. 만약 그 일에 게으름을 피우는 분들은 정말 싸우고 싶어 몸살이 나신 경우로 간주하고 전투부대에 넣어드리겠소이다."
"헉! 아닙니다, 대주님. 명만 내려주시면 열심히 따르겠습니다."
"좋소이다. 그럼 난 여러분을 믿고 그대로 행하지요. 이제 곧 여러분들은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전투방법을 훈련받을 테니 기다려주시오."
"존명!"
병사들은 어느새 배운 말투로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순진한 그들을 바라보는 소천악의 눈길이 살짝 따스해지는 걸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종천리 막주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듣기 좋은 말로 불안에 떨던 병사들을 다독인 소천악은 다시 장원으로 돌아와 심자앙과 책사들과 함께 의논에 의논을 거듭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소천악이 말했다.
"정파에서 파견 나온 이들은 전부 일류고수 이상이고 절정고수는 물론 최절정고수도 세 명이나 있다고 하니 이거 골치 아픕니다."
"그 문제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는데 이이제이(以夷制夷)입니다."
무언가 계책을 말하려는 듯한 심자앙의 말에 눈이 반짝이는 소천악이 얼른 물었다.